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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요호호 2013. 8. 21. 05:40

54. 학과를 불문하고 영어로 강의를 한다는 것을 대학들이 자랑하고 뽐내는 넋 나간 시대입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만이 아니라 지방의 산골 소도시까지 영어 간판이 범람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 정책의 잔혹성을 말할 때 두가지를 거론합니다. 첫째, 조선어 말살, 둘째, 창씨개명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민족어 경시, 훼손에 나서고 있습니다.

54. 물론 제가 이런 글을 써도 행정기관에서는 끄떡도 하지 않고, 세상도 들은 척도 안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옳은 일, 바른 말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하고 하고 또 해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이고 책무입니다. 그 바보스러운 되풀이가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잘못된 세상사가 바로잡히고, 새로운 정책이 수립되고 합니다. 그것이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69. 그 위대한 천재들의 작품을 정신 집중해 차근차근 또박또박 읽어나가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무수한 봉우리를 넘고 골짜기를 건너며 온갖 보석을 줍게 될 것입니다. 작가마다 다른 다채로운 문체, 형형색색의 소재, 각양각색의 주제, 온갖 기발한 구상, 기기묘묘한 표현 기법, 무궁무진한 상상력, 세련된 대사 처리의 효과, 과감한 생략의 역효과, 뜻밖의 상징의 감동, 살아 생동하는 무수한 인물 군상…

 그건(세계문학전집) 세계적인 천재들이 맘껏 펼치는 문학의 대향연이며, 언어의 대축제입니다. 그 잔치에서 맘껏 마시고, 취하고, 즐기십시오.

79. 천만다행하게도 어머니는 손끝이 재고 엽렵해 바느질을 잘했고, 음식 솜씨가 좋았습니다. 긴 겨울밤 어머니가 잠 못 자고 남의 집 한복을 지을 때 바늘귀에 실을 꿰어드리던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가 실을 꿰드리면 한숨 가득한 어머니 얼굴에 웃음이 어렸거든요.

81. '아아, 이런 글을 쓴 사람은 누굴까.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이보다 더 잘 쓸 수도 있다….' 저는 이런 생각에 휘말리며 그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아지랑이와 종달새가 어우러진 봄 풍경을 쓴 그 글은 제가 꼼짝할 수 없도록 잘 쓴 글이었습니다. 제가 받은 최초의 충격이었고, 시샘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몸속에서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는 최초의 발견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그런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것인지 제 마음을 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걸 굳이 설명하자면 배고플 때 밥을 먹고 싶은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 말고, 이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각자가 하고 싶은 마음은 이런 식으로 절로 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이 동하는 일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그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실패가 없고, 후회가 없고, 그 생애는 행복합니다. 단, 사람에 따라서 그 발견의 시기가 다를 뿐, 누구나 한 가지 일에는 마음 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85. 그러나 벌교는 그런 살벌함이 전혀 없이 아름다운 풍광에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하루에 두 차례씩 들고 나는 밀물과 썰물이 신비롭기 그지없었고, 포구의 풍성하고 기나긴 갈대밭이 한없이 아름답고 포근 했으며, 철따라 날아왔다가 떠나가는 기러기 떼의 그 정연한 비행과 청아한 울음소리는 또 얼마나 신기하고 마음 맑아지는 음악이었는지 모릅니다. 첨산의 신령스러움, 징광산의 우람함, 제석산의 의연함, 그리고 20리 방죽길의 길고 긴 아득함과 중도 들판의 풍성함, 갯내음 스민 개울가 논둑에 숨은 참게를 갈대꽃대로 살금살금 유인해 잡던 그 깨소금 맛, 설한풍 속에 피던 핏빛 동백의 처연한 아름다움, 겨울밤 대나무밭 참새 사냥의 설레임, 옛날이야기가 치얼치렁 이어졌던 겨울밤 머슴들 사랑방에서 생고구마 깎아 먹던 맛과 생두부에 김치를 감아 먹던 맛, 과부인 친구 어머니의 슬프고 외로운 소복 모습을 닮았던 하얀 치자꽃, 보리며 밀 서리를 하다가 쫓기던 재미, 비 쏟아지는 여름밤 발가벗고 감나무를 타고 올랐던 단감 서리의 아슬아슬함, 이런 벌교의 평화로움과 정다움이 저를 어루만지고 안정시켜 약효 좋게 야뇨증을 치료해준 것입니다. 

96. 모든 예술가 지망생이 너나없이 갖는 의문과 회의는 '나는 과연 재능이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남다른 천재성은 갖고 싶고, 확인은 되지 않고 하니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재능을 확인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자신을 바라보십시오.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닌데 자기 스스로 그 어느 분야의 예술에 끌리고, 하고 싶고, 하면 즐겁습니까? 그렇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그 분야 예술에 재능을 타고난 것입니다. 이 확인이 필요조건인 동시에 충분조건입니다. 그 재능을 믿고, 그 길로 가고 싶으면 거침없이 가십시오. 그 선택에는 아무런 실수도 하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 스스로의 선택이기 때문이고, 당신 인생의 주인은 당신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설령 실패하더라도 당신은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그 아쉬움은 예술을 해오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쵯ㄴ의 노력을 다하지 못했다는 반성일 곳입니다.

문학청년 시절에 저도 초조한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또 쓰고,  신춘문예에 자꾸 낙방하고, 문예지 추천도 안 되고 하면서 저의 재능에 끝없이 회의했습니다. 그 회의가 없다면 사람일 수 없고, 발전도 있을 수 없겠지요. 그리고 그런 낙방들은 실패가 아니고 수련이고 단련입니다. 

흔히 얘기하는 교훈 중에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갈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102. '내가 지난 4년 동안 변화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4년 단위로 그렇게 변해간다면 아마 40년쯤 후에는 나는 성인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졸업을 앞두고 제가 학교 신문에 썼던 글의 내용입니다. 저는 그렇게 대학 생활에 만족을 표시했습니다. 비록 소설가는 못 되었지만 문학의 길은 찾았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대학 시절의 저는 대견합니다. 젊은 시간에 많이 고민하십시오. 고민 없는 젊음은 젊음이 아니고, 젊은 고민은 인생의 문을 열어줍니다.

104. 책 한권을 읽는 데 이틀 걸렸으면 이틀을, 사흘 걸렸으면 사흘을 생각하는 일에 바치십시오. 책을 읽을 때와 똑같은 집중과 관심으로 그 책에 대해 이모저모 세세하게 생각해 나가십시오. 

'왜 그런 소재를 선택했을까.'

'주제와 소재는 효과적으로 조화되어 있는가.'

'주제의 형상화는 잘 이루어져있는가.'

'사건 전개는 우연이나 조작적이지 않고 실감 있고 필연적인가.'

'구성의 허술함이나 무리는 없는가.'

'인물들의 개성과 생동감은 살아 있는가.'

'문체의 특성은 무엇인가.'

'감각과 묘사력은 특색이 있는가.'

'결말 처리는 효과적이었는가.'

'소설로서 성취도는 어느 정도인가.'

이런 것들을 소가 눈 지그시 감고 느긋하게 되새김질하듯 차근차근 곱씹고 되씹으며 따져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작품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고 비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 스스로 하는 가장 효과가 큰 소설에 대한 종합 공부입니다.

105. 그런데 이 지접에서 한 가지 필히 확인할 사실이 있습니다. 소설에 대한 당신의 전체적 감상입니다. … '아, 잘 썼다. 그치만 별것 아니네.' '나도 딴 방법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어.' 당신이 소설을 쓸 수 있으려면 아무리 좋은 작품을 읽었더라도 당신의 독후감은 늘 이래야 합니다. 그것이 객기든, 만용이든, 오만이든, 오기든 다 좋습니다. 좋은 작품을 좋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가닥 곤두서는 자신감. 그것이 당신의 영토이며, 당신이 차지할 수 있는 빈자리입니다. 수백, 수천 편의 좋은 작품을 읽었더라도 그 '빈자리'는 당신의 의식 속에 꼭 확보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섭섭하지만 작가 되기를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기죽고 가위눌려서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124. 개성적인 인물을 많이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필연코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당신이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이 말을 '최초이자 최후의 경고'로 받아들이십시오.

'1인칭이 아니라 3인칭 소설을 써라.'

지금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99퍼센트는 1인칭 소설입니다. 그것은 벌써 20여 년 가까이 된 아주 잘못된 작풍이고, 무분별한 유행입니다. '나는, 나는'으로 시종일관하는 서술로는 인물의 개성, 인물의 독창성, 인물의 전형성이 창조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1인칭 소설은 열 편을 쓰나, 백 편을 쓰나 그 작가가 만든 인물은  '나' 하나일 뿐입니다.

128. 소설에서 작가의 인물 창조란 자연의 그 위대하고 탁월한 능력이 빚어낸 인간의 그 다양함의 차이를 발견해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수가 하도 많고 많아 그 차이란 아주 미세하고도 섬세합니다. 그러므로 그 차이를 '뚜렷하게' 찾아내려면 유심히, 뚫어지게, 꿰뚫어지게 보아야(관찰) 합니다.

129. '나는 파리 시내의 모든 사람이 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뚫어지게 관찰한다." - 플로베르

바로 이것입니다. 서울 시민은 1천 2백만 명을 헤아립니다. 그들은 모두 당신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건성으로, 무신경하게 지나치지 말고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꿰뚫어지게 살피십시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의 필요에 따라 분해하고, 나누고, 덜어내고, 결합하고, 덧붙이고, 수정해서 재구성해내십시오. 개성적인 인물은 그렇게 해서 탄생됩니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 이 말은 위대합니다. 불변이기 때문에. 플로베르나 저나 눈 부릅뜨고사람을 유심히 살피는 것은 자연의 마술적 창조력을 흉내 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개성적 인물, 전형적 인물은 생김의 다름만을 말하는 것이 물론 아닙니다. 성격/성품/지적 수준/직업/행동/어투/의식,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뒤섞여 한 인물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을 이루어 내기 위해 작가는 꾸준히 노력해야 하며, 줄기찬 노력이 이루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152. 아, 저는 남자의 만용이었다 치더라도, 김초혜는 어쩌자고 결혼을 결심했을까요. 조정래, 유산 한 푼 받을 것도 없는 가난뱅이 집안의 차남. 언제 작가라도 될 것인지 아무런 기약이 없는 사내. 수입이라고는 전무한 대한민국 육군 일등병일 뿐인 사내를 남편으로 맞이하고자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슬아슬 조마조마한 일일 뿐이고, 어쨌거나 김초혜는 시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사람 보는 눈도 탁월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20여 년 후에 조정래가 어떻게 될지 꿰뚫어본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김초혜의 결혼 결정은 용기를 넘어 만용이었습니다. 그걸 신파조로 말하자면 '사랑의 힘'이라고 할밖에 없지요.

제가 지금까지 42년 동안 김초혜 한 여자를 해바라기하며 살아온 것은 그때 저를 선택해준 것에 대해 보은을 다하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때 김초혜가 보잘것없는 저를 외면해버렸더라면 저는 깊게 상처받은 영혼을 떠안고 오늘과는 영 다른 방향에서 방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195. '그는 그 분노와 증오를 어떻게 다스리며 그렇게 참혹한 역사를 그렇게 냉정하게 그려낼 수 있었으며, 그렇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인가.'

며칠을 생각하다가 저는 마침내 답을 얻었습니다. 그는 그 분노와 증오를 이성화하고 논리화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감정 상태에 두었더라면 그런 글을 써낼 수 없었을 것이란 깨달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

제 머릿속에서 정리된 논리였습니다. 그것은 작가가 지녀야 하는 가슴이고, 의식이었습니다.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가 없고서는 역사를 바르게 볼 수도, 진실을 캐낼 수도, 인간을 옹호할 수도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어야만 바르고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96. 우리는 아무런 판단력이나 분별력 없이 인디언을 멸시하고 적대시했듯이 흑인도 마냥 무시하면서 동시에 우월감을 가졌던 것입니다. 의식의 식민지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204. 작가에게 있어서 상상력이란 기본적인 능력이면서 절대적인 능력일 것입니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머리 좋은것으로는 되는 일이 아닙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암기를 우선으로 하는 일반 공부는 잘 할 수 있어도 예술을 할 수 없는 것은 상상력 부족 때문입니다. 상상력은 다른 말로 하면 창의력입니다. 사물을 남다르게 보고, 남다르게 생각하고, 남다르게 엮어내는 능력인 상상력은 작가의 장수를 보장하는 동시에 작품 세계도 다양하게 해줍니다.

215. 그로부터 26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여태껏 한 번도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걸 만약 묻는다면 그 얼마나 멋없는 일입니까. 우리 인생살이에서 알고도 모르는 척,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넘기는 그 헤아림과 짐작의 여백이 그 얼마나 깊고 포근하고 넉넉한 삶의 미학입니까. 그런 때의 김초혜는 저에게 또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되, 연꽃이거나 모란이거나 수국입니다. 왜 하필 이 세 가지 꽃이냐고요? 이 세상의 꽃 중에 곱고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을까마는 저는 이 세 가지 꽃을 가장 좋아합니다. 저의 남은 소원은 어디 바다도 보이고 산도 보이는 곳으로 가 연꽃과 모란과 숙ㄱ이 아담한 집을 에워싸고 흐드러지게 피도록 해놓고 하루에 몇장씩의 글을 느릿하게 써나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조금씩 길어지는 인생 황혼녘의 제 그림자를 보며 꿈꾸는 이 소원을 너무 호사스럽다고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꿈은 꿈이어서 아름답고 보호받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219. "그게 어지 가능한 일입니까. 수많은 주인공들에 따라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고, 이야기의 줄기가 수없이 갈라지고 또 갈라지는데요."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됩니다. "그거……, 글을 쓰려고 마음먹을 때부터 정신은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자나 깨나 그 생각에만 몰두하게 되면 그게 별로 어렵지 않게 되어 갑니다."


감동은 모든 예술작품의 생명성이며, 예술성의 척도이며, 예술의 존재 이유입니다. 뭇 대중이 예술작품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 감동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그 감동을 오래 간직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동의 크기와 예술성은 정비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우리의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목적에 기여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노동은 치열하다 못해 가혹하기까지 합니다. 말이 좋아 하루 8시간 노동이지 그 가혹성 때문에 모든 사람은 지쳤고, 다른 일에 무관심해졌습니다. 그런 그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마음이 울려 이끌리게 하고, 그 감정이 사무쳐 오래오래 남는 것, 그것이 감동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자를 통해 그 일을 해내기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저는 작정했습니다. 그들을 감동시키려면 그들의 두 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 그래서 저는 20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먹고, 자고, 쓰고'(아내가 신문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말)가 연속되는 생활 속에서 정말 16시간의 노동을 다 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저와의 약속을 지켜 제자신을 이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글을 무난하게 잘 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글을 물 흐르듯이, 그러면서 의미가 깊도록 쓰고 싶으면 많은 책을, 정신 모아, 유심히 읽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앞에서 몇 번씩 강조했던 말입니다. 남의 눈길에 끌리게, 남의 마음에 담기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현실은 소설가의 상상을 능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실의 삶의 필연성과 처절성은 늘 소설가의 상상력보다 깊고 넓은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현장 취재를 꼭 해야 합니다. 만주의 고생은 그 끝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353. 여러분, 정직하게 자기를 돌아보십시오. 한 가지의 문제, 한 작가의 작품을 놓고 정반대의 입장에서 평을 했는데 이 평론가의 말도 옳고, 저 평론가의 말도 옳게 느껴지는 경험을 안 해보셨습니까? 그런 일은 너무 흔합니다. 지적 수준이 낮을수록, 자기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을수록 그런 현상은 더 심해집니다. 궤변도 논리이고, 모든 논리는 그 나름의 설득력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궤변적 평론도 많고, 그건 엄청난 독입니다. 

평론은 독서의 보조물일 뿐입니다. 선입관이나 고정관념 없이 작품을 먼저 읽고 자기의 주관적 판단과 평가를 한 다음에 비로소 평론을 참작하십시오.

363. 제국주의 국가는 지금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강대국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제 제국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영토를 장악하는 방법은 번거롭고 반감을 사게 됩니다. 그 방법 아니고도 식민지를 거느렸던 때보다 더 큰 이익을 장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돈의 힘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토 제국주의에서 자본 제국주의로 모양을 바꾼 것뿐입니다. 

그들의 착취 대상인 약소국이라고 그 변신을 모를 리 있습니까. 현대 대중교육에 의해 약소국에도 총명한 지식인이 포진하게 되었으니까요. 그 지식인이 자본 제국주의의 교묘한 침탈에 대해서 방어하고 나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방어 무기가 바로 민족주의입니다. 약소국이 거대한 제국주의의 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예나 지금이나 민족주의뿐입니다.

365. 아까운 돈 들이고, 귀한 세월 바쳐가며 유학한 것은 그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태어난 나라, 당신의 모국과 당신의 모국을 형성한 그 사회를 위해 건전하게 쓰자고 공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너나없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경제의 흐름을 따라 세상이, 세계가 어떻게 변한다 해도 인종의 차이, 국가의 차이, 민족의 차이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세계화라는 말과 함께 인터넷이 일시에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각종 운동선수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교류하고, 우리나라 전자제품이 세계시장을 석권해나간다고 해서 그런 차이가 다 없어진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현상은 다만 돈의 흐름을 따라 일어나는 경제의 풍경일 뿐입니다.

372.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379. 대학생이 지식인의 책무를 바르게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목을 갖추는 일은 별로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그런 자세를 갖추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 사람은 벌써 그 절반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자각의 싹 위에 물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우선 책을 읽는 것입니다. 첫째, 지식인의 삶을 충실히 살다 간 분들의 전기나 평전을 골라 읽으십시오. 둘째,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인의 책과 글을 골라 읽으십시오. 셋째, 진정성을 가진 시민단체를 골라 틈틈이 자원봉사를 하며 실천 경험을 쌓고, 성취의 보람 속에서 안목을 더욱 넓혀 가십시오. 참된 지식인의 삶은 고달프나 그 의미와 보람은 하늘의 넓이입니다.

389. 선진국 국민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우리처럼 그렇게 잘사는 것에만 혈안이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두 개의 의식을 갖추고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는 정치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의식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와 경제는 국민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마차의 두 개 수레바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국민된 자는 자기들의 행불행을 싣고 가는 마차의 두 수레바퀴가 제대로 잘 굴러가는지 정치와 경제에 똑같이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 가지에 치열하게 집중하고 몰두하는 생각(사고)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에 폭발하는 불꽃처럼 원하던(찾고자 했던) 바가 환하게 꽃피우는 것이 영감입니다.

 흔히들 영감이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그것은 영감이 떠오르는 그 순간만을 보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반드시 자기가 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깊고 깊은 고심과 몰두가 쌓여야만 영감은 분출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영감이란 고심의 깊이와 몰두의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

419. 진실을 지키고, 진실을 찾아가는 삶이란 현실적으로는 언제나 힘겹고 고달프며 손해보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 우직스러움, 그 바보스러움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바꾸어왔습니다. 그 바보 같은 삶은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순결한 영혼과 진정한 양심을 가진 사람만이 그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글쓰기 계획을 세우는 것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먼 나라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일입니다. 먼 나라 여행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이듯이 새로 쓸 작품에 대한 설레임도 언제나 새롭습니다. 온갖 고난을 무릎쓰면서도 굳세게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이 탐험가의 생명력이듯이 새로운 작품을 향하여 새로운 설레임으로 펜을 드는 것, 그것이 작가의 생령력일 것입니다. "작가는 여든의 나이에도 소년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괴테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