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다/시
시, 존재의 법칙을 묻다] 파묻힌 생명 _ 매슈 아널드
요호호
2013. 10. 3. 16:52
지금, 우리 사이에 가벼운 농담 오고 가지만
보라, 눈물 고인 나의 눈을,
이름 모를 슬픔이 가슴을 울리누나.
그렇다 그렇다 우리는 안다.
농담을 주고받을 줄 알고
미소도 지을 줄 안다.
그러나 이 가슴에 무언가 있어
그대의 농담 안식이 못 되고
그대의 미소 위안이 못된다.
그대의 손 내 손에 얹고 잠시만 침묵해다오.
그대의 맑은 눈동자를 내게 돌려
그대의 마음 깊은 곳, 사랑하는 그대의 영혼을 읽게 해다오.
아 사랑조차 약하여
마음 열고 고백하지 못하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용기가 없어
가슴에 품은 진심을 고백하지 못하는가.
나는 안다, 사람들이 한사코 자기 생각을 감추려 함을.
솔직히 고백했다가
멸시받을까, 비난받을까 두려워함이라.
나는 안다,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낯선 사람으로 살아감을.
그러나 모두의 가슴에서 뛰는 것은
똑같은 심장이라.
사랑하는 이여!
그러한 저주에 가슴과 입이 마비되어
우리마저 벙어리가 되어야 하는가.
아 한순간일지라도
우리 가슴의 빗장을 열 수 있다면
여태껏 묶어 두었던
우리 입술의 사슬을 풀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할 것을!
예견된 운명,
변덕스런 아이가 되어
때로는 장난에 마음을 빼앗기고
때로는 온갖 싸움에 몸을 던지고
본성마저 변하는구나.
그러나 운명은,
변덕스런 장난 속에서도
순수한 자아를 지키고
존재의 법칙에 순응케 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생명의 강에 명령하여
우리 가슴 깊은 곳에 파묻혀 흐르게 하였구나.
그래서 인간의 눈은
파묻힌 그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장님 같은 불안 속에서 생명의 강과 함께 정처 없이 흐르며
영원히 떠도는 것 같구나.
그러나 세상의 온갖 혼잡 속에서도
그러나 어두운 투쟁 속에서도
파묻힌 생명을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자꾸 솟구쳐 오른다.
그것은 정열과 한없는 힘을 쏟아
우리의 참된 본질적인 생명의 길을 가려는 욕망.
강렬하고 깊이 울리는 가슴의 신비를 알려는 갈망.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찾아내려는 열망.
수많은 사람들이 제 가슴속을 파헤쳐 보지만
아, 너무 깊어 끝까지 파지 못하누나.
우리들, 수많은 일터에서
그 힘과 기량 모자람 없었건만
우리의 본질적인 일터에서
본질적인 자아가 되어 본 적은 거의 없구나.
가슴에 흐르는 감정 한 가닥조차 표현할 능력이 없구나.
그리하여 우리의 감정은 표현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리누나.
감춰진 자아를 말하고 행동하려 애썼지만 모두 허사였나니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감동적이고 근사하지만
진실은 아니리!
우리는 이제 갈등으로 더는 괴로워하지 않으리라.
순간순간에게 마비의 힘을 갈구하지 않으리라.
그렇다! 그것은 우리의 요구에 따라 우리를 마비시켰다.
그러나 아직도 이따금
영혼의 심연에서 생겨난 미풍의 선율과 떠도는 메아리가
아득히 먼 땅에서 온 듯 어렴풋이 홀로 찾아와
우리의 나날에 우수를 더한다.
비록 아주 아주 드문 경우지만,
어느 사랑하는 손이 우리 손에 쥐어질 때
기나긴 시간의 소음과 섬광에서 헤어나
타인의 눈을 분명히 읽을 수 있을 때
세속에 귀먹은 우리의 귀를
사랑스런 목소리가 어루만질 때
이때만은 우리 가슴속 어디에선가
빗장 열리는 소리 들리고
오래도록 잊었던 감정의 맥박이 다시 뛴다.
눈은 고요해지고 가슴은 편안해지며
우리는 하고자 하는 말을 하게 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인간은 자기 생명의 흐름을 보게 되고
굽이치는 속삭임을 듣게 되며
펼쳐진 초원, 따사로운 햇살, 부드러운 바람을 보게 된다.
달음질 치듯 날아가 버리는 휴식의 그늘을 좇던 치열한 경주가 마침내 잦아든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에 스치고,
낯선 고요가 가슴에 번진다.
그럴 때 인간은 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명이 생겨난 언덕과
그 생명이 흘러갈 바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