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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여행이라고] 2. 소매치기를 당했음다 (2)

요호호 2014. 1. 19. 13:22


경위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ㅡ 2. 소매치기를 당했음다 (2)

전화가 끝나자 우리는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 꼬마 일당이’... '내 모바일을’... ‘훔쳐갔다’…
'동료들을 불렀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경찰이 말했다.
'여기 의자에 앉아 기다려라' 라고 아이도 말했다. 마치 파출소 소장님처럼 아이는 말했다. 경찰 청년은 그 장난이 어이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원래 에티오피아 경찰 취조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아이를 동네 개 패듯 때렸다. 먼저 긴 팔로 꼬마의 뺨을 때렸고, 이것이 경찰봉이다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아이는 바닥에 뒹굴며 울고불고 소리를 질렀다. 험악해진 분위기… 괜히 애를 잡아와서 이런 일을 겪게 만든 걸까 드는 자책감. ‘없어진 물건이 사실은 없어도 되는 물건이니 그만하시죠’ 라고 말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구타가 끝나고 경찰은 우리에게 질문을 했다(파출소 앞을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통역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잡지를 들고 있었다던가, 일당이 대여섯이었다던가, 어디서 당했다던가 등 자초지종을 조금 더 세밀하게 설명했다. 영어를 잘하는 일본 친구 덕분에 나도 가만히 그 자초지종을 들었다. 경찰 청년 너머로 (바닥에) 앉아 있는 아이가 보였다.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어째서 이 아이는 학교도 안 가고 소매치기를 해야만 했을까. 이 녀석을 소년원에 보낸다면 이 녀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떤 게 이 아이를 위한 길일까. 그런데 이 녀석… 죄책감은커녕 ‘집에 가면 뭐하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울고불고했던 그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처음 잡았을 때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었다. 덤덤한 표정. 
 갑자기 일본 친구가 꼬마에게 말했다. “어쩌고저쩌고(영어)... (나한테) 사과해라”
꼬마는 무릎을 꿇으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방금까지 '집에 가면 뭐하지?’의 얼굴이, 자신에게 시선이 모이자 순식간에 울먹거리는 얼굴로 변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무릎까지 꿇으면서. 연극을 보는 것 같은 기분.
잠시 후 다른 경찰들이 왔고 그들은 꼬맹이 일당을 찾기 위해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몇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전혀 처음 보는 다른 아이 둘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 아이는 어디 갔을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아이들을 소년원에 보내지 않는단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소매치기를 보낸다고.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소매치기를 하는 것도, 재수 좋게 어벙한 여행객(나)의 가방을 터는 것도, 재수 없게 붙잡히는 것도, 얻어터지는 것도, 무릎 꿇고 비는 것도, 그 열살 남짓한 아이에겐 그저 일상이 아닐까 하는. 내가 어렸을 때 학교는 당연히 가야 하는 거야라고 학습된 것처럼 그 아이는 소매치기를 했어야만 하는 것이고 경찰 청년은 아이를 때렸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까지 이미 여행을 250여 일이나 했으나, 그제야 나는 걸리버가 소인국에 떠밀려 간 것처럼 누군가에게 비정상이 누군가에겐 일상이 되는 곳에, 다른 사회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과 나, 우리 같은 사람이지만 사는 사회가 다르므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사람이 사회를 만들지만, 또 사회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사회는 어떻게 변화되어가는 걸까.
무엇이 사회를 변화시킬까.

제사에 제물이 필요하듯, 그날 사라져버린 전자책 단말기가 내가 잊고 있었던, 하지만 나로 하여금 여행을 떠나게 했던 질문들을 마주하게 해준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18개월 여행의 절반이 남았지만 귀국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