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 미야자키 하야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
애니메이션이 없었다면 그림 같은 걸 그리지 않았을 사람이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는 시대가 지금입니다. 서브컬쳐는 다시 서브컬처를 낳습니다. 그렇게 이차적인 것을 낳을 때 2분의 1이 되고, 다시 4분의 1, 8분의 1이 되며 점점 엷어집니다. 그것이 지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세계를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일 때, 자신의 눈으로 실물을 직시하지 않고 간단히 ‘뭐 사진으로 됐잖아’ 해버리는 거죠. 사진도 색이나 음영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 자기 좋을 대로 만들어냅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자신의 눈이 어떻게 느끼는지 멈춰서 바라보지 않습니다.
고화질 텔레비전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거짓에 거짓을 더해 뭉쳐놓으니 세계가 인간에게 미치는 충격은 점점 엷어져 16분의 1이 되고, 64부의 1이 되고, 끔찍한 결과에 다다른 느낌입니다.전기가 끊기고 영상이 사라지고 정보가 막히면, 모두 불안하고 병에 걸려 죽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세계는 존재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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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최근 20년 동안, 일본에서는 경제 이야기만 해왔습니다. 마치 터질 만큼 물이 가득 찬 풍선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상과 게임과 소비에 빠져들면서, 개를 키우고 건강과 연금 걱정을 하고 조바심을 내면서, 결국 경제 이야기만 해왔습니다. 불안만큼은 착착 부풀어 올라 스무 살 젊은이와 예순 살 늙은이가 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의 바람이란 상쾌한 바람이 아닙니다. 무섭고 요란하게 지나가는 바람입니다. 죽음을 안고 독을 품은 바람입니다. 인생을 뿌리째 뽑으려는 바람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21세기의 막이 올랐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의 막이 오른 것입니다. 저는 거기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고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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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가 어떻다느니 사회 상황이 어떻다느니 대중매체가 어떻다느니 세상 전체만 논할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된다고 봅니다. 그러면 상당히 여러 가지 것들이 변하지 않을까요?
책으로 가는 문,
철학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Miyazaki Hay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