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6 뒷북 장인이 오늘도 뒤늦게 치는 뒷북소리. 앙코르와트
이건 뒷북 장인의 이야기.
런던에서 3주를 지낼 적 향수병에 걸렸다. 여행을 한지 반년이 넘었지만 아무래도 어리바리한 나는 변화돼가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 런던의 우중충한 날씨는 나를 더욱 어두운 사람으로 업그레이드시켜주었고 의욕이 없었고 기운이 없었다. 덜컥 감기까지 걸렸다. 향수병에 걸렸을 땐 역시 익숙한 세계로 돌아가 주는 게 명약. 나는 맥도날드로 달려갔다. 뭘 넣었길래 햄버거가 만 원이 넘는 것이냐… 나는 12,000원쯤 되는 햄버거 세트를 덜덜 떨며 사 먹었다. 하지만 이것이 힐링일까. 그 감자튀김 맛은 지금도 기억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게 있듯, 떠난 뒤에야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감자튀김을 먹으며 나는 그제야 베트남, 태국 등등 아시아 나라들의 물가가 참 저렴했다는 걸 깨달았다. 4 - 5천 원이면 고급 음식(고급=탕수육)을 먹을 수 있었고, 태국에서는 영제랑 둘이서 보통 3,000원에 한 끼를 먹었다. 런던에선 음료수가 2,000원부터다. 유럽의 비싼 물가를 들어서는 알았겠으나, 내일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봤을 리 없는 나와 영제는 런던의 물가에 깜짝깜짝 놀라는 중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헝그리정신에 대한 정절을 보석같이 지켰다. 끼니때가 되면 우리는 하이에나가 되어 저렴하고 양 많은 음식점을 찾아 헤맸다.
태국에서 그렇게 식당을 찾던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든 날이 있었다. 우린 왜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저렴한 음식을 고집하는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헝그리정신을 고집하는가, 금강산도 식후경, 음식은 그 나라 문화의 본류가 아니던가… 우리에겐 7년 복무의 퇴직금이 있지 않은가……. 고작 먹을 거 가지고 뭘 그래 싶으시겠지만, ‘To be or Not’, 즉 '죽느냐 사느냐'가 햄릿의 고민이었던 것처럼, 여행자의 고찰도 한 끼의 식사에서 왔다.
나는 헝그리정신을 옹호했다. 우리가 진정 여행을 떠나온 이유가 무엇이더냐, 현지 서민들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지 않더냐. 음식은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격식 없는 서민 문화와 만나는 것이다. 정말로 중요한 건 검약하는 마음의 가짐을 기르는 것이다. 이건 마음의 문제다. 돈으로 호의호식할 수 있지만. 이런 게 쌓이고 쌓여 습관이 되는 거다. 습관화시켜놓지 않으면 물가가 비싼 곳에서 더 힘들 것이다… 어쩌고저쩌고 … 뚫린 건 입이요 나오는 건 말이요, 말에 취해 밥 먹다 말고, 내가 하면서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말을 영제에게 내질렀다(미안하다 영제야).
… 시간은 흐르고 흘러 3개월이 흘렀고 나는 런던에서 감자튀김을 30초씩 씹어먹고 있었다. 그건 정말 마음의 문제였을까. 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티 선생님이 왜 카르페디엠을 속삭였는지 알 것 같은데.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에서 일몰을 보던 때의 일이다.
일몰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만약 그 일몰을 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 길을 달렸다면, 그 일몰은 조금 더 특별해진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 할아버지가 달리는 속도보다 느렸던 자전거를 탔던 한 시간 길은 어쩌면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들어가는 의식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접하면 우리는 어떤 비교도 형용도 하지 못한다. 구백 여년을 변치 않고 이곳에 서서 일몰을 바라봤을 앙코르와트, 그와 함께 하루를 더 하던 그 날. 평범했던 내 삶도 신비로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장엄한 일몰이 하루, 하루 모여 앙코르 와트의 신비로움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역사란 그렇게 쌓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캄보디아인 친구 포를 만났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던 언덕에서 만난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시엔-립이라는 앙코르와트를 보는 관광객이라면 모두가 머무는 관광 마을에서 식당 일을 하는 친구였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데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함께 데이트를 나온 길이라고 했다. 관광객을 지나가는 ATM(현금 인출기)으로 대하는 다른 장사꾼들과 다르게 순수함을 가진 그가 좋았다. 그가 일하는 식당에 놀러 가도 되냐고 물었다. "한 사람에 12달러야, 괜찮겠어?” 비싼 가격이 걱정되었나 보다. 뷔페이긴 했지만, 주변 식당은 한 끼 식사를 보통 5달러를 받는 데 비해 비싸긴 했다. 포는 우리에게 식당 약도를 그려주고 그 옆에 자기 이름을 적어주었다. "식당에 와서 나를 찾아줘."
일몰 후 우리는 어둠이 내리는 함께 산길을 내려왔다. 별의별 얘기를 주고받던 중 어느 결엔가 그의 주급을 듣게 되었다. 15달러.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12달러씩 내고 먹는 식당 종업원의 주급이 15달러밖에 안된다고? 피프 티(50)를 피프 틴(15)으로 잘못 알아들은 건가? (내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손가락까지 써가며 세 번을 다시 물어봤지만, 그의 주급 15달러는 바뀌지 않았다. 캄보디아인 한 사람 연평균소득이 2,000달러 정도라고는 하지만 주급 15달러라니. 물론 포가 현지인들을 대표할 정도의 소득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는 내가 흔히 가는 식당의 종업원이다. 어쩌면 그가 어리바리한 외국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차라리 거짓말이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지금껏 그들의 노동력 착취에 일조하고 있었던 거니까.
관광객들의 돈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읽는 것, 보는 것, 먹는 것 등 어느 것이 되었던, 나는 그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 곧 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캄보디아, 마법 같았던 캄보디아에서 만난 현실. 내가 5달러씩 주고 사 먹었던 밥은 현지인은 먹을 수 없는 밥이었다. 내가 그때까지 먹은 밥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밥을 먹은 내 여행은 과연 어떤 여행일까? 그날 내가 내린 답은 그건 현지가 없는 여행이었다. 맛집을 찾아가 먹을 생각은 했지만, 그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삶은 없는. 멋있는 유적에서 사진은 찍었지만, 그 유적을 만들었을 장인들의 영혼은 보지 못하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알맹이는 없는 경험.
아래에 선다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언더스탠드(UnderStand)라지. 다른 이의 아래에 서면 보이는 것들. 키가 작아 아래에 서긴 하나 난 요리사의 삶을, 장인의 영혼을 느끼지 못했다. 여행을 다 지내온 뒤에야 그들의 삶에 더 다가갔어야 했는데, 그들의 관점으로 삶을 보도록 더 노력 해야 했는데 하는 깨달음만 든다. 오늘도 난 지난 뒤에 북을 치고 있지만, 지난 뒤에라도 놓치고 있던 삶의 빈 공간을 찾았음에 감사하다. 그래서 오늘의 이야기는 뒷북치는 소리. 둥둥둥.
* 캄보디아 여행 비디오 보기
1) 영제의 영상(평범한 청년이 본 앙코르 와트) - 클릭
2) 동호의 영상(앙코르와트, 역사의 탄생) - 클릭
아래에 서다(Understand)
솔직히 말해 툭툭이 편하긴하다.
사족. 앙코르와트에서의 숨겨진 이야기...강도녀석을 만났어.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