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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기]이것도 여행이라고(8)바람이 분다.

요호호 2014. 2. 24. 15:44

* 이건 이스탄불에서 아테네까지 1,149Km 자전거를 탔던 때의 이야기.

 우리의 자전거 여행은 달린 날 16일에, 쉰 날 4일을 더해 총 20일이 걸렸다. 아침에 일어나 먹고, 달리고, 먹고, 달리고, 숙소, 먹고, 자고, 일어난다.의 과정이 반복됐다. 먹고, 달리고, 잔다… 이론상으론 굉장히 단순한 과정. 하지만 ‘달린다' 안에는 평상시와는 차원이 다른 시간의 농밀함이 담겨 있었다. 한없이 길어지고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자전거 여행의 요체였다. 군 생활을 하던 시절, 쏟아낼 곳을 찾지 못해 터질 것 같았던 마음이, 답할 수 없는 질문들로 가득했던 날들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웠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흘러가는 세월을 견딜 만큼 강한 몸을 갖지 못했다. 자전거 20일의 그 농밀한 시간, 그건 어쩌면 내게 시간을 견디는 훈련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한다.

 자전거를 탄 지 11일째 되던 날. 영제와 나는 그날까지 약 660킬로미터를 달렸다. 아테네까지 약 500킬로미터 정도가 남았을 때니 대략 여정의 반을 지나고 있었을 때였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대로, 이제 시작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아테네까지 갈 수 있겠는걸?” 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얼마나 타야 하는 줄도 모른 채 자전거를 샀다. 그리고 알게 된 이스탄불-아테네의 거리, 1,149킬로미터. 호기심과 의심이 반반 섞인 마음으로 여행은 시작됐다. 솔직히 말해 난 1,149킬로미터를 완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선 조금만 지루해져도 '내가 왜 이걸? - 싹'이 우후죽순마냥 돋아나는 나를 믿을 수 없었다. 자전거 녀석에게도 문제가 없던 날보다 문제가 생긴 날이 더 많았다. 내일은 나아지겠지 했지만, 페달 고정 볼트, 핸들 고정 볼트 등 중요 부품이 빠져버린다든가, 펑크가 난다거나 했다. 내 의지보다 약한 녀석이 이 우주에 존재한다니, 싶었지만 사실 우리의 십만 원 짜리 자전거는 묵묵히, 그리고 충실히 제값을 수행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새 중간을 넘어섰다. 저녁에 눈을 잠깐 감았다가 뜨면 아침, 도로, 점심, 다시 도로, 펑크, 침대의 사이클을 반복하다 보니 660킬로미터를 달린 것이다. 어느새, 그건 실로 위대한 단어였다. 

 그때쯤 돼서야 내겐 ‘나는 왜 자전거를 타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왜 자전거가 타고 싶었던 걸까?

 빈 깡통이 요란하듯, 영제와 나, 생각 없는 두 머리가 만나면 메아리가 쉽게 생기기 때문일까. “재밌겠다.”라고 장난스레 주고받았던 말에 그 다음 날 바로 자전거를 산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자전거 여행이 단순히 머리로부터 시작된 건 아닐 것 같다.

 8년 전 여름,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여름방학, 나는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했다. 인터넷에서 만난 두 대학생 형들과. 그 당시 나는 내가 뭘 모르는지를 모르는,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던 고등학생이었다. 두 대학생 형들은 입대를 한 달 앞둔, 마치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의 형들이었다. 세상의 종말을 앞둔 두 사람과 봄날 망아지 한 마리, 각기 배경은 달랐으나 우리는 열심히 제주도를 돌았다. 한여름 뜨거운 햇볕이 작열하는 제주도를, 생명이 넘치는 제주도를. 

 돈이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나와는 인연이 없는지라, 한솥도시락으로 연명하고, 중간중간 주유소에 들러 물을 얻어 마시는 궁색한 여행이었다. 다 돌고 나서야 '한낮의 열기를 피해 서늘한 아침, 오후 시간에만 자전거를 타야 한다던데?'를 알게 된, 몸으로도 교훈을 얻지 못한 미련한 여행이었다. 멜라닌 생성을 막는답시고 바른 선크림이 눈에 들어가 울면서 달린, 보기에도 안쓰러운 여행이었다. 어쨌든 8년 전에도, ‘어느새' 마법은 일어났고 우리는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완주했던 그 날, 처음 출발했던 제주항 앞에 섰다. 대학생 형들은 감개무량 기념사진을 찍는가 싶더니, 본연의 세상 종말 회색빛으로 돌아갔다. 나도 완주했던 날의 기억이 딱히 없는 걸로 보아 큰 감동까지는 없었나 보다. 굳이 그때를 통해 배운 교훈을 꼽자면, '자동차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렌터카 아저씨가 말해 줄 법한 배움 뿐. 그런 배움 따위 굳이 3박 4일 자전거를 타지 않았어도 아는 건데 말이다. 그랬던 그 날들이 그리스에서 자전거를 타며 기억난 이유는 단순히 자전거라는 연관성 때문일까.

 군인이었던 시절 나는 어느 것, 어느 곳에도 마음을 오래 두지 못했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듯 마셔도 마셔도 갈증은 없어지지 않았다. 가슴 속 바람들은 바람처럼 나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떠밀었다. 민들레 씨앗 마냥 어느 곳에도 내려앉지 못한 채 현재와 미래 사이 어딘가에서 살았다. 전역을 결심하기 전, 가장 두려웠던 점은 그 바람이, 단순히 젊은 혈기라는 조바심이면 어쩌지, 그 바람이 홀연히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 그대로 주저앉게 되는 게 아닐지 하는 점이었다. 그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자전거를 탄다고 했을 때, 내 안에서 불어온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걸 버리고 지구 반대편 그리스까지 오게 한 그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했던 바람, 그 바람의 정체가 알고 싶었다.

 8년이 지난 후, 자전거를 타며 얻게 된 깜냥이 있다면, 언덕을 오를 때, 우리는 그 순간에만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페달을 통해 전해지는 땅의 굳건함. 그 굳건함을 내디딜 때 팽팽해지는 근육들. 관념이 아닌 몸이 살아나는 세계. 그 세계에 드는 순간 나란 사람은 잊혔다. 편견, 허영, 자만심 등 내 자신을 얽매는 껍데기 따위도, 걱정도, 불안도 사라졌다. 뒷바퀴에서부터 내 시선이 머무는 전방 2m까지 만이 나의 세계, 나의 우주. 그곳에 나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덕을 지나면 열리는 내리막길. 바람이 불었다.

 막스 뮐러는 말했다. 인간 존재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을 사랑이라고. 천체가 서로 끌어당기고 상대를 향하며,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서로 모여들 듯, 세상의 영혼들도 서로 끌어당기고 상대를 향하며 사랑의 법칙에 따라 서로 융화한다고.

 우리는 왜 살아가는 걸까,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 걸까? 그건 우리 안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 아닐까. 영혼의 끌림을 향해 나아갈 때, 설렘이란 이름의 바람이 불어와 우리는 살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나는 왜 자전거를 타게 된 걸까? 나는 왜 직장을 그만둬야 했을까? 아니, 바른 질문은, '왜 바람이 불었을까?’, '나는 지금 가슴 뜀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가?'가 아닐까? 



그대 오늘도 굳건히 언덕을 오르길, 
담대히 내리막을 가르길. 
존재하는 삶, 우리 그 삶을 향해
함께 나아가길.


* 자전거 여행 비디오 보기.

http://www.youtube.com/watch?v=xp8DhSt8jK4



사과를 먹다 잠들어버렸다


펑크를 때우자.


자전거 짐받이 지지대가 결국 끊어져버렸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음식을 사며


'터키-그리스' 국경을 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