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15 또르르, 상처뿐인 파타야 여행 이야기
태국 마사지도 배웠겠다. 팟타이(태국식 쌀국수)도 신나게 먹었겠다. 우리는 태국 여행을 마무리 하기로 했다. 다음 나라는 인도. 비자 발급에는 1주일이 걸렸다. 태국에서 1주일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또 생겼다. 방콕에서 버스로 2시간, 파타야에 갔다. 동양의 하와이라 불리우는 파타야.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바다에 갔다.
사실 나는 바다에 가고 싶지 않았다. 바다는 바다, 거기서 거기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틈만나면 바다를 가자고 주문을 외운건 영제였다. 어쩌면 수중촬영을 위해 샀다는 아이폰용 방수팩을 써보고 싶어서 바다를 가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때는 6월, 태국은 우기였다. 물의 나라에서의 장마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는가. 나는 잠깐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파타야의 비취 빛 바다, 열대 과일 주스, 부드러운 모래, 그리고 쏟아지는 비.......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남자 둘이 비를 맞으며 수영을 하고 있는 모습. 아마 그건 물놀이라기보다는 체련에 가까운 활동이 아닐까. 그곳이 아무리 파타야라해도 비를 맞으며 체련을 한다면 그곳은 실미도와 다를바가 없다.
어쨌든 우리는 파타야에 갔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영제의 '아이폰용 방수팩’과 첫 대면을 했다. 여행 출발 때부터 영제가 그렇게 자랑했던 녀석이다. 비닐 팩에 핸드폰을 넣고 지퍼를 잠근다. 간단한 사용법. '너무 간단하다. 이 녀석 믿어도 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살짝 시험 해본 결과 비닐팩의 성능은 완벽 그 자체. 와우, 파타야 여행 비디오는 수중촬영이다! 우리는 바다로 뛰어갔다. 그런데 깜빡 잊은 게 있었다. 그 물건을 쓰는 인간의 상태……. 대부분 신혼 여행을 오는 파타야에서 남자 둘은 철저히 고립된 부류였다. 비가 안와서 사람이 바글바글 해도 우리 둘에게 파타야가 실미도라는 건,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었다. 물에 빠뜨리기 게임을 남자 둘이 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서였을까(상상해보시라 물속에서 서로 엉켜 버둥대고 있는 원숭이 두 마리를). 영제는 아이폰이라도 바닷물 맛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영제는 방수팩의 지퍼를 잠그지 않았다. 무서븐 녀석.
아이폰은 물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 한여름에 동면을 시작했다. 생명을 넘어 기계에게까지 사랑을 주는 영제의 모습에 나는 감동.
파타야에 사흘간 머물면서 우리는 스노쿨링을 했다. 산호섬의 바닷속, 처음 보는 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하지만 그 대신 우리는 조개 껍질에 베이고 긁혀야 했다. 멍게에 쏘였(다기 보다는 우리가 밟은 거지만)을 때 발끝에서 느껴지던 아련한 고통…
파타야를 떠나던 날, 우리는 빠른 도시적응(신발 신고 다니기)을 위해 '빨간약'을 발랐다. 빨간약을 그때껏 들고 다녔지만, 바를 일이 없어 거의 식초가 되지 않았을까 했던 즈음이다.
영제가 먼저 발랐다.
오른손잡이가 보통 그러듯 영제는 왼손으로 빨간약병을 들었다. 뚜껑을 열었다. 잠시 뚜껑에 달린 막대가 빨간약을 충분히 머금고 있는지 확인했다. 상처를 자세히 보기위해 왼손바닥을 눈 앞으로 가져갔고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슥슥-’
(주르륵 주르륵 주르륵)
영제는 마치 자신의 정성으로 상처가 낫고 있다는 듯, 약을 열심히 발랐다.
(주르륵 주르륵 주르륵)
"어? 이거뭐야?” 영제가 말했다. 빨간약이 새고 있었다. "약병이 새나?”
영제는 상황파악을 위한 시간을 잠깐 가졌다.
“……앗.”
왼손에 약을 바르느라 왼손에 들고 있던 병도 같이 뉘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제는 마지막 빨간약을 마저 뱉어내고 있던 약병을 바로 세웠다.
“……"
영제는 빨간약을 한방에 다 써버렸다. 내 상처는 침바르고 나으라는 뜻일까. 아프니까 청춘이니까, 약 따위에 의지하지 말고 더 강해지라는 뜻일까. 나는 또다시 감동.
여러모로 파타야 여행은 우리에게 상처뿐인 여행이었다. 그 상처들은 우리에게 여러 흔적을 남겼다. 영제의 아이폰은 결국 한국으로 조기 귀국했고, 나는 강해지기 보다는 상처가 낫길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다. 또 그 흔적들은 우리에게 여러 영향을 미쳤다. 영제는 아이폰의 자리를 아이패드로 대신했고, 아이패드는 영제에게 전자책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나의 도시적응은 샌들로 변질됐고, 내 패션은 아저씨가 됐다. 일주일 전과 일주일 후, 우리는 변해 있었다.
체 게바라의 남미 여행 이야기를 다룬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마지막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번 여행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적어도 이전의 나는 아니다.”
여행 후에 모두가 체 게바라처럼 혁명가가 되는건 아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불꽃은 누구에게나 흔적을 남기는 듯 하다. 멍게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다던가, 겨울에도 샌들을 신고 다닌다던가의 식으로. 물론 흔적이라는 건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고, 영원히 남겨질 수도 있다. 그리고 개중에는 의지를 태우는 신념이 되는 흔적도 있다. 이러한 상처는 18대 1로 싸웠다는 흔적처럼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인생의 상처는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사람은 변해간다. 현재의 우리는 그저 그런 변화를 짐작할 수 있을 뿐, 정확히 알 수 없다. 언젠가 더듬더듬 짐작해 볼 수 있겠지. 그게 인생의 맛이니까. 오늘의 상처는 또 어떤 흔적이 될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