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다/책

책 #1042. 박경철의 자기혁명

요호호 2014. 7. 10. 20:40


자기혁명

저자
박경철 지음
출판사
리더스북 | 2011-10-0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대한민국의 지성, 실천하는 비판가, 열정적 독서광, 청춘의 멘토...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246. 진리를 마음에서 구하지 않기 때문에 어리석고 깨달음이 없게 된다. 배운 것을 익히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고 불안하게 된다. (중략) 널리 배우고 깊이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판단하고 독실하게 행하는 것.이 다섯 가지중에 한 가지라도 없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다. - 주희, 사서집주

247.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어도 읽은 것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이 질문은 "당신이 읽은 책 중에서 당신에게 영향을 미친 책은 몇권입니까?"로 바뀌어야 한다.

255.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독서다. … 독서는 타인의 지식을 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지식의 변별력이다. 소위 공통의 교육과정에서는 성과의 높낮이, 즉 차이만 강조된다. 그러나 독서는 완전히 차별적인 성과의 잣대를 제공한다. 더구나 독서는 간접체험을 통해 정규교육에서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연마하게 해주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며,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뿐만 아니다. 독서를 통해 사람들이 각자 다르게 생각하는 언어와 많은 언어를 배우고, 내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 고정되어 있고, 언어는 맥락이 있어야만 뜻이 형성된다. 언어, 즉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이 풍부할 수 없고 언어를 맥락화할 수 없다면 체계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유'란 맥락화된 생각을 가리킨다. 그래서 독서는 사유를 배우는 제1의 수단이며 창의력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독서가 이렇게 방대한 기회를 주는데도 독서를 통해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독서의 대상이 편협하거나 생각을 읽지 않고 문자에만 의존하는 기계적인 독서를 하거나 저자의 논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사건이나 이야기에만 몰입하는 나쁜 독서습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는 먼저 문자(텍스트)를 읽고 거기에 담긴 저자의 생각과 사상과 지식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해한 것들을 기반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내면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덕서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만나는 난관은 텍스트를 대하는 자세다. 생각을 모두 말로 옮길 수 없고 말은 문자로 고스란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를 할 때 단순히 문자를 읽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문자가 지시하는 저자의 진짜 생각을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257. 하지만 대개 우리가 어떤 책을 읽고 해석한 결과는 비슷하다. 왜냐하면 독자들의 해석은 당시의 억압적인 질서에 따르기 때문이다. 좀 어려운 이야기지만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식은 무의식적으로 그 시대의 주류 해석을 따라 간다는 뜻이다. … 때문에 텍스트를 대할 때 지배적 해석에 매몰되면 독서를 통해 나의 사상을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263. 인간은 언어로 사고하고 언어로 의사를 표현한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언어와 표현법을 많이 익히고 활용하면 궁극적으로 내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필자가 제시하는 독서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 독서 1 : 좋은 책을 읽는 것보다 나쁜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 독서 2 : 지금 읽기에 편안한 책은 오락에 불과하다. 항상 지금 읽기에 조금 버겁고 힘든 책을 고르는 것이 좋다.
- 독서 3 : 저자의 논리에 매몰되지 말 것! 한 권의 책에 매료되면 가능한한 그 반대 논리를 주장하는 책도 함께 읽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독서로 인한 편협성'에 빠지기 쉽다.
- 독서 4 : 늘 새로운 것에 선의를 가질 것! 모르는 장르,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책을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공공부가 아닌 이상 익숙한 것의 포로가 되면 독서에 의한 자기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 독서 5 : 완독, 다독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 후의 사유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 책을 읽는 데 투자한 시간 이상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는 지식을 체화하고 사유의 폭을 넓히는 수단이다. 성찰의 실마리를 던져주지 못한 책은 시간을 파먹는 좀벌레에 불과하다.
- 독서 10 : 돌아가신 분의 책을 읽어라. 선택의 여지없이 좋은 책이다.

272. 글을 쓸 때는 먼저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충분한 숙고를 거쳐야 한다.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범하는오류 중 하나가 일단 '나는 …'이라고 무조건 시작해놓고 보는 습관이다. 무언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떠밀려 글의 주제와 줄거리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반드시 기승전결의 얼개를 미리 머릿속에 그리고 시작해야 한다. 글을 쓰기 전에 '시선'을 먼저 가다듬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쓸 것인지, 무엇을 말할 것인지, 어떤 형식으로 쓸 것인지를 생각해 결정한다. 나의 시선이 분해한 프리즘의 색깔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288. 결국 해법(시대의 희망부재와 우울)은 사회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일정 부분 우뇌형 개인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지금과 같은 고도산업사회에서 농경시대처럼 이웃의 숟가락까지 꿰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우리가 들판에 홀로선 존재가 아니라는 격려와 위안을 사회가 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welfare(복지)가 되고 있지만,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논쟁하는 복지보다는 wellbeing(참살이)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다. 이때 wellbeing은 단순히 유기농 음식을 먹고 피톤치드를 마시며 숲길을 걷는 개인화된 것이 아니라, 정신적 위안과 연대의 회복과 같은 사회적 wellbeing에 대한 자각을 말한다.

292. 운명의 신은 여신이므로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끔은 쓰러뜨리거나 제압할 필요가 있다. 운명은 거리를 두고 망설이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들에게 승자의 면류관을 씌워준다. 즉 운명은 여자와 같아서 젊은 청년의 편이다. 왜냐하면 혈기 왕성한 청년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민첩하고 과감하게 여자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303. SNS에서 오고가는 담론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며, 한 가지 견해를 두고 모두가 옳다고 착각하는 '무오류성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만약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정책이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착각할 것이고 언론사라면 자사의 논조가 대중의 중심을 대표한다고 오해하게 될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못마땅한 사람은 입을 다물고 동의하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친다. 그래서 SNS상의 의견들은 비판에 민감하고 그래서 비판은 암암리에 위축된다.

304. 사람은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지만, 내 말을 하려면 상대의 말도 들어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소통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진심을 말하려 하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익이 우선인 사회에서는 가능하면 자신의 본심은 숨긴 채 상대의 본심을 간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박사들이 포커페이스로 자신의 패를 감추고 상대의 패를 읽어내야 돈을 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가 사회 전반에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모두 각자 고립되어 있다. 도심 속의 섬처럼 각자 외롭게 누에고치를 짓고 상대를 경계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건 것이다.

308. 지금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SNS열풍은 사람이 부가가치의 핵심이 되는 시대에 사람의 만남, 그 플랫폼이 갖는 잠재력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증거다. SNS를 그저 단순한 오락으로 여기지 않고 그것에 내포된 상징성에 주목한다면, 거기에 펼쳐진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 장면이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313. 타인의 자존감에 대한 인정, 내가 아닌 그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상대의 마음이 되어 진심을 보이는 것, 이것이 empathy다. 영향력은 바로 이런 마음에서 행사되어야 하고 이를 가리켜 '선한 영향력'이라고 부른다.

314. 이때 선한 영향력은 단순히 '착해빠진', '바보 같은'이라는 말이 지시하는 의미를 가리키지 않는다. 단지 분노를 억제하고 권리를 포기하며 대항할 의지를 삭임으로써 '착하다'는 평가를 받는 수동적 태도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적극적인 자유의지와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나의 그것만큼 타인의 자존감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empathy다. 우리 모두가 독존이 아닌 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바로 empathy인 것이다.

324. 지금 청년들에게는, 지금까지 없던 것을 새로 창조하는 천재성이 아닌 기존의 것들을 통합해서 재조합하는 통섭의 능력과 안목을 키우고,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326. 변화에는 수동적인 변화와 능동적인 변화가 있다. 수동적인 변화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지만, 능동적인 변화는 나를 실존케 하는 증거이자 내 삶의 면류관이다.

327. 문제는 그 안목을 기르는 노력이다.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가만히 서서 지나가는 KTX를 보면, 마치 야구공이 지나간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신발을 벗어들고 같은 방향으로 달리면 객차가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따라가면 사람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를 알려면 KTX에 직접 올라타야 한다.
 변화는 스스로 변화하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와 같다. 매일 스스로 변화해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아침과 다른 저녁을 맞는 사람에게 변화하는 패러다임 혹은 세상은, 속속들이 들여다보이는 느린 장면이 된다. 하지만 모니터 앞에 앉아 습관처럼 연예기사나 살피면서 무의미한 논쟁을 벌이고, 매일 갖는 술자리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한탄만 늘어놓는 사람에게는 '번쩍!'하고 지나가버리는 번갯불처럼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청년기는 변화의 시기다. 육체적/정신적으로 가장 빨리 성숙하는 청년기에 마른 스펀지가 물을 흠뻑 빨아들이듯 귀중한 것들,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득 흡수해야 한다. 

330. 우리 시대는 대변환을 요구하고 있다.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컴컴한 동굴에 앉아 쥐구멍에도 볕이 들기를 기다리는 소극적인 '역'과, 동굴을 파고 쥐구멍을 부숴 볕을 끌어들이는 적극적인 '역' 모두 간절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영원하다. 주역은 '막히면 변하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즉, 스스로 변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뜻이다.

332. 이런 국면의 전환기를 알기 위해서는 주류권력의 관점에서 바라본 패러다임의 변화를 넘어 사회구조적 변환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334. 누군가 개척한 성공의 길을 따라가다가 성과를 가로채며 앞서 달려나가도 그저 달린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던 시대다. 그 결과 오늘날 드디어 선두그룹에 진입했다. 최소한 처음에 내세운 어젠더대로 일류기업, 글로벌기업, GDP순위 등에서는 더 이상 추격할 대상이 없는 선두 그룹의 일원이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드러났다. 추격을 끝내자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선두, 일등, 일류를 외치며 달려왔지만 막상 선두가 되자 국가적/사회적 가치관의 부재와 혼재의 시대를 만나게 되었다. 남의 것을 모방하고 추격하는 데에만 길들여져온 우리의 문화가 제일 앞줄에 서면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선두의 역할은 추격이 아니라 길을 찾는 것이다. 당대성과 시대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 분열의 핵심이다.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오로지 잘살면 된다는 최우선 명제의 관점에서는 적당히 부패하고 부정하며 외면하고 짓밟는 것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 기성세대들의 논지의 핵심이다. 하지만 시대성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335. 어떤 논리가 시대성을 갖기 위해서는 당대를 넘어 다음 시대에도 받아들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338. 자원고갈과 폐기물의 문제에서 자유로우며 무한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생산수단이 곧 사람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엔터테인먼트, 레저, 에듀케이션, 헬스케어, 바이오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영역은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것을 재조합함으로써 시너지를 창출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340. 핵심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그간 인류가 생산한 기계문명의 산물은 최소 수십 년간 추가적 발전 없이도 인류의 삶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 앞서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달려온 인류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휴식과 위로, 그리고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이다. 따라서 레저와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위로받고, 그간 산발적으로 성장해온 과학기술의 이면에 뒤처진 인문학과 예술 등의 지적콘텐츠에 주력하는 새로운 교육이 확장되고, 삶의 질과 수명연장의 꿈이 중심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는 코스메틱, 성형, 스파 등의 산업이 최근 급격한 성장을 보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341. 공공의식을 가진 공감형 리더십의 요구.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 우리가 '윤리'라고 부르는 선량함의 규율에 대해 "행복은 어떤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 그 자체에 있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결과물에 대한 집착이 아닌 '선한 습관'혹은 '선한 행위'를 내 삶의 일부로 만들어야 하고, 이런 태도를 익히기 위해 인간과 사회의 선량한 규범을 만들어 강제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함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나 사회 시스템이 추구해야 할 가치이며, 국가/사회 시스템은 선한 규범하에 선량한 강제력을 행사하게 하는 제도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가 주창한 윤리학은 인간의 '선량한 에토스(성격)를 어떤 행위규범의 틀에 담는가(윤리)의 문제이며, 이런 체제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따라서 윤리나 도덕, 국가경영등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선'을 추구하고, 그 가치를 바탕으로 '행복'을 구현하는 하나의 틀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명제가 탄생한 것이다.

사회는 그 자체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극한의 노력을 다하고, 개인은 그에 귀속되는 헌신을 다하는 것이 선함 혹은 행복의 근원이라는 지적인 셈이다. 우리는 보통 이런 헌신성을 가리켜 '공공의식'이라 부른다.

344. 온전히 자기가 경험한 만큼이 자신의 세계다. 

345. 모든 교육은, 또 모든 리더십의 자격은 공공의식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권력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을 위해 행사되어야 하고, 교육은 특정 계층의 자녀가 아닌 전국민의 아이들에게 고른 기회를 줘야 한다.  그것만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공공의식이 실종된 상태다. 
'시대의 요구는 시대의 과잉이 아닌 결핍과 일치'하며, 그 결핍은 다음 세대의 필수 덕목이 된다는 사실이다. … 무모한 스펙전쟁이 아니라 대표적 결핍인 공공성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사회적 건강성에 헌신함으로써 차세대 리더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을 획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과거에는 잘난 사람의 리더십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대중의 팔로십이 중요한 시대다.
 국가지도자건 사회지도자건 '팔로 미'가 아닌 '위드 미'를 말하는 사람, 함께 가고 헌신하며 먼저 실천하는 사람이 리더로서 인정을 받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351. 그 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청년들의 어깨가 무겁다.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어 대를 끊겠다는 비탄보다는, 문제를 알았으니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결의와 공분이 필요하다.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대열의 전면에 서는 청년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다. 혹시라도 자신이 여건상 유리한 고지에 있다면, 그럴수록 더 사회의 이면을 바라봐야 하고,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공감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청년들이 미래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길이다.

355. 청년들에게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외부 요인들이 가득해서 좋아 보이는 것, 기발하고 멋져 보이는 목표들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나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나의 강점과 재능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바탕 위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나를 소외시키고 남들에게 성공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추상적인 망상만 가득한 셈이다.
 목표를 세울 때는 반드시 나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의식을 집중해서 무의식을 가만히 탐색하고, 나의 장점과 단점을 잘 비교한 다음, 최소한 장점 항목이 단점을 능가할 때, 장점들을 잘 모아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재능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결정한 다음, 그 분야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을 찾아 그것을 나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356. (좋은 습관을 갖기보다 나쁜 습관을 버려라) … 정말 버려야 하는 대상은 장기적 인내가 필요한 것들이어야 한다. 잠을 참아내거나 담배를 참아내거나 술을 참아내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늘 그것과 투쟁해야 하는 것들을 버리기로 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긴 투쟁을 이겨나가면 그것이 곧 새로운 습관으로 이어지고, 의식은 명료해진다. 의식이 본능을 통제하고 극복하면서 필요한 일을 행하는 인내로 이어졌다면, 이미 의식의 통제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 그것을 습관화함으로써 강고한 자아를 구축하라.
 그로써 우리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다음 우리가 단단한 바탕을 딛고 자신의 길을 심장이 터질 만큼 힘차게 달려나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아우라를 획들할 수 있다. 
 이런 삶은 불행하지 않다. 우울의 여지도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달콤한 말에 현혹될 필요도 없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무의식의 노예가 되라는 뜻이다. 긍정은 당의정이 아니다. 긍정의 태도를 몸에 익히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느껴지는 자존감이 바로 긍정의 힘을 발휘한다. 
 이 길에서는 무언가 이루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최선을 다하는 삶 그 자체가 중요하다. … 그래서 '지난 20년간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라고 말할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주인이 되는 삶, 결과를 돌아보지 않고 과정을 중시하는 긍정적 삶의 뿌리다.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최악/차악뿐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상황에서 던지는 주사위에는 최선/차선의 선택이 있다. 기다린다고 상황이 명료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밤안개는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진다.
 다만,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다하면서 새로운 것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마리의 토끼를 좇지 말라는 것은 패배자의 논리다. 지금 만약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를 좇아라. 지금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그만큼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불필요한 순서대로 나에게 붙어 있는 나쁜 습관의 찌꺼기를 떼어내고, 시간을 압축해서 밀도를 높이고, 코피가 터지고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집중해가면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은 정직한 것이다. 묵묵히 걸어가라.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