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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20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본 세상

요호호 2014. 8. 8. 23:24

시베리아 열차의 창문을 통해 본 세상.


 러시아의 하바로프크스와 울란우데. 광활한 시베리아 대륙 위에 놓인 두 도시, 이 두 점을 잇는 시베리아 열차. 고요한 설원을 가르는 열차에서의 53시간. 객실의 얼룩진 창문을 통해 본 세상. 절반은 하늘이었고 그 밑으로 눈 쌓인 평원과 나무, 가끔 나타나는 촌락, 일몰과 일출과 적막. 화면 보호기를 보는 듯 반복되는 풍경.


 북경에서 중국의 진미라는 북경오리를 먹었다. 북경오리는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요리라고. 우리는 큰맘 먹고 고급 음식점에 갔다. 북경에서 오리를 파는 식당은 쉽게 볼 수 있는데, 워낙 가짜가 많은 중국.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진짜 북경오리를 먹고 싶었다. 고급스럽게 장식된 인테리어, 분주해보이는 부엌, 훤칠한 종업원들. 곧 북경오리가 나왔다. 화덕에서 익힌 오리는 붉었고 윤기가 흘렀다. 하얀 조리복을 말끔하게 입은 요리사가 테이블에 와서 북경오리의 살을 발라주었다. 얇게 썰린 고기를 소스에 찍어 오이채 같은 야채와 함께 얇은 밀가루 반죽에 싸서 먹는다. 맛을 보았다. 길거리에서 파는 한 마리 6천 원 전기 통닭구이가 생각나는 맛이었다. 실망 대실망. 누구냐 세계 3대 요리를 정한 놈이…


 실망으로 말하자면 인도의 타즈마할도 빠질 수 없다. 뉴델리에서 버스로 4시간. 섭씨 38도. 그날은 인도 현지인들도 기진맥진해했던, 가만있어도 땀이 맺히는 날씨였다. 우리가 타고 있는 건 에어컨 없는 로컬버스. 창문을 전부 열고 달렸다. 문도 열고 달렸다. 내 자리는 뒷문 바로 뒷자리였다. 문으로 굴러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서늘한 느낌이 냉방에 도움은 됐지만 더운 바람이 냉방에 도움이 될리 없었다. 시원함을 포기하는 게 빠른 방법이었다. 배가 고팠다. 아침 버스를 탄다고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나오느라 아침밥을 못 먹은 우리. 영제가 먹을 걸 사오겠다며 버스가 잠깐 설 때 기회를 봐서 나갔다 왔다. 봉투에 담겨온 건 메마른 비스킷 더미. 후텁한 날씨에 식중독 위험을 고려한 식단이라고는 하나, 음료수 마저 하나. 오늘은 섭씨 38도. 씹을 때마다 황사 바람이 불어오는 고비 사막이 생각나는 비스킷이었다. 이영제... 싸우자는 거냐.


어쨌든 서울만 가면 된다고 우리도 어쨌든 타즈마할에 도착했다. 저 하얀 건물이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그렇게 보여주던 타즈마할이로구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인터넷과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것이 전부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미디어에서 보여준 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과연 왕복 8시간 버스를 타고 와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가. 미디어에 낚였다.


스마트 폰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스마트 폰이 세상을 보여주는 작은 창문이라고 했다. 텔레비전이 그렇듯 스마트 폰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창문이 되었다. 스마트 폰은 실로 신세계였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우리는 또다시 이 창문 안에 갇힌 게 아닐까는 기분이 든다. 창문은 여전히 우리의 삶이 스마트해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꽃이 피고 봄이오는 것도,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도 이 작은 창문을 통해서 알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스마트 폰을 안 보고 있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우리는 시나브로 창문 속 가상 세계에 귀속되고 있는 건 아닌까.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잊어가고 있는게 아닐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게 아닐까.


 안변하는 듯 변해갔던 시베리아의 풍경. 그 세계를 가르며 달렸던 시베리아 열차. 그 안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먼 타지에서 출장을 끝내고 돌아가던 안톤과 3시간 내내 가족사진을 보여준 이즈크 할아버지, 새벽에 승차하며 '우리 탔다해’ 떠들썩, 잊을만 하면 ‘우리 아직 있다해’ 떠들썩 존재감을 알리던 중국 상인 아저씨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내릴 때까지 기관총을 쏘듯 사정없이 수다를 나누던 러시아 아주머니들. 객실 안 세상은 때론 더해가며 때론 덜어가며 변해갔다. 


 내 손안의 작은 창문은 화려한 것들로 내 눈을 끈다. 이게 세상이라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손 얼룩으로 지저분했던 시베리아 열차의 창문. 그 창문을 통해 보았던 세상. 내가 누군지조차 모를 만큼 바쁘게 살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 않았다. 옆사람과 손잡지 못할 만큼 세상은 좁은 곳이 아니었다. 시베리아 열차의 창문은 보여주었다. 맛보고 땀흘리고 함께하며 살아갈 세상은 창문 밖이 아니라 떠들썩한 객실 안에 있다고. 우리 안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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