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여행기_이것도 여행이라고

여행기#24 다시 만날 수 없더라도. 이란 가정집에 초대받았어

요호호 2014. 8. 19. 22:00
 이슬람교에는 극단적인 종교 단체가 있을 뿐, 보통의 이슬람교 사람들은 배타적이지도 공격적이지도 않다. 어쩌면 3%도 안되는 소금이 바다를 짜게 만드는 것과 같은 현상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짠 부분만 보여주는 미디어 탓일 수도 있다. 이슬람교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구원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인 계획을 말하는 종교이다. 다시 말해, 공동체가 어떠해야 한다는 교리를 말하는 종교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종교지도자가 사회지도자였고 여전히 몇몇 국가에서는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갖고있다. 

 이슬람교는 예언자 무함마드에 의해 설파되었다. 그가 설파한 말이 적힌 책이 코란이다.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가 코란의 첫 번째 경구를 계시 받은 날을 축일로 여긴다. 매년 이 축일을 앞둔 한 달동안 금식을 한다. 이 한 달을 라마단이라고 한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을 뜻한다. 라마단 기간에는 음식, 음료, 흡연, 성행위가 모두 금지된다. 금지 사항들은 전통적으로 햇살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해가 저물 때까지 지켜진다. 라마단 기간 중에는 이슬람 신자가 아닌 외국인이라도 금식하는 사람들 앞에서 먹거나 마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므로 외국인들이 먹거나 마시려면 금식하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야 한다. 

저렴한 물가의 이란. 하지만 라마단 기간, 해가 떠있는 시간에는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았다. 식당을 찾으려면 30분을 물어물어 가야했다.

햇볕이 내리쬐고 건조한 날씨탓인지 안구에 체감되는 색이 모래색인 이란. 그 모래속에 사막의 꽃처럼 피어나 있는 신전, 모스크. 그 찬란한 푸른색과 웅장함 앞에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끼니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전에 지나간 끼니는 다가오는 끼니 앞에서 소용이 없는 법. 또다시 식당을 찾아 나설 때가 온 것이다. 

 이란 소녀 네긴과는 식당 가는 길을 묻다가 만났다. 검은 차도르를 쓰고 있었고 차도르보다 진한 눈썹을 가진 아가씨였다. 25살쯤 됐으려나...... 16살이었다. 네긴은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 그러고보니 이란 사람들은 연로한 세대도 젊은 세대도 영어를 잘했다. 네긴이 식당을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네긴은 자발적 안내자이지만 성격이 까탈스러웠다. 내 말이 느리다고 놀려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무슨 말을 해도 꼬박꼬박 틱틱거리며 말을 했다. 네긴이 안내해준 곳은 경양식집. 이란에 와서 매일 양고기 케밥(꼬치구이)을 먹었다. 양고기는 먹을 수록 비렸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피자가 있는 식당. 콜라부터 시켰다. 이란의 덥고 건조한 날씨는 설탕물이 절로 생각나게 했다. 콜라 한 모금. 흐허~. 밥을 주문했다. 그런데 이 16살 아가씨는 왜 같은 테이블에 계속 앉아 있는 거지? 꽃뱀인가. 단순히 우리랑 같이 밥을 먹으려는 건가. 하지만 네긴은 음식을 주문하지는 않았다. 그래 아무리 덩치가 크다 해도 설마 고등학생 숙녀가 남자 셋을 어찌하겠냐. 고 스스로를 안심 시켰지만, 나보다 큰 주먹을 갖고 있는 네긴은 나보다는 셀 것 같았다. 핸드폰으로 어디를 전화하는가 싶더니 자기 아빠를 불렀다고 한다. 잠시후 정말로 어떤 아저씨가 왔다. 어린 여자아이를 데리고. 네긴의 아버지 알리와 네긴보다 3살 어린 동생 아진이었다. 세 명의 한국인과 세 명의 이란인. 세 명의 한국인은 식사를 시작했다. 세 명의 이란인은 먹지 않았다. 알리는 우리가 먹는 모습을 그윽히 바라봤다. 식사가 끝났다. 알리는 우리를 자기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네긴의 집에 가게 됐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빌라였는데 내부는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같았다. 넓은 집, 양탄자, 샹들리에, 피아노, 가죽소파, 양변기가 있는 화장실. 네긴의 어머니 바틀리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바틀리는 학교 영어 선생님이라고. 저녁을 다시 먹었다. 저녁을 먹고나서도 먹을 걸 계속 주었다. 계속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이란 대부분의 여자들은 차도르를 쓰기 싫어한다는 거나, 한국인들은 왜 면도를 하는지, 
알리가 물었다. "자네 ‘소서노’ 본적 있나?" 이미 많은 이란 아저씨들에게 들어온 소서노. 그녀는 한국 드라마 ‘주몽’에 나왔던 배우 한혜진을 말하는 것이다. “저도 보고 싶네요.”  

 아저씨가 술을 꺼내왔다. 술이 금지된 이란, 집마다 밀주가 있다던데 사실이군요. 다음날, 네긴의 삼촌이 4살 아들과 한국인들을 구경하러 왔다. 같이 X-BOX 게임을 했다. 댄스댄스 레볼루션. 같이 한국드라마을 봤다. 시티헌터. 

 헤어질 때, 우리는 서로서로 한국에 오면 꼭 연락달라고, 다시 이란에 오거든 연락하자고 말했다. 다시 만나자고. 불가에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과의 만남도, 어떤 사건과의 만남도, 유형이던 무형이던 모든 만남은 모두 때가 있는 법이라고 한다. 때론 그때가 또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날이 있다. 그리고 궁금하다. 혹시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잠자리와 식사를 그리고 마음을 나눠준 그 만남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일까? 만나고 헤어지고. 이 과정은 스마트폰에 단순히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다 지워나가는 과정인 걸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만남은 지나고 나면 잊혀지고 아무것도 아닌 과정이 아니다. 만남은 밥을 먹는 과정과 같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끼니. 그 끼니를 채워가는 과정 같은 게 아닐까. 다가오는 끼니 앞에 지나가버린 모든 끼니들은 무위하게 보인다. 하지만 지나온 끼니가 있기에 우리는 다가오는 끼니를 맞이할 수 있고 살아간다. 설혹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때론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도, 그 만남은 우리 영혼의 일부가되어 우리 안에 남는 게 아닐까. 우리 삶은 그렇게 성숙되어 가는 게 아닐까.

왼쪽부터 네긴,영제, 바틀리, 아진, 알리, 종혁 형님

인연은 정말 갈대밭을 건너는 바람일까.


덧. 이란 여행 이야기...이런의 첫느낌


밀주를 따라주고 있다


숙부같은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