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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7.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다니엘 튜더

요호호 2014. 8. 20. 12:58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저자
다니엘 튜더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7-3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불가능의 기적을 이룬 나라 아직도 불가능한 희생을 요구하는 나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5. 나는 불평만 늘어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만약 세상에 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 그것을 만들 힘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당신의 임무인 것이다.
 또한 나는 한국을 알리고 싶었다. 특히 영화, 음악, 음식,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느꼈던 즐거운 느낌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 정부가 그 방면의 일을 아주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나는 내 나름의 소소한 방식으로 그걸 시도해보고자 했다. 만약 누군가 “당신의 책을 읽고 서울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 아니겠는가.

한국이 경쟁에 집착하는 나라라는 것을 지적한 사람은 물론 내가 처음이 아니며, 분명 내가 마지막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 이제 다소 상투적인 주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자의 시선’에서 봤을 때 그런 끝없는 경쟁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건강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단 한 사람이라도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스스로 ‘성공’이라고 여겨왔던 것의 가치를 한번 되돌아봐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그 역시 매우 기쁜 일일 것이다.

19. 동성애에 대한 이 책의 내용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주류 사회를 반영하지는 않지만, 나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무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더군다나 한국에 대해 영어로 글을 쓴 필자 중 그 문제를 거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동성애를 제대로 다루었는지 확언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시도를 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 몇 분간 소리를 지르고 나서 그분은 내게 다가와, 내가 “완전히 틀렸”으며, 내가 “한국에 대해 더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분명 나는 한국에 대해 더 공부해야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 알고, 남들은 바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내가 사실관계에 대해 오류를 범한 것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사과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 하지만 나의 입장과 해석에 대해서라면,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관점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나 또한 그렇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영국에 와서 책을 쓴다면 나는 당신의 의견을 환영할 것이다. 남의 해석을 가로막는 것만큼 반민주적인 것도 없을 테니까…….

29. 그러나 ‘불가능한 나라’라는 말에는 좀더 부정적인 이유가 있다. 이는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한국인은 물질적 성공과 안정에도 불구하고 진실된 만족감을 크게 잃어가고 있다. 한국은 교육, 명예, 외모, 직업적 성취에서 스스로를 불가능한 기준에 획일적으로 맞추도록 너무 큰 압박을 가하는 나라인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리투아니아에 이어 세계 두번째다. 이 문제는 나아질 기미가 없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1989년에서 2009년 사이, 자살률은 다섯 배가량 증가했다. 한국은 정치와 경제 면에서 이룩한 놀라운 성취뿐 아니라,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불가능한’ 나라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면 족하다”라고, 독립투사 백범 김구는 말했다. 대신 그는 한국이 자국민과 외국인에게 행복을 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 만약 김구가 살아 있었더라면 그는 지금 한국의 모습에 조금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김구라 해도, 이 불가능한 나라가 먼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만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80. 강남은 오늘날 한국의 과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강남은 영어 공부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경쟁의 장이며, 과시적 소비의 현장이기도 하다. 청담동이나 압구정동 같은 강남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2백만 원도 넘는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남 학생들은 SKY나 미국 아이비리그에 들어가야 한다는 기대를 짊어지게 되며, 여기에 실패할 경우 본인과 부모는 모두 깊은 실망감에 빠져든다. 단적으로 말해, 강남은 서울 인구 중 5.5퍼센트만이 살지만 전체 성형외과의 70퍼센트가 밀집한 지역이다.

195. 이미 백 권 넘는 책을 출간한 시의 대가 고은은, 자신이 독보적인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흥을 꼽는다. 그에게 시란 축제와도 같다. (…) 고은은 자신의 작업이 일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유희에 더 가깝고, 이제 칠순을 넘어 팔순을 바라보고 있지만 멈출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