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여행기_이것도 여행이라고
여행 279일. 길은 여기까지. 여행을 마무리하며
요호호
2014. 8. 23. 19:29
여행 279일. 길은 여기까지.
큰 깨달음을 얻고 뜻한 바가 있어 돌아갑니다.
... 는 양치기 소년 뺨치는 거짓말이겠죠.
여행이 일취월장시켜줬다거나 앞으로 인생길에 대한 계시를 내려줬다던가 하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행은 오히려 저같이 어리바리한 얼치기도 해볼 만 하다는 것을, 긴장을 놓는 순간 언제고 변화라는 급류에 순식간에 매몰 돼버린다는 것은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강물 속에 존재가 쓸려가는 느낌.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파도 곁의 모래성을 지키듯 매 순간 노력해야 했습니다.
지금와 돌이켜보면 여행 전 ‘무엇' 할 것인지 계획할 게 아니라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세웠어야 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나는 왜 떠나야 하는가를 물어봤다면 어땠을까요.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아무렴 상관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상엔 떠나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요.
여행 초 저는 세계여행을 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걸 뭐 굳이....’ 하는 남사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세계란 게 당최 뭘 말하는 건지, 그 세계는 어디까지를 말하는 건데? 에 대해 저 스스로 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9개월,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아프리카까지. 여전히 어디까지를 세계라고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누군가에 의해 일반화되거나 가공된 이미지의 세계가 아닌, 제 눈과 마음으로 레알 세계를 보고 싶었습니다. 279일, 눈으로 보고, 맛보고,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니 제가 봐온 세계 또한 하나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았구나는 생각도 듭니다. 불교에는 인드라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 우주의 사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속의 사물들은 서로를 비추고 있다고 하죠. 어쩌면 저는 지금까지 세상에 비친 저 자신을 보고 다닌 것일 수도 있습니다. 즐거움, 기쁨, 아름다움과 같은 빛도, 화, 두려움, 추악한 욕망과 같은 어두움도 결국 세상이 아닌 제안에 있던 것들이죠. 제 마음속에 있었거나 혹은 제가 보고 싶었던 것들을 세상은 그저 그대로 보여준 것이죠. 이런 점에서 신은 공평하다 말할 수 있겠네요.
어디까지가 세계인지에 대한 범위는 정해진 게 없습니다. 28살의 제 세계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는 제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는 여행. 9개월 전 끝없는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역시 끝없는 질문을 안고 돌아갑니다. 279일,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입니다. 하지만 이 자체로 모든 걸 버리고 떠날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여행이 좁쌀 소갈머리에도 허락해준 변화가 있다면 길은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면 끊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걸어야하는지 알 때 결국 길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결국 길은 있을 것입니다. 이 길을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어느 때 서로 만나게 되는 지점이,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지점이, '우리'를 넓혀나가는 지점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World of Wonder, WOW! 저희의 제목이었습니다.
세상 속에 경이로움이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경이로운 것이 세상이었습니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