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다/책
#1093. 정치의 즐거움. 박원순, 오연호
요호호
2014. 9. 7. 10:36
위기를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좌절의 순간에도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훨씬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낼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늘 어려움 속에서 시대의 화두가 나옵니다. 어떤 전쟁이나 정치적 싸움이 있을 때, 굉장히 소수이거나 불리해 보이는 사람들이 이기는 경우가 많아요. 상황이 어렵고 절박하니까 오히려 더 힘을 내고 비상한 방법들을 생각해냈기 때문이에요.
151. 뉴타운 문제를 고민하면서 관성의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늘 하던 대로 따라가다 보니 다 같이 바닷가로 향하게 되는 격이죠. 죽는 줄도 모르고 바닷물로 뛰어들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더군요. 앞으로 도시의 미래를 준비할 때는 근본부터 깊고 길게 생각해야 합니다.
169.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처참할 정도로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폐해들을 계속 축적해왔어요. 무한경쟁에 노출되면서 삶의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온 거죠. 그러니 누구나 힘들고, 그래서 힐링을 찾습니다. 그런데 힐링은 그야말로 힐링일 뿐입니다. 해결책이 아니에요. 잠깐의 위안을 넘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의 대안적인 체제로 바뀌어야 합니다.
서울시장이 되고 나서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포함해 협동조합 만들기, 사회적 기업 만들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추진했는데, 제가 이런 사업들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적 흐름을 탔다고 생각해요. 시대를 거스르는 일은 제가 아무리 하려고 해도 잘될 리가 없어요. 반대로 시대에 순응하는 일이라면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가 원하는 일이라면, 아직 다소 이르다고 해도 먼저 길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서울시가 이미 잘하고 있고 시민들이 이미 다 하고 있으면, 제가 뭐하려고 열심히 주창하겠어요? 시대가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 잘 안 되고 풀리지 않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제 일이죠.
마을공동체 만들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시작 단계지만 그 길로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고, 잘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외치는 거예요. "여기에 길이 있다!"
179. 서울시장으로 일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으니 이제 '공무원과 하나 되기'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생겼을 듯합니다.
// 우선 공무원의 장점을 인정해야 해요. 관료시스템의 장점을 인정하고 그들을 신뢰해야 합니다. 관료시스템은 안정과 안정, 매뉴얼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일이 틀림없이 되도록 만들고, 큰 실수를 예방하는 기본적인 장점이 있거든요. 공무원들의 엄숙한 문화가 답답할 때도 있고 그래서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오랜 세월 형성된 그들만의 장점을 존중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까지 많은 개혁론자들이 실패한 이유는 공무원들을 적대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제가 선거 때 이런저런 공약을 내걸었는데, 이 약속을 누구와 실천하겠어요? 기본적으로 우리 공무원들입니다. 서울시 직원들을 제가 불신하고 적대적으로 여기면 공약의 실천이나 성공은 불가능해요.
208.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는 '우리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즉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고 봅니다. 누군가 비전 있는 사람이 있고 그가 많은 지지자를 얻어 사회적 흐름으로 만들면 우리 사회가 그 흐름을 타고 발전해나가겠지만, '과연 될까'하는 회의론자가 많고 그들을 설득할 만한 비전과 논리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어떤 현상이나 과제를 바라볼 때도 그것이 품고 있는 긍정적 요소, 실현 가능한 잠재적 요소를 파악해서 전략적으로 잘 이끌어나가면 성공하지만, 그러지 못하면 실패합니다. 필연적으로 이건 된다. 안 된다, 이렇게 예정된 것은 없다고 봅니다.
231. 인사는 만사입니다. 제대로 된 사람,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모시고 오면 그다음은 모두 맡깁니다. 서울시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일일이 간섭할 필요도 없고요. 아주 친하거나 정말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의 부탁이라도 인사 문제는 들어주지 않습니다. 어떤 자리가 있으면 그곳에 가장 잘 맞는 최고의 사람을 써야 하니까요.
301. 2008년의 촛불은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기존 정치에 대한 엄청난 불만이 용암처럼 흘러내렸죠. 하지만 그 흐름을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리더들은 냉정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에너지를 일상으로 가져와 창조적이고 대안적인 에너지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그냥 한 번 크게 데모하고, 시청광장이나 광화문에서 뭔가 했다는 정도로 끝난다면 너무 허망하잖아요.
모든 일이 잘되려면 일순간의 흥분보다 정교한 대안이 필요합니다. …
311. 독자 여러분은 어떤 야심을 갖고 있습니까? 이 대담집을 읽으면서 당신만의 아름다운 야심을 가꿔보면 어떨까요? 설령 그 도전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누군가는 그 실패의 교훈을 밑거름으로 삼아 새벽을 여는 이어달리기를 계속하겠지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아름다운 야심을 즐겁게 실천하다 보면 우리가 그토록 꿈꾸는 그날이 올 것입니다. 내일은 우리들의 오늘이 만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