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호호/짓다_삶

꽃보다 홍성 (5) 저기 잠깐만요, 지역화폐

요호호 2015. 1. 1. 01:00
꽃보다 홍성 (5)
ㅡ 저기 잠깐만요

어젯밤 홍성에 강의가 있었다. 돈이란 무엇인가. '지역화폐' 준비를 위한 강의였다. 어제는 8번째 강의 였다. 서울 해방촌에서 지역화폐를 운영하는 빈마을금고, 공동체은행 ‘빈고’가 강의를 위해 홍성까지 내려왔다. 그들의 비전과 생생한 경험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강의가 끝났고 뒷풀이가 마련됐다.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중간중간 한두 사람이 떠났지만 새벽 3시까지 이어진 자리. 겨울밤이 깊어갔다. 농촌에는 야간 택시가 없다. 잠을 자야할 시간에는 운전자도 손님도 잠드는 농촌의 밤, 자연의 규칙을 따르는 농촌의 밤. 인간적인 밤이었다. 차 있는 사람이 차 없는 사람의 귀가를 도왔다.

1시쯤, 어느 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동이형이 데려다주기 위해 같이 일어섰다. 형동이형은 새신랑이다. 인천 사람인데 귀촌한지 4개월이 되었다. 아직은 직장을 다니지만 농사를 꿈꾸고 있다. 덩치만큼 마음도 큰 형이다. 20분 후, 형에게 전화가 왔다.
“동호야, 차가 빠졌어.” 나를 포함한 건실한 남자 5명이 출동했다. 모닝을 타고 출동했으니 <모닝 특공대>라 칭한다. 

홍성에는 지난 사흘 동안 눈이 내렸다. 실핏줄 같은 농촌 길. 다행히 해가 있는 낮에 눈이 다 녹았다. 간혹 그늘이 지는 곳은 눈이 녹지 못했다. 형동이형 차는 그곳에 차가 빠져있었다.

함께 밀어봅시다. 어둠 속에서 어느 분이 제안을 했다. 하나 둘 셋. ‘으다다다다다-‘ 독수리 5형제는 왜 5명인가. 협동조합을 세우는데는 왜 5명이 필요한가. 손가락은 왜 5개인가. 오늘 그답을 깨달았다. 차가 빠져나왔다. 너무나 쉽게. 모닝 특공대는 살짝 허망한 마음마저 느꼈다.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눈덮인 야경도 보고 좋네요.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분위기. 하지만 차는 바로 다시 빠졌다. 그래도 사람들 있는 곳에서 빠져서 다행이다. 다시 미시죠. 아까 그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하나 둘 셋. ‘웨엥-‘ 헛도는 바퀴. 이번 빠짐은 좀 진지한 걸.

하나 둘 셋! 웨엥-
하나 둘 셋~ 웨엥ㅡ

고무 타는 냄새가 난다. 영하 10도를 넘었지만 타이어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나는야 명색이 항공기 정비사 출신. 지금 이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잠깐 한박자 쉬었다 하시죠. 타이어가 과열되었어요. 터질 수가 있습니다.”
잠깐 쉴겸 작전타임. 상황을 살폈다. 눈을 치워냈고 흙을 메웠다.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힘을 합쳐 보시죠. 하나 둘 셋! 와다다다다다다. 차가 조금씩 움직였다. 그 순간. 엔진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가르던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삽질은 군인만 하는 게 아니었다. 자동차도 땅을 팠다. 그것도 매우 잘 팠다. 그건 마치 우리 할머니네 똥개 백구가 똥을 싸고 땅을 파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동차도 흙을 뒤로 파날렸다. 퍼더더더덕. 퍼날라가는 진흙.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타이어 뒤에 섰는가.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하나 둘 ..."
… 저기 잠깐만요.
퍼더더더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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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화폐는 소규모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화폐이다.

어렸을 때 용돈은 저금해야 한다고 들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이렇게 배웠다. 은행에 저축된 돈으로 기업은 대출을 받는다. 그 돈으로 투자를 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월급을 받으면 은행에 저축하거나 펀드에 투자했다. 오늘날 경제 시스템은 내가 듣던 이야기와는 달라졌다. 은행에 있는 돈, 대부분을 재벌기업이 빌린다. 재벌은 대출받은 돈을 사회투자가 아닌 자기들 잇속 챙기기 위해 쓴다. 그것들은 대부분 비윤리적인 일이다. 자신들을 위한 편법을 만드는 로비자금에 돈을 쓴다. 쌍용차 부당해고가 정당했다고 말한 대법원. 슬프다. 원전을 세우는 돈도 무기를 만드는 돈도 내가 저금한 돈에서 시작되고 있다. 팔지 못하는 깡통 집을 가진 부모님 세대. 평생을 벌어도 사지 못할 집값. 그 부동산 거품을 물려받는 우리. 내가 투자라고 생각했던 행동은 사실 투기였다. 나도 모르게 사회 문제를 만들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피를 돈이라고 했을 때, 지금 우리 사회의 혈액순환에는 문제가 있다. 지역화폐는 돈이 어느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는 힘을 지녔다. 이웃과 이웃 사이에서, 지역 공동체 안에서 순환되는 돈이다.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힘을 가진 돈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돈이다.

차가 눈길에 빠졌다.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