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호호/짓다_삶

꽃보다홍성(1) 시골에서 온 편지, 왜 귀촌을

요호호 2014. 12. 23. 08:00
그러니까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랄까.

 한번 사는 인생 주인으로서 살고 싶었다. 재미나게, 의미있게 살고 싶었다. '재미'란 무엇일까. ‘의미'는 무엇이며, '인생'이란 무엇일까. 감사하게도 인생의 기점마다 좋은 스승을 만났다. <지행>, 아는 대로 행하는 것, 모든 갈림길의 시작이었다.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갈 것인가. 나를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볼 수 있었다. 기록과 <글쓰기>. 글을 통해 경험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성장은 인생을 살아가는 맛이었다. 더 배우고 싶었다. 야간 대학에 갔다. 7년 의무복무가 끝났다. 제대냐 군인이냐 선택 앞에 섰다. 먼 훗날, ‘나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는데 말이야... 하지 않았어. 왜냐면…’ 따위의 변명을 하기 위해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슴이 말하는 것에 응답하겠다. 머나먼 초원과 쏟아지는 비바람, 느낌이 다른 햇살. 새로운 만남과 배움, 새로운 삶에 대한 막연하지만 분명한 바람에 돛을 펴기로 했다. 전역을 했다. 한달 후, 배낭을 맸다. 279일의 여행, 무엇을 보았을까.

어렸을 때 이런 말이 유행했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는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세계화'가 뭔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왜 ‘세계화’라는 프레임을 받아들이기로 했을까.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삶의 질은 좋아졌을까? 리처드 도킨스라는 진화생물학자가 있었다. 1976년에 그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통해 '밈(Meme)’을 이야기했다. 밈은 '사회적 진화’를 뜻한다. 생명이 없는 것들도 생명체처럼 진화해나간다는 말이다. 기술의 진화가, 사회와 문화의 진화가 밈이라고. 하지만 생명체의 진화가 그렇듯, 비생명체의 진화도 항상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진 않는다.

기술의 진화는 대량살상 무기, 원자력 발전소 같은 문제를 만들었다. 자본 또한 그런게 아닐까.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이젠 스스로 절대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실체없는 유령이 되어 돈이 될 것 같으면 무엇이든 블랙홀 마냥 먹어치운다. 인간은 그앞에 상품이 되고 있다. 예뻐져야 하고, 스펙을 쌓아야 한다. 돈을 얼마나 벌수 있느냐, 이게 한 인간의 됨됨이를 말해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 지역화라는 물음 앞에 섰다. 지역화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겠다는 뜻이며, 인간을 효율성의 틀에 끼어넣지 않겠다는 말이다. 신영복 교수의 말처럼 변방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 지역화가 좋은 거라 치자. 그런데 너에게 지역화가 왜 중요한건데?라는 물음에 아직은 답할 수 없다. 왜 여행을 갔어야 했는지, 왜 경영을 공부하고 싶었는지, 왜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이 질문들을 지나쳐 왔듯, 이 또한 인생이 내게 주는 '벽'이자, 넘어서야 할 '문’이니까.

내 ‘개인'의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지속하려면. 이게 시작이었다면, 함께 지속 가능한 삶을 살려면. 이게 지금 서있는 지점이다.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자식에게 자기 삶을 부정하는 부모가 없는 사회. 150만원을 벌어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 인간 영혼의 양분인 문화와 교육을 함께 고민하는 사회. 생명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사회. 자유로우나 책임을 실천하는 사회. 가정이 바로서는 사회.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는 사회. 우리나라도 가능할까. 분명한건 불평과 비판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젊은 세대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변화를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충청남도 홍성군으로.
'홍성 협동사회경제 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홍성군 안에 있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같은 사회적 경제 단체들과 복지기관 등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지역내 사회경제 단체들의 연대와 협력을 도모하고, 지역 순환경제망 확대를 목표한다. ‘언젠가…’의 지역활동을 급작스럽게 시작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떠들었던 독일행은 일단 접는다.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지만, 지금 아니면 못갈 것 같은 조바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뜬구름이 되고 싶지 않다. 로맨티스트냐 리얼리스트냐가 선택지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알린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 앞에서 깊이 고민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깊이를 갖는 사람의 자세이다. 인간의 정신은 과연 우리가 옳은지를 살펴보는 내적 의심이라는 작은 불빛을 통해서만 빛날 수 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비로소 냉소주의나 환멸 속으로 무너져 내리지 않을 것이다. 환상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자신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바깥으로 걸어 나갈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의 반응을 마치 관찰자처럼 살펴볼 수 있다.”

28번째 가을을 지나고 있다. 전역을 결심했을 때와 또 다른 바람이 분다. 나무의 냄새와 지나온 길의 냄새를 맡는다. 만추의 낙엽이 진다. 환상에 의지하지 않겠다. 현실을 우회하지 않겠다.

앞으로 새로운 만남과 배움, 새로운 삶. 앞으로 홍성에서의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매일 지나던 우리 동네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