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여행기_이것도 여행이라고
근황)여행기 '청춘의 여행'을 교정교열하고 있습니다.
요호호
2015. 4. 29. 08:00
제가 당신에게 숙제를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산을 오른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하고 빠짐없이 적어보십시오.
당신의 경험에서 중요했던 모든 것을 적어보고
만족할 때까지 고쳐쓰고 또 써보십시오.
당신이 산에 올랐던 이유를 당신 자신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해보십시오.
산을 오르는데는 별로 시간이 들지 않았겠지만
진정으로 산의 정상에 오른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정상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모든 것은 그런식으로 입증됩니다.
산 정상에 올라 상쾌한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정상에 오르면 우리는 더이상 오르지 않을테니까요.
어쩌면 집에 돌아온 후에야 우리는 진정으로 산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산이 뭐라고 말하던가요.
산이 무엇을 하던가요.
- 헨리 데이비드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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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내 여행에 많은 영향을 준 책이 있었다. 미국의 자연주의 사상가 H.D. 소로우의 <월든>이란 책이었다. 소로우는 어느 날 숲에 들어가 ‘월든'이라는 호수 옆에 통나무 집을 지었다. 그리곤 숲에서 2년을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농사를 지었고, 사람을 만났고, 산책을 했다. <월든>은 그 2년의 시간을 적은 수필이다. 1865년, 산업화가 세상을 지배해가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소로우는 <월든>을 통해 말했다. 소박한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삶의 진실을 만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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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 나름 소박한 여행을 하고자 했다. 상업주의의 껍데기 속에 가려진 진실을 보고 싶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었다. 산다는 건 무엇일지 알고 싶었다. 눈으로 보는 것,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느끼고 싶었다.
그 나라의 음식문화를 이해하고 싶었다. 먹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것이 문화니까. 길거리 음식이 주메뉴였다. 식중독에 걸렸다. 사흘을 설사만 했다.
외국 사람들의 삶을 보고 싶었다. 가는 동네마다 시장바닥을 기웃거리며 무얼 파는지 봤다. 날강도를 만났다.
무엇이 문화를 다르게 만드는 걸까. 문화가 바뀌는 경계를 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이동했다.
낮은 위치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거지처럼 다녔다. 그냥 거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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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년 전의 소로우는 내게 숙제를 남겼다. 나는 그 숙제를 완성할 수 있을까. 스스로 납득 할만한
여행이라는 산을 오르며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여행은 내게 무엇을 말해주었을까. 나는 진정으로 여행을 다녀온걸까. 여행은 내게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지금 또다른 걸음을 떼고 있는 또 하나의 산. 여행은 왜 나를 귀촌하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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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행을 떠나야 했을까. 여행을 다녀온 후 왜 귀촌을 해야 했을까. 그건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시점이 있고, 그 시점마다 고민에 고민을 했던 질문이 있다. 답을 찾기 위해 신앙을 찾았던 것처럼, 책을 읽었던 것처럼, 제대를 한 것처럼. 여행을 떠났던 건 다음 단계의 답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던 것 뿐이다. 그리고 역시 같은 이유로 농촌으로 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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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리 궁상맞았던 여행. 다음의 답은 농촌에 있다고 한 여행.
그 경험을 모두 적어보고 고쳐쓰고 또 고쳐써봐야겠다.
오늘의 일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