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호호/짓다_삶
영화. 리뷰. gmo. 100억의 식탁
요호호
2017. 7. 23. 15:15
[영화리뷰] 100억의 식탁
백남기 선생이 돌아가셨다.
함께 살길을 찾아 거리로 나온 이의
죽음은 무겁다.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말세를 보고 있는건 아닐까.
그리고 우연찮게 영화리뷰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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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기는 아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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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두고 떠난 간 이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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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일주일에 하루, 홍동면을 순환하는 버스를 운전하고 있습니다. 이동성이 떨어지는 농촌 마을. 일주일에 한 번 마을 어르신들의 발이 되어드리는 즐거움을 얻습니다. 더불어 방방곡곡을 도는 덕에 시시각각 변해가는 마을의 풍경을 즐기고 있습니다. 홍동천 수계를 따라 펼쳐진 논, 한가로이 노니는 백로. 벼꽃이 피나 했더니 푸른 물결은 어느새 황금 물결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피(잡초)바다 논이 많습니다. 아침 해보다 부지런한 마을 농민들께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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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한숨부터 나오는 낮은 쌀값에 있습니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데 무엇하러 논에 나가냐는 말을 듣습니다. 경제개발 시절 중공업 중심 정책은 저곡가 정책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낮은 인건비를 유지하기 위해 저렴한 생활비가 요구됐던 것이죠.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났습니다. 제 아버지 세대에게 농촌이 ‘가난'으로 기억되는 건 이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저곡가 정책은 21세기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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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가격은 정말 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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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가면 어렵지 않게 ‘득템’의 기분을 느낍니다. 이런 생각 해보셨나요? 생닭은 어째서 4천 원 밖에 안될까? 흙만 먹여 키워도 이런저런 비용 다하면 배는 할 텐데요. 비밀은 외부화된 비용에 있니다(어느 물건이 만들어지고 폐기되는데까지 치러져야 하는 비용이 있습니다. 이중 일부를 다른 이가 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배기가스로 발생하는 초미세먼지의 피해가 심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개인이 공기청정기를 사면서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자동차(환경오염+도로건설+교통사고)로 인한 비용을 다수의 사람이 분담하고 있는 것입니다). 4천 원에 생닭을 살 수 있는 건 밀집 사육과 외국에서 들여오는 값싼 사료(옥수수, 콩) 덕입니다. 아니, 우린 저렴하게 치킨을 먹을 수 있고, 그들은 농산물을 팔 수 있다니. 누이 좋고 매부 좋구먼! 좋은 일 아닌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매 합리성(싼 가격)이 누군가를 땅 파먹고 살도록 만들고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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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의 합리성이 전체의 최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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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GMO 없는 홍성시민모임’에서 영화 상영회를 했습니다. 다큐영화 <100억의 식탁>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학자들은 2050년 세계인구가 100억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감독은 농산업이 100억 명을 어떻게 먹일 것이냐는 질문으로 세계를 여행합니다. 기업과 연구소는 답을 알고 있을까요.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시민들도 찾아갑니다. 이들은 각자의 답으로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전자조작종자를 만드는 기업, 토종종자를 지키는 농부, 땅속 비료를 채취하는 기업, 동물의 똥으로 농사짓는 농부, 공장식 축산을 하는 기업, 전환도시, 지역사회가 지원하는 농업, 시카고 곡물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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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반부, 공장식 농장이 퍼지고 있는 아프리카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은 공장식 축산의 사료로 쓰일 콩을 재배합니다. 숲을 파괴한 후 들어서는 농장. 생태계 파괴도 환경의 문제도 있지만, 지역 원주민의 땅을 강제로 뺏는 인권의 문제도 있습니다. 농장주는 지역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광대한 농장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그 땅에 살아가던 농민들이 고용되기엔 턱없이 적습니다. 그나마 일용직입니다. 공장식 농장의 농작물이 저렴해 보이는 이유는 일자리를 줄이고 무상으로 빼앗은 땅 덕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마트에서 만나는 '착한(값싼)'닭의 비밀이 조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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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각을 잃지 않는게 지적 탐구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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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거되는 이야기가 복잡한듯하지만 전개는 단순합니다. ‘질문과 답, 답에 대한 의문’의 방식으로 조각을 하나씩 이어갑니다. 어느 한 편의 이야기만 전하지 않습니다. 다방면의 주장으로 퍼즐을 맞춥니다. 그러면서 점차 근본적인 질문으로 들어갑니다. 미래 자원까지 소모하지 않는 방식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유기농은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먹거리일까. 기아는 생산량의 문제일까. 먹거리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역사회가 농업을 지원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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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말하는 희망 : 농적인 삶에 대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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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사례로 나온 대안적인 활동들이 이미 우리 지역에서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물론 공장식 축사나 화학비료 사용 등도 이뤄지고 있죠). 홍동면의 유기농 역사는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협동조합을 조직해왔습니다. 홍성씨앗도서관에서는 토종 종자를 지키는 일을 합니다. 얼굴 있는 농산물, 홍동농협의 로컬푸드 매장. 도시민과 농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꾸러미. 자연의 힘으로 농작물을 기르는 자연재배협동조합.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마을대학 풀무학교 전공부. 지역에서 생산한 물건을 지역 소비를 돕는 풀무학교생협. 축재 못 하는 돈, 외부 유출을 막는 돈, 돈의 순기능을 돕는 지역화폐 ‘잎’... 자립과 자치가 몇몇사람의 유별난 생각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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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 우리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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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어지는 문답은 마지막에 가서 하나의 질문으로 끝납니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입니다. 공장식 사육은 최근 많이 알려졌습니다. 전국 제일의 축산 도시 홍성도 이미 오랜 세월 피해를 보았습니다. 먹거리 문제는 결코 제삼 세계 빈민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의로운 먹거리에 대한 접근성과 독립성은 지금 우리의 문제입니다. 쌀값이 20년째 동결 중이라는 걸 우린 알고 있습니다. 농민이 왜 장사꾼이 되어야 하나요. 얼마 전 정부의 쌀값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농민이 죽었습니다. 함께 사는 길을 묻고자 길에 나섰던 이의 죽음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쌀농사는 죽어가는 농촌의 마지막 생명줄일 것입니다. 농부가 떠난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요. 농부 없는 나라에 건강도 없습니다. 결국 ‘착한’ 가격의 문제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며, 상상력의 문제인 것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 개인적으로 저는 텃밭으로 가고 싶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영화는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홈페이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