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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_작고느린만화가게/작은것이 아름답다 엮음
요호호
2018. 1. 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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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지나가는 나를 이장님이 불러세우셨다.
새해 인사이신가 쭈뼛 되돌아온 내게
마을 반장을 맡으라는 하명.
반장이라굽쇼!!
덜깬 잠이 번쩍.
기어이 올것이 왔구나.
반장 제의가 올터이나 이를 무르라는 귀뜸이 있은지 얼마였다.
옳거니. 입술이 달싹.
"이장님 죄송하지만 저.." 말을 꺼내려는 그때였다.
아니 잠깐... 문득 학교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그래, 감투의 맛은 달고도 달았더랬지.
수업시간에 떠든 놈들 이름을 적어
종례 때에 담임에게 보고하던 그 시절.
(후후)
.
.
마을 반장이 뭐겠느냐마는.
.
.
홍성에 내려와 산지 4년.
농촌살이의 즐거움 하나는
최근(이래봤자 5개월이 지남)
소속의 변동이 있었다.
같은 동네에서의 이동이었으나,
시민단체에서 영리기업으로
다른 업종으로의 이동이었다.
마을 단체들간의 협업(마을 자치)을 만드는 일에서
유기농 요구르트(돈)를 만드는 일로 이동.
.
요구르트라지만
건강한 기업 하나가 동네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본다.
현금보기 어려운 농촌에 월급이라는 것이
동네 이모들(그리고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
동네를 유지하는 힘이 되는 것을.
.
하지만
유기농이래도 축산업이라는 틀(한계)도 있다.
생명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
그렇지만 지역 운동 활발한 마을에 살아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한계의 또 다른 이름이 '현실'이지 않을까는.
생명 철학에 근거한 유기농도 있지만
생계 수단으로써 또 하나의 농법인 유기농도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근사한 이유보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만드는 힘을 배우는 중이랄 수 있다.
작년의 신고리 5, 6호기 원전 건설 중단 공론화 위원회는
경제성을 이유로 원전 건설 재개에 손을 들었다.
<2050충남 에너지 기획단>에 참여했던 경험에 의하면
탈석탄과 탈핵 같은 에너지 전환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불편'과 '상실'을 이야기한다.
과잉의 시대는 그렇게 말한다.
결국 삶의 전환없이 에너지 전환도 없다.
소박함과 충분함.
변화는 분명 멋진 것이다.
나는 믿는다.
마을이 전환의 본바탕이 될 것이라고.
그렇기에 농촌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지금은 불필요한 전깃불을 끄는 것도
안쓰는 전기코드를 뽑아놓는 일도
쓰레기통을 뒤져 분리수거를 하는 일도
우유를 하수구에 버리지 않고 퇴비화하는 일도
유난스러운 행태지만
지금 여기에서 시작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는
생분해 플라스틱 포장이라거나 태양광 전기,
빗물 탱크라거나 더 행복한 젖소 목장 같은 일
함께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작은 기업이 마을을 유지하고
전환의 촛불을 켜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을 반장이 뭐겠느냐마는
전깃불을 끄는 일이 뭐겠느냐마는
건강한 요구르트가 뭐겠냐마는
곁가지를 내어 본뿌리를 단디하는 정도.
작고 느리게
지금 이곳에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