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여행의 댓가에 대한 이야기.

여행을 다녀오고 친구들을 만나면 꼭 듣는 질문이 있다. 한참 얘기를 한 후에 친구들은 묻는다. "… 그건 그렇고, 뭐 없냐?” 이 질문이 선물을 묻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면 궁핍의 종결자 나를 잘 모르시는 말씀. 이건 일요일 아침 방송 동물농장에도 나오는 로맨스를 묻는 말이다. 로맨스, 그것은 인류에게 끝나지 않는 이야기. 로맨스, 그것은 나에게 엄마 친구 아들과 같은 존재. 들어는 봤으나 만나본 적은 없는 그런 존재. 그래, 그런 것도 있었지… 

어린 시절 읽은 삼국지가 생각난다. 중국 소설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고전 중의 고전.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형제가 되기로 한 삼형제 이야기, 유비가 책사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번을 찾아갔던 이야기. 괄목상대, 난공불락, 도원결의, 삼고초려, 파죽지세… 내 거침없는 사자성어들은 삼국지 선생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도 남자라고 어린 시절 삼국지를 읽으며 영웅이 되기를 꿈꿨다. 자기 눈에 박힌 화살도 스스로 뽑아버린 기백의 장수 하후 돈은 못 될지라도, 소박하게 촉의 왕 유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유비, 조조, 손권, 그들은 왜 왕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황제가 되기를 꿈꿨던 것인지, 그들이 정말 백성을 위해 전쟁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난 삼국지를 만화로도, 게임으로도 즐겼다. 그랬던 삼국지가 떠오른 건 그 이야기로 배운 교훈 때문이다.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 하듯 삼국지에는 많은 영웅이 나왔다. 누군가는 용맹함으로, 누군가는 지혜로움으로, 누군가는 통찰력으로 역사의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또한 수많은 영웅이 ‘주색’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그래 내게 로맨스가 없는 건 삼국지 탓이다. 하지만 이제 와 애꿎은 책에 억하심정을 탓하는 건 책임회피, 지나가던 강아지도 비웃을 적반하장, 단순한 우연일치(보았는가 나의 사자성어). 하지만 왠지 섬뜩하다. 정말 책 한 권의 영향일까? (혹시 유비도 되는 건가)

사실 주색은 내 의지와 희망에 상관없이 다른 세계의 단어였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는 유전적 재능과, 백 번 소개팅에 나가 카르보나라를 먹어도 수십 번 미팅에 나가 배스킨라빈스를 외쳐도 언제나 결국은 좋은 친구를 만드는 놀라운 초능력……여행을 통해서도 정말 많은 좋은 친구들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뭐 없냐?”라는 물음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사실이 그러한걸.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들은 한국에서 못 찾은 사랑 외국에 있을 거야, 라고 응원을 해주었지만, 로맨스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겐 뭐가 있는 걸까? 난 279일 동안 뭘 한 걸까?

아시아 여행을 마무리하며, 영제와 나는 이스탄불에서 아테네까지 자전거를 탔다. 고등학교 시절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돈 적이 있었던 나는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바다를 보며 해안 도로를 달릴 수 있다’, '가고 싶은 지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영제가 ‘레츠 고’를 외쳤다. 우리는 결정을 못 박아 버리고자 곧장 자전거를 샀다. 신문을 구독하면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자전거 두 대를 묶음으로 싸게 사니 우리 마음은 마른 들풀같이 더욱 훨훨 불타올랐다. 이미 아테네에 도착한 기분. 하지만 우리가 진짜로 생각해봐야 했던 건 푸른 바다도 만끽할 자유도 아니라 우리가 달려나가야 할 과정이었다. 우리는 '이스탄불-아테네' 거리를 자전거를 산 후에야 검색했다. 제주도 둘레(230km)정도 될 거라 생각했다. 넉넉히 일주일을 예상했다. 1,149킬로미터. 시스템 오류인 줄 알았다. 몇 번을 다시 검색해도 나오는 천 킬로미터. 1149킬로미터는 하루 80킬로미터를 간다 해도, 쉬지 않고 열흘하고 나흘을 더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어쨌든 낙장불입, 자전거는 이미 우리 손안에 있었다. 자전거여행이 시작됐다. 그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받은 군사훈련을 떠올리게 하는 여행이었다. 정신을 차리게 만든답시고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뛰었던 뜀뛰기와 같았다. 붙이지 말라는 끝 번호를 꼭 외치는 녀석이 끝없이 나오던 유격훈련처럼 끝없는 길이 이어졌다. 하루 8시간 페달을 밟았다. 탈진과 여유 사이, '조금 더 가느니 차라리 날 죽여라'와 바람을 가를 때 피어나는 상콤함, 그 사이를 왕복하는 수행이었다. 푸른 바다를 보며 달릴 수 있다고,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할 수 있다고는 개뿔. 페달을 밟을 땐 허벅지 근육 경련을, 페달을 밟지 않을 땐 전립선의 고통을, 그 사이클이 반복됐다.

바로 옆에서 핸들이 헛돌거나 페달이 빠지는 등 별의별 문제가 생기던 영제 자전거를 보면서 내 자전거도 차라리 부서져 버려줬으면 싶었다. 터키 국경을 넘기 전까지는 자전거라도 부서져서 ‘어휴, 어쩔 수 없지.’ 같은 말을 하며 자전거 여행이 중단되길 바랐다. 하지만 내 싸구려 자전거 스톰은 펑크가 나긴 해도 절대 부서지지 않는 자전거라는 걸, 하자제품 백 개 중 단 한 개만 존재한다는 후루꾸 제품, 마데 차이나라는 걸 깨달은 건 아테네에 도착하고 나서이다. 하루 평균 80킬로미터를 달렸다. 매일 5리터의 음료수를 마신 것 같다. 매일 좀비가 돼버린 몸으로 아침을 맞이했고, 페달을 밟고, 펑크를 때우고, 페달을 밟았다. 

나는 로봇이다, 나는 감정이 없다, 나는 고통도 느낄 수 없다. 아테네에 도착하기까지 이십 일 동안 나는 이 주문을 외우고 외웠다.

파울로 코엘료는 우리 삶의 대가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진정한 땀의 대가는 우리가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 되었느냐입니다.

세계여행을 다녀오면, 눈에 박힌 화살 정도는 뽑아버리는 유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구들은 아저씨가 되어 돌아왔다고 말하지만, 싫지는 않다. 적어도 주문을 외웠던 대로 로봇이 되어 돌아오지는 않았으니까. 여행을 출발하기 전, 차라리 로봇이었으면 싶었던 날들이 있다. 감정도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또 로봇만도 못하게 살았던 날들도 있다. 내 갈 길만 걸어가던.

279일, 변변한 로맨스 하나 없지만, 아테네에 도착하기 위해 땀 흘리던 날들을 기억한다. 그 시간들을 지나오며 내 27.9살도 지나간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변변한 사람이지만, 앞으로 살아가는데 자전거 여행 같은 과정이 적어도 백만 개는 있으리라는 것을 이제는 짐작할 수 있다. 주문이 이루어질는지, 교훈이 생활이 될는지 알 수는 없지만, 28살새로운 과정 앞에 선 내게 이 주문을 외우고 싶다.

다른 이의 마음을 느끼는 인간이 되길, 다른 이의 고통에 눈감지 않는 인간으로 그 길을 걸어가길. 하루하루 삶을 완성해 나가길.

* 자전거 여행 비디오 보기
1) 영제의 영상(끊이지 않는 문제)
: http://www.youtube.com/watch?v=M-lH44BK038

2) 동호의 영상(생각편)
: http://www.youtube.com/watch?v=xp8DhSt8jK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