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동해항을 떠나 러시아 하바롭스크까지 가면서 있었던 이야기.

 2103년 3월 31일, 그날은 아기다리고기다리 세계 여행이 시작되던 날. 서울 강변터미널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도착한 동해. 동해항에서 승선한 이스턴드림 호에서 바라본 동해항. 어쩌면 다시는 못 돌아올 이곳. 눈부시던 햇살, 바다 내음, 그야말로 시작이라는 말은 이런 날에 붙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날이었다. 그래, 오늘부터 세계여행이다. 하지만 그토록 학수고대해오던 날이지만 사실 그날 난 눈앞이 캄캄했다. 속박과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그때 자유의 그림자가 나를 뒤덮었다. 내 앞에 펼쳐진 동해의 끝없는 바다와 그 수평선 너머의 어둠. 두려웠다.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의 내 삶은 뒤편 파도 속으로 사라지고, 앞에는 예측할 수 없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면 인터넷으로 만난 러시아 친구 집에서 이틀 밤을 묶고 영제가 있는 하바롭스크로 이동(영제는 나보다 2주 먼저 러시아에 갔다). 이게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영제가 있는 하바롭스크행 기차를 탔다. 인터넷 친구에겐 연락도 하지 않았다. 하바롭스크로 향하던 시베리아 기차에서의 밤.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도망친 것이다.

 러시아로 가는 배에서부터 하바롭스크까지의 2박 3일. 두려움으로 어둡고 어두웠던 길을 함께한 사람이 있다. 할아버지와는 이스턴드림 호의 같은 방에서 만났다. 할아버지는 마른 북어를 안주삼아 위스키 ‘도라지’를 마시고 있었다. 염색을 한 지 꽤 지난 듯 검은 기운이 거의 사라져버린 흰 머리와 역시 하얗지만 잘 다듬어진 콧수염, 웃으면 주름 속에 묻혀버리는 작은 눈. 할아버지는 북한 말씨를 썼다. 내게 위스키를 따라주었다. 할아버지는 하바롭스크에 사는 딸과 손주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할아버지의 부모님은 1942년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됐다. 1944년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5살이 되던 즈음 아버지가 남한의 광산으로 다시 징집됐다. 일본의 패전으로 사할린은 다시 소련 땅이 되었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돈 벌러 다녀오마” 이게 어린 아들이였던 할아버지가 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소련에서 자란 할아버지. 한국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인종차별과 같은 동포들끼리의 갈등. 1988년 할아버지가 사십 대 중반이 되던 즈음 남한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이 소식이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접한 남한 소식이었다. 북한 소식만 들어왔던 할아버지가 발전된 남한의 모습에 굉장히 놀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1991년 소련은 해체되었다. 냉전도 끝났다. 적십자의 도움으로 할아버지는 한국 땅을 밟아볼 수 있었다. 46년 전에 헤어진 아버지도 그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곧 폐병으로 돌아가셨다. 몇 년 전 한국 국적을 받고 지금은 한국에서 생활하고 계신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국적을 얻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일제 강점기와 소련, 냉전의 종식과 러시아로의 이데올로기를 말 그대로 몸으로 겪은 할아버지. 나로선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힘들었던 그 장면들. 그 시간을 지나오는 느낌은 어땠을까. 이야기에서 느껴지던 무게, 이걸 삶의 무게라고 하는 걸까. 할아버지는 덤덤히 말했지만, 나는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했다. 도망칠 곳 없는 삶을 살아온 할아버지와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도망치고 있는 나. 그날 밤 기차는 끝없이 덜걱거리며 어둠 속을 달리고 달렸다.

어느새 날이 밝아 할아버지와 나는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하바롭스크 거리엔 여전히 눈이 쌓여 있었고,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다. 4월의 러시아는 아직 겨울이었다. 하지만 기차역에 마중나온 영제를 보자 마음에는 봄이 오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다. 사실 나는 그제야 할아버지를 믿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북한 말씨와 나를 처음 보는데도 이것저것을 사주던 모습을 나는 사기꾼이 아닐까 의심을 했었다. 내 스스로가 참 아둔하고 눈이 어둡구나 싶지만, 두려움은 진실조차 보지 못하게 한다는 걸 그때의 내가 알 리 없었겠지. 하지만 어두운 길을 걸을 때에 누군가 곁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그 어둠조차 걸어볼만 해진다는 건 지금도 잊히지 않는 교훈이다. 할아버지와 나는 내일 다시 만날 것처럼 홀연히 헤어졌다. 할아버지를 다시 한 번만 더 만나볼 수는 없을까. 어쩌면 동해항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이스턴드림 호를 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마른 북어를 안주삼아 위스키 ‘도라지’를 마시고 계시겠지. ‘도라지'를 한 잔 따라주시겠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


* 러시아 여행 비디오 

1) 영제의 시선(3분21초) http://www.youtube.com/watch?v=5BPJuVGzmx4
: 두 불나방의 좌충우돌 하바롭스크 여행
2) 동호의 시선(3분19초) http://www.youtube.com/watch?v=yK2LatDCHRI
: 아름다움은 우리 안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헬렌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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