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에티오피아에 도착했던 날,
상큼하게 소매치기를 당했다. 이집트에서 밤새 비행기를 탔던 날이라 정신이 끔뻑끔뻑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중에 정신이 오락가락하실 때 사용해보시길!) 범인은 10살쯤 되는 코흘리개 꼬맹이들이었다. 녀석들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내게 잡지를 파는 것처럼 다가왔다. 차가운 도시 남자인 나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걸어갔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잡지에 가려졌던 시야 사이로 내 지갑을 꺼내 가고 있는 손이 보였다! 이런 귀여운 녀석. 그 손을 잡고 너 이러면 못쓴단다. 적당히 훈계하고 뒤돌아섰다. 하지만 왠지 내 가슴 한구석 허전한 기분이. ‘뭔가 찹찹한 이 기분 뭘까…….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 다른 말을 해줘야 했을까.' 아니 그건 줄어든 내 앞 가방의 무게였다.
… 전자책 단말기가 없어졌다… 지갑을 꺼내기 전에 이미 가져갔구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내 입으로 말하자면 난 학창시절 운동회 때 곧잘 반 대표로 달렸던, 좀 뛰던 남자였다. 운동회날 손목에 찍힌 1등 도장과 상품으로 받았던 공책이 생각난다. '또 1등이네'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면서도 그 도장이 지워지지 않도록 조심히 씻었던 날이, 상품으로 받았던 공책들이 기억난다. 공책은 결국 한, 두 쪽만 쓰다 버렸지만. 아무튼 그 능력을 드디어 공책 타는 곳이 아닌 곳에 쓸 기회가 온 것이다.
분노의 추격…을 시작했지만, 그 꼬맹이들, 내 뒤에서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5초 만에 종료된 추격전.
한 꼬마를 잡았는데 그 꼬마 붙잡히자마자 울고불고 소리를 질렀다. 동양인이 아이를 붙잡고 있으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내가 잡고 있는 꼬마는 울고 소리를 지르고 주변 사람들은 에티오피아 말로 뭐라고뭐라고 하니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어느 분의 도움을 받아 파출소를 갈 수 있었다. 동네 파출소였던 그곳은 컨테이너 정도 크기의 목제 건물이었다. 나무 책상과 의자 한 세트, 역시 나무로 만들어진 감옥(으로 보였는데 사람들은 여기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범죄 지표 따위가 그려진 종이들이 벽에 붙어있었다. 창문이 좁아 낮이었음에도 어두웠던 파출소, 그곳에는 한 청년이 흡사 그림자 속에서 어둠의 색으로 색을 바꾸고 먹이를 기다리는 카멜레온과 같이 앉아 있었다. 그 청년은 러닝셔츠 차림이었는데, 우리가 갑자기 우르르 들이닥치자 (내 눈에는) 서부마을의 평화를 지키는 보안관처럼, (내 눈에는) ‘사건인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내 눈에는) 멋지게 단추를 천천히 채우며 경찰 셔츠를 입었다.
그가 영어를 전혀 못 했기 때문에 우리는 손짓 발짓으로 상황을 브리핑했다.
‘이 녀석 일당이’... ‘내 가방에서’... '내 모바일을’... ‘훔쳤다’...
잠깐의 침묵. '…… 오케이’ 그는 난색한 표정을 지으며 곧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계속)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친환경 파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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