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어쩐지 출판사 전화라는 것을 직감했다.

차를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창비 ㅇㅇㅇ입니다."

직감(추정)했음에도 막상 현실이 확인되자 나는 무척 긴장되었다.

긴장하면 목소리가 낮아지는 내 목은 점점 낮아지다 못해 가청주파수를 넘기지 못하는 추임새가 되어갔다.

출판사 선생님은 수상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몇가지 확인을 했다.

저작권에 대한 재확인, 초고 완성은 언제쯤 될것 같은지(원고의 전체 내용이 쓰이지 않은 상태였다)

/ "네네, 이번 달 안에 해야죠.(출간 막바지가 되어서도 내용은 완성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손에 경련이 일었다. 제일 먼저 당선 소식을 전한 것은 엄마. (나의 글에 대한 부분은 엄마가 만들었다)

가족 카톡방에 수상 후보작이 되었음을 알렸을 때도 엄마(형수님)만이 내 글을 읽었다.

 "오메"

엄마는 어젯밤 기도 모임에서 내가 당선 되길 기도했다고 했다. 흥분한 내가 그 기도 덕분이라고 말해버렸다.

엄마는 그 틈을 타서 글에 있는 '나무아미타불'을 빼달라는 딜을 제안했다. (나는 공평하게 다른 챕터에 있던 '할렐루야'도 뺐다.)

전화를 끊고, 잠시 카페에 앉아 이 흥분을 즐기기로 했다. 햇볕 쨍한 12월이었다.

.

가만, 출판사에서는 전화 말미에는 초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어쩐지 나는 사기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원고를 빼먹는 보이스피싱 뭐 그런거... 레드오션을 피해 새로운 영역을 찾아온 어느 지능범을 생각해보았다.

 

 

좌절은 기대했던 만큼 크기 마련이다. 쿨한척 했지만, 내 본심은 이랬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입에서 피맛이 났다. 

나는 연애편지를 해독하듯, 브런치에서 보낸 메일을 다시 읽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쓴 '앞의 2개 메일 중'... 이라는 문장이 눈에 걸렸다. 이게 무슨 말일까...

처음엔 두개의 메일을 생각했는데, 앞의 2개 메일이라면 3개라는 말인가.

번뜩, 생각났다. 구글은 같은 내용의 이메일은 겹쳐준다는 사실을.

얼른 다시 메일을 확인해보았다. 이제야 보이는 숫자 '2'...

같은 메일은 겹쳐주는 구글의 배려

 

다음 메일에는 <돼지를 부탁해>의 수상 후보작 소식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현실을 곧이 곧대로 보지 않았다.

메일을 잘못 보낸 담당자가 실수를 덮기 위해, 나를 (소문 방지용으로) 후보작으로 껴준 것이라 생각했다.

후보작이라는 것은 그런 건줄 알았다.

몇 배수의 작품을 선정해놓고 다시 한번 선정하는 시스템이라고, 

그중에 후보작 하나쯤 더 넣는다고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몇 일 후 전화가 왔다.

출품을 하고 나서야 다른 출품작들을 보았다.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도 작품이 끝없이 나왔다.

나중에 수상 결과를 보니 6,000여 작품이 출품되었다고 한다. 한달여의 마감을 한차례 끝내고 나니 맥이 탁 풀렸다.

그래도 글 전체를 돌아보면서 빠져있는 부분이 확실히 보였다. 이정도라도 큰 성과라고 생각했다. 

이젠 빈 부분을 채우면 되었다. 프로젝트를 잊었다.

12월 4일, 이메일이 왔다. 브런치로부터! 2개의 메일이었다.

메일은 각각 '수상 후보작', '작가님께' 으로 시작됐다.

!!!

작품을 제출한지 한달이 지났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살았고, 잊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심장이 튀어나올 듯 뛰었다.

하지만 나는 쿨한 사람. 잠시 숨을 고른다. 바로 열어보는 건 너무 기다린 사람 같잖아. 일부러 조금 시간차를 둘러보고 메일을 읽는다(2초의 자존심).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늘따라 핸드폰은 로딩이 느리다. 빨리! 빨리! 빨리!

브런치에서 메일이 왔다!

드디어 열린 화면, 그런데 메일 내용이 뭔가 이상했다.

"앞에 보낸 2개 메일 중 먼저 보낸 메일은  잘못 보낸 메일이었습니다.

다른 작가님께 보낼 메일이었는데, 업무 중 실수로 작가님께 보내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에 보내드렸던 메일은 삭제해주시고, 

작품명 등 다른 곳에 노출 안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 

.

잘못 보낸 메일이라니. '아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앞에 받은 이메일을 읽어본다.

역시나 작품 제목이 달랐다.

다른 작가님 수상 메일이 내게로 왔다.

내게 보낸 메일이 아니었다. 두근거리던 심장이 슬그머니 조용해졌다.

브런치는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글 플랫폼이다. 블로그, 카페와 같이 기존의 형태와 다른 컨텐츠를 유통한다.

웹툰 구독과 비슷한 것 같다. 브런치는 매년 2번에 걸쳐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벌써 8번째(2020년 후반) 프로젝트였다. 수상 혜택은 신인 작가에게는 그야말로 대단한 지원이다. 누구라도 솔깃할! 지원이 ...(빵야 빵야)

형에게 이 소식을 들은 것은 2020년 10월. 이거다!! 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한번 해볼까 정도의 가벼운 생각을 했다.

너무 세게 기대했다간 상처받을 테니까..(여린 가슴입니다만) 마냥 늘어지는 글에 대해 권태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젠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싶었다. 마감(혹은 마무리)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

형의 권유를 듣고 나는 잠시 과거를 회상 했다. 브런치에 글쓰기 자격을 가지려면 등록절차가 필요하다. 나는 아직 자격이 없었다.

2017년 7월 전 직장을 그만두면서 작가신청을 했다. 이정도쯤!이라면서 생각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그 일 이후 나는 브런치를 멀리했다.(어디 나 없이 얼마나 잘 사나 보자...)

시간은 흘렀다. 우린 서로 다른 길을 걸을 줄 알았지. 그렇지만, 나는 글쓰기를 잊지 않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

그날 모임에서 바로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이 당시의 글쓰기 모임은 글쓰기 보단, 이런 사전 작업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도착한 메일, 작가로 등록 되었다. 이때가 10월 6일이었고, 출판 프로젝트 마감일은 11월1일

이때부터 나는 이제껏 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글을 추려보니 대충 30장이었다. 하루 한 장 올리면 되겠다. 

마감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시일이 있으니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막연하게 분량만 채워놨던 글들을 지우고, 중언부언했던 문장을 줄이고 나니, 많은 분량이 없어졌다...

눈물을 머금고 삭제. 나중에 본격 편집을 시작하니 부질없는 눈물이었다.

그렇게 하니 25장 정도,, 

쓰려고 생각은 했으나, 쓰지 않았던 챕터는 제목만을 썼다.(써야하는 줄 알았다)

왜 책을 썼는지 말해주는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더 쓰지 못했던 부분...

책 제목을 정하고, 책 설명을 썼다.

11월1일 23시38분, 마감을 십여분 앞둔 상태로 출품.

이거면 된건가? 

클릭 한번으로 출품이 됐다.

생각보다 간단한 출품 절차에 불안감이 들었다.

 

 

내게 글쓰기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글이 쌓여가려면 어느 정도 분량이 있어야 했다. 단편적인 생각으로는 내 의도를 전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쓰는 것도 아니고 안 쓰는 것도 아닌 상태로는 미련만 커졌다.

2020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동네 형에게 연락하여 함께 글을 쓰자고 했다. 지역 언론 일을 하는 형이었다.

형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모임이 성사가 되지 않았다면 이 뒤의 일들은 없었을 것이다.

2020년 3월쯤부터 시작됐고, 우린 매주 1번 모였다. 농번기(텃밭생활장인 나도 이땐 나름 바쁘다)가 되기 전까지

2개월 정도를 바짝 이어가는 것이 계획이었다. 이정도면 책이 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맹랑한 생각이었다.

각자 쓰고자 하는 내용대로 1장씩 써오기로 했다. 두 사람이 모이니 한 명이 못와도 모임은 모임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초반)불이 붙었던 우리는 그 다음날이라도 만나가며 모임을 지속했다. 급기야 주2번씩 모이자고 했다...

이와중에 나는 그림 모임까지 만들어서(이것도 2명이 전부였다) 돼지 그림을 그려댔다.

불꽃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써와서 읽기로 했던 모임은 점차 쓰는 시간으로 바꼈다.

누가 사정이 생기기라도 하면 바로 모임은 연기되었다. 

그럼에도 모임은 지속되었다. 약간의 조정을 거쳤다. 횟수도 다시 1번으로 바꼈다.

그림 모임과 글쓰기 모임은 합병되었다. (모임원은 두 명에서 세 명이 되었다!)

우리 모임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말은 '마감'의 필요였다. 마감이 일을 만들었다. (아,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있는가)

.

그러다 알게 된 것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였다.

동네 형의 권유였다. 

 

 

폼은 저 멀리 날아가고...

 

기밀재로도 접착제로도 쓰이는 폼, 벽체와 벽체를 붙일 때도 쏜다.

혼자서라면 잘 했을텐데, 쳐다보면 될 일도 안된다는 작은집 학교의 법칙.

아니 어쩌면 들키지 않은 실수는 진짜 실수가 아니라는 인생의 진리.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돌아보는 지난 7월 교육의 추억.

(짓는 과정이라거나 기술에 대한 내용은 없음)

 

목수 꿈나무 김봉연 님.

학교 수업은 2개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봉연이형은 나와 같은 1반.

형은 육아휴직 중이었다.

기술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여러모로 쭈그리였던 나와

주로 같은 조에 속했다.(반에서도 조를 나뉘어 수업을 진행한다)

세상 샌님인 것은 나 하나로 족한데,

초보인 것은 봉연이형도 마찬가지였다.

고수들이 앞 작업에 먼저 선발되어 나가면,

초보들이 남겨지기 마련. 남겨진 자들끼리 조를 꾸렸으니...

초보들로 구성된 우리 조는 그야말로 변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지만 말을 못 알아듣는게 우리의 문제였다.

설계도를 보지 못하는 이곳은 혼돈이요,

설계도와 다른 집을 만들어내는 창세기이기도 했다.

덕분인지 선생님이 전담 마크해주었지만, 틈만 보이면 다른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무정부와 전제정치 사이를 오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봉연이 형에게 세상 아는 모든 것을 끌어모아

아는 체를 해댔다. 

목공 나사와 철판 나사의 차이, 그라인더 사용법, 구구절절,

심지어 에어릴 감는 법까지.

"형 이건 말이죠. 이렇게 당겼다 놓으면 감겨요."

 

그렇다. 아는 체의 쾌감은 참 달았다.

세상 의미가 여기있달까.

물론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점점 빠져드는 달콤함. 

 

"아, 그래요?"라며

아는 체를 조용히 '들어 준' 봉연이형의 인자한 미소.

지금도 입이 달싹인다. 핡.

수료식날 봉연이형은 몸으로 하는 일의 기쁨을 흠뻑 느꼈다고,

육아 휴직이 끝나기 전에 집을 짓는 동기가 있다면 달려가겠다고

공언했다.

봉연이형을 만날 생각을 하니 입이 또 근질거린다. 

아름다운 행렬

 

일주일 교육을 마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회비가 남는 사태가 발생했다.

기수 회비는 자율적으로 거둬 간식이라거나, 수료파티에 쓴다.

계산 착오로 공금이 남은 것이다.

(회비가 남아있으면 대표 임기가 끝나지 않으므로

회비를 어서 없애고 싶었다.)

 

작은집 학교에 공구를 기증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아름다운 동의가 이어졌다.

 

작은집 학교 강사이신 '족장'님께서 필요한게 있다고 말했다.

그게 무엇인지, 봉연이 형이 물었다. 그리고는

임팩과 그라인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앗, 깜빡 넘어갈뻔 했다.

자기가 갖고 싶다는 말이었다.

구렁이 담넘어 간다더니,

구렁이가 여기 있었다.

그 순수했던 봉연이형 속에 이런 똬리가 있을줄이야...

머리 검은 짐승에 대해 당부하신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투표로 최종 의사를 결정했다.

목수 꿈나무 봉연이형에게 투자하고 싶었습니다만,

권선징악, 사필귀정이랄까요.

박빙의 투표는 아쉽게도 10표 차이로 판가름 났다.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에 투표한다고 누군가 말했던거 같기도 하다.

꿈나무 보다는 학교를 선택한 하하호호 41기의 우애.

 

저도 기증에 투표했어요 형. 미안.

 

 

작은집 학교에서 "41기 증"를 보시거든 꿈나무 봉연이형을 한번쯤 생각해주시길

바라며 오늘의 추억을 마무리 합니다.

 

 

 

하하호호 41기 모습(2)...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기억으로만 돌아보는 작은집 건축학교 41기 모습.

3일째, 벽체와 지붕을 완성했다.

전체 공정의 1/3뿐이라지만, 감개무량.

 

1반 감리사 역할을 해주신 박병수 반장님.

20대 아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 놀라웠던 박 반장님...

눈이 부리부리해서 오해.

직업상 현장 경험이 많은 덕에 아는게 많고,

그때그때 작업 내용도, 과정도, 빠르게 간파해서 교육 중 감리사로 불렸다.

41기 우리끼리 앙케이트(17명 참가) "혼자서도 집 지을 것 같은 사람" 부문

무려 3위에 뽑혔다.

사다리 위에서 벽체 고정 중인 박 반장님

(다른 사람들은 작업 설명을 듣는 와중에)

항상 제일 먼저 작업에 뛰어들던 박 반장님

(외로움과 고독이 섞여 보였으나)

임팩과 75mm 나사 박스 하나 들고 앞서는 뒷모습이 듬직했달까.

실제로 덩치도 좋다.

나는 반장님의 사다리를 잡았다.

하지만 75mm 나사는 긴 탓에 드릴을 정확히 대지 않으면 헛돌기 마련이다.

임팩 좀 박아본 사람은 알지만, 사다리 위에서는 직각으로 임팩하기가 어렵다.

"드드득" 임팩이 계속 헛돌았다.

지켜보는 것 외에 딱히 할 일 없는 사람들은 마른 침을 삼킨다.

반장님의 부리부리한 눈이 말없이 꿈틀거렸다.

그러지 않아도 진한 인상이 더 매섭게 보인다.

급한 성격탓인지, 오랜 현장 생활탓인지

반장님은 '요건만 간단히-말투'를 쓴다.

"임팩!" "피스!"

짧고 굵은 어투는 반장님을 더욱 화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드드득"

나사 헛(도는)소리가 학교에 울렸습니다.

힘이 빠질 수록 헛(도는)소리는 더 커졌지요.

반장님은 눈을 더 부라렸다.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반장님이 자기 자신에게 화가난 것인지, 끝이 무딘 임팩에 화가 난것인지

생각해보았다. 왠지 나도 진땀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목이 긴 나사못을 탓하기로 했다.

 

강마루 본드 작업을 감리 중인 반장님

작은집 학교는 밤에도 일정이 있다.

딱 하루, 자유 시간이 있는 밤이 있었다.

41기는 덕산면 소재지 치킨집으로 간 것이다.

아차, 앞 접시를 가져오는 사이.

반장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다.

시원한 밤, 에어컨도 돌았지만,

진땀이 난다. 사다리를 잡던 시간처럼.

치킨과 맥주, 감자튀김과 케찹이 추가되고 자리도 무르익었다.

반장님은 술을 좋아하셨다.

술을 많이 드시는 분들이 흔히 저지르듯

술을 마시지 않은 나는

반장님의 비밀을 알게 됐다.

반장님은 화난게 아니라 눈이 나쁜것 뿐이었다는...

집중해서 보려고 눈을 찌푸려야 한다는 그것, 노안.

그러면서

사람들이 자기 보고 화났냐고 묻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랬다. 화나고 짜증난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작업에 집중하려던 것이 남들에겐 그렇게 보인 것뿐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것인가.

그렇게 반장님과의 회포는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진땀이 나지 않는, 내게도 시원한 밤이 찾아온 것입니다.

...

남모르게 홀로 작업 현장의 피스 조각과 위험물을

치우며 안전 사고를 예방했던, 안전 수칙과 작업방법들을 '친절히'

알려준 박병수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ㅎ

 

 

화난게 아니고 눈이 나쁜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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