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이것도 여행이라고-
#25. 인도 네가 밉다. 나의 행운을 위해 이걸 사게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거리를 배회하는 개떼. 더위와 매연, 습기, 길가 쓰레기에서 스며나오는 악취가 엉켜있는 공기. 거리에서 먹고 자고 씻는 사람들. 캘커타에 도착한 후, 첫 느낌은 혼돈과 불쾌함이었다.
인도에 도착한지 이틀째, 우리는 영화 <City of Joy(기쁨의 도시)>의 배경도시 캘커타에 있었고 숙소를 찾아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인도인 아저씨가 다가왔다. “How are you?” 나이가 50대쯤으로 보이는 인도인 A. 그는 깔끔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머리가 하얀 아저씨였다. 다른 인도 사람들에 비해 여유가 있어보이는 인상이었다. “Where are you from?” A는 아침 산책 중이라고 했다. 5분을 함께 걸었을까. 깨알 같은 이야기들을 하하하 나누었다. 갈림길에 도착했다. A는 자기 가게에 와서 인도식 밀크티인 챠이를 한잔 마시고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A를 쫓아 골목에 들어갔다. 가게가 과하게 구석에 있는 걸. 음습한 골목을 들어가는 중에 또다른 인도인 B를 만났다. 아니 이런 우연이. B는 어제 길을 걷다 만난 인도인 아저씨다. 세상은 역시 좁구만. 방금 만난 A와 어제 만난 B는 같은 가게에서 일한단다. 가게는 골목 구석진 곳에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오겠나. 곰팜이만 자라날 것 같은 이곳에 도대체 어떤 손님이 이곳까지 오는거지.
가게라는 말보다는 창고라는 말이 적당한 위치였다. A와 B가 강도는 아니겠지라는 순간, 가게 문이 열렸다. 힌두 조각들과 목걸이, 반지 같은 공예품들, 인도의 옷이 있었다. 다행히 가게였다. 영제와 나, A와 B, 그리고 새로운 인도인 C까지 다섯 사람이 들어갔다. 가게가 가득 찼다. A가 챠이를 가져온다고 나갔다. 철컥. 가게 문이 잠겼다.
가게에는 네 사람이 남았다. 가게 종업원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 C는 말이 별로 없었다. B는 우리한테 인도 전통 옷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괜찮은데요." B는 봐야한다고 했다. 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한 벌, 두 벌, 세 벌... 몇 벌 꺼내다 멈출줄 알았는데 옷은 끝없이 나왔다. 코딱지만한 가게는 순식간에 한 문더기 옷으로 가득 찼다. 가게 어디에 그런 공간이 있던걸까. '어서 옷 입고 파티를 가야지’라고 말하는 요정의 마법을 본 느낌이다. 깡마른 뼉다구 아저씨 B가 요정이라기에는 내 동심이 파괴당하는 기분이지만, 눈 깜짝 벌어진 그 창고대방출술은 정말 마법 같았다. 그래 차라리 닌자라고 생각하자. 뼉다구 닌자 B는 도술을 부린 후 말했다. "한 번 입어보렴.”
"인도에서는 인도 옷이 필요해” B는 말했다. 소재가 바람이 잘 통해 시원하고 빨래를 해도 금방 마른다고. 그날 입고 그날 빨면 다음날 아침에 마르니 한 벌로 거뜬하다고. 자기가 인도 옷을 팔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겠지만, 자부심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설교였다. 문득 우리는 정신을 차렸다. '아차, 분위기가 과도하게 무르익어버렸다. 더 이상 희망을 줘서는 안 된다.’ 영제와 눈짓으로 탈출을 결정했다. "이만 가봐야겠다.” 순간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가 끝난 것 같은 정적이 흘렀다. C는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B가 정적을 끊고 말했다.
"옷을 사라. 그러면 나갈 수 있다."
화가 울컥. 이것들이 누굴 호구로 아나.
"우리는 안 살거다.” 그러자 B가 오히려 어이 없다는 듯 말했다.
"너희는 오늘 우리의 첫 손님이다. 너희가 사지 않으면 우리가 오늘 재수없다. 우리 가게의 행운을 위해 옷을 사야한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갉아먹는 소리냐. 역시 든든한 영제가 옆에서 거들었다.
"인도 옷 사려고 했는데 사지 뭐.” 역시 든든한 영제가 거들어주었…엇.
정말 옷을 사려고 했었다는 영제와 옷을 안사면 정말 보내주지 않겠다는 B. 거래가 성립되었다. 하지만 영제는 놀라운 뻔뻔함으로 옷을 깎고 깎았다. 처음 시작한 가격이 한 벌에 8달러였다. 영제와 나, 각각 한 벌씩, 두 벌을 5달러에 샀다. 거래 후, 다시 개그콘서트 분위기로 돌아온 가게. B가 말했다. “챠이 한잔 더 마실래?”
P.S. 이날 내가 산 바지는 여성용이었다. 쉩...
이날의 사진은 여기 - http://hellowow.co.kr/240
인도인 B와 C, 그리고 영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