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당시 인도 캘커타의 한 고아원에서 지낸적이 있다. 
인도에 한달 가까이 있었으나
고아원에서 일주일을 먹고자며 지낸 그 시간이
내겐 인도였다.
고아원을 떠나며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아이들 사진을 보내줘야지'라고 다짐했더랬다. 
그 다짐이 책이 출판되면 미뤄지고
책 인세(가 나오거든)로 보내야지로 미뤄두었다. 
다행히 인세가 나왔고, 이제야
다짐을 지킨다. 
그날의 시간들은 이제 차츰 흐릿해진다. 
오금이 저리게 했던 큰개도 
선교사님이 매일밤 해주던 이야기도.
하지만 분명한건 내가 아이들을 찾아간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만나준것이고
아이들이 나와 놀아주고
나를 안아준것이라는 것이다.
웃음과 순수. 
그 시간을 기억하며. 
가슴과 가슴이 닿는 곳
박진균 선교사님께

세계 여행 배낭 유럽 아시아 중국 베트남 이란 중동

<수줍지만 한번쯤 책 이야기를...>
.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은 호록호록 흘러가고,
책 <청춘의 여행, 바람이 부는 순간>이 세상에 나온지도 두달여가 지났습니다.
진짜 세계를 여행할테야. 진실된 삶에 뿌리를 내릴테야.
떼를 쓰듯 살아온 시간, 흘러간 강물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고
지나온 들판만큼 살아있음의 기쁨을 느낍니다.
.
두달 전, 택배로 받은 박스를 열어
책을 처음 펼쳐보던 그순간을 기억합니다.
해질녘이면 으례 돋아나는 약간의 설렘,
퇴근을 앞둔 자의 두근거림, 흥분과 들뜸, 
망할 테이프가 안뜯어져 났던 짜증.
모두.
.
책이 나온지 두 달, 
매일 아침 포털 사이트(네이버/다음/구글 모두!)에 
'청춘의 여행 바람이 부는 순간’ 검색하기를 두 달,
여행기 순위 몇 위인지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기를 두 달,
후훗, 많은 일을 했네요.
.
북미팅이랍시고 사람들도 만났네요.
평소 연락도 잘 못했던 친구들은 책을 사주었습니다.
페친들은 책구매 인증샷을 페북에 올려주었죠.
디자이너 친구 산소산은 여행 일화 하나를 
7컷 만화로 그려주었고(http://hellowow.co.kr/436),
친지들은 국난이라도 발생한듯 조카 책 사재기를 해주었습니다.
인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한켠으론 삼촌 이모가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구요.
책이란건 출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짐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네요.
과분한 인연에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
검색되는 블로그 리뷰는 현재까지 15개입니다.
작가와 맥주 한잔 해보고 싶다고 해주신 블로거님,
베스트 일화 3개를 꼽아주신 블로거님,
직장을 그만둔 친동생이 이해가 되었다는 블로거님
블로그 리뷰들에 댓글을 달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글의 힘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인생 똑바로 살아야겠습니다)
.
책이 출판되던 날,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무들아 미안하다.
너희를 베어 내가 먹고 살겠구나. 사과를 했더랬습니다.
김광석의 노래 "먼지가되어"를 즐겨듣는 요즘입니다.
이런 먼지같은...다음 인쇄는 (걱정)없을듯 합니다.
나무들은 무사히 잘 지내고 있겠지요.
(나무들아 잘 지내렴)
작가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볼 시간도 없이 책이 세상에 나왔고
'나도 작ㄱㅏ...' 말도 붙여보기 전에
책은 세상에서 잊혔습니다.
하, 페북 공유도 하고
블로그 리뷰도 써달라하고
인터넷 서점 서평도 부탁해야지...
천생이 게으른데다 우유부단하여
책 홍보도 못할 찰나였습니다.
(이쯤에서 출판사 사장님께 심심한 사과를...)
.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십니다.
“세상 만만히 보지 말거라”
무슨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내심 대들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 말씀은 
제 내밀한 곳에 숨어있는 오만과 자만을 
꿰뚫어보신 말일테지요.
네, 알고있습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알면 알수록 눈돌리고 싶은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같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여기 함께' 살아야 되는거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더 크고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작고 더 소박하게 말이죠.
책을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의미지고 재미난 인간 이동호로 살아보겠습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을 붙이며 이야기를 마칩니다.
.
내 삶의 목적은 취미와 할 일을 통합하는 것
두눈이 하나가 되어 앞을 보듯이
사랑과 필요가 하나가 되고 일이 모험이 될때만
모든 행동이 결실을 맺는다
신을 위해, 미래를 위해

동그라미 재단 배낭 여행




여행 배낭 청춘 밀밭

7년을 다닌 직장 퇴직 후 9개월 여행.
그리고 귀촌. 이건 근황이랄까
.
<귀촌의 즐거움>
작년 겨울부터 봄까지
홍성에 온지 어느새 7개월이 됐다.
태아는 10개월이 되어야 비로소 세상에 나오고
인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보아야 철을 아는 것이 세상의 이치랄까.
아직 여름과 가을을 지내보지 못했으나
하루하루 시간의 속도로 
야물야물 뿌리를 내리고 있다.
.
친구들은 내가 월급은 받고 사는지,
아빠는 내가 가장 노릇은 제대로 하며 
살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라네.
그렇다네, 세간에 나도는 말처럼
농촌에서의 삶이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네.
탁트인 풍경만큼 농촌에서는
사람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네.
투기의 바람은 농촌 격지에서도 불고,
영혼없는 과학과 기술은 눈앞의 이익을 쫓아
우리가 먹고 마실 땅과 물을 오염시키고 있달까.
한파보다 무서운게 보일러 기름값이라는걸 배웠달까
.
그럼에도 농촌에는 분명 도시에서
절대 맛볼 수 없는 ‘완전함’이 있다네. 
삶터와 일터의 일치, 이것으로부터 오는 행복이랄까.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사는 공간을 변화시키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순환하는 생태계의 구성원이 되는 것. 
일종의 책임감이랄까.
사회라는 막연한 범위가 피부에 닿는 범위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 
음. 조금은. 

인간의 감수성은 태생적인거라지만
그 감수성은 자연 안에서 키워지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일테지.
나는 아직 철이 덜든 귀촌자지만 
태어나길 금사빠로 태어난지라
주변의 걱정들이 무색하게.
요즘 정말 즐겁다.
마음속 바람이 분다.
.
p.s. 그러고 보니 책 표지가 나왔다.



바람이 부는 순간 퇴직금 세계 배낭


충남 홍성 홍동 녹색평론 녹색당



제가 당신에게 숙제를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산을 오른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하고 빠짐없이 적어보십시오.
당신의 경험에서 중요했던 모든 것을 적어보고
만족할 때까지 고쳐쓰고 또 써보십시오.
당신이 산에 올랐던 이유를 당신 자신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해보십시오.
산을 오르는데는 별로 시간이 들지 않았겠지만
진정으로 산의 정상에 오른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정상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모든 것은 그런식으로 입증됩니다.
산 정상에 올라 상쾌한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정상에 오르면 우리는 더이상 오르지 않을테니까요.
어쩌면 집에 돌아온 후에야 우리는 진정으로 산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산이 뭐라고 말하던가요.
산이 무엇을 하던가요.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내 여행에 많은 영향을 준 책이 있었다. 미국의 자연주의 사상가 H.D. 소로우의 <월든>이란 책이었다. 소로우는 어느 날 숲에 들어가 ‘월든'이라는 호수 옆에 통나무 집을 지었다. 그리곤 숲에서 2년을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농사를 지었고, 사람을 만났고, 산책을 했다. <월든>은 그 2년의 시간을 적은 수필이다. 1865년, 산업화가 세상을 지배해가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소로우는 <월든>을 통해 말했다. 소박한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삶의 진실을 만날 수 있다고.
.
9개월 동안 나름 소박한 여행을 하고자 했다. 상업주의의 껍데기 속에 가려진 진실을 보고 싶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었다. 산다는 건 무엇일지 알고 싶었다. 눈으로 보는 것,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느끼고 싶었다.
그 나라의 음식문화를 이해하고 싶었다. 먹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것이 문화니까. 길거리 음식이 주메뉴였다. 식중독에 걸렸다. 사흘을 설사만 했다. 
외국 사람들의 삶을 보고 싶었다. 가는 동네마다 시장바닥을 기웃거리며 무얼 파는지 봤다. 날강도를 만났다.
무엇이 문화를 다르게 만드는 걸까. 문화가 바뀌는 경계를 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이동했다. 
낮은 위치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거지처럼 다녔다. 그냥 거지 같았다.
.
백여년 전의 소로우는 내게 숙제를 남겼다. 나는 그 숙제를 완성할 수 있을까. 스스로 납득 할만한 
여행이라는 산을 오르며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여행은 내게 무엇을 말해주었을까. 나는 진정으로 여행을 다녀온걸까. 여행은 내게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지금 또다른 걸음을 떼고 있는 또 하나의 산. 여행은 왜 나를 귀촌하게 했을까.
.
왜 여행을 떠나야 했을까. 여행을 다녀온 후 왜 귀촌을 해야 했을까. 그건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시점이 있고, 그 시점마다 고민에 고민을 했던 질문이 있다. 답을 찾기 위해 신앙을 찾았던 것처럼, 책을 읽었던 것처럼, 제대를 한 것처럼. 여행을 떠났던 건 다음 단계의 답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던 것 뿐이다. 그리고 역시 같은 이유로 농촌으로 오게 된 것이다.
.
지지리 궁상맞았던 여행. 다음의 답은 농촌에 있다고 한 여행.
그 경험을 모두 적어보고 고쳐쓰고 또 고쳐써봐야겠다.
오늘의 일기 끗~




세계 배낭 여행 이집트

겨울이지만 몸을 움직여야겠다
싶어 수영장에 다녔다.
초딩시절 수영을 배운 깜냥이 있어
나는 곧장 초급반 조오련이 되었다.

"저 신입, 25m를 쉬지않고 가다니!"
“한 번 호흡에 4번 팔을 젓다니!"
후훗, 이런 수근거림이 들려오는 듯 했다.
근거없는 존재감을 느끼며 수영장을 다녔다.
그래 난 짱이야
.
물을 가르며 영제 생각이 났다.
영제는 대단한 놈이었다.
수영 마스터 영제.
영제는 수영을 꾸준히 했다.
인도 여행 당시 영제의 접영을 보았다.
산자락 밑에 있는 수영장에서 였다.
수영장은 산에서 내려온 계곡물을 모아서 사용했다.
폭은 30m쯤.
해발고도 1,700m의 계곡물은
두개골은 그냥 쪼개버릴 듯 차가웠다.
잠깐만 있어도 입이 딱딱 부딪쳤다.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지만
모두들 잠깐 들어가기만 할 뿐 수영은 하지 않았다.
.
"수영의 꽃(접영)을 보여줄게” 영제가 말했다.
다이빙을 한 영제는 잠영을 시작했다.
접영을 보여준다던 영제는
자유형으로 수영장을 왕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리곤 배영을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드디어 접영을 시작했다.
물 만난 물고기라지만
물고기에게도 적정온도는 있을텐데.
'이 차가운 물에서 저런 객기를...'
굳이 다이빙->잠영->자유형->배영->접영의 과정을 거친 영제.
영제가 물밖으로 나왔다. 입술이 퍼랬다.
턱을 덜덜 떠는 영제에게 물어보았다.
"그냥 접영을 보여줬어도 되는거 아냐?"
“그럼 극적인 멋이 안 살잖아"
“아..."
그날 영제의 극적인 멋은 아무도 보지 않았다.
.
내 수영자세를 보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갔어요. 힘을 빼는 연습을 하세요."
그제야 힘이 빡 들어가 있는 몸이 느껴졌다.
특히 호흡을 위해 고개를 내미는 순간
손끝에서 발끝까지 뻣뻣해졌다. 
어쩐지 목엔 담이 왔는데 이거 때문이로구나.
흐느적흐느적 팔을 젓고
흐느적흐느적 다리를 젓는 연습을 했다.
.
흐느적흐너적
물을 마셔도 당황하지 말고
흐느적흐느적
흐느적흐느적
.
70번의 꺼절과
1번의 믿음.
여행기 출간계약을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여행기를 다 쓸 때까지 여행을 끝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1년.
드디어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원고를 다시 찬찬히 읽어본다.
하, 이걸 정말 내가 썼단 말인가...
사춘기 시절 일기를 보는 기분이야.
부끄러운 수준의 글에 얼굴이 빨개진다.
글을 고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노트북을 덮은지 한 달.
그덕인지 지난 주 장염이 왔다.
.
어원에 따르면,
‘힘’이 몸 안에 들어오는 것을 ‘힘든다’고 말하고
‘힘’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힘낸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시간이 갈수록 과하게 힘을 들이는 것
그러다 끊어져버리는 것. 내 오랜 성정이었다.
새해도 지났겠다. 떡국도 먹었겠다.
이제는 더 잔잔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힘을 빼고, 책상에 앉아서
흐느적흐느적
흐느적흐느적 
힘이 들어도 당황하지 말고 
흐느적흐느적
흐느적흐느적
.

꽃피는 5월, 책으로 뵙겠습니다.


여행기] 이것도 여행이라고-

#25. 인도 네가 밉다. 나의 행운을 위해 이걸 사게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거리를 배회하는 개떼. 더위와 매연, 습기, 길가 쓰레기에서 스며나오는 악취가 엉켜있는 공기. 거리에서 먹고 자고 씻는 사람들. 캘커타에 도착한 후, 첫 느낌은 혼돈과 불쾌함이었다.


 인도에 도착한지 이틀째, 우리는 영화 <City of Joy(기쁨의 도시)>의 배경도시 캘커타에 있었고 숙소를 찾아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인도인 아저씨가 다가왔다. “How are you?” 나이가 50대쯤으로 보이는 인도인 A. 그는 깔끔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머리가 하얀 아저씨였다. 다른 인도 사람들에 비해 여유가 있어보이는 인상이었다. “Where are you from?” A는 아침 산책 중이라고 했다. 5분을 함께 걸었을까. 깨알 같은 이야기들을 하하하 나누었다. 갈림길에 도착했다. A는 자기 가게에 와서 인도식 밀크티인 챠이를 한잔 마시고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A를 쫓아 골목에 들어갔다. 가게가 과하게 구석에 있는 걸. 음습한 골목을 들어가는 중에 또다른 인도인 B를 만났다. 아니 이런 우연이. B는 어제 길을 걷다 만난 인도인 아저씨다. 세상은 역시 좁구만. 방금 만난 A와 어제 만난 B는 같은 가게에서 일한단다. 가게는 골목 구석진 곳에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오겠나. 곰팜이만 자라날 것 같은 이곳에 도대체 어떤 손님이 이곳까지 오는거지.


 가게라는 말보다는 창고라는 말이 적당한 위치였다. A와 B가 강도는 아니겠지라는 순간, 가게 문이 열렸다. 힌두 조각들과 목걸이, 반지 같은 공예품들, 인도의 옷이 있었다. 다행히 가게였다. 영제와 나, A와 B, 그리고 새로운 인도인 C까지 다섯 사람이 들어갔다. 가게가 가득 찼다. A가 챠이를 가져온다고 나갔다. 철컥. 가게 문이 잠겼다. 


 가게에는 네 사람이 남았다. 가게 종업원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 C는 말이 별로 없었다. B는 우리한테 인도 전통 옷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괜찮은데요." B는 봐야한다고 했다. 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한 벌, 두 벌, 세 벌... 몇 벌 꺼내다 멈출줄 알았는데 옷은 끝없이 나왔다. 코딱지만한 가게는 순식간에 한 문더기 옷으로 가득 찼다. 가게 어디에 그런 공간이 있던걸까. '어서 옷 입고 파티를 가야지’라고 말하는 요정의 마법을 본 느낌이다. 깡마른 뼉다구 아저씨 B가 요정이라기에는 내 동심이 파괴당하는 기분이지만, 눈 깜짝 벌어진 그 창고대방출술은 정말 마법 같았다. 그래 차라리 닌자라고 생각하자. 뼉다구 닌자 B는 도술을 부린 후 말했다. "한 번 입어보렴.” 


 "인도에서는 인도 옷이 필요해” B는 말했다. 소재가 바람이 잘 통해 시원하고 빨래를 해도 금방 마른다고. 그날 입고 그날 빨면 다음날 아침에 마르니 한 벌로 거뜬하다고. 자기가 인도 옷을 팔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겠지만, 자부심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설교였다. 문득 우리는 정신을 차렸다. '아차, 분위기가 과도하게 무르익어버렸다. 더 이상 희망을 줘서는 안 된다.’ 영제와 눈짓으로 탈출을 결정했다. "이만 가봐야겠다.” 순간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가 끝난 것 같은 정적이 흘렀다. C는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B가 정적을 끊고 말했다.

"옷을 사라. 그러면 나갈 수 있다."

화가 울컥. 이것들이 누굴 호구로 아나. 

"우리는 안 살거다.” 그러자 B가 오히려 어이 없다는 듯 말했다.

"너희는 오늘 우리의 첫 손님이다. 너희가 사지 않으면 우리가 오늘 재수없다. 우리 가게의 행운을 위해 옷을 사야한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갉아먹는 소리냐. 역시 든든한 영제가 옆에서 거들었다. 

"인도 옷 사려고 했는데 사지 뭐.” 역시 든든한 영제가 거들어주었…엇.


정말 옷을 사려고 했었다는 영제와 옷을 안사면 정말 보내주지 않겠다는 B. 거래가 성립되었다. 하지만 영제는 놀라운 뻔뻔함으로 옷을 깎고 깎았다. 처음 시작한 가격이 한 벌에 8달러였다. 영제와 나, 각각 한 벌씩, 두 벌을 5달러에 샀다. 거래 후, 다시 개그콘서트 분위기로 돌아온 가게. B가 말했다. “챠이 한잔 더 마실래?”


P.S. 이날 내가 산 바지는 여성용이었다. 쉩...

이날의 사진은 여기 - http://hellowow.co.kr/240


인도 캘커타 콜카타 강도 치안인도인 B와 C, 그리고 영제


여행 279일. 길은 여기까지.

큰 깨달음을 얻고 뜻한 바가 있어 돌아갑니다.
... 는 양치기 소년 뺨치는 거짓말이겠죠.

여행이 일취월장시켜줬다거나 앞으로 인생길에 대한 계시를 내려줬다던가 하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행은 오히려 저같이 어리바리한 얼치기도 해볼 만 하다는 것을, 긴장을 놓는 순간 언제고 변화라는 급류에 순식간에 매몰 돼버린다는 것은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강물 속에 존재가 쓸려가는 느낌.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파도 곁의 모래성을 지키듯 매 순간 노력해야 했습니다.
 지금와 돌이켜보면 여행 전 ‘무엇' 할 것인지 계획할 게 아니라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세웠어야 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나는 왜 떠나야 하는가를 물어봤다면 어땠을까요.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아무렴 상관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상엔 떠나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요.

여행 초 저는 세계여행을 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걸 뭐 굳이....’ 하는 남사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세계란 게 당최 뭘 말하는 건지, 그 세계는 어디까지를 말하는 건데? 에 대해 저 스스로 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9개월,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아프리카까지. 여전히 어디까지를 세계라고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누군가에 의해 일반화되거나 가공된 이미지의 세계가 아닌, 제 눈과 마음으로 레알 세계를 보고 싶었습니다. 279일, 눈으로 보고, 맛보고,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니 제가 봐온 세계 또한 하나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았구나는 생각도 듭니다. 불교에는 인드라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 우주의 사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속의 사물들은 서로를 비추고 있다고 하죠. 어쩌면 저는 지금까지 세상에 비친 저 자신을 보고 다닌 것일 수도 있습니다. 즐거움, 기쁨, 아름다움과 같은 빛도, 화, 두려움, 추악한 욕망과 같은 어두움도 결국 세상이 아닌 제안에 있던 것들이죠. 제 마음속에 있었거나 혹은 제가 보고 싶었던 것들을 세상은 그저 그대로 보여준 것이죠. 이런 점에서 신은 공평하다 말할 수 있겠네요. 

 어디까지가 세계인지에 대한 범위는 정해진 게 없습니다. 28살의 제 세계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는 제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는 여행. 9개월 전 끝없는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역시 끝없는 질문을 안고 돌아갑니다. 279일,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입니다. 하지만 이 자체로 모든 걸 버리고 떠날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여행이 좁쌀 소갈머리에도 허락해준 변화가 있다면 길은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면 끊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걸어야하는지 알 때 결국 길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결국 길은 있을 것입니다. 이 길을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어느 때 서로 만나게 되는 지점이,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지점이, '우리'를 넓혀나가는 지점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World of Wonder, WOW! 저희의 제목이었습니다.
세상 속에 경이로움이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경이로운 것이 세상이었습니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활화산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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