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스테판 에셀)아는 것이 행동이 되려면 이보다 조금 더 앞서가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 ‘무언가’는 성하께서 ‘연민’이라고 적절하게 말씀하신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안 되고, 동시에 연민심으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혼자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남들과 함께, 남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부디 남이 잘됐으면 하는 배려로 우리 모두가 연결된다면 그때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 연민, 그렇습니다. 그건 책임감이기도 합니다. (…) 자신이 의식할 때, 그때 남들의 의식이 따라오고 행동이 따릅니다. 책임감은 의식하는 데서 나옵니다. 책임감은 믿음에서가 아니라 분석에서 나옵니다. 현존 교육체계는 그 본질상 물질적 가치 쪽을 지향합니다. 마음의 체계를 세워주고 가르쳐주는 내용은 거의 없지요.

31. (스) 자살의 책임이 분신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계속 삶을 이어가지 모샇게 만든 사람들에게 있다고 할 수는 없을까요?

35. 큰 ‘우리’ (스)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것만큼 그리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어쨌든 바뀌고 있습니다. 성하의 메시지는 믿음과 용기의 메시지입니다. 저도 제한된 방도를 통해서나마 젊은이들에게 어떻게든 이를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상황이 좋지 않다. 하지만 믿음과 신뢰를 갖고 용기를 보여라. 그러면 세상이 차츰, 또는 문득 달라질 것이다”라고요. 단 혼자 행동할 것이 아니라 남들과 함께 행동하라고요.

37. 우리는 이러한 연기법 실천을 널리 펴서, 지구 전체를 포괄하는 크나큰 ‘우리’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큰 ‘전체’라기보다는 큰 ‘우리’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아직 ‘우리’와 ‘그들’의 구분이 지배하는 체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분이 우리 정신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 이해관계와 갈등속에 매몰되는 것이며, 때로는 이웃을 착취하고 위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폭력이 생기고 전쟁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여러분이 보편적 박애 정신을 지닌다면, 그때 여러분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활짝 열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투명성과 진실 속에서 움직이게 될 것이며, 그로써 내적인 힘, 나와 남에 대한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39. 마음의 과학 (스) 그렇게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지켜내시는지요?
(달) 저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자신의 지성을 올바로 쓰라고 합니다. 어떤 상황이든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나는 조국을 잃었고, 인생의 대부분을 타지에서 망명객 신세로 보냈다.” 그러나 또 한편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나는 온세상을 알게 되었고, 특별한 의전 없이도 다른 사람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내가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에 그대로 살았더라면, 현실적으로 별 소용 없는 번거로운 의식 속에 매몰된 삶이었겠지.”
 둘째로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마음의 따스한 온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여전히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이 지배하는 체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구분선은 항상 우리 마음 속에 각인되어, 우리를 보편적 박애 정신과 갈라놓습니다. 

66. 정보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 그러한 지의 존재방식과 관계되어서인지, 나는 정보기술에 능통한 젊은이들 중에 이상하게 폭삭 늙어버린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정열적으로 탐구하지 않는다고 할까, 아무 생각도 없고 호기심도 갖지 않는다고 할까, 또는 처음부터 갈 곳을 예상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또한 모든 것의 원인과 결과의 몇가지 유형(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을 ‘정보’로 축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괴테의 <파우스트>에 “악마는 늙은이다. 따라서 늙은이가 되지 않으면 악마의 말을 알 수 없어”라는 말이 나오는데 매우 의미가 깊은 말입니다. 젊은이의 얕은 지혜는 노인의 성숙한 지혜를 넘어설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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