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뭐하고 지내남'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문화라 한다. 우리 문화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일반화된 사실이다. 가정, 세대 간의 소통, 양극화, 교육, 인권 문제들이 폭력, 자살, 우울증 등 여러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으니까. 지금 우리 국민의 삶은 하루하루 소모되고 있는 삶, 소유와 소비로써만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강요받는 삶, 에너지 음료를 마셔야만 버틸 수 있는 삶으로 변해가고 있다. 성형, 대출, 게임, 병원(디스크, 치질 등 피로 관련 질환) 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전철 광고만 봐도 알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나는 휴식 문화가 문화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첫 단추라고 생각했다. 문화를 바꾸는 건 사람이니까. 술, 혹은 비싼 돈을 들여야만 즐길 수 있는 취미, TV, 유흥업소 따위의 소모적인 여가가 아니라, 활력을 충전해주는 휴식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변화된 한 사람, 한 사람의 빛이 우리 사회에서 공동 선을 이뤄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7년의 군 생활. 나는 전역을 했고,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삶의 모습은 생각의 울타리 너머에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싶었다.
* 279일의 세계
- 나마스떼(내 안의 빛이 당신 안의 빛에 인사한다는 뜻의 힌두 인사). 답은 모두에게 있었다.
그렇게 떠난 여행. 그 울타리 밖에서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오만한 내 모습이었다. 개발도상국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후진국이라는 단어와 함께 내게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난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의식 수준이 부족한 사람들'. 나도 모르게 그들을 도와줘야 할 대상, 가르쳐줘야 할 대상이라는, 그 사람들 위에 서려는 그릇된 연민이 잠재되어 있던 것이다.
그들보다 잘난 사람이라고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들 삶에 그림자를 드리울 자격이, 아니 누구에게도 그럴 자격은 없었다. 그들에겐 그들의 빛이 있었다. 빛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었다. GDP라는 둥, 돈이라는 둥, 자본주의가 만들어준 기준에 눈이 어두워진 내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진실로 누군가를 돕고자 할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빛을 키워주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우리의 빛은 그들에게 그림자를 만들 수 있을테니.
- 돈이라는 이름의 잣대. 희망은 지역에 있었다.
몇 년 전, 서점가에는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는 책이 흥행했다. 나도 세계여행을 하며 자본주의를 만났다. 세계화는 효율과 수익률이라는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었다. 고유의 색을 잃고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도시들. 스타벅스, 맥도날드, 피자헛 등 프랜차이즈가 세계를 단순화 해가는 모습.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화려한 광고. 서로를 ATM(현금 자동 인출기)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IT 혁명으로 국가 간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 무한경쟁의 시대를 예고한 책 <세계는 평평하다>의 말처럼, 암이 몸을 잠식해가듯 가히 세계화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나마 지방에서 그 나라의 고유문화를 만날 수 있었다. 빈약한 여행에서나마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억들은 스타벅스 매장에 있지 않았다. 다른 이를 치유한다는 철학의 태국 마사지 속에, 밤이면 온 가족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몽골 양치기의 집 안에, 실크로드의 길목이라는 이란의 오랜 바자르(시장) 안에 있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공멸이 아닌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있다면, 답은 지역에 있다고 생각했다.
- 문제는 사회 시스템이 아닐까
유대인, 독일인, 프랑스인 친구들을 만났을 때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물론 내가 그 친구들과 나눈 시간은 정말 작은 일 편일 뿐이지만). 선진국의 친구들도 개개인으로 봤을 땐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프랑스 친구 집에서 머물 때의 일이다. 친구는 독립했었지만 지금은 남자친구와 함께 다시 부모님과 살고 있었다. 신기했던 건 남자친구의 모습이다. 모든 가족이 늦잠을 잤지만, 특히 더(10시까지) 늦잠을 잤던 남자친구, 하릴없이 하루를 보내거나 컴퓨터를 하던 남자친구, 어느 날 동네 병원에 면접을 보러 가던 남자친구. 상상해 보았다. 딸의 남편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 비정규직이라면,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뭐라고 말할까.
에티오피아에서 함께 여행했던 독일 친구, 면직물 회사에 다니는 그 친구는 휴가를 온 거라 했다. 일이 재밌느냐 했더니 그냥 다닌다고 했다. 속으로 '독일 사람은 모두 자기 꿈의 직장을 다닐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군.’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업무 후 여가생활, 연 6주 휴가를 통해 삶의 행복을 찾는다고 했다.
프랑스 리옹에서 일하던 친구의 하숙집에 놀러 갔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집 1층에서 환자를 받는 의사였다. 그정도면 프랑스 사회에서도 중산층 이상은 되지 않을까 생각됐다. 어느 날 시간관리라는 개념을 설명해주게 됐는데 'Unbelievable'을 외치며 한국사람들은 이런 걸 모두 아냐고 내게 물었다. 난 아주머니가 시간관리 개념을 모른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물론 내가 자기 개발을 '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개발의 의미가 여가생활에 있는 사회. 당장 직장이 없더라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 문제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런던에는 어디에나 공간이 있다. 공원, 광장, 박물관, 미술관, 거리. 그곳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 미술전을 열 수도 있고, 광장에 나가 노래를 부르거나,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면 분필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누구도 제재하지 않는다. 다른 이에게 피해가 없다면. 이런 공간이 있기에 서로가 만나 이해할 수 있고 섞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스 광장에서 서양철학이 시작된 것처럼, 강대한 로마제국과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처럼.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도 사람을 만드는 환경(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맛을 잃은 소금, 존재 가치를 잃은 자본
불신 사회, 경쟁 사회, 황금만능 사회. 우리 사회는 왜 가치를 잃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돈이 제일 우선 가치인 사회를 살아가고 있을까. 문제가 돈이지만 원인도 돈(자본)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피와 같다. 피가 순환되지 못하면 죽게 된다. 순환되지 않는 돈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눠 가질 수 있는 파이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돈을 가진자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살고 있지만, 그외 절대 다수는 돈 때문에 서로를 속이고, 내가 살아야한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을 밟아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중국산을 국내산이라 속여서 판매하는 이웃만 탓할게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만든 체계를 돌아봐야 한다. 또 우리가 생활 서비스(의, 식, 주, 에너지, 건강, 교육, 정보, 교통, 오락)를 과도하게 외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이 기업의 생산물을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업의 물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인, 과거 식민의 삶이 되고 있는게 아닐까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또 해법은 돈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한 돈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돈, 먹고 살 걱정을 덜어주는 돈,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돈, 지역 순환 형 경제 체제(지역화)를 만드는 돈이 우리 문화를 바꾸는 바탕이 될거라 믿는다. 그 단초인 마을기업을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18개월로 계획한 여행 중 9개월째에 돌아올 결심을 했다. 세계는 넓었지만 내가 살아가고 싶은 세계가 생겼으니까. 올 봄 마을기업을 직접 보자는 요량으로 3개월 전국일주를 계획했다. 계획 중에 희망제작소 마을기업 부문(뿌리센터) 인턴 공지를 보았고 감사하게도 합격됐다.
이제 한걸음 딛고 있을 뿐이지만, 나름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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