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몽골에서 유목민들과 일주일을 지낼 때의 이야기(1)

몽골, 그곳은 시간이 아닌 바람이 흐르고 모래가 물결치는 곳. 유목체험 사흘째이던 날, 영제와 나는 게르 안에서 밥을 먹고 있었으니, 숟가락과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 난로 안에서는 제 몸을 열심히 태우는 소똥의 군불 소리만이 들리는 점심시간이었더랬다.
‘아, 정말 맛없다.’ 군대 짬밥 10년, 웬만한 음식 섭취 가능 능력을 얻었지만, 사흘 동안 아무 반찬 없이 비린 양고기향 칼국수를 8끼니 콤보로 먹었더니 신경성 식욕 부진증이 올 것 같았다. 이걸 앞으로 12끼를 더 먹어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깨작거리고 있는데 집안의 제일 어르신, 아르크자 할머니가 우리에게 웬 상자를 건네주었다. 이게 뭘까. 상자 안에는 컵라면 6개가 있었다. 몽골 땅에서 한국의 컵라면을 만나게 되다니. 할머니는 밥을 잘 못 먹는 우리를 위해 차로 30분은 나가야 하는 촌락에 가서 이 컵라면을 사온 것이다. 아아, 감동의 쓰나미. 콱 이곳에서 평생을 몸 바쳐 일하고 싶다. 진심 감개무량.

고작 컵라면이잖아 싶으시겠지만, 그 나름의 사연이 있었으니, 그 사연은 이러하다.

5일 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우리가 묶었던 게스트 하우스는 몽골 투어 서비스도 겸하는 여행사였다. 낙타 투어, 승마 트래킹, 칭기즈칸 투어, 여러 가지 설명을 주인아주머니한테 들었지만, 썩 내키는 게 없었다. 체험에 그치는 관광 너머의 여행을 하고 싶었다. 미적미적 결정을 못 내리고 있던 중, 같은 숙소에 있는 미국인 친구가 유목민 집에서 유목생활을 하며 3주를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돈 주고 일하는 거다. 고생하지 말고 사막에서 낙타를 타라.” 유목민 출신 주인아주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투어를 보내 돈을 벌려는 속셈이겠지. "괜찮다. 우리는 유목을 해보고 싶다. 유목민 가족을 소개해달라.” 아주머니의 말이 유경험자의 진심 어린 충고였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보에 의하면, 몽골은 국민의 30%가 유목민이다. 10명 중 3명이 양을 친다는 말인데, 이건 몽골인이라면 주변 사람 중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은 유목을 한다는 얘기. 즉, 이런 식으로 소개받기가 어렵지 않다는 말.)

출발하던 날 새벽, 눈이 왔다. 버스는 눈이 쌓인 고속도로를 달렸다. 광대한 평원에 쌓인 하얀 눈. 하늘도 하얗고 땅도 하얬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평원,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그 평원을 달렸다. 그리고 곧 길마저 사라졌다. 아무것도 없는 대지 위를 우리의 낡은 버스는 달렸다. 길을 달리고 있다기보다는 길을 개척하고 있는 모양. 모래와 바람, 눈과 하늘의 시간. 그건 마치 인간의 지식도, 욕심도 없는 새하얀 무위의 세계를 향해 가는 길 같았다.

유목민의 집, 게르에 도착했다. 게르는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보던 천막이었다. 평지 위에 나무 울타리를 설치하고 그 위와 내부에 융단을 덮고 가운데에 화로를 설치. 간단한 살림살이만 채워넣으면 끝. 우리를 받아준 가족은 40대의 바이에르 뭉크와 이르크자 부부, 갓난아기, 이르크자의 엄마 아르크자 할머니, 어떤 관계인지 끝내 이해하지 못한 또 한 명의 할머니, 바이에르 뭉크의 동생 맘으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다. 유목민들은 보통 5명 정도가 한 가족을 이뤄 5킬로미터 정도씩 떨어져 지내는 것 같았다. 보건소, 은행, 잡화점 등이 모여있는 촌락이 차로 30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아이들은 평일에 그곳에서 지내며 학교에 다녔다. 바이에르 뭉크에게는 5남매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갓난아기를 빼고 4남매도 촌락에서 유학을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다.

양은 카카오 초콜렛 같은 똥을 쌌다. 걸어가며 까맣고 동글동글한 똥을 후두둑 싸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릴적 먹었던 카카오 초콜렛이 생각났는데, 맛은 역시 다르겠지. 양떼를 이동시킬 때는 그 뒤를 맴돌며 원하는 방향으로 모은다. 갈지자를 그리며 왔다리갔다리 가면 됐는데, 직선거리 2~3킬로미터를 그런 방식으로 걸으면, 가는데만 2시간이 걸렸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길을 2시간 걸어 풀이 많은 곳에 도착할 때쯤, 저 멀리서 바이에르 뭉크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그건 마치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사건을 다 처리하니까 슬렁슬렁 나타나는 경찰과 같은 타이밍이었다. 먼 곳에서 그의 후다다닥 거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유목 체험을 오기 전, ‘기마 민족인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 나도 말을 타보겠지?' 싶었는데, 몽골 평원에는 오토바이의 시대가 한창이었다. 

바이에르 뭉크는 내 앞에 섰다. 그는 동물 가죽이 멋지게 장식된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담배에 불을 붙였고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양이 먹을 풀을 둘러봤다. 망원경을 꺼내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양떼가 적당한 위치에 왔다고 판단되면 때가 왔다는 듯 낮잠을 잤다. 바람이 굉장히 옴팡져서 그냥 누워서 자기에는 좀 그랬는지 그는 엎드려서 잤다. 풀을 뜯고 있는 양떼 속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그 모습을 보노라면, 그가 죽은건 아닐까, 죽는건 아닐까, 양들이 멀리 멀리 떠나가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는데, 그는 참 편안하게 잘도 잤다. 

놀라울 것 없이 당연한 말이겠지만 게르에는 상수도, 하수도가 없다. 우물을 길어서 물을 썼다. 개인마다 전용 수도꼭지가 있긴했다. 친환경으로. 그 수도꼭지는 물을 입 안에 머금고 쪼르르 뱉으면서 사용했다. 설치비용 따로 없고, 약간의 숙련으로 수량도 조절 할 수 있었다. 입을 먹는데, 말하는데 말고도 쓸 곳이 있다니 새로운 배움. 하지만 머리를 감기에는 굉장한 시간이 걸리고, 다른 사람 수도꼭지로 씻으려면 극기의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역시 세상에 완벽한 건 없었다.

사실 양치기 일도 씻는 것도 이것 앞에서는 굼벵이 구르는 재롱이었다. 그건 바로 밥먹기. 게르에 있는 식재료라고는 밀가루와 양고기 뿐이었지만, 매끼니마다 새로운 조합이 나왔다. 과연 오늘은 뭐가 나올까. 수제비스러운 뭔가와 칼국수스러운 뭔가가 양고기와 함께 조리되었다. 양머리를 귀한 요리로 친다던데, 어느날은 떡하니 양머리가 나왔다. 바이에르 뭉크가 친절히 가장 맛있는 부분을 칼로 잘라주었다. 양의 턱 주변 살이었다. 그래, 이럴 땐 정신줄을 놓고 얼른 삼켜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빨리 삼켜버려야지. 그런데 계획과 달리 요 고기가 씹어도 씹어도 탄력을 잃지 않는 고무고무 고기였다. 아, 후추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넌 서양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채소가 없다는 점이었다. 매끼 밀가루와 고기, 개운한 맛이 필요했다. 어느날부터 나도 양 옆에서 풀을 뽑아 먹었다. 

추위에 떨며 하루 5시간을 걷고, 양들과 씨름하며 생고생을 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몽골이라고 답할 것이다. 문명과 가장 멀었던 곳. 시간이 아닌 바람이 흐르는 곳. 하얀 세계를 지나가서야 만날 수 있었던 그 세계. 친환경 수도꼭지로 세수를 하고, 양이랑 풀을 뜯어먹었던 그 시간. 살아오면서 많은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수많은 눈 중엔 마음을 끄는 눈들이 있었다. 바깥 세상에 나온 아이의 눈, 새벽 추위를 뚫고 떠오르는 따뜻함을 맞이하는 길냥이의 눈, 배움을 시작하는 학생의 눈. 내 여행에도 그런 눈을 가졌던 때가 있다면 그 일주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지식도 욕심도 무위의 것이 된다는 걸, 그전과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걸, 여행을 준비하는데 그 눈만 있다면 된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는 걸 이제사 깨닫는다.

* 몽골 비디오 보기(영제 편)
- 몽골 여행기, 몽골 유목 민족을 아시나요? 
http://www.youtube.com/watch?v=9Nppep0RFRg


감동의 도시락 ㅜㅜ


카카오 쪼꼬렛이 생각난다...


비리다. 심하게


우적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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