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아쉬람 고아원에서 지낼 때의 일이다.
그날은 고아원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모래 운동장이 만들어진 날이었다. 고아원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곳이 운동장 구실을 해왔지만, 흙으로 돼있어서 물이 잘 빠지지 않았다. 콜카타는 비가 자주 오기 때문에 운동장은 진흙 탕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이 사업을 오랫동안 구상해 왔던 것이다.
‘이게 강가에서만 구할 수 있는 모래인데, 건축용으로는 못 쓰일 정도로 입자가 너무 고운 거야. 그래서 물이 잘 빠지지. 내가 이걸 구하려고 …’ 로 시작하는 일련의 설교를 매일 들었다. 그래서 그 모래가 일반 모래랑 뭐가 다른 건지 난 도통 모르겠는데, 마침내 그 모래가 운동장에 깔린 것이다.
운동장 단장 기념으로 그날 고아원의 모든 아이들이 멀리뛰기, 땅따먹기 등의 게임을 했다. 그리고 이내 우리는 축구를 하게 되었다. 축구! 어린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피구왕 통키 시절 동네에서 똥볼 좀 찼던 내가 아니던가. 볼만 있어서 외로웠던 내가 아니던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한편 현란한 축구 실력으로 아이들 속에서 빛나는 영웅이 된 내 모습도 그려졌다. 내 실력을 보여주마…….
하지만 난 곧 이성을 되찾았다. 나는 어른이 아니던가. 그러고는 내가 봐도 어른스런 생각을 했다. 꼬맹이들 사이에 나(=어른)라는 불균형을 만들 수 없지. 나는 심판을 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잘했다. 냅다 차고 냅다 뛰는 동네 축구가 아니었다. 주고받는 패스가 있는 팀플레이 축구를 구사했다. 어느새 한쪽 팀이 18 대 8점이라는 농구 경기에서나 볼 법한 점수 차로 지고 있었다. 지는 팀 아이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녀석들 내가 섞어준 팀이 아니라 자기들 마음대로 팀을 바꿔서 경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력 차이가 크게 났던 것이다. 이 괘씸한 녀석들. 나는 불의를 바로잡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지고 있는 팀 선수로 들어갔다.
20분 후. 21 대 8…. 나(=어른?)는 애초에 이 경기에서 불균형의 요인이 전혀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하다. 지고 있어 분하기도 했지만, 이런 와중에도 그만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에게도 분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내 앞에서 깐족깐족 까불거리는 꼬맹이가 또 깐족이는 게 보였다. 만화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은 대게 분노를 통해 더 강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내게 분노는 성장이라기보다는 진심으로 그 꼬맹이 얼굴에 궁서체 총알 슛을 날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경기는 끝이났고 나는 그날 밤 방에 누워 생각했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되는걸까...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고 고아원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헤어지던 날 아침, 영제는 결국 아이들을 울렸다.
고아원에서 지내며 많은 일이 있었다.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미소 지어주고, 웃어주고, 바라봐주고, 함께 춤춰주고……아이들은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고아원에 가서야 깨달은 사실은 베푸는 일은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해준 일이라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도 사랑이라는 걸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 수많은 아이들을 지켜보고, 잡아주기에는 내 두 손과 두 눈은 부족하다는 것도 배웠다. 사랑 앞에 나는 작은 존재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작은 것에서부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실천하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사람은 언제 성숙해지는 걸까.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성숙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이제 안다. 실천하는 사랑을 통해, 나를 낮추고 깊어짐으로써 우리는 성숙을 더 해가는 게 아닐까. 어렸을 땐 ‘나'만 알던 아이가 ‘우리'라는 것을 알게 되듯, 인간은 ‘우리'라는 울타리를 넓혀감으로 더 큰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세상은 밝아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위대한 사랑을 실천한 마더 테레사의 시 한 편을 붙인다.
한번에 한 사람씩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한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는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번에 한 사람씩
* 여행 비디오 보기
: 가슴과 가슴에 닿는 길-인도 고아원
http://www.youtube.com/watch?v=k2KijKQKTPA
박진균 선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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