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독일과 프랑스/스웨덴/스위스 교육제도의 공통점은 우선 교육이 사회의 책임이고, 모든 인력은 국가의 자산이라는 확고한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각 인력의 생산성을 최고로 높이고, 모두가 보람을 느끼며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다.
114. 현상을 뒤쫓아가며 허공에 팔을 허우적거리는 결과를 낳았다.
123. (한국인 기자는) 의견을 물어보면 입을 꼭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틀릴까 봐 두려워서다.
128. 그래서 파이를 키울 게 아니라 피자를 만들어야 한다. 두께를 얇게 하되 공간을 넓혀 그 안에 더 많은 사람의 일자리와 소득을 담아내야 한다. (…) 그러려면 우선 기업이 채용 규모를 확대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려야 할 것이다. 쓰고 버리는 일회용 인턴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고용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를 늘려야 근로자가 안정적 소득에 기반을 둔 계획적인 소비를 할 수 있고, 이것이 다시 경기를 활성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피자의 면적을 넓히려면 정규직의 양보 역시 필요하다. 급여가 다소 줄더라도 근무시간을 단축하고 더 많은 정규직 신규 채용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이 40~45퍼센트를 차지하고 인턴 채용이 버젓이 고용 통계에 잡히는 현실에는 담을 쌓은 채 정규직인 자신의 연봉을 올려봤자 그 돈은 백수인 자식의 끝없는 스펙 쌓기와 신형 스마트폰 구입비로 들어갈 뿐이다. 그러다가 은퇴할 나이가 됐는데도 자식이 여전히 아비의 지갑만 쳐다보고 있으면 그땐 어떡할 텐가. 방향이 전환되면 청년들뿐만 아니라 노인도 더 활발하게 피자 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다. 스위스 국민의 2011년 현재, 평균 기대 수명은 82.2세로 세계 2위인데 은퇴 연령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보다 늦다. 더 오래 살고 늦게까지 일한다는 뜻이다.
129. 피자처럼 면을 넓혀서 그 위에 갖은 재료를 풍요롭게 얹고 익혀낸 뒤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해법이다. 하향 평준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성실하고 평범한 서민이 적정한 소비를 할 수 있어야 경제 성장이 가능하고, 그럴 때 부자 역시 사회로부터 존중받고 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가장 안전한 경비 업체는 사회 안전망이다.
132. 공존 사회는 생각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 첨단 건물을 지을 때처럼 정교한 설계도가 필요하다. 공존 사회를 설계할 때 으뜸이 되는 원칙은 사람을 중심에 두는 일이다. 국내총생산 성장률 수치나 고층 건물의 층수 따위가 아니라 함께 호흡하는 동시대인과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떤 제도를 갖출 것인지, 어떤 환경을 조성해나갈 것인지가 핵심이 돼야 한다.
또한 공존의 기술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면적 사고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산업부문이나 약자 계층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런 부문이나 계층 역시 전체의 가치를 높이고 활력을 불어넣는 원천이 될 수 잇음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업은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1차 산업인 동시에 관광업이며, 복지와 치유의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각 부분이 갖는 다면적 가치에 주목할 때 한층 더 섬세하고 유기적인 설계도를 그려낼 수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전쟁터에서든 정치 현장에서든 한 가지 목표만을 놓고 전략을 세운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늘 상대보다 앞설 수 있었고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게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분석이다. 카이사르가 했던 것처럼 정책을 세울 때도 반드시 복합적인 효과를 두루 고려해야 한다. 공존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각자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 그 몫이란 이를 테면 지역 현안에 관한 주민 투표에 적극 참여하거나 자전거를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해서 사전 교육을 받는 일, 애완 동물을 입양했을 때 세금을 내는 일 같은 것이다.
137. 스위스에서 농업정책을 설계하는 정부 담당자는 국토라는 큰 화폭에 조화로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넓은 공원에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는 정원사와 같다.
147. 잠들지 않는 노동과 소비의 피해자는 바로 우리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소비구조 속에서 소비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바로 인간, 우리 자신이다. 할인점 영업시간에 대한 통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특히 서울의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밤 9시나 10시쯤으로 제한하는 게 옳다.
또 대형 할인점이 유통시장을 전면적으로 장악하게 되면 고용 시장 전반을 악화시킨다. 대형 할인점은 불안정한 비정규직 고용을 창출하는 대신, 일자리의 주된 원천 중 하나인 자영업을 무너뜨리고 재래시장 유통 및 연관 산업의 일자리를 줄인다. 가령 신세계 이마트의 한 코너에서 피자를 구워 팔면서 5명의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 가게 당 3명씩 채용할 수 잇는 동네 피자 가게 5곳이 문을 닫는다고 하자. 15명이 만드는 피자를 5명이 만들 수 있다면 더 효율적인가? 그렇다. 하지만 그 효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런 식의 효율에는 일하면서 살아갈 인간의 존엄한 권리 따윈 끼어들 틈이 없지 않은가?
이마트 피자의 등장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는 윤리적 소비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윤리적 소비라 하면, 뭔가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을 도덕적인 이유로 마지못해 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윤리적 소비야말로 일자리 확보와 노동조건의 개선, 연관 산업의 생존까지를 고려한 합리적이고도 전략적인 소비다. 시혜적 관점에서 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자본의 효율이 시민의 행복은 아니다. ‘합리적 소비’라는 말은 지금까지 ‘싸게 산다’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저가 유통이 산업구조를 어떻게 왜곡시키고 경제 전체에 장기적으로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설명하는 데는 긴말이 필요치 않다. 저가의 중국 제품으로 시장을 석권한 월 마트가 미국의 자영업과 중급의 소비재 관련 산업을 어떻게 망쳐놓았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효율을 최우선 가치로 믿으며 일할 공간을 압착해나가는 방식으로는 온전한 성장을 바랄 수 없는 시대다.
148. 숨막힐 것 같은 신자유주의의 철학을 부수는 간단한 방법은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것’이다. 제네바 시민이 대형 마트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한 것처럼, 평범한 시민과 학생이 홍익대 미화 노동자를 감싸 안은 것처럼 서로를 챙겨야 한다.
153. 서방 선진국이 ‘힘의 이동’이라는 용어를 내세워 신흥 경제국을 향해 성장에 걸맞게 핵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결국은 더 많은 시장 개방과 금융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압력’의 다른 표현임을 중국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160. 서울 도심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 곳에서 재개발 사업이 이뤄지고 있고, 소중한 전통 공간과 ‘맛집’이 사라져가고 있다. 정확한 통계를 찾기는 어렵지만, 아마 한국전쟁 때 포탄에 파괴된 건물보다 토건족의 굴삭기에 무너져간 건물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서울 시내에서 재개발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곳에 살던 원주민은 인근 경기도의 위성도시로 밀려나야 한다. 위성도시의 인구가 증가하면 그곳에 또 건축 붐이 인다. 사람이 한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토건 자본의 장기판에서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졸’ 취급을 받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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