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 토란, 리마커블 독


몇 가지 좋은 시기를 맞이하여.
글을 쓰기로 하였다. 첫 글은 닭과 나의 추억. 닭에 대한 글은 탄핵날 썼다면 더 아름다웠겠으나, 나의 사부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거 같으므로 이해바람. 
제목은 ㅡ 이름하야 사부인전
1편, 그래 닭을 키우자

월요일 아침, 부모님 집에 다녀 온 주말사이. 닭장이 고요해졌다. 닭 한 마리만 누워있었다. 가슴이 철렁내려 앉았다. 3마리의 부지런한 닭들이 흙을 쪼고 있어야 했다. 어서 밥을 달라고 성을 내고 있어야 했다. 사무실로 올라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정황을 그려본다. 물 한 잔, 마음을 가라앉힌다. 삽을 챙겨 뒤뜰로 가 적당한 구덩이를 판다. 무릎 정도의 깊이. 나무 뿌리가 삽을 막으려 하지만 봄의 흙은 부드럽다. 삽질을 하며 자책을 한다. 겨울이 지나면 안전할 줄 알았다고. 따뜻한 날에 습격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한 내 자신을 탓한다. 닭장으로 돌아와 아까와 똑같이 누워있는 닭을 천천히 꺼낸다. 갈색 깃털의 암탉.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그래서 손댈 수 없는 녀석이었다. 그렇게 만져보고 싶었던 녀석이었건만, ‘죽음'이 되니 꺼림칙하고 최소한의 접촉만을 계산한다. 나는 죽음을 대면하지 못한다. 들고양이, 들쥐 등의 사체. 머리로 생각하는 쿨한 ‘죽음’은 눈앞에 있는 ‘죽음’ 앞에 쿨한 과정이 아니다. 여기 어여뻤던 녀석의 죽음조차 피하고 싶은 것이 되었다. 최대한의 거리와 최소한의 접촉으로 아까의 구멍으로 간다. 구덩이에 넣고 파냈던 흙을 덮는다. 밟아준다 단단히. 야트막한 언덕이 생겼다.

이로써 지난 1년 동안 8마리의 닭을 묻었다. 동네 양계장에서 얻어온 4마리와 중간에 들여온 4마리. 그들을 사부인으로 기록하려 한다. 사부인이 내게 오게 된 것은, 토란이라는 개를 위해서였다. 토란. 헝클어진 털의 검은 삽살개. 긴털에 눈을 가리고 다니는 호기심 덩어리. 자기만의 이유로 짖어대고 냄새로 세상을 탐닉하는 개구쟁이. 토란이를 보살피는 이담의 말에 따르면, 새끼였던 토란이가 처음 발견된 곳은 논과 논 사이의 도랑이었다. 얕은 물곬에 빠져 이도저도 못하던 토란이에게 손을 내민건 이담이었다. 토란이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ㅡ 이런 연유로 토란이는 큰 덩치에 안 맞게 꺼진 땅을 무서워한다ㅡ 작고 귀여운 까만 봉지만했던 토란이는 계속해서 자랐다. 무럭무럭. 그리고 본견조차 예상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덩치가 되었다.

인력 4년의 토란이는 계속 사료를 먹어왔다. 쌀밥을 먹이는 요즈음에 생각해 보면, 사료를 주는 건 정말 편한 일이다. 개미가 꼬이는 것 외에 사료는 정말 편하다. 마음 바쁜 아침 시간이면 간편한 사료 생각이 절로난다. 씨리얼과 된장찌개 사이랄까. 그럼에도 쌀밥을 생각한 이유는 단순하다. 주변에 넘치는게 쌀이니까. GMO(유전자조작식품)라거나, 찌고 말리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생명력이라거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나중의 일이다. 나 편하자고 몸에 나쁜걸 ‘알면서' 먹일 수는 없다. 

문제는 토란이의 육肉욕이었다. 나야 내 마음으로 채식을 선택한다지만, 말 못하는 토란이에게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혹은 내 억압의 투사) 그래, 달걀이다. 동물성 단백질 계란이다. 가정 수업을 잘 들어둔 보람이 있다. 나의 단순함은 다음 단계를 손쉽게 떠올렸다. 닭을 키우자. 단순함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때마침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닭이 풀을 먹는다니ㅡ나는 닭이 풀을 먹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ㅡ 닭의 이런 습생은, 나는 어차피 텃밭에서 김을 메야 하고, 이 김멘 풀을 닭에게 주면 된다는, 그 결과물인 달걀을 토란이가 먹는다는, 이로써 제로비용에 가까운 토란 앵겔지수를 만들겠다는 아름다운 삼각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순환고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노비가 필요했다. 그 노비는 물론 나였다. 그런 미래를 모르는 나는 모든 꿈을 현실로 만들어갔다.

ㅡ 닭이 오던 날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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