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아직 호기가 지나지 않은 탓에
글을 쓰기로 한다. 농農생활에 대하여.
첫 이야기는 닭과 나의 추억ㅡ 이름하야 사부인전
2편, 닭이 오던 날
닭장을 만들기 전, 나는 닭을 입양받는 날을 못 박았다. 그 날에 맞춰 얼기설기 닭장을 만들어갔다. 우선 닭장의 기초는 집 옆에 있는 돼지우리를 활용하기로 하였다. 시멘트 벽돌로 세워진 작은 축사였다. 누구나 알겠지만, 모든 일은 기본이 중요하다. 건축으로 치면 기초공사일테다. 아랫집 토박이 형, 오씨의 회상에 따르면 그 돼지우리는 30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왔다. 30년의 세월에도 멀쩡한 돼지우리라니. 세상에. 마침 그런 튼튼한 돼지축사가 어떻게 우리 집 옆에 있는거지. 아무래도 우주가 돕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다. 나는 최대한 날로 먹기로 결심한 것이다.
돼지 우리에 대나무를 베어와 기둥을 세웠고, 주변 밭에 버려져 있던 철조망을 주워와 벽을 댔다. 지붕을 대나무를 이어붙이려 했는데, 앞서 작업에서 여유를 너무 부렸다. 시간이 부족했다. 창고에 처박혀 있는 장판을 꺼내 지붕을 올렸다. 이 닭장의 컨셉은 심플하우스. 그럴듯한 상상으로 시작했던 꿈이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 꿈이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은 정말이지... 처참했다. 넝마가 눈앞에 나타났다. 땅속에서 캐낸 철조망에는 덩쿨이 엉켜있었고, 오랜시간 창고에서 터줏대감으로 방치되어온 장판은 딱딱해 움직일 때마다 찢어졌다. 이 흉물은 어디서 온 것인가.
하지만 현실에 대한 반성도 전에 닭들이 도착했다. 네 마리 암탉, 사부인이 왔다. 쌀 포대에 보쌈 담겨서. 부인은 포대 안에서 스스럼 없이 알을 낳았다. 세상에 갓 나온 달걀. 평생을 먹어왔던 달걀인데, 그것의 온기는 새로운 것이었다. 햇살 좋은 봄날 조용한 오후였다. 영계를 지나 성계가 된 그녀들이. 병아리적 가녀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녀들이. 내게 왔다.
엉성했던 닭장보다 집사가 더 어리버리했다. 장판 지붕이 계속 문제였다. 어느 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사부인들이 온지 며칠이 안되었거늘, 어느새 나는 사부인과 어떤 알 수 없는 연결이 있는 것일까. 후다닭. 달려가본 닭장. 바람에 날려 장판 하늘이 열렸있었다. 사부인들이 개벽을 향해 날아 세상을 둘러보고 있었다. 휴. 아침, 저녁 한 자루의 풀을 뜯어다 바쳤으나 사부인들은 언제나 히딩크했다. 아임 스틸 헝그리. 닭은 기분에 따라 우는 소리가 다르다. ‘꼬~ 꼬~ 꼬~’스타카토의 포르테시모. 사부인과 이별한 오늘에도 내 귓가를 맴도는 이 소리. 허기져 한껀 짜증이 난 사부인들의 소리. 이는 내 가슴을 조그라들게 만들었다. 닭장 문도 낮은 탓에 나는 허리를 수그리며 들어가고 조아리며 물러나야 했다. 때는 이른 봄. 땅은 이제 막 기지개를 펴는 지라 풀이 부족했다. 인간 예초기가 되어 주변의 풀을 모조리 긁어가도, 먹을 것을 더 가져오라는 사부인들의 짜증섞인 명령은 계속 되었다. 닭이 풀도 먹지만 풀만으로 사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안 건 나중의 일이다. 조아리며 풀어놓은 풀을 몇 번 헤집더니 이것뿐이냐는 태도로 돌변하길 반복. 노예의 시작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사부인을 들였나. 풀은 풀대로 베고, 짜증은 짜증대로 듣고, 토란이는 토란이대로 산책 시간이 짧아졌다. 더이상 참을 수 없다. 집사는 분연히 머리를 굴렸다. 생각해낸 건 ‘방사'(라 쓰고 현실도피라 읽는다)였다. 자유! 얼마나 달콤한 단어인가. 열린 세상 앞에 잠깐 멈췄던 사부인들. 곧 이들의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다. 지난 개벽은 하늘로 열렸지만, 이번 개벽은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땅엔 풀이 얼마 없는 계절. 씨를 받기 위해 남겨두었던 토종배추를 향해 사부인들이 달려들었다. 맹렬히. 온통 흙빛 세상에 넓다란 봄동 잎. 오아시스로 보였을 것은 틀림없다. 잠깐 한눈 판 사이, 돌아온 텃밭. 배춧잎을 뜯어먹는 사부인들의 모습을 발견. 황망히 보노라면, 닭의 먼 조상이 공룡이었기보단, 피라냐 쪽이 더 가까울 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사부인이 휩쓸고 간 텃밭. 텃밭지기님의 지청구 앞에도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하, 이렇게 노비로써 여생을 보낼 수 없다. 30년을 산다는데. 하늘아래 생명 모두 평등하거늘. 동학 농민의 뜻을 이어 가겠다. 나는 분연히 전화를 걸었다.
<닭장을 구해...> 에서 계속
'요호호 > 짓다_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_보리수서(書) 1장_보리수 천국에 이르다 (0) | 2017.07.23 |
---|---|
뜰 땜빵.. (0) | 2017.07.23 |
일상_사부인전 1편 (0) | 2017.07.23 |
#31_생일축하에 감사드립니다 (0) | 2017.07.23 |
영화. 리뷰. gmo. 100억의 식탁 (0) | 2017.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