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혼란과 번잡함을 피해 갔던 북인도, 맥그로드 간즈. 

그곳에는 해발 2875m의 산이 있었다. 우리는 그 산을 올랐다. 


‘올라가는데 3시간 정도 걸려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라는 어느 블로거의 말. 그 말만 믿고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갔다. 어쩐 일인지 3시간이 지나도 걷고 걷는, 3시간은 3시간 전에 지나갔는뎁쇼…? 8시간. 가히 지리산 뺨치는 산행. 3시간에 주파한 그 블로거는 어쩌면 엄홍길 아저씨……. 무엇보다 언제끝날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 오른다는 게 더 힘들었다. 모든 힘을 쥐어짰다. 마지막 남은 내용물까지 짜여지는 치약의 기분. 모든 진이 빠져나가버린 느낌. 자신의 간을 집에다 두고 왔다는 거짓말로 살아남은 토끼처럼, 아니면 차두리형의 말대로 나도 모든 걸 간 탓으로 돌리고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그 산행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산 정상 매점에 '메기 라면’이 있다고 하던데…?'


‘메기 라면? 그건 혹시 … 메…메기 매운탕 라면?’ 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를 악물었다. 외국에서 처음 먹는 매운탕이구나. 포기할 수 없었다. 메기와 나는 만고 끝에 정상에서 만났다. 내 앞에는 물고기 메기 라면이 아닌 매기 라면이 있었다. 라면 이름이 매기(Maggi)였다. 메기와 매기, 점 하나였지만 그건 한 인간에겐 천국과 지옥이었다. 해발 2875m, 구름 속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나는 매기라면을 바라봤다.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다시는 속지 말아야지.


 누군가 내게 등산의 매력이 무어냐 물어본다면, 나는 ‘돌아봄'이라 말하고 싶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맛. 오를 땐 몰랐으나 그 곳이 얼마나 멋진 곳이었는지 깨닫는 맛. 힘든 산일수록 그 맛은 깊은 듯 하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 그의 인생을 전과 후로 나눈 이탈리아 여행. 그 길 위에서 그는 그가 썼던 작품들의 사람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날 트리운드산을 오르며 나는 한국에 있는 사람들, 내 마음에 있던 사람들을 보았다. 내 마음에 있으나 볼 수 없는 사람들. 그립고 그립고 그리웠다. 여행이라는 산은 뒤를 돌아볼 때 열망이 느껴질 때가 많은 산이었다. 보고 싶다는 열망. 포기하고 산을 내려가고 싶었던 날들이 많았다. 그 옛날 글 공부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온 한석봉. 그건 사실 공부가 충분한 것 같다는 그의 자만이 아니라 어머니가 보고 싶었던 그리움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내 모습도 보았다.


 어느 곳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그저 물이 흘러가듯 살아보고 싶었던, 아직 개울조차 벗어나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을 보았다. 나는 내 자신이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만나보고 싶었다. 이 여행이라는 산 너머에 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그 곳을 향해, 지금 만나러 가고있는 것이다고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한국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지만 그건 오히려 ‘만날 날'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현재에 살지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므로.


 '꿈을 꾸어라'는 말이 있다. 그건 우리가 미래의 우리에게서 꿈을 꿔(Borrow)온다는 말이 아닐까. 하루하루 충실히 빚을 갚아 나간다면 우리는 미래의 우리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여행에 다녀온 나는 나를 만났을까? 물론. 그리고 새롭게 갚아야 할 빚이 생겼다. 넘어야 할 산도 생겼다. 만나고 싶은 내가 있다. 나는 여전히 나를 만나러 가고 있다. 미래의 나와 지인들,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지금 만나러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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