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요리를 시작한 건, 그리스를 여행 할 때부터였다. 매일 먹은 삶은 계란과 콘푸로스트, 빵과 잼의 식단을 웨스턴 식이라고 위안하기도 질렸을 때였다. 가장 처음 했던 요리는 카르보나라 파스타였다. 이건 사실 요리라기보다는 라면 정도의 수준이었다. 수프를 넣고 되는 대로 끓였더니 완성이 돼버렸다. 맛있게 먹는 영제를 보며 어쩌면 나라는 인간의 쓸모는 요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1kg 당 1,000원에 파는 감자와 양파를 보았다. 좋아, 오늘은 감자 볶음이다. 엄마가 대충 이렇게 요리했었더랬지……? 서걱서걱 자르고 슥삭슥삭 볶아보았다. 방금 막 외계에서 불시착한 듯한 으깬 감자 ‘덩어리’가 완성됐다. 그래도 영제는 맛있게 먹어주었다. 영제는 참으로 대단한 남자였다. 맛있게 먹는 영제를 보며 나는 그만 요리에 재미를 붙여버렸다. 하지만 내 요리는 만드는 족족 처음 목표와는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오징어 볶음 만드는 법에 따라 요리를 했는데 라볶이쯤 되는 것이, 숙주나물 볶음을 만들려 했는데 태국의 볶음국수 팟타이 비슷한 것이 만들어졌다. 굳이 맛을 표현하자면 ‘이게 뭡니까’ 맛. 이름으로 담을 수 없는 요리들. 요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물었다고 한다.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다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자공은 반문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공자는 말했다. “자공아, 나는 단지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을 뿐이다.”
공자 선생이 자공에게 약을 판 건 아닐 테지만 나는 때때로 궁금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정말 하나의 이치로 꿰뚫어질까. 공자의 이 대화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인도에서 만난 누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몽골에서 만난 아저씨다.
북인도의 맥그로드 간즈, 이곳은 티베트 사람들이 중국의 강제 합병을 피해 망명 온 마을이다. 우리가 상해에 임시정부를 세웠던 것처럼 이곳에도 티베트 임시 정부가 있고,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 달라이 라마가 있다. 그곳은 작은 산촌이라, 길이 많지않아 오가며 한국 사람도 이따금 마주칠 수 있었다. 그 누님과도 이곳에서 만났다. 위인전을 읽다 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누님은 ‘그놈 참 장군감’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드센 사람이었다. 그 장군감 기운을 누님은 말을 하는데 쓰는 듯 했다. 도무지 쉬지를 않고 말을 쏟아냈다. 누님 일행은 우리 옆 방에 묵었고 그 방에는 매 끼니 한국 음식이 출몰했다. 김치찌개, 햇반, 참치 통조림, 3분 카레, 소주. 한식의 유혹과 맞서야 했다. 누님은 '인도여행'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어 보였다. 어디 이름을 꺼내면, 어떻게 가는지, 어디를 봐야 하는지, 언제 가야 좋다든지 등등이 방언 터지듯 다다다닷 쏟아졌다. 인도여행 2주, 인도를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게 나의 제 1 소원이었다. 그런 내 눈에 인도를 수없이 왔다고 말하고 있는 그 누님은 해탈의 빛이 나는 존재였다. 만약 인도 여행학 학위라는 게 있고, 그걸 받아야 한다면 그 누님과는 면접관으로 다시 만나지 않을까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오가며 누님의 여행에는 정해진 범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도 여행은 잘 알지 모르겠지만, 정작 인도는 없었다. 함께 다니던 일행도 자기 통제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 먹는 음식도 이미 익숙한 것들, 여행경로도 이미 경험한 장소. 범위 안에서 오가는 여행. 확인을 위한 여행.
또 다른 사람인 아저씨와는 몽골 게스트하우스에 머물 때 만났다. 밤 9시를 넘어가고 있을 때 두 아저씨가 체크인했다. 한국인 아저씨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 사람. 안녕하세요. 몽골에서 코이카 활동 중인 아저씨와, 이 아저씨를 만날 겸 몽골 여행을 온 아저씨였다. 코이카 아저씨는 대화의 대부분을 본인의 이야기로 채웠다. 그리고 아저씨는 굳이 ‘나 게스트하우스에 왔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평상시에는 호텔에 다니는 데 호텔이 다 차서 게스트하우스에 어쩔 수 없이 왔다. 게스트하우스에 오니 여행자 느낌도 느껴보고 좋다. 아, 이거 참 같은 방에 주무셔 주셔서 감사하네요. 같은 송구스런 마음마저 들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아저씨는 우리가 여행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디 어디 가는데?” 우리는 말했다. “중국이랑요,”(음, 가봤지), ”베트남에 가구요.”(음, 거기도 가봤어), “태국이요.”(아, 거긴 별로야) 평가를 바라고 말을 한건 아닌데, 친절한 아저씨였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또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이 두 만남을 통해 만난 건 내 모습일 것이다. 나라는 사람도 결국 내 경험만으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부류니까.
우리는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경험하는 것, 그 자체가 인간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경험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세계를 넓혀가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 하지만 그 도구는 때로 자신을 가두는 상자와 틀이 돼버리기도 한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을 듣는 즉시 그 사람의 대부분을 알게 됐다고 판단하는 것처럼 말이다.
안다는 건 모른다는 걸 알아가는 거다. 아는 것이 없음. 무지의 상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의 상태. 알아간다는 것은 우리 안에 진공을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하 듯, 진공을 만들어지는 순간 우리는 그 공간을 향해 빨려간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듯, 바람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을 향해 불어가듯, 자연에 속한 우리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그 공간을 향해 나아가는 게 아닐까. 그 힘을 활력이라 말하는 게 아닐까. 살아 움직이는 힘.
나는 공자가 말한 이치를 알지 못한다. 얻고 싶지 않다. 한 가지로 만 가지를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게 과연 행복일까. 나를 뒤흔들고 공간을 만들어 가는 과정, 이전까지 알아왔던 세계, 그 울타리 너머의 어둠을 밝히고 넓혀가는 과정. 진공을 채워가는 과정, 삶에 대한 탐구. 창조. 이건 뭡니까 맛 파스타를 만들어가는 것, 살아있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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