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여행이라고 #18
ㅡ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 함께 파도를

'끄악, 어떻게 이렇게 후텁하지!!'
중국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버스로 8시간. 버스에서 내리며 느낀 첫느낌이었다. 하노이의 습기는 한국의 습기와는 차원이 다른, 무게 마저 느껴지는 후텁함이었다. 여행은 변화였고, 변화의 썰물은 습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뒤바꿨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 나를 도마뱀이 멀뚱이 쳐다보고 있었고, 내 발이 무슨 생태적 교란을 일으켰는지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내 발 주변을 계속 빙빙 돌며 조깅을 했다. 동남아에서 나는 자연 안에 있음을 느꼈다.

영제와 나는 엄지손가락보다 큰 나방을 요정님이라고 불렀다. 푸드덕푸드덕 나는 모습이 실로 아름다웠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직접 보는 기분. 자연은 역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어느 밤, 샤워를 하러 샤워장에 들어가는데 한 마리 요정님이 따라 들어왔다. 한 사람 겨우 들어가는 좁은 공간에 요정님과 함께 있게 되다니. 가까이서 본 요정님은 정말 컸더랬다. 날때 날개소리조차 나지 않았는데 그건 나를 더욱 두렵게 했다. 이 누추한 샤워장에는 왜… 샤워가 하고 싶으신 겁니까. 샤워기를 들고 열심히 샤워를 시켜드렸다. 오늘을 위해 M16 소총 사격법을 배운걸까. 샤워가 만족스러우셨는지 요정님께서는 하수구로 퇴장하셨다. 고향 친구를 고향으로 내려보낸 것처럼 안심이 됐다. 나는 그제야 옷을 벗었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요정님이 하수구에서 다시 나오고 있었다. 하수구에서 나오고 있는 요정님의 몸짓, 수영에 대해 나는 잘 모르지만, 그건 분명 배영이었다. 신비로운 자연의 세계.

얼마지나지 않아 귓속으로 벌레가 들어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이건 경을 읽는 소도 경기를 일으키게 만들만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갑자기 귀로 뭔가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벌레 천국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계속되는 침입은 짜증 나는 일이었고, 침임은 점점 잦아졌다. 귀를 막고 다닐 수는 없는 일. ‘이 벌레 놈, 잡혀만 봐라.’ 당연히 잡을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 깨달았다. 그건 벌레가 아니라 길어진 내 머리카락이었다. 며칠에 며칠이 지나도록 혼자 모노 드라마를 연기한 기분.

영제와 나는 베트남에서 병에 걸렸다. 설사병이었다. 샐러드 냄새가 조금 많이 이상했다. 원래 시큼한 건가. 산지 겨우 몇 시간 지났을 뿐인데 설마 상했을까. 채소는 특히 버릴 수 없었다. 모두 소화시켜주마. 우적우적. 베트남 날씨가 쾌속부패 기능을 갖고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변사또님은 똬리를 틀라는 물벼락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렸다. 무언가를 먹어도 나왔고, 앉아 있어도 나왔다. 누워있어도 나왔고 자고나도 나왔다. 그냥 다 나왔다. 장이 음식물 소화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소화가 되지 않기에 먹어도 기운이 안났다. 잠을 자도 자도 끝없이 졸렸ㄷ ㅏ… (아, 이건 원래). 기운이 없으니 소화력이 또 약해지는 악순환. 설사병으로 사람이 어떻게 죽게 되는 지를 알 것 같았다. 꼬박 사흘을 누워 있었다. 나흘째가 되서야 겨우 밖에 나갈 수가 있었다.

앓아 누운지 첫째 날, 군대에 입대 하는 꿈을 꿨다. 내 손에는 입대영장이 들려있었다. 군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입대영장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다. 그게 영장인지는 사실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를 말했듯, 그건 영장이어야 했고, 나는 군대를 가는 걸로 설정되어 있었다. 주변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교회도 갔고 친구들도 만났다. 그러다 문득, '어라, 저는 중사 전역 했는데요?’ 말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잠에서 깼다. 하, 군대가는 꿈이라... 이건 향수일까 악몽일까. 다시 잠들었다.

둘째 날, 대장균 녀석에게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설사’를 공부했다. ‘설사’ 검색. 검색을 하면서도 화장실에 세 번 다녀왔다. 설사는 왜 하나요, 어떤 음식이 좋은가요. 음, 음, 그렇구나. 설사는 은근한 재미를 갖고 있었다. 설사 녀석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떤 음식이 좋은지와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는지를 봤다. ‘식이섬유가 많은 음료는 마시지 마세요.’ 나는 어제 영제가 사온 알로에 주스를 바라보았다. 거의 다 마셔서 얼마 남지 않은 알로에 주스.

회복이 되가는 건지, 정신분열이 되가는 건지 알수 없는 마지막 날 얻게된 얄팍한 깨달음. 운이 나빠서 식중독에 걸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건강했던 시절이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불결이라던지, 부주의라던지 식중독의 여러 조건은 언제나 내게 있었다. 오늘의 식중독은 삼박자가 마침 모두 채워진 결과일 뿐이였다. ‘아, 건강이 최고 복이로구나!' 라는 접시 물과 같은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여행은 본인의 머리칼은 물론이거니와 때론 몸뚱어리조차 어찌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모든 게 바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내가 주체로서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여행은 자유이면서도 부자유였다. 무력감과 무기력이 바오밥나무처럼 언제나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력감이 뿌리를 내릴 수 없도록 싸워야 했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투쟁의 과정 같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정신은 긍정의 낙타와 부정의 사자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 어린아이는 천진난만이요, 망각이요,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고,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어린아이는 자기 욕망에 충실하다. (…) 아이의 무기는 웃음이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을 뿐이다. 사자에게 힘든 전투(운명과 시스템에 대한 투쟁)였던 것이 아이에게는 놀이가 된다. 아이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굴러가는 바퀴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아이에 이르러서야 정신은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여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여행의 파도는 거세다. 하지만 여행에 있어 중요한 건 파도를 잘 타는 게 아니라는 걸, 중요한 건 그 자체를 얼마나 즐기고 있느냐라는 걸 이제는 알겠다. 모든 파도 앞에 웃음짓기에 여전히 내 가슴은 작다. 의지를 의욕하고 신성한 긍정을 발휘하기에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하지만 파도 앞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그건 알 것 같다. 삶의 놀이꾼이 되어가는 과정. 여행이란 그런 과정이 아닐까.

사흘간 앓아 누웠습니다. 베트남.

건치미남입니다용 샷. 몽골

불고기 요리법을 열심히 탐독 중인 영제.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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