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버 다이빙이 하고 싶었다. 프랑스에서 터키로, 터키에서 이집트로 비행기를 탔다. 유럽 여행이 시작되었던 이스탄불, 그곳으로 4개월 만에 돌아왔고 그곳에서 유럽 여행이 마무리됐다. 4개월 전에는 영제가 함께였지만, 이번에는 영제가 없다. 새로운 여행이 다시 시작됐다. 카이로에서 다합으로 야간버스를 탔다. 새벽에 몇 차례의 검문을 받았고 잠이 덜 깬 채 무작정 찾아간 바닷가. 다이빙 가게를 찾았다. 등록을 하고 교육을 받았다.
스쿠버 다이빙은 공기통을 갖고 바닷속에 들어가 탐험을 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물이 무섭다. 인류가 제아무리 기술의 발전을 이룩했다지만 산소 없이 살 수 없는 건 변하지 않았으니까. 풍부한 공기와 든든한 땅을 벗어난다는 것. 산소는 편리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조건이다. 공기 한 통만을 갖고 깊은 바다에 들어간다고? 두려웠다. 두려움을 사서 하는 일, 스쿠버 다이빙이 아닐까.
공기통을 메고, 납 벨트를 차고, 오리발을 끼고, 마스크를 쓰고, 입수. 5m, 10m… 20m… 30m….... 후- 하-, 호흡 소리와 공기 방울 소리만 보글보글 들린다. 내 숨소리를 들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후- 하-. 한정된 공기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숨을 깊고 천천히 쉰다. 후ㅡ 하ㅡ. 불필요한 행동을 아낀다. 후ㅡ 하ㅡ. 일종의 명상과 같은 과정을 거쳐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후ㅡ하ㅡ.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인어공주가 생각난다. 인어공주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뭍 세상에 가고 싶어 했다. 인어공주는 왜 지상을 동경했을까? 인어공주가 살던 세상이 궁금했다.
바닷속은 지상과 다른 세계다. 보는 것, 듣는 것, 숨쉬는 것, 온도, 모든 조건이 다른 세계. 가시광선은 빨간색부터 물속 깊게 다다르지 못한다. 빨, 주, 노, 초의 따뜻한 색 순서로 물에 흡수되어 간다. 깊어질수록 세상은 파란색과 남색, 보라색 차가운 색들의 세계가 되어간다. 실제로 물도 차가워지고 열 손실이 높은 물에서는 체온이 빠르게 빼앗긴다. 36.5도를 유지하려는 투쟁이 몸에서 시작된다. 빛은 공기에서 물로 들어갈 때 속도가 느려진다. 속도가 느려지는 그 순간 빛은 굴절되고 모든 물체를 1/3 정도 더 크고 가까워 보이게 만든다. 소리는 수중에서 4배 더 빠르게 전달된다. 어느 방향에서 소리가 들리는지 근원지가 어디인지 인간의 귀는 분간할 수 없다. 목소리도 자동으로, 꼬르륵꼬르륵 외계인 말로 변하기 때문에 수신호로 대화를 해야 한다.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안 되는 깊고 깊고 깊은 심연을 바라볼 때의 공포. 심연과 나 사이에 디딜 게 아무것도 없음에서 오는 두려움. 심연의 어둠으로 끌어당기는 땅의 힘과 빛으로 떠오르려는 공기의 힘, 그 중간 지점을 떠간다. 우주여행도 이렇게 부유하는 기분일까. 딛고 있는 땅이 없어서인지 균형을 잃을 때가 있는데,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끔은 정말 가라앉고 있다. 그때의 섬뜩함. 가라앉는 것도 위험하지만 갑자기 떠오르는 건 더 위험하다. 30m 깊이의 고압에 맞춰진 몸이 갑자기 떠오름으로 인해 낮은 압력 상태가 된다. 몸 안에 있던 공기들이 팽창을 하고 체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여러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수심 24m 부근에서는 질소 마취 현상으로 몽롱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럼에도 물속에 들어가는 건 바닷속 세상에는 모니터를 통해 보는 것, 수족관에서 보는 것 너머의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오색 찬란한 산호,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 신기해하는 나를 오히려 신기한 듯 쳐다보는 물고기, 일제히 방향을 바꾸는 물고기 떼의 번쩍임, 붉은색에서 모래색으로 바뀌는 찰나에 황홀한 색을 만드는 문어. 오랜 잠수 후 수면으로 나오는 바다거북의 호흡. 물속을 나는 듯 느껴지는 4m 매가오리의 유영. 수족관이 아닌,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생명만이 만들어내는 살아있음. 푹신한 소파가 아닌 아슬아슬함 속에서 만들어지는 살아있음. 그 살아있음은 아름다웠고, 전율마저 오는 감동이었다. 그 살아있음은 무엇이었을까. 생명은 자유 안에서만 빛나도록 태어난 걸까.
스쿠버 다이빙 후, 부력은 없어지고 중력만이 있는 세계로 돌아왔다. 땅을 디디며 점점 더해가는 무게, 살아있음의 무게를 느꼈다. 인어공주는 어째서 뭍으로 나오려 했을까. 지지 않아도 될 자신의 무게를 짊어지고 목소리를 잃으면서까지. 두렵지 않았을까. 뜨거운 공기와 눈부신 햇살이, 짊어져야 할 무게가. 이 모든 두려움을 감당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스쿠버 다이빙은 두려움을 이해해가는 과정이었다. 어찌해볼 수 없는 거대한 자연과 경이로운 세계를 이해해가는 과정. 두려움은 이해되는 만큼 아름다움을 허락했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왔고 두려움을 이해하는 곳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미지의 세계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기대, 공포와 설렘, 흥분과 감동. 삶의 아름다움은 그 경계를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고, 몸부림치는 그곳에 살아있음의 감동이 있었다.
물속에서 느끼던 죽음의 공포는 햇빛의 찬란함과 따뜻함에 쫓겨 사라졌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던 바닷속. 다시 돌아온 현실. 여전히 가혹하고 따분한 세상. 하지만 이제 그 세상조차 두 발로 딛고 뿌리를 내리는 기쁨이 있다.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살 수 있다는 기쁨. 숨을 쉬고 있다는 기쁨. 살아있음의 기쁨. 이 기쁨을 위해 여행자는 두려움과 설렘을 향해 떠나는 것이 아닐까. 후ㅡ 하ㅡ.
바다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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