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육식주의자도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전국귀농운동본부 주관으로 매년 열리는 '내 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 워크숍. 이 과정은 돼지 한 마리를 도축부터 발골, 가공, 시식까지 2박3일 간 이른바 '통-소화'를 한다. 이 글은 지난 2월 23일 경북 상주에서 열린 2018년 과정에 참여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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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눈 깜짝할새였다. ‘흑’. 짧은 비명조차 마음의 소리일 수 있다. 잠깐 다른 곳을 돌아보는 사이, 날카로운 칼이 그의 심장을 찔렀다. 움찔움찔. 피가 터져나온다. 전국 곳곳에서 모인 마음들, 부산하던 손들 모두 조용해졌다. 검은 털에 70kg 체중, 일 년 생 수컷, 그의 생이 마감되어 갔다. 이십여 명의 사람들과 한 마리 돼지. 다가오는 죽음을 그는 알고 있을까.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눈 돌리는 이 없다. 피를 많이 흘리면 잠 오듯 죽음이 온다는데... 그가 평안하길 빈다.

사슴 눈의 선생님이 눈가 촉촉히 다가와 돼지 눈을 감겨준다. “잘 가라...” 꿈틀대던 돼지가 가만해진다. 분위기는 더욱 숙연하고 신비로워진다. “이제 갔네.” 다음 단계를 알리는 선생님과 다가가는 사람들. 하지만 숨은 질기다. 꿈틀거리는 돼지. 사람들은 깜짝. 다시 눈을 감기는 선생님. “잘 가라” 또 꿈틀. 잠시 계속되는 ‘잘 가라’ 예식 혹은 실랑이.

발골과 내장 정리. 돼지 몸은 사람 몸과 닮았다. 하나였던 몸이 부위별로 나뉘어 간다, 모락모락 더운 김을 내며. 뼈를 발라내는 과정은 머리보단 손의 일. 붓처럼 흐르는 칼. 칼 한자루로 이루는 유체이탈. 아, 발라버린다는 건 이런 말이군. 워크숍 준비물에 왜 눈 달린 칼은 없었나.

촉촉 눈망울 선생님이 돼지 내장을 설명한다. “이것이 식도입니다” 설명은 맛을 기준으로. “여기에 붙어있는 살이 정말 맛있습니다. 저는 이것부터 먹어요.” 만연한 선생님의 미소가 맛의 정도를 말한다. 피에 젖은 한 손엔 식칼을 또 한 손엔 내장을. (선생님 아까의 촉촉함은 어디로... )

햄, 소시지, 베이컨(이하 햄소베)은 각각 안심과 등심, 잡고기와 껍데기, 삼겹살과 갈비살로 만든다. 48시간 이상 숙성하면 좋다. 양념에 잰 고기를 용도에 따라 포장한다. 햄은 셀로판지에, 베이컨은 포장없이 그대로, 소시지는 재료를 모두 갈아 식용 콜라겐 껍데기에 넣는다-본래 소창을 쓰지만 우리는 순대 껍데기에 썼다. 모두 훈연통에 건다. 너무 뜨겁지 않은 연기를 낸다. (자세한 방법을 알고 싶으시면... 2019년 워크숍을 신청하시거나, 책 <내 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을 읽으세요.)

귀농계에 전략공천이라도 있는 걸까. 어쩐지 상주 귀농 선생님들은 놀고먹기 어벤져스(팀)를 이룬다. 햄소베 선생님과 술 빚는 선생님, 가축 기르는 선생님과 바람잡이 선생님.


교육에 참가하기 전, 돼지를 잡는다고 하여 멱따는 소리를 떠올렸다. 망치로 정수리를 내려쳐 기절시킨 후, 돼지의 숨을 거두는 게 일반적인 모습. 말은 간단하지만 현실은 깔끔하지 않다. 살아있는 돼지의 정수리를 정확히 세게 내려치기는 어렵다. 전문 용어로 삑사리. 삑사리는 멱따는 소리를 의미한다. 고통과 공포의 비명이 마을에 울린다. (전하는 말로는, 친구의 친구가 호기롭게 망치로 돼지를 잡다가 멱따는 소리에 돼지 영혼이 씌어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며칠을 앓았다고 한다. 나무아미타불)

이번 수업은 보통의 방법과 달랐다. 기절한 채 죽는 돼지와 달리 깨어있는 돼지는 ‘죽고 있음’을 알 테다. 어느 죽음이 더 평화로울까? 어느 죽음을 선택하겠느냐고, ‘돼화’를 나눌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할까. ‘저승에 가느니 개똥밭에라도 구르겠네, 꿀꿀.’ 뼈와 근육, 오장과 육부. 내 몸과 닮은 그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지 않겠지.

돼지 잡는 날은 잔칫날일 수밖에 없었겠다. 큰 돼지를 홀로 손질(소화) 할 수 없어, 남녀든 노소든 여러 손이 함께 한다. 뜨거운 물이 필요하고, 불은 나무에 피워야 제맛. 모닥은 원시의 마음을 깨우고, 인간은 불가에 모여 선다. 지글지글. 고기를 얹으니 불도 혀를 날름날름. 미안했던 마음이 살아나고 다물었던 입들도 열린다. 염라대왕 있는 저승까지 갈 것 없이, 다른 생명을 취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조그만 변명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공동체를 위한 제물이라는 최소한의 예의 말이다.

우리는 더이상 햄소베를 만들지 않는다. 고기도 비닐에 쌓인 상품으로 만난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들을 일 없으니 돼지에게 미안할 일도 없다. 햄소베 속 화학첨가물의 해로움에 대해 우리는 말한다. 천연재료에 대해, 좋은 고기에 대해 우리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겨우 건강이 아니다. 햄소베를 먹고 나누던 시간은 말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맛에 대해. 왁자지껄 불가에 모여 앉는 맛, 손맛, 나눠먹는 맛, 지혜와 배움의 맛, 고되고 번거로운 맛, 한 생명을 온전히 취하는 맛, 그러니까 사는 맛 말이다. 더 갖기 위해 우리가 치른 값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이 중요한지 잃어버린 우리 삶, 인간성의 낭비 아닐까.


- 삼삼 선생님을 비롯한 상주 귀농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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