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으로 귀촌했다는 소식에 친구들이 물었다. “농사 잘 짓고 있냐?”
“엇, 나 농사 안짓는데” 기대와 다른(?) 답변에 친구들은 당황한다. “뭐야 그럼 거기 왜 있어?” 그래, 강원도 횡성보다 생소한 충남 홍성. 이곳에서 나는 뭘 하고 있는거지?
사실 이 결심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계획은 딱히 없었다. 주변에 지역 활동가로 사는 사람도 없었다. 홍성으로 내려오기 전, 부모님은 지역 활동가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냐고 물었다. 두 분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분명하게 설명을 하지도 못했다. 생태적인 삶, 주체성이 있는 삶, 지속가능한 삶, 그런 삶이 가능한 사회. 어렴풋한 이 개념을, 체화해보지 않은 생각을 말로 담아내기에 내 삶이 부족하다.
1주일 동안, 10여 곳의 집을 돌아보았다. 방 2개, 부엌 1개의 집을 계약했다. 화장실도 집 안에 있다. 이삿짐은 몸뚱이와 이불 뿐이었다. 살림이 필요하구나. 살림을 사지 않고, 채워 넣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채워나가 볼 수 있지 않을까? 돈이 아닌 관계로 살림살이들을 얼만큼 채워볼 수 있을까. 물론 돈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난 그런 놈이 아니다. 돈 없이도 살 수 있던 시대가 있었으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불편하더라도 기다려보자. 홍성 시장 사랑방에 ‘총각네 없는 물건들’ 목록을 붙였다. 태국 마사지를 해드리겠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살림 채우기 프로젝트를 이야기했다. 의자를 얻었다. 냄비, 후라이팬, 접시, 그릇 식기 셋트를 얻었다. 전기난로를 얻었다. 이불을 얻었다. 전기밥솥을 얻었다. 말 그대로 아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살림이 채워져 갔다. 홍성 생활 26일, 어느덧 사람 사는 구색을 갖췄다.
집에서 산지 3주. ‘원래’라는 단어 안에 함축된 것들. 이것들을 풀어보기로 한다.
우리집은 옛날에 지어진 가옥이다. 집 뒤로는 작은 대나무 숲까지 있어 살짝 스산한 기운이 돈다. 입주한지 몇 일 안 된 어느 날 밤, 샤워 중. 천장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우두두두두’ …뭐지? 잠시, 상황파악. 28년 내 모든 경험을 총동원해 상황을 분석해보았다. '…쥐구나!' 시간은 바야흐로 자정. 집에 살림도 없어 아직은 흉가스런 분위기. 귀신이 나와 밥을 지어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거 식은 땀이 나려는데.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아니야, 쥐귀신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걸. 그러고보니 그러네. 다행이다. 쥐는 무서운 동물이 아니구나. 안심.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불을 켰다. 벽에 뭔가 붙어있었다. 끼약! 다리가 백만 개는 넘어보이는 돈벌레가 나를 반겨주었다. 온몸의 털이 쭈뼛섰다. 0.3초 고민. 무시할까. 잡을까. 무시하자. 아냐, 잡자. 아냐, 무시하…하...기에는 내가 도망갈 곳이 없다. 망할. 그래도 고무장갑이 있어 다행이다. 고무장갑을 끼고 신문지를 들었다. 기합을 외쳤다. ‘아즈아~’ 요란하게 잡아야 벌레 잡는 느낌을 느낄 틈이 없다. 최소의 느낌은 최소의 정신 데미지. 신문을 얼른 구겨 쓰레기 봉투에 넣었다. ‘하, 수명이 단축되는 기분이야.’ 다음날, 불을 켰다. 돈벌레 세 마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잘 부탁해'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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