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가뭄을 견디는 풀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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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의 지역센터 마을활력소는 농촌 마을에서는 보기드문 신식 건물이다. 반(半)통유리 건물인 마을활력소, 참으로 화끈한 설계가 아닐 수 없다. 그 화끈함만큼 건물도 뜨겁게 하고 싶었나. 마을활력소에는 창문이라기에 민망한 코딱지만한 창이 달렸고, 환기가 잘되지 않는다. 통유리 건물 자체가 또 겨울엔 더 춥고 여름엔 더 더우니 아직 여름이 시작 안됐음에도 활력소는 낮이 되면 컴퓨터고 사람이고 모두 구워주마 온실이 된다(온실에서 자란 친구들아 오해해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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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가 누구인가 생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 아닌가. 서기 2014년, (구술되어 전승되는 활력사에 따르면)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덩굴식물로 햇볕을 막아보자." 그렇게 야심찬 그린커텐 프로젝트가 시도되었다. 하지만 까치콩 심는 시기를 놓쳐버린 호모 사피엔스들. 까치콩은 한참 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어서야 그들이 원했던 높이(2층)까지 자라났다. 서늘한 가을날 홀연히 그늘을 드리운 그린커텐. 누구를 위한 그린커텐인가. 그마저 가을 태풍에 쓰러져 버렸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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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올해는 더 빨리 까치콩을 심었다. 이것도 찜찜해 고무통에 그린커텐을 심었다. 고무통에 심긴 식물은 더 많은 온기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고무통은 수분을 저장하는 양이 적어 '더 자주 물을 줘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는데 이 사실을 몰랐던 동호모 사피엔스. 주말을 지내고 평화로이 출근하던 월요일 출근길. 까치콩 친구들이 비실비실 쓰러져 있었다. '무슨 일인가 친구들!!’ 잎이 말라가는 녀석도 있었다. "미안하닭" 얼른 물 한그릇 떠다 바쳤다. 모든 응급처치가 끝난 후 한숨을 돌렸다. 그때 문득 동호모는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목마른 까치콩들은 아랫잎부터 마르고 있었다. 부들부들 약해보이는 새순보다 튼튼해보이는 아랫잎이 먼저 마르다니. 하나의 사례이겠거니 싶었는데 올해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며 주변 많은 풀에서 까치콩과 같은 현상이 발견됐다. 마실 물이 없어지자 꽤 많은 종의 풀이 먼저난 잎부터 물 수급을 끊었고 새순이 마지막까지 버텼다. 겸손이었다. 풀들은 그렇게 비를 기다렸다. 태고의 세월을 진화하며 견뎌온 자연의 생존법은 오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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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콩을 하나의 인간 사회라 한다면,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하나의 까치콩이라 한다면 우리 사회는 지속가능할까. 우리는 이 시대를 지낼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모습은 자연스러운가. 전체 과세 대상 토지의 45%를 1%가 소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의 땅을 일부가 독점하는 우리의 모습, 살곳이 없어 도시난민으로 살아야하는 지금 청년의 모습 자연스러운가. 핵발전소 밀집률 세계 1위 대한민국. 반감되는 데만 수백만 년이 걸리는 핵폐기물을 만들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핵발전소 건설은 우리의 필요인가 자본가의 필요인가. 이 짐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우리의 모습은 자연스러운가. 젊은이들의 열정을 볼모로 노동을 착취하는 우리의 모습은 자연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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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운동을 이끈 장일순 선생을 알게 된건 요즘이다. 겸손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이분, 한살림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대단한 분이었음은 맞지만, 겸손이 자연의 순리라는 것은 의심치 않지만, 현대사를 읽은 요즘 겸손한 생명사상이 세상을 치유하는 속도보다 탐욕스런 산업주의(이승만, 박정희, 삼성)가 세상을 파괴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생명 운동이 확산되는데 겸손 너머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故장일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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