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몽골에서 유목민들과 일주일을 지낼 때의 이야기(2)

유목민 집에 가기 전 나와 영제는 양을 칠 거라는 생각에 얼씨구나 신이 났었다. 하지만 인간지사 한치 앞도 모른다더니, 우리는 몰랐다. 먹구름이 꾸물꾸물 밀려오고 있음을…유목민 가족과 함께한 일주일은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다. 가족이 있는 곳은 몽골 중부 지역이었었는데, 수도인 울란바토르로부터 3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약 6시간 버스를 타고, 2시간 자가용을 타고 들어가야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버스를 잘 못 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출발하던 날, 새벽같이 버스 터미널에 갔지만 우리가 타야 할 버스는 이미 출발하고 난 뒤였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그 버스를 찾았다. 떠나버린 버스표를 들고 돌아다니는 우리가 불쌍했는지 다른 버스 기사 아저씨가 그 근처를 지나가는 김에 우리를 태워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리가 없는 우리. 기사아저씨는 우리에게 버스비를 달라고 했다. 우리는 고이 간직하고 있던, 하지만 오래 전에 쓸모가 없어진 버스표를 공손히 드렸다.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우리가 왜 돈을 내야하는지 모든 과정을 또박또박 설명 해주었는데, 역시 우리는 같은 기마민족이었어서 그런지 그 몽골말을 잘 알아들었을리 만무. 호구 인증을 받고 싶지 않은 두 벙어리와 친절하지만 몽골말 밖에는 할 줄 모르는 기마민족 아저씨(심지어 종이에 글을 써서 보여줬는데 그 조차 몽골어였다. 벙어리가 아니라고...) 어쨌든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주머니의 전화로 오해는 풀렸다. 아, 좋은 분들이셨군요. 바이를싸(고마워요)! 

역시 편히 집에 누워 텔레비전으로 보는 양치기와 현실의 양치기는 달랐다. 양을 치는 일은 절대 낭만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치려 해도 주변 마을까지는 뛰어서 3시간이었다. 바람만 옴팡지게 부는 허허벌판. '겨우 일주일' 하고 갔는데, 게르에서의 첫날밤 나는 집이 그리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갓 입소한 군인의 마음.

당연한 말이지만 양에게도 입이 있어, 매일매일 풀을 먹여야 했다. 쉬지 않고 매일 먹으면 하루쯤 쉬어줄 법도 한데, 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었다. 풀을 먹이기 위해 게르에서 2~3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바이에르 뭉크에게는 대략 1,000마리의 양이 있었다.

양을 치는 방법은 단순했다. 양들은 ‘막대기를 든’ 사람이 다가가면 그를 피해 움직였다. 그리고 한 마리가 움직이면 곁에 있던 양들은 그 한 마리를 따라 모두 움직였다. 즉, 양 떼를 이동시키고 싶다면 뒤에 선 녀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한 가지 까다로운 점이 있다면, 양들은 앞서 가는 리더를 쫓는 게 아니라 분위기에 따라 수동적으로 딸려 간다는 점에서 발생했다. 뒤에 있는 양은 앞서 가는 양을 쫓아가고, 앞서 가는 양은 뒤에서 쫓아오니까 밀려가는 요상한 알고리즘.

그러니까 양들에게 방향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뒤에서 한 방향으로 밀어도, 최종적으로 전체에 전달되는 파급은 사방팔방, 우왕좌왕, 그야말로 난리법석이 됐다. 게다가 양은 200마리고, 양치기라고는 그 200마리를 뿔뿔이 흩어놓고, ‘내가 뭘 한거지?’를 묻는 얼치기라면 양 떼로도 개판을 만들 수 있는 거로구나를 깨닫게 된다.

며칠 관찰해본 결과, 양은 순종적인 동물이라기보다는 삶에 이유가 없는 동물이었다. 이리 몰면 이리 가고, 저리 몰면 저리 가고, 옆에 친구가 가면 따라가고, 살아가는 데에 먹는 것 외에 딱히 욕망이 없어 보였다. 요런 동물적 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녀석들이 어떻게 만 년을 넘게 살아남았을까.

나는 군대에서 7년을 지냈다. 군인 고등학교였던 것까지 더한다면 10년간 월급을 받았다. 매달 10일이면 월급이 들어왔다. 한 번쯤 틀릴 법도 한데 월급은 통장에 꼬박꼬박 정확하게 들어왔고, 나는 그게 참 신기했다. 돈이라는 걸 10년간 받아보니, 그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언제나 적당히 부족한 물건이라는 걸 알게됐다. 그리고 돈에게는 마법과 같은 힘도 있어 많이 가질 수록 오히려 그 주인을 소유했다. 

언젠가 동물원에서 백수의 왕 사자를 본 적이 있다. 때마다 꼬박꼬박 밥을 먹는 사자를 보면서 과연 사자는 자기가 사자라는 것을 알까 궁금했다. 물론 남들이 너는 사자야라고 말해줘서 알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모래성을 진정한 자아라고 할 수 있을까. 사자는 스스로 사자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건 그의 타고난 근육과 발톱을 써서 사냥을 하는, 즉 본연의 결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만이 아닐까.

타고난 결이 거세되었다는 점에서 그날 동물원에서 본 사자와 사슴은 다를 바가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였다. 그때껏 나는 내 힘으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평생 관념과 상상, 자기세계에 빠져 누군가 해주는 데로, 누군가 원하는 데로 살아왔을 뿐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야생에서 사냥을 해본 적도, 과일 채집을 해본 적도, 비를 쫓아 대이동을 하는 등 나를 스스로 증명해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야생이 ‘살아있음’을 뜻한다면, 나는 아직 살아본 적이 없는 자, 미생(未生)이었다. 나는 무엇일까. 인생을 밝혀나갈 불꽃과 같은 심지가 내겐 없었다. 

내가 근무한 부대는 분당 근처였다. 분당에는 탄천이라는 개울을 따라 산책로가 있었다. 나는 거의 매일 밤 그 길을 걸었다. 산책을 나온 많은 사람을 보았다. 연인과 나온 사람, 아이와 함께 나온 사람, 머리에 흰 서리가 앉은 황혼의 부부. 그 사람들에게서 언젠가 거쳐갈 내 인생의 정거장도 보았다.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이란 사탕은 이미 내 손안에 있었다.

양치기를 한지 일주일, 거울에 비친 더부룩한 수염을 보았다. 남성은 2차 성징부터 수염이 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수염이 나는 것으로부터 어른이 되는 것이라 생각을 했다고. 지난 10년, 나는 수염을 기를 수 없었다. 언제나 단정하게 나를 다듬어야 했다.

겨우 수염일뿐이지만 나는 그조차 이제야 비로소 내 의지로 기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내 인생 앞에 섰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낼 기회가 온 것이다. 물론 내 상상과 달리 나는 겁많은 몽구스일 수도, 순진한 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야생 양은 활기차며 용기가 있고 독립적이다.’고 위키백과는 말하니 두고 볼 일 아닐까. 야생 양이 된다면 나라는 사람도 용기 있고 독립적인, 진짜 사람이 될지 모르니. 적어도 ‘누군가'가 아니라 ‘나’로 죽을 수 있을 테니.

* 몽골 여행 비디오 보기(동호 편)
http://www.youtube.com/watch?v=VSicLh_XDlY



유목민 바이에르 뭉크


양떼로도 개판을 만들 수 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쉽지 않은 유목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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