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인간의 친밀행동>을 쓴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데스몬드 모리스는 이와 같은 상태를 '일시적 유아성 증후군'이라고 말합니다. 병에 걸리면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드러눕게 되는데, 여기서 건강할 때에는 누리지 못했던 큰 위안을 얻게 됩니다. 고통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약해진 사람은 유아적인 심성에서 나오는 신호를 자신을 돌보아줄 수 있는 사람에게 보냅니다. 그러면 돌봄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 - 의료인, 몸을 만지는 전문가 - 의 도움을 받거나, 어머니의 손길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의 '일시적 모성'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친밀한 '정'에서 나오는 이 행위들은 놀라운 치유효과를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빈틈없이 순수한 마음인 '정성'과 사랑과 친근함의 '정'이 실리지 않은, 그저 그런 기능적인 손길에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49. 접속중독. 온라인 세상에서 그물망처럼 얽히면서 접속되어 있으니 나와 남의 경계가 없어지고 서로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네트워크 속에서 한 순간이라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룹에서 소외되고 타인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그러한 습관적 중독행위에 빠져들게 하는 건 아닐지.


50. 생활의 도구일 뿐인 '그것'에 종속되어 살다보니 삶의 주체이자 본질인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일 줄 모릅니다.

누에고치처럼 자기만의 공간에 머물려고 하는 '코쿤족'.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대화를 하지 않는 '디지털 무언족'이란 신조어도 생겨났습니다. 이들이 디지털 상에서 나누는 대화는 주고받는 쌍방향성이 아니라 일방향성으로, '내 할 말은 이것'이라는 듯 문자로 이야기를 던져 놓을 뿐입니다. '나는 할 말을 다했다'는 식으로 행동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개인주의적 대화법입니다. 서로 얼굴을 보면서 나누는 대화가 서로를 잇는 '선'과 같다면 디지털 무언족의 문자 대화는 수많은 '점'들이 불연속적으로 퍼져 있는 형태와 비슷합니다. 이 때문에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대량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이를 즐기기도 하지만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낄 개연성도 커진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기다리지 못합니다. 클릭만 하면 정보가 바로 나오니 사람들이 무엇이든 즉석에서 해답을 찾으려 합니다. 참을성, 인내심이 없어지니 깊이 생각하지 못합니다. 조금이라도 늦게 반응하면 화를 내고, 욕을 해대고, 집어 던지고, 주먹을 휘두르고, 흉기를 들이댑니다. 마음 속에서 걸러지지 않고 바로 튀어나오는 생각이나 행동을 즉흥적으로 쏟아내고 행동해버립니다.


54. 요즘 우리 주변에서 소중한 생명들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삶이 어렵고 힘들고 무가치하다고 생각되어서 자신의 목숨을 끊고, 관계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 때문에 타인에게 보복심리로 살인하는 이들이 왜 자꾸 늘어가야만 합니까. 길을 잃고 헤맬 때는 원점으로 돌아가 주변ㅇ르 다시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문제해결의 열쇠가 됩니다. 이제 우리 관계를 건강하게 되살리고 가족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돌아보면서 관계에서 풀지 못하고 맺힌 채 남아있는 매듭은 관계에서 풀어야 합니다. 서로 접촉하면서 아픔을 어루만져주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99. "매일같이 나는 신에게 감사한다. 네가 내게로 온 것을.

운명이 두 영혼을 맺어준 것을.

내가 태어난 것은 오직 너를 만나기 위함이었고

내가 어른이 된 건, 너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존 레논


182. 마음에 상처를 남긴 어떠한 정서적 사건이라도 내 삶에서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면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압력밭솥을 비유로 들어봅니다. 쌀은 압력밭솥에서 밥으로 꼴이 바뀌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됩니다. 쌀은 밭솥 속에서 뜨거운 열을 받으며 다 익어 뜸이 들 때에는 배출구로 열기가 빠져나가야 밥이 됩니다. 관계 속에서 맺힌 감정을 풀지 않고 마음에 담아둔 채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증기배출구가 막힌 압력밥솥에 불을 계속 지피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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