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작가의 조건) 작가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자발성과 아이처럼 예민한 감수성과 화가 못지않게 ‘순수한 시각’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참신하고 신속하게 반응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환경도 마치 처음대하는 환경처럼 대한다. 그러한 특징과 개성은 그 즉시 케케묵은 범주 안에 분류되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처박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신의 손을 통해 나날이 새롭게 주조되는 듯하다. 상황에 곧바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만큼 작가에게 ‘진부하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작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2천 년 전에 말한 ‘사물의 연관관계’에 늘 주목한다. 이런 신선한 시각이야말로 작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재능이다.
42. 어른스러움과 분별력과 절제와 공폄함. 이런 특징은 예술가보다는 장인과 비평가의 모습에 가깝다. 예민한 감수성과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구석도 중요하지만 예술가가 방금 지적한 면모를 갖추지 못한다면 예술 작품은 탄생하지 못한다.
46. 이야기를 차분히 기획하는 단계에서는 이야기를 쓰는 데 필요한 거침없는 표현이 창 밖으로 마구 흘러나온다. 그러다 긴장을 놓는 순간 이야기는 갑자기 방향을 잃고 만다. 혹시 쓰는 이야기마다 모두 비슷하지는 않은지 두렵고, 이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두 번 다시는 이만큼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쓰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그는 유명 작가들을 모방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는 이 작가만 한 유머나 저 작가만 한 독창성이 없기 때문이다. 백 가지 이유를 대며 자신을 의심하는 사이 그의 자신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자신을 격려해준 사람들이 너무 후하거나. 시장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어 성공하는 소설의 기준을 모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진짜 천재의 작품을 읽어보니 둘의 재능 차이가 그의 희망을 모조리 집어삼키고도 남을 만큼 커 보인다. 그런 상태에서 이따금 자신의 재능이 살아 요동치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런 기간은 몇 달 또는 몇 년 넘게 이어질 수도 있다.
작가라면 누구나 이러한 낙담의 기간을 경험한다.
48.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성격의 두 가지 측면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얼마든지 훈련할 수 있으며, 그러한 훈련의 첫 번째 단계는 한 사람이 아니라 마치 두 사람을 교육하듯 자신을 교육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49.
할 말이 없을 때는 침묵하라.
진정한 열정이 솟아오르거든 할 말을 모두 하라.
정열적으로 말하라.
D.H. 로런스
경험이란 그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것에 관여하는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
53. 마음의 이 두 가지 기능을 가능한 한 서로 멀리 떨어뜨려놓는 법을 터득한다면, 이 둘을 동일한 마음의 두 측면이 아니라 서로 별개인 인격으로 바라보는 법을 터득한다면 일종의 모의 작업 상태에 이를 수 있다. 그럴 경우 실제로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 자신을 단련하는 데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이 된다.
54. (작가 안의 두 사람) 따라서 한동안은 자신을 의식의 힘을 빌려서라도 한 사람 안에 있는 두 사람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일상의 문제들에 정면으로 맞서는 고리타분하고 현실적인 인물이 있을 것이다. 이 인물은 무신경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인물의 경우 이지적인 비평 능력, 공평함, 끈기를 배워야 한다. 아울러 그와 동시에 이 인물의 최우선 임무는 예술가 자아에 바람직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반면 이중 인격의 또 다른 반쪽은 민감하고, 열정적이면서, 종잡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인물이 그러한 특징을 일상 세계로 끌고나가게 해선 안 된다. 점잖은 측면이 이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대처해 고초를 겪게 하거나, 엄격한 관찰자의 눈에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해서도 안 된다.
54. 이중 인격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이익은 그대와 세상 사이에 투명한 장벽을 세우게 된다는 점이다. 이 장벽 뒤에서 그대는 자신의 속도에 맞게 예술가로 성숙해 나갈 수 있다.
58. 또 한 가지 이유는 작가의 글을 쓰는 자아는 본능과 감정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자칫 방심할 경우 작가는 자신의 재능을 끊임없이 채워놓고 자극하는 삶보다는 아무 고민 없이 그저 편하기만 한 삶에 빠져들기 쉽다. ‘예술가 기질’은 대개 공상 속에서 스스로를 연마하고 고독 속에서 즐길 때 완전하게 발현된다. 그런 가운데 어쩌다 가끔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저절로 펴면으로 떠오른다. (…) 따라서 처음부터 자신은 행동의 변덕에 좌우되기 쉽다는 점을 직시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좋다.
59. 하지만 스스로에게 단지 엄격하고 근엄하기만 한 선배가 아닌 둘도 없이 절친한 친구가 되도록 신경 써야 한다.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 자극이고, 가장 좋은 즐거움이고, 가장 좋은 친구인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63. 두 자아가 각기 자신의 위치를 찾아 자기한테 맞는 기능을 수행하게 되면 손을 맞잠고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끊임없이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고 다독인다. 그 결과 두 자아는 예전에 비해 몰라보게 균형 잡히고, 성숙하고, 활기 넘치고, 진득한 인격으로 통합된다.
79. 무의식의 비옥한 자양분이 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려면 무의식이 기선을 잡았을 때 힘들이지 않고 쉽게 글을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터득하려면 평소보다 30분이나 한 시간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다. 일어나자마자 말을 하거나, 조간 신문을 읽거나, 전날 밤 치워두었던 책을 집어들지 말고 글을 쓰기 시작하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 내용이나 쓰라. 기억할 수 있다면 간밤에 꾼 꿈도 좋고, 전날 했던 활동도 좋고, (실제든 상상의 산물이든) 대화도 좋고, 양심의 성찰도 좋다. 어떤 종류든 상관 없으니 이른 아침의 공상을 비판의 시각을 들이대지 않고 빨리 쓰는 것이 관건이다. 글의 우수성이나 궁극적인 가치는 아직 중요하지 않다.
(…) 이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기록하면서 수면 상태와 깨어있는 상태의 중간 지대에서 쉽게 글을 쓸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 비는 시간만큼, 또는 충분히 썼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가능한 한 오래 쓰는 것이 좋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훈련이 결실을 거두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가 더 이상 고역스럽거나 지루해 보이지 않으면서, 글로 옮겨 적은 공상을 통해 마음 뒤편에서 거의 말 없이 이루어지는 공상 못지않게 많은 것을 (실은 훨씬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펜을 집어들고 거의 충동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최대한 쉽고 자연스러워 보이게 이 아침 일과를 수행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처음에 시작했을 때보다 더 많이 쓸 수 있는 능력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을 주의 깊게 지켜보라. 언제고 공상이 다시 게으름을 피운다 싶으면 채찍질을 해야 할 때라는 뜻이다. 글을 쓰다 보면 아무리 쉽게 쓰는 작가에게도 이따금 정신이 바싹 말라붙는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런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침대 옆 탁자에 연필과 종이를 갖다놓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글을 쓰라.
85. 본인에게 그럴 의사만 있다면 바쁜 하루 중에서 15분도 내지 못할 만큼 얽매여 사는 임금 노예는 거의 없다. 글을 쓸 15분을 언제 내는 게 좋을지 정하라. 앞으로는 이 15분 안에 글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는다. 인정할 따름이다.
나는 만물의 기준이자 세상의 중심이다.
ㅡ 윌리엄 서머싯 몸
112. 독서를 통해 효과를 얻으려면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어떤 부분이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책을 읽어야 한다.
비판력을 키우게 되면 아마추어 입장에서 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두 번 읽어라)
작가 입장에서 책을 읽는 법을 터득하려면 처음에는 뭐든 두 번 읽는 길밖에 없다. 단편이든, 기사든, 소설이든 아무 부담 없이 책을 그저 즐겼을 때처럼 그 어떤 비판도 가하지 말고 빨리 읽어치우라. 다 읽었으면 당분간 책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연필과 메모장을 꺼내라
(대강의 판단과 자세한 분석)
우선 방금 읽은 책의 개요를 짤막하게 작성하라. 마음에 들었는지 아닌지, 믿음이 갔는지 아닌지, 마음에 들었던 부분과 그렇지 않았던 부분은 무엇인지에 비추어 대강의 판단을 내려라.
진술 내용을 계속 늘려나가라.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처음에는 모호하더라도 기죽지 말라. 책을 다시 읽어보면 그러한 반응의 원인을 찾게 될 것이다. 책 내용 가운데 더러는 훌륭해 보였던 반면 나머지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면 작가가 언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되짚어보라.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은 솜씨로 그려졌는가. 형편없이 그려졌는가, 아니면 어쩌다 가끔만 일관성 있게 그려졌는가? 이렇게 느낀 이유를 알겠는가?
(두 번째 읽기) 개요를 작성해 자신의 질문에 답하고 나면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했거나, 자세히 파고든다면 답을 알 수 있었을 것 같은 질문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어나가면서 분명해 보이는 대답을 찾는 대로 메모장에 기록하라. 특별히 잘 처리된 구절을 발견하거나, 작가는 솜씨 있게 다루고 있지만 자신이 다루기에는 어려울 것 같은 소재가 눈에 띄면 표시해두라.
(중요한 점)
비판 어린 시선으로 책을 읽을 때 얻을 수 잇는 자극과 유익함은 끝이 없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읽어야 한다.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대목에서 책의 호흡이 빨라지는지 느려지는지에 주목하라. (…) 작가가 모든 일에 개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특정 등장인물의 의식을 따라가는 가운데 그 인물이 보기에 분명한 것만 말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가? 아니면 처음에는 이 사람, 다음에는 저 사람, 그 다음에는 또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글을 쓰는가?
좋은 소설은 주인공에 관한 진실을 들려주지만,
나쁜 소설은 작가에 관한 진실을 알려준다.
ㅡ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121. (모방에 대하여) 모방이 효과를 지니려면 완전한 숙지와 인정을 통해 그 대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125. 마지막으로 자신의 글로 다시 돌아가 새로운 눈으로 읽어야 한다.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며 읽어나가라. 여기저기 손볼 데가 보이지 않는가?
세상에 재미없는 주제는 없다. 무심한 인간이 존재할 뿐이다.
ㅡ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예술가의 모든 작품은 자기 영혼의 모험이 표현되어야 한다.
ㅡ윌리엄 서머싯 몸
128. (순수한 시각 되찾기) 천재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가 자신의 세상을 넓혀 나가면서 느끼는 생생하고도 강렬한 흥미를 평생 잃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는 권태는 작가에게 매우 위험하다. 권태로워지면 우리는 일상의 관랄력, 신선한 감감, 새로운 생각을 더 이상 스스로 끌어내지 못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소재를 찾기 위해 인생의 똑같은 시기로 되돌아가 유년기나 청소년기의 감동을 끊임없이 쓰고 또 쓰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131. 바람직한 상태에 이르려면 매일 조금씩 시간을 따로 내서 아이처럼 ‘순수한 시각’을 되찾는 훈련을 해야 한다. 하루에 30분씩 눈을 크게 뜨고 매사에 호기심을 보였던 다섯 살 시절로 돌아가라. 한때는 숨쉬기처럼 자연스러웠던 일을 일부러 하려니 신경이 쓰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새로운 소재를 마구 모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132.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거리를 지날 때 15분만 시간을 내서 눈에 띄는 사물 하나하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듯 자신에게 말해보라.
135. 천재의 재능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천재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은 뭐든 활용한다. 천재에게 너무 깊숙이 가라앉아 되불러낼 수 없는 경험이란 없다. 천재는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상상력에 기대 거기에 딱 맞는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 무관심과 권태의 나락에 빠져드는 것을 거부한다면 삶의 모든 측면을 글의 소재로 되살려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사를 당연하게 여기는
거의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ㅡ 올더스 헉슬리
139. 편집자와 글쓰기 교사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얻은 중요한 교훈 한 가지가 있다면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는 본보기로 삼은 작품 안에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특징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작가 지망생이 똑같은 옷본을 사용해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옷본을 빌려 외투를 재단 할 경우 십중팔구 실패하기 마련이다. 독창성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다. 즉 세상에 대한 이해를 자신의 눈에 비치는 그 모습 그대로 공통된 경험 안에 담아낼 수 잇을 뿐이다. 작가는 글쓰기 인생에서 이 점을 되도록 빨리 깨닫는 것이 좋다.
겪는 경험도 저마다 다르고, 내리는 결정도 각기 다르다. 그대와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사람 또한 없다. 따라서 이런 조건에 익숙해 질 수 있다면 주어진 상황이나 특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또한 세상 모든 사람 중에서 오로지 자신만이 아는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면 당연히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보통의 작가는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한 뒤로 다른 사람의 글에 푹 빠져버리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십상이다. 물론 이따금 상상력이 풍부하고 사고가 유연한 작가가 꽤 훌륭한 작품을 써내면 우리는 독창적인 이야기에 가깝거나 모방한 티가 전혀 나지 않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대개 이해의 부족, 즉 자신의 소설 속 등장인물에 대한느닷없는 오해는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독착성은 모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을 자기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을 글로 옮겨놓는다. 그들의 작품이 솔직하고 활기가 넘치는 이유는 그 어떤 편향이나 왜곡 없이 개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 어리석거나 영웅을 숭배하는 젊은 작가에게 이 점을 상기시키기가 너무나 어렵다.
143. (정직, 독창성의 근원) 그 동안의 경험을 들어 오늘의 신념이 내일의 신념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확신하며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지길 망설이는 초보 작가가 너무나 흔하다. 이런 초보 작가는 일종의 주문 같은 것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는 궁극적인 지혜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주길 기다리다가 그 시기가 너무 늦어지면 자신은 글을 쓰긴 글렀나 보다고 지레 판단해버린다. 이러한 기다림이 (가끔 그렇듯이) 단지 글쓰기를 막연히 미루는 신경과민성 핑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어려움으로 작용할 경우 그는 전력투구하지 않고 건성으로 반쯤 이야기를 쓰다가 거기서 그치고 만다.
이런 작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혼자만 그런 일을 겪는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계속 성장할 뿐만 아니라, 글을 쓰려면 우리의 현재 신념의 토대 위에서 글을 써야 한다. 마지못해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쓴다 해도 자신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최종 관점에서 동떨어져 있다면 죽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미완성인, 스무 살 시절 세상에 대해 가졌던 최종 확신과도 거리가 먼 세상에 머물러 있기 십상이다.
(자기 자신을 믿으라)
(…) 심금을 울리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주인공이 어떻게 어려움에 대처하느냐, 그런 막다른 골목에 대해 작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것들이 바로 작가의 이야기를 진정 작가만의 것으로 만들어준다. 이야기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것은 작품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가 자신의 개성이다. 그 자체로 진부한 상황은 없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다만 무신경하거나,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속을 털어놓지 않는 작가가 있을 뿐이다. 인간은 동료 인간이 맞닥뜨린 궁지가 속속들이 묘사될 때 감동을 받는다.
(그대의 분노와 나의 분노)
“그대의 사랑과 나의 사랑, 그대의 분노와 나의 분노는 똑같은 이름으로 불린다는 점에서 서로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과 이 세상 어느 두 사람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그 둘은 완전히 똑같을 수 없다.”
아그네스 뮤어 매켄지, <문학의 과정>에서
사실 두 가지 기본 원칙이 있을 뿐이다. 첫째, 소설가는 자신의 팔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것만 다루어야 한다. 둘째, 주제의 가치는 작가가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또 그 안으로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느냐에 거의 전적으로 달려 있다. (…) 자신의 글에 최종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통찰력이며, 선하고 맑고 정직한 마음이 있는 곳에선 진부함이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
148. “자신이 의견을 개진하고 싶을 만큼 생동감 있는 이야기라면 뭐든 써도 상관없다.”
어떤 상황이 그 정도로 관심을 끈다면 그 상황은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잇다면 이야기의 토대는 이미 마련된 셈이다.
149. (양도할 수 없는 개성) 작가는 독자의 관심을 붙잡아두면서 독자가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작가가 이끄는 대로 이 대목에서는 감동을 받고, 저 상황에서는 슬퍼하고, 또 다른 상황에서는 마음놓고 실컷 웃도록 유도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소설은 설득력을 지닌다. 종류 여하를 막론하고 무릇 지어낸 이야기의 근저에는 작가의 확신이 자리한다.
따라서 작가는 마땅히 삶의 중요한 문제 대부분에 대해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것은 무엇이며, 글의 소재로 사용하게 될 삶의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150. 글의 토대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야 한다. 훌륭한 작품은 흔들림 없는 확신에서 나오며, 그리하여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
모든 좋은 말에는 그보다 좋은 침묵이 담겨 있다.
침묵은 영원처럼 깊고 말은 찰나처럼 얕다.
ㅡ 토머스 칼라일
침묵을 경청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ㅡ 토머스 하디
154. (말 없는 여가 시간)
결론은 간단하다. 스스로 마음이 내켜서 글을 쓰고 싶다면 말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어야 한다. 극장에 가거나, 교향악단의 연주를 듣거나, 박물관에 들르기보다 혼자 장시간 산책에 나서거나, 혼자 버스를 타보라. 진지하게 계획을 세워 말하거나 읽는 것을 멀리한다면 큰 보상이 따를 것이다.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은 말 없는 활동
진정한 작가에게는 각각의 작품이
이룰 수 없는 것에 다시 도전하는 새로운 시작이다.
항상 작가는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거나
다른 이들이 도전했다가 실패한 것에 도전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이따금 큰 운이 따라 성공하게 된다.
ㅡ 어니스트 헤밍웨이
162. (자신만의 문체를 찾으라)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문체, 자신만의 주제, 자신만의 어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자신의 본성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그대가 참다운 작가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166.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의 첫 번째와 마지막 문장을 정해두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첫번째 문장은 이야기 속으로 풍덩 뛰어들 때 내딛는 발판으로, 마지막 문장은 앞으로 헤엄쳐 나갈 때 몸을 잘 뜨게 해주는 부낭으로 활용할 수 있다.
(…) 이야기를 일단 쓰기 시작했으면 그 날 끝내야 한다.
천재는 이상을 지닌 재능이다.
ㅡ윌리엄 서머싯 몸
천재란 그것을 지닌 자를
온갖 고난에 빠뜨릴 만큼 탁월한 재능이다.
ㅡ 새뮤얼 버틀러
174. (천재의 뿌리) 천재(여기서 ‘천재’는 ‘비범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는 의미)의 뿌리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안에 있다.
175. (더 높은 수준의 상상력) 무의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도움을 준다. 어떤 예술이든 무의식에 저장된 기억과 감정뿐만 아니사 상상력이라는 무의식의 알찬 내용물에 의지해야 한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이러한 자원을 끊임없이 활용하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펼치며 편안하게 살아간다. 그런 사람은 생명력과 활기가 무한정 넘쳐날뿐더러 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울림을 억누르는 법이 없다.
176. (무의식과 타협하라) 글을 잘 쓰려면 당면한 지식의 문지방 뒤에 자리하는 우리 본성의 거대하고 강력한 이 부분과 타협해야 한다.
진정한 천재는 자신이 어떻게 일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 채로 평생을 살아간다. 천재는 꿈꿀 때, 앉아서 빈둥댈 때 등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있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많은 경우 천재는 자신의 마음이 백지처럼 텅 비어 있다고 믿는다. 때로 우리는 ‘불모의’시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며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천재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침묵의 시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지나가기 마련이고, 글을 써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다.
천재의 게으름은 단지 표면상의 침묵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챌 만큼 영특한 관찰자들은 이 낯설고도 고립된 시기를 ‘예술적 혼수 상태’라고 불러왔다. 분명히 뭔가가 작용하고 있긴 하지만 너무 깊숙이 가라앉아 있어 생각을 구체화할 준비를 갖추기 전까지는 활동의 조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천재에게 쏟아지는 괴팍하다느니 무례하다느니 하는 비난 뒤에는 대개 고독 속에, 한가로운 여가 속에, 오랜 침묵 속에 푹 잠기고 싶어하는 예술가의 절실한 욕구가 있다. 침묵의 기간이 인정받고 용인된다면 부작용이 생길 리 없다. 이따금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초탈의 시간을 갖는 것이 예술가의 특징이다.
한 발 뒤로 물러나 무신경하게 지내다 보면 이름 없는 기능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지만 스스로의 통제 아래 그 시기를 어느 정도 앞당길 수 있다. 그러려면 더 높은 수준의 상상력을, 직관을, 무의식의 예술적 측면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작가의 비법은 바로 거기서 나오며, 그런 능력이야말로 작가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비책’이다.
기적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것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ㅡ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180. 번득이는 통찰력과 날카로운 직관 그리고 상상력은 서로 협력해 평범한 경험을 ‘더 고귀한 현실이라는 현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런 점에서 이 세 가지는 예술의 필수 요소다. 아니면 한 발 양보해 삶을 해석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다.
이 모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위치한다. (…) 이 요소가 글쓰기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이 요소의 활동을 가로막는 방해물을 제거해 자신의 작업 안으로 자유롭게 흘러들도록 하는 법을 터득한다면 작가로서 크게 성공할 수 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시대와 인종을 초월해 위대한 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재능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 너무나 위대해서 편의상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삶과 예술 작업에서 나머지 인간들보다 그러한 기능을 좀더 자유롭게 발휘했을 뿐이다. 재능의 흔적을 아예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인간은 없다.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너무나 위대해 타고난 재능을 남김 없이 무한정 사용하는 인간 또한 없다.
185. (주기, 단조로움, 침묵) 침묵의 시기가 찾아온다. 작가마다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그런 막간극에 몰입하기 때문에 이 기간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분모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승마, 뜨개질, 카드놀이, 산책, 조각 등 아주 다양하다. 물론 세 가지 형태의 공통분모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즉 이 기간은 주기성을 띠고, 단조로우며, 말이 없다. 그것이 우리의 열쇠다.
(…) ‘생각을 품는 시기’를 짧게 줄여 더 좋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그 방법이야말로 작가의 비법이다.
동료나 선배보다 나은 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
자신보다 나은 자가 되려고 노력하라.
ㅡ 윌리엄 포크너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이 확실히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ㅡ 올더스 헉슬리
189. 작가의 비법 (마음을 가만히 놔두라)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즉 몸을 가만히 놔두듯 마음을 가만히 놔두는 법을 익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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