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인간에 대한 경멸과 인간을 조종하는 방법에 관심이 컸던 나폴레옹에게 마키아벨리는 누구보다도 친숙한 스승이자 친구였다.
53. 레닌을 비롯해 당대의 러시아 학생들은 <자본>을 읽었으나 우리 학생들은 <자본>을 읽지도 않고, 아니 읽지도 못하고 혁명가가 되었다. 그래서 쉽게 변절했을 리는 없겠지만, 사상적 뿌리가 깊지 못했음은 사실이다.
54. 독서가 혁명가를 만든다.
<자본>을 읽은 뒤 레닌은 광장 노동자들과 함께 공부 서클을 시작하면서 파업, 노동법, 벌금, 노동법원 등에 대한 소책자를 여럿 썼다. 그것은 이론과 실천을 연결하는 최초의 혁명가 훈련이었다.
56. 1900년의 최초 망명지인 스위스에서 레닌은 하루 15시간 동안 도서관에 처박혀 독서하고 집필을 했다. 특히 ‘불꽃’이라는 뜻의 신문 <이스크라Iskra>발행에 열중했다. 이어 1901년 독일 뮌헨도서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다. 망명 생활은 바로 도서관 생활이었다. 1902년부터 체류하게 된 런던에서도 영국도서관의 방대한 서고와 연구 작업을 위한 편리한 시설에 매료되었다. 마르크스, 찰스 디킨스, 간디, 예이츠, 이사도라 덩컨,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버지니아 울프 등이 드나든 곳이다. 특히 마르크스는 그곳에서 약 30년을 살았다. 그는 엥겔스를 만나러 맨체스터에 갔을 때에도 도서관에서 만났다. 사실 도서관만큼 만남의 장소로 멋진 곳이 다시 없다.
58. 그 뒤 파리로 갔으나 관료주의 탓에 불편해했다. 가령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면 집주인의 보증이 있어야 했는데 집주인은 보증을 서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국립도서관은 거리가 멀어 연구가 불편했다. 레닌은 항상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갔는데 제네바와 달리 파리에서 자전거를 타기란 위험했다. 또 도서관은 점심시간 뒤 문을 닫았고 책을 신청한 뒤 하루나 이틀이 지나야 책을 받을 수 있었다. 레닌은 국립도서곤에 불평을 쏟아냈고 더불어 파리까지 욕했다. 게다가 자전거를 도둑맞기도 했고 자동차와 부딪혀 완전히 망가뜨리고도 했다.
59. 긴 망명 생활은 가난하고 외로웠다. 그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다. (…) 1913년에 사랑한 여인에게 남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부르주아의 99퍼센트, 청산주의자들의 98퍼센트, 볼셰비키의 약 60~70퍼센트)은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 줄 모르고, 단어만 암기할 뿐이야.”
60. 남한에서 레닌은 무너진 동상 조각으로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는데 한 세대도 지나가기 전에 다시 레닌이 등장하고 있다. 과거의 레닌처럼 우리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슬라보이 지제크 등의 유해하는 서양인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지제크에게도 부서진 조각을 이어 붙여 새로운 동상을 세울 재주는 없는 듯하다. 애드벌룬처럼 잠시 띄우기는 할 수 있어도 지난 수십 년처럼 대지에 굳게 뿌리내리게 하기란 힘들 것 같다.
61. 혁명이 필요한 시기면 레닌은 혁명의 아이콘처럼 떠올랐다가 조만간 다시 사라지는 주기적 유행인 것 같다. 경기의 주기처럼 혁명 의식의 주기도 있는 것일까? 호경기와 불경기가 반복되는 것처럼 레닌과 비레닌이 번갈아가며 춤을 추는 것일까? 사상이 이런 식으로 유행하는 것이라면 그 사상은 제대로 된 고유한 가치를 갖는 것일까? 아니면 깨춤에 불과할까?
62. 엄청난 학식과 혁명가의 정열적 기질, 천부적인 전술적 재능과 위대한 통치능력을 한 몸에 갖춘 사람, 레닌은 당의 인정받는 지도자였다. 레닌은 자신의 설득력과 도덕적 권위 덕분에 당을 통솔한 것이며, 훗날 볼셰비즘의 특징적 요소가 된 기계적 원칙을 이용해서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 아이작 도이처 <미완의 혁명 : 러시아 1917-1967>
나는 여기에 레닌이 베토벤과 톨스토이의 작품을 평생 좋아했고 그림도 사랑했으며, 도서관에서 평생 살다시피 했고 그의 혁명은 도서관에서 나왔다고 덧붙이고 싶다. 레닌은 권력을 잡은 뒤 국가출판국에 고전을 저렴하게 재출간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광범위한 문화 활동을 지원했으며 특히 도서관을 대폭 확충했다.
레닌의 묘는 크렘린 앞 붉은 광장에 있지만 그의 영혼은 레닌도서관에 있다. 1970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중앙 열람실 앞쪽 위에 책 읽는 그의 좌상이 세워졌다. 배경 벽화에는 노동자, 농민, 지식인, 학자 등 다양한 인민의 그려져 있고 열람실 주위로 16인의 흉상이 있다.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이다.
63. 도서관은 모든 사상의 산실이다. 특히 사회주의를 비롯한 모든 공공 사상의 실험실이다. 그리고 지식을 사유가 아닌 공유로 갖는 곳이다.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공유에 있지 사유에 있지 않다. 그래서 도서관은 아름답다. 외양이 화려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지적 모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아름답다.
65. 공포정치로 강철 권력을 만든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프랑수와 라블레가 텔렘 수도원 출입구에 붙인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
74. 스탈린은 소련을 완전히 바꾸어 거대한 산업 군사 강국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단순히 서양을 빨리 따라잡고자 한 것이 아니라 더욱 컸다. 즉, 소련의 새로운 현대가 러시아의 나쁜 옛 전통을 제거하고 서양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을 하여 인류의 존재 조건을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종교와 전통을 뿌리 뽑고 예술과 학문에 종사하는 지식인은 복종시키거나 없애야 했다. 이를 위해 과거와 철저히 단절된 젊은 공산주의자를 양성해 공산당의 이념을 퍼뜨리고자 했다.
76. 스탈린은 소탈한 혁명가이자 지칠 줄 모르는 의지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했으며, 겸손함과 친근함으로 경계심을 허물어뜨리는 허물없는 동지였다. 스탈린은 속마음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권력 경쟁의 모든 국면을 헤쳐나갔다. 최후의 순간까지 꿋꿋하게 기다리고 견디는 집념의 인간이었다.
그의 지적 관심은 문학, 역사, 경제, 과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사 전략에 관한 공부를 시작해 얼마 안 가 군사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었다. 주로 사회주의 이념을 다룬 저작을 써온 스탈린이 1950년에 러시아 민족의 언어를 다룬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의 문제>를 발표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의 경쟁자들은 인정하기 싫어했지만 스탈린은 글을 유려하고 논리적이고 사려 깊게 쓰는 지식인이었다.
83. 궁극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나는 ‘한국적’이라는 개념 자체를 믿지 않지만 이 말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널리 사용되고, 그 내용도 서로 모순되는 것을 담고 있다.
83. 그런 주관적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이 자기 견해를 객관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단순 소박하다는 점에서만 유일하게 의견의 일치를 보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문화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에서도 나타나는 듯하다. 가령 정치를 하는 자들은 모두 자기주장이 국민의 것이고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주장은 언제나 극과 극, 흑과 백으로 철저히 나뉘어 무엇이 정말 국민의 주장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결국은 권력을 잡기 위한 술수인 듯하다. 경제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 돈을 벌기 위한 술수나 힘을 갖기 위한 야합에 불과하다. 흑과 백이라는 색의 차이가 있을 뿐 흑백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대립도 마찬가지다.
112. 자기가 놓여 있는 사회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한두 권의 책만을 맹목적으로 읽는 독서는 대단히 위험하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비현실적이고 교조적인 독서로 사회주의자나 민족주의자가 되어 그것에만 파묻혀 사는 사람이 많다.
(…) 독서는 고독한 작업이 아니다. 타인과의 토론과 독서는 함께 가야 하고 이를 통해 다시 자신과의 토론이 필요하다. 어려서는 부모나 형제가 토론의 상대일 수 있다. 참된 비판적 독서는 자주적인 사고의 형성 뒤에야 가능하지만 비판적 독서가 자주성 확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어느정도의 주체성이 확보되는 나이가 되면 독서삼매식의 몰주체적 독서에 빠져서는 안 된다. 물론 맹신적 독서는 오로지 비판을 위한 독서만큼 위험하다.
(…) 책 한 권에서 모든 것을 얻고자 기대해서는 안 된다. 몇 줄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으면 충분하다. 단 한 권의 책만 읽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독서는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겨우 지식의 재료를 줄 뿐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그 지식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 그것은 혼란을 줄 수도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그 혼란을 정리할 수 있다면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113. 독서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아우슈비츠를 운영한 독일인들은 매일 괴테와 니체와 릴케를 읽고 토론하며, 바흐와 베트벤과 슈베르트를 즐겨 들은 독서인이자 교양인이었다. 유신 시대를 지배한 자들도 원효나 이퇴계나 이율곡을 한문으로 줄줄 읽고, 바그너 음악을 악보와 함께 들으며 바이로이트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의 바그너 음악제에 매년 참석하면서 동서양 문화의 원융회통 운운하는 이 시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다. 이를 두고 그들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지적인 허영이나 사치로 예술을 감상하거나 독서를 했을 뿐이라고 비웃는 것으로 독재는 다시 생기지 않을까? 히틀러나 그 주변의 인간들이 유식한 체했지만 사실은 무식했다고 비웃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게 비웃는 자들과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렇게 말하는 자들도 권력에 영합하는 자들이 수두룩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독서나 교양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그런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드물다. 특히 독서나 교양을 직업적이고 전문적으로 하는 대학 교수 사회가 그렇다. 그들 중 능력 있는 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각종 변태의 출세 코스로 나가기 바쁘고, 나처럼 무능한 자들만이 대학에 남아서 이런 글이나 쓴다.
소위 전문가나 전문적 제도는 오로지 집단 이익을 추구하고, 집단 이익을 위해 아주 쉽게 지배 체제와 공모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가령 복음을 전하는 목사나 스님은 교회나 절에 돈을 내는 지배자와 부자의 세속적 목적에 봉사해왔다. 검찰과 경찰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투고 의사회나 약사회가 자기 이익 때문에 훌륭한 의료를 제한하듯이 전문가 집단은 자기 이익의 증진에만 골몰하고 있다. 의학이나 법학 등 출세 지향적인 전문 교육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그 전문 직업인을 비양심적이고 불법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115. 이런 현실에서 학문이나 예술은 인간을 고상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기는커녕 오로지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것일 뿐이다. 고상이니 하는 것은 교양업자의 과대선전 광고일 뿐,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154. 그 마지막 전쟁의 침략국이 미국과 한국이라는 사실, 한국군에게는 최초의 침략전쟁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나는 베트남에 있는 동안 계속 되뇌었다. 특히 그곳을 찾는 한국인의 터무니없는 무례나 나라 자랑 같은 것을 보면서 그러했다.
베트남의 거리에는 엄청 긴 직사각형 집이 늘어서 있다. 우리의 기와집 같은 것이 전통 가옥일 텐데 그런 것은 특별하게만 남아 있고 일반 가정 주택에는 흔적조차 없다. 아마도 전쟁 통에 다 타버렸고 전후에 다시 짓지도 않은 것 같다. 직사각형 집은 땅이 좁아 그렇게 지었다는 네덜란드 거리를 연상하게 하는데 네덜란드는 베트남과 아무 관련이 없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베트남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그렇게 짓도록 강제한 것이 지금까지 전통처럼 남아 잇었다.
178. 문화대혁명과 마찬가지로 폴포트의 정책을 평등 이념 구현을 위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실험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모든 것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것은 사상 갈등이 아니라 권력 투쟁이었다. 사상이나 종교는 그 허울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상이나 종교도 폴 포트를 미친놈 취급할 것이 아니라 반성해야 한다. 사상이나 종교가 절대 복종을 요구한다면 그런 미친놈을 낳을 수도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어떤 사상과 종교도 절대 복종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로 폭력에 의해 실천될 수 없고 그렇게 실천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말해야 한다. 그래서 사상과 종교에 순교한 간디가 그렇게도 비폭력을 외쳤음을 기억해야 한다. 같은 풍토에서 자란 폴 포트와 간디는 너무나도 달랐다.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간디는 폭력이 제국주의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거부했다. 반면 폴 포트는 제국주의가 낳은 괴물이었다. 마오쩌둥도 김일성도 그런 괴물이었다.
영원히 철들지 않는 삶의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
186. 30여 년을 도서관에서 보내다.
독서의 대상은 교과서와 그것을 해설한 참고서다. 국가가 인정한 사서삼경 이래 교과서는 유일한 진리다. 그것을 벗어난 책은 책이 아니다. 그러니 진리는 분명하다. 진리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누가 진리를 많이 외우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공부란 오직 암기다. 암기의 천재가 한국의 천재다. 그런 사람들이 한국을 지배한다. 중국의 사서삼경을 외운 자들이 조선을 지배하다가 결국은 망했다. 그 뒤에는 일본이 강요한 육법과 전법을 외운 자들이 지배해왔다. 그들을 벗어나기가 정말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벗어나지 않으면 한반도에는 희망이 없다. 그런 공부법이나 독서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희망은 없다.
188. 사실 마르크스는 그 거대한 독서실에서 그것이 상징하는 자본주의와 대결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면서도 세계 최고로 화려하고 장엄하며 완벽한 독서실에서 하루의 반을 보내며 그는 행복했다. 아침 9시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서 저녁 7시 문을 닫기 직전에 나왔다. 하루 10시간 그는 그곳에서 책을 읽었다. 그는 거리의 혁명가가 아니라 독서실의 혁명가였다. 아니 정말로 열심히 책을 읽는 독서가였다. 이 세상에 그만큼 열심히 책을 읽은 사람이 또 있을까?
내가 마르크스를 독서가로만 말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특히 책과는 무관하게 사는 자칭 혁명가들이 그러리라. 나는 그와 같은 혁명가를 정말로 많이 보았다. 대한민국에는 책 한 줄 읽지 않는 혁명가가 왜 그리도 많은가? 교리문답서 같은 조잡한 암기물 몇 쪽 읽고서 혁명가가 되어 설치는 아이가 왜 이렇게도 많은가? 초중고를 그렇게 살았으니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들어간 동문 서클에서 교리문답서를 외우게 한 선배의 권위에 짓눌려 혁명가가 된 아이들이 골프 서클이나 토익 서클의 아이들과 무엇이 다를까? 내게는 다 똑같은 우리의 천박한 독서실 출신으로 보인다.
189. 마르크스는 특히 정치를 하는 혁명가들과 무관했다. 혁명을 출세수단으로 팔아먹는 치들과는 더욱 무관했다. 평생 가난하고 고독하게 책을 읽으며 인류를 위한 혁명을 생각하며 산 마르크스야말로 진정한 혁명가였다. 여기서 혁명가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떼거리 우두머리와는 다르다. 마르크스는 데모도 음모도 한 적이 없다. 그는 오로지 독서실의 남자였다. 그러나 교과서나 교리문답을 외운 외굴수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이 세상의 책을 다 읽고 싶어 한 진정한 독서인이었다. 그렇다고 저 흔해빠진 책벌레, 독서를 위한 독서인은 아니었다. 이 더러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기 위해 세상의 모든 책에 매달렸다. 모든 지혜를 알고자 했다.
196. 마르크스의 세 딸이 1860년대 중반 아버지에게 빅토리아 시대의 응접실 게임인 ‘고백’ 놀이를 한 적이 있다. 마르크스는 가장 좋아하는 좌우명이 “모든 것은 의심해 보아야 한다”이고 가장 좋아하는 경구가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일이 ‘책에 파묻히기’이고 셰익스피어, 아이스킬로스, 괴테, 디드로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또 제일 좋아하는 미덕이 단순함이고, 자신의 특징이 목적의 단일함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행복은 투쟁이고 불행은 굴복이며, 노예근성을 가장 싫어하고 스파르타쿠스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새로운 마르크스를 대망한다. 그의 이름을 도용한 교리문답서가 아니라 그처럼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비판적으로 회의하고 새로운 지를 탐구한 거인을 대망한다. 평행 하루의 반을 독서실에서 세상의 모든 책을 읽고자 한 마르크스를 대망한다. 10대나 20대만이 아니라 마르크스처럼 65세로 죽기까지, 아니 지금의 나이로 치면 90세 넘어 죽기까지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그렇게 늙어 죽기까지 철들지 않는 앎의 낭만객이자 삶의 혁명가이기를 바란다.
경쟁보다 협력을 설파한 아나키스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폿킨
202. 나는 무권력주의가 가능하다는 환상에서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강력한 권력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것에 대한 최고의 극약 처방인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그렇게 40년 이상 관심을 가진 결과 얻은 교훈은 기껏,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자기가 속한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반권력적으로 살면 권력주의가 조금씩은 약화되리라는 기대 정도를 갖게 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나는 아나키즘이라는 무권력주의 자체를 믿는 자가 아니라 아나키즘을 지향하는 반권력주의자로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람도 세상도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해 아나키즘은 물론 그것을 향한 반권력주의에 대해서도 더욱 회의하게 되었다.
스스로 깨달은 실천적 아나키스트
221. 나는 톨스토이가 평생 유지한 기본 사상을 아나키즘으로 본다. 그의 아나키즘이 1880년의 참회 이후의 것이라든지 프루동을 비롯한 서유럽 아나키스트들의 책을 읽은 뒤에 생겼다고 보는 등 여러 견해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타고난 아나키스트라고 할 정도로 본능적이고 직감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아나키즘을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권위에 도전하는 반항은 책을 읽어서 깨닫거나 지적 훈련에 의해 형성되는 게 아니라 타고난 기질과 성향에 의한 것인지 모른다. 적어도 톨스토이는 분명히 그러했다 책이란 그런 본성을 때닫게 하는 보조일 뿐이다.
222. 공동 경제, 금욕 생활, 평화주의에 근거한 톨스토이 공동체는 범세계적으로 시도되었다. 그의 가장 분명한 성과는 인도의 간디를 통해 나타났다. 간디는 톨스토이와 함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표트르 크로폿킨을 읽고 자신의 사상을 형성했다. 그러나 톨스토이 자신은 ‘공산촌락’을 건설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일반 사회와 떨어져 자신만을 깨끗하다고 하는 엘리트 순결주의에 빠진다는 이유에서 였다.
따라서 톨스토이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국가의 불합리한 명령을 거부하는 불복종운동이었다. 특히 그는 병역 거부자를 지원했고, 전쟁을 위한 세금 납부를 거부했다. 톨스토이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도 바로 그 점이리라.
226. 간디는 1910년 톨스토이가 죽기 몇 달 전에도 그에게 편지를 썼다. 톨스토이가 <힌두 스와라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데 대한 보답의 편지였다. 그전에 간디는 요하네스버그 부근에 톨스토이 농장을 세우고 자신의 진실 관철 투쟁을 계속했다. 그러니 톨스토이는 간디를 통해 부활해 적어도 1948년 간디가 죽을 때까지 정신적 생명을 이어간 셈이다. 간디는 다시 킹으로 이어졌고 킹은 다시 최근의 세계화 반대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간디는 톨스토이에게 편지를 보내기 전부터 그의 책을 읽고 감동했고, 톨스토이의 영향 아래 <힌두 스와라지>를 썼으며, 이는 그의 평생을 지배한 이념이 되었다.
(…) 톨스토이는 인도인들이 그들의 의식 속에서 ‘진실을 가로막는 산 같은 쓰레기 더미들’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썼다. 즉, 종교적 편견이나 온갖 미신에서 벗어나고 인도인을 노예화한 것이 영국인이 아니라 인도인 자신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창조적이며 실천적인 정치가, 마하트마 간디
232. 간디의 <간디 자서전>과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각각 보여주는 두 사람의 삶은 그야말로 대조적이다. 간디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실 추구라는 개인적 경험을 들려주기 위해 쓴 반면 히틀러는 자신의 권력 추구라는 정치적 야망을 위해 썼기 때문이다.
243. 간디만큼 창조적이고 실천적이며 비판적인 독서를 한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누구보다도 파괴적이고 선동적이며 선전적인 독서를 한 사람이 히틀러였다. 간디는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필요한 책들을 골라서 읽었고 그 책이 옳다고 생각하면 즉각 실천에 옮기고 대중들이 알기 쉽게 그들에게 알렸다. 그는 추상적이거나 신비적인 사념에 사로잡혀 책을 읽거나 무비판적으로 교조적인 교리에 따르는 독서를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관념적인 종교인이나 사상가가 아니었고 가장 현실적인 종교인이자 정치가였다.
불평등과 부자유의 사회를 비판한 자유인, 루쉰
246. 어릴 적 매일처럼 깨끗하게 갈아입어야 하는 한복을 준비하는 데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하는 것을 보면서 평생 한복을 입지 않겠다고, 하루 세 끼 뜨거운 밥과 국을 준비하는 데 진종일 하녀처럼 일하는 것을 보면서 평생 한식을 먹지 않겠다고, 온돌방을 덥히기 위해 밤새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군불을 때는 것을 보고 평생 한옥에 살지 않겠다고, 아침 저녁 세면과 목욕ㅇ르 위한 뜨거운 물을 데우기 위해 고생하던 모습을 보고 가능한 한 씻지 않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식도, 한복도, 한옥도, 청결도 싫어하고 간편한 국수나 검은 옷을 좋아하고 잘 씻지 않게 되었다.
253. 전통 학문에서 벗어난 공부를 스스로 찾고 즐겼다는 것은 루쉰이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과서에 사로잡힌 아이가 그 나름의 개성을 가질 수는 결코 없다. 우리의 가정교육이나 학교 교육이 교과서르난 기계적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천재는 커녕 제대로 된 인간을 키워내기도 어렵다.
삶을 잉태한 혁명의 딸, 프리다 칼로
273. 그녀는 삶의 마지막에서 교사로 학생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보는 것, 보고싶은 것을 그리라고 했다. 그리고 학교에 갇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거리로 나가서 거리의 삶을 그리라고 했다. 그녀는 그림 그리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세상과 사람들과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을 통해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학생들은 모두 다르게 그렸고 나름 자기 길을 개척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시집을 비롯하여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했다. 또 인류학 박물관에서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조각상이나 미술관의 식민 시대 예술품을 스케치하면서 미술사를 익히라고 했다. 또 생명의 탄생을 비롯한 성교육을 강조했다. 그녀는 학생들과 함께 순수한 기쁨, 순수한 환희, 코요아칸 사람들을 위해 그곳 술집에 벽화를 그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멕시코적 비판 정신을 부활시키려고 했다.
274. 무사히 벗어났다. 나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디에고를 비롯해 나에게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한다. 나 자신에게 감사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살고자 하는 나의 엄청난 의지에 감사한다. 즐거움 만세, 삶이여 만세(viva la vida)
죽기 직전에 쓴 ‘일기’
275. 네 아이들이
영원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시간으로는 얻을 수 없는 그런 시대에 태어났다 해도
너는 영원히 생동하는 대지 위에 있으리라
너는 영원히 새벽빛 가득 머금은 반란이리라
너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새벽빛을 띤 영웅적인 꽃이리라.
자본주의와 싸우다 죽은 혁명가, 체 게바라
276. 차가운 학자적 태도로 극단적인 교조주의나 대중에 대한 소외에 함몰하지 않으려면
늘 겸양과 정의와 진실에 대한 열망을 갖도록 하자.
281. 우리나라에 나온 게바라 전기 중 가장 방대한 책의 부제는 ‘혁명적 인간’이지만, 내가 보고자 하는 게바라는 ‘혁명적 인간’의 본질인 ‘자유로운 인간’, 즉 ‘독서하는 인간’이다. 독서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자유가 진정한 혁명이다. 부당한 궈력에 맞서 싸우는 자유가 진정한 혁명이다. 전체주의적으로 정해진 교육 체제를 벗어나 스스로 추구하는 독서야말로 진정한 자유, 따라서 혁명을 가능하게 한다. 독서하지 않는 혁명가는 없다. 평생 공부하지 않는 혁명가는 없다. 평생 반성과 성찰을 하지 않는 자는 혁명가일 수 없다.
혁명가는 태어나면서부터 혁명가가 아니다. 혁명가는 어떤 두뇌, 성격, 체질, 체형, 기질, 유전 인자 따위의 산물이 아니다. 따라서 타고난 혁명가는 없다. 타고난 천재나 예술가도 없다. 도리어 우리가 아는 진정한 천재란 다윈처럼, 진정한 예술가란 빈센트 반 고흐처럼, 혁명가와 마찬가지로 평생 독서하는 사람이다. 그들만이 아니다. 누구나 최소한의 자기 혁명을 하기 위해 독서는 필요하다. 쿠바 혁명, 쿠바 교육의 시발점이 된 호세 훌리안 마르티의 말처럼 “인간은 교양을 갖춰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반면 우리에게는 진정한 교양이 없다. 교조가 있을 뿐 교양은 없다. 출세용 과거나 시험을 위한 암기만 있고 혁명을 위한 교양은 없다.
282. 성찰과 반성을 일삼는 고행의 순교자.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건강하지도, 강인하지도, 민첩하지도 못했기에 고통받는 사람들과의 공감이 가능하게 되었고 평생 그런 사람들처럼 살고자 했다. 청각과 시각에 장애가 있던 헬렌 켈러나 척추에 장애가 있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사회주의자로 성장한 것과 같았다. 그런 건강 문제와 그로 인한 홈스쿨링이 그를 이타적 독서인과 혁명가로 만들었다. 부유하고 교양 있는 부모는 외국어와 고전 교육에 주력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8세에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련된 책을 읽었다.
283. 젊은 마르크스가 그러했듯이 게바라도 철학과 문학에만 몰두했다.
어려서부터 모든 고전에 통달했지만 특히 간디와 네루의 책을 가장 좋아했다. 대학을 마칠 무렵 남미 대륙을 오토바이로 일주하면서도 네루의 <인도의 발견>만을 가지고 다니며 열심히 읽었다. 네루는 그의 평생 스승이었다. 네루에 비해 간디를 상세히 말한 적은 없지만, 그의 혁명 사상은 다분히 간디의 사상을 닮기도 했다.
284. 게바라가 자신의 사상으로 주장한 이타주의에 입각한 숭고한 희생은 바로 간디의 사상이었다. 그는 간디처럼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 철저히 반대하고 민중과 비전을 공유하는 리더였다. 간디가 인간성의 적으로 영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했듯이 게바라 역시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했다. 그들은 낭만적인 풍운아가 아니라 언제나 철저한 자기 성찰과 반성을 일삼는 고행의 순교자였다.
287. 게바라는 중앙은행과 산업부를 이끈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경제학 책을 썼지만 이는 그런 종류의 다른 책들과는 달랐다. 그는 경제사회적인 혁명만으로는 엄밀한 의미의 혁명이라고 할 수 없고, 새로운 인간을 생성하기 위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 그리고 구시대인인 자본가를 대체하는 새로운 인간, 즉 이웃을 착취하려는 욕구를 갖지 않는 인간, 이윤을 행복의 잣대로 삼지 않는 새로운 인간을 추구했다. 이기가 아닌 이타, 물질이 아닌 정신을 중시하는 것이 그가 말한 새로운 인간이었다. 그러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룰 수 없는 초인 같은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가능한 소박한 인간상이었다.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성에 의해 인도된다고 한 그는 사랑이 결여된 혁명가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민중에 대한 사랑은 냉정한 정신과 열정적인 정신을 조화시키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차가운 학자적 태도로 극단적인 교조주의나 대중에 대한 소외에 함몰하지 않으려면 늘 겸양과 정의와 진실에 대한 열망을 갖도록 하자.” 그가 추구한 새로운 사회는 민중의 필요와 열망 위에서, 또한 민중이 모든 결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민주 사회였다. 그는 인간이 권력의 자비에 매달려 사는 사회가 아니라 공적인 생활의 중심에 있게 되는 새로운 사회를 열망했다.
290. 게바라의 아버지는 잘못된 세상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고 가르치며 갓 철든 게바라에게 네루다의 시집을 권했다. 게바라는 평생을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살았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가? 도리어 그 반대로 가르치지 않는가? 세상에 영합하라고, 강자에 복종하라고, 비겁하게 살라고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닌가?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말이다.
평생 자본주의와 싸우다 죽은 게바라를 명품 셔츠 그림으로 입다니 지하의 게바라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사실 게바라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지금 게바라가 이 땅에서 조금이라도 기억될 이유가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서보다 더욱더 강해져가는 자본주의와의 싸움이 더욱 필요하고, 그 싸움이 이제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상식 아닌 상식을 깨뜨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물질에 대한 정신의 투쟁이 필요하고 이기가 아닌 이타가 가치 있다는 참된 상식을 되세우기 위해서다.
291. 혁명이란 나쁜 세상을 옳게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도 그런 깨달음을 갖게 된다면 더욱 다행이지 않는가? 세상은 언제나 나쁘기 마련이니 언제나 혁명가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혁명가가 사라진 세상은 그야말로 말세다. 세상의 나쁜 점을 알고 분노하는 사람이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혁명가는 그런 분노에서 출발한다. 아주 어려서부터 나쁜 세상에 분개하여 죽을 때까지 그 분노를 버리지 않은 게바라가 그랬다.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근본악이 이기주의였다. 그래서 게바라는 이기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것이 그의 혁명이었다. (…) 그런 혁명은 그의 자유롭고도 철저한 독서에 의한 교양과 체험, 특히 여행에서 나왔다. 그 반대로 암기로 익힌 혁명은 교조일 뿐이다. “인간은 교양을 갖춰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자유를 향한 위대한 행진, 마틴 루터 킹
298. 라우션부시의 저서를 읽고 나서부터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고 영혼을 손상시키는 사회경제 상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종교는 무릇 정신적으로 쇠퇴한 종교이며 죽음만이 기다리는 종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유를 향한 위대한 행진>중 1958.
개인의 자유가 이런 식으로 무시되어선 안 된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인간은 신이 창조한 존재이므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고 확신한다. 국가를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 국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행위는 인간을 일개 사물의 지위로 떨어뜨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은 국가에 종속되는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며 어떤 상황에서도 목적이어야 한다.
<자유를 향한 위대한 행진>중 1958.
302. 총이나 칼에서 나오는 힘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은 나사렛 예수의 지혜만큼이나 고전적이고, 마하트마 간디의 전술만큼이나 현대적인 것입니다. 인류의 진보를 위하는 사람은 반드시 간디의 사상을 숙지해야 합니다. 간디의 모든 삶과 사상과 투쟁은 평화와 조화의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는 인류의 모습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간디를 모르고서는 우리의 운동도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303. 킹은 흑백을 불문하고 인간이 자기 파괴에서 벗어날 수 잇는 데에 평생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인간이 순수하게 태어난 뒤에 사악하게 변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신의 모습이 깃들어 있고, 구제하고 갱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악을 저지른 인간이 아니라 인간에게 폭력을 야기한 악의 구조를 공격해야 하고 그것은 폭력에 우월하는 비폭력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야말로 킹이 간디에게 배운 바였다.
자본주의적 삶에서 해방된 자유주의자, 스콧 니어링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운 인권 투사, 넬슨 만델라
326. 만델라나 간디, 킹이 인권 투사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살았던 곳의 재판이 최후의 양심 보루로 기능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우리와의 큰 차이라고…. (…) 간디나 만델라의 이야기 중에 그들이 훌륭한 법률가였지만 그들을 재판한 판사들도 훌륭했기 때문에 그들의 인권 운동이 가능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341. 교과서와 주류 언론 때문에 청소년의 사고는 철저히 단세포로 경직화된다. 학생들은 물론 교수나 언론인이 리포트, 논문, 기사를 표절하는 버릇에 젖어 잇음은 유리의 마비 이전에 교과서적 단세포 사고를 절대시하는 신앙에 젖어 표절이 왜 문제인지도 모르는 탓인지 모른다. 이제 교과서나 주류 언론은 국민에게 강요되는 유일한 지식의 근원이자 권위이고 권력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특유한 국정 검인정 교과서 제도는 역시 우리나라에 특유한 입시제도와 함께 획일적인 인간을 만드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한다. 권력이 창조하는 지식을 상징하는 교과서는 절대적인 권위로 국민의 지성을 결정하고 관리하며 규제한다.
대학은 물론 초중고 시절에 고전을 비롯하여 다양한 책을 읽고 생각하며 토론하는 교육으로 바뀌지 않으면 우리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 습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책 읽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다양성과 민주성에 관련되는 문제다.
참된 교육을 받을 인권의 내용으로 국정 교과서 제도를 폐지하고 다양한 책읽기를 하자는 주장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다양성을 핵심으로 한다는 소위 21세기 인간상에 맞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물론 사고의 다양성과 민주성을 위해서도 책읽기가 어려서부터 필요하다.
343. 무책임하게 게바라 같은 혁명가가 되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와 같은 독서가는 되라고 말하고 싶다. 나쁜 세상은 독서가가 없는 세상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듯이 진정한 혁명가는 진정한 독서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히틀러나 스탈린, 폴 포트나 박정희가 아닌, 톨스토이나 마르크스나 간디나 게바라나 모두 그렇다. 물론 그 반대는 아니다. 즉, 독서가가 혁명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독서가는 혁명가다. 적어도 진정한 독서가는 혁명적이다. 독서는 바르게 살기위해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변화를 위한 것이다. 그 변화 앞에 비판이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그 비판 앞에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고능력이 있다.
독서는 생각하기 위한 것이다. 독서는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면 독서가 필요하다. 그처럼 참된 독서를 하면 혁명가가 된다. 제대로 된 책들은 현실을 혁명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도 책을 읽다보면 현실이 잘못되었음을 알기 마련이고 책은 잘못을 고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게바라가 혁명과 독서를 함께한 것도 독서를 통해 혁명의 바른 길을 찾기 위해서였지 무슨 멋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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