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봐 팔찌. 일본인 친구가 태국에서 선물로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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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동호입니다.
지난 주, 1년 조금 넘게 차고 다니던 팔찌가 끊어졌습니다. 드디어 말이죠! 소원팔찌라는 이름의 팔찌였습니다. 그 팔찌에는 이런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소원을 빌고 팔찌를 찬다. 팔찌가 끊어지는 순간, 소원이 이루어진다. 뭐 이런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였죠.
그러고 보니 풋풋한 콧물이 흐르던 시절, 감명 깊게 본 만화가 떠오르네요. <드래곤 볼>이라는 만화인데요. 이 만화속 세상에는 '드래곤 볼'이라는 구슬이 있었습니다. 7개의 드래곤 볼을 모으면 용이 나타나 딱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었죠. 나중에는 이 7개 구슬을 모으는데 한 페이지도 걸리지 않게 되지만, 처음에는 이 구슬들을 모으기 위해 주인공들은 몇 권에 걸쳐 길고 긴 모험을 해야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모험해야 할만큼의 한가지 소원, 무엇이 있을까요?
선물로 받은 팔찌니 차기는 찬다만, 이거... 그냥 길에서 파는 1달러짜리 끈 나부랭이잖아?! 그렇습니다. 이 나부랭이 팔찌에게 ‘드래곤 볼'과 같은 신비로운 힘이 담겨있다고 믿을만큼 저는 순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팔찌를 차던 날, 저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아브라카타브라!!)
이런 장치를 마음의 닻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길을 잃었을 때 여기를 보라고 정해놓는 마음의 점.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게 말해주는 마음의 닻. 이런 장치를 통해 우리는 더 빨리 방향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결국엔 소원을 이룬(혹은 얻은) 자신을 더 빨리 만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됐고, 그래서 무슨 소원 빌었는데?” 친구들은 물었습니다. 저는 웃음으로 얼버무렸습니다. 제 감성을 짓밟은 친구가 재수 없었거든요. 라기보다는, 소원을 말하면 재수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랬던 팔찌가 드디어 끊어진 것입니다.
*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우선 용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쳇. 그렇지만 이제는 지금껏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소원을, 팔찌를 차던 날 빌었던 소원을 밝혀도 될 것 같습니다.
“인생의 동반자(여자)를 만나게 해줘요!”
...
1년이 지난 오늘, 소원을 구체적으로 말했어야 했다는 걸 깨닫습니다.
‘만나게 해줘요’...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요... 지난 1년… 동반자가 될 사람을 만났을 수도, 못만났을 수도 있습니다.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이 사람인가 하고 살다가 죽을 때 침대에 누워서야 ‘이런 시부럴! 역시 사기였잖아!’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
어쨌든 팔찌는 끊어졌습니다. 허전한 손목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했던 건 소원이 이루어지느냐 안이루어지느냐가 아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 마음의 덫 1 - 가정
사실 소원팔찌가 끊어지고 처음으로 느낀건 ‘해방감’이었습니다. 무슨 미스타 손 헬멧 벗는 소리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소원팔찌가 제게 있어 마음의 닻이 아닌 마음의 덫이 되었었구나, 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올해 말, 독일에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무엇을 경험할지,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 길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거침없이 말하지만 사실 때때로 불안합니다. 지난 배낭여행을 다니던 시간 70%가 고독이었고, 그 고독을 다시 겪을지 모른다는 ‘기우’가 저를 엄습합니다. 그날들을 생각하니 눈에서 또 땀이 나네요. 네, 쫄았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것 같습니다.
그런 제게 소원팔찌는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 정착해서 뿌리를 내려야 되지 않겠냐. 짝을 만나 삶을 나누고, 추억을 만들고, 따로 또 같이 서로의 길을 응원하고, 아이를 낳아 어른이 되가는 걸 돕는. 그런 가정을 이루고 싶지 않냐. 가정을 이룬다는 것. 어쩌면 이건 제 Y염색체로부터 나오는 깊은 닻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 마음의 덫 2 - 소속감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인간. 땅에 속박되었지만 또 한편으론 땅에서 평안을 느끼도록 운명지어진 게 인간이란 존재일 것입니다. 2013년 분갈이를 하는 마음으로 군대를 나왔습니다. 뿌리를 뽑힌 후에야 배운게 있습니다. 소속감이라는 땅이 있을 때 인간은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을요. 아직 뿌리 내린 땅 없이 시간은 지나고 있습니다. 똑딱똑딱. 때때로 바스러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짐작을 해봅니다. 이대로 영원히 뿌리 내릴 곳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닐까.는 불안에 덮일 때도 있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최근 살이 계속 빠지고 있었습니다. 억지로 먹는 양을 늘려보았지만 체중은 무심하게 계속 줄었습니다. 독일에 가지 말아야할 이유, 508가지하고도 3가지 이유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999번째 이유에서 넘어질 수도 있고, 독일에서도 장애물들은 끝없이 나타날 것입니다. 장애물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게 아니라 제 마음에 있는 것이니까요.
미국의 사상가 R.W. 에머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참다운 낭만이라 하겠다.
용감하게 그 낭만을 살 때
그것은 어느 소설보다도 깊은 즐거움을 창출한다.
28살, 아직 제 삶에 어떠한 확신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언제 가정을 만들 수 있을지, 언제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를 꿈꾸게 만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 다시 World of Wonder, WOW!
세상의 경이로움, 영제와 제가 지난 여행을 통해 보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세상 속에 경이로움이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경이로운 것이 세상이었습니다. 서 있는 곳마다 자기 삶의 주인일 수 있다면, 가는 곳 모든 것이 참될테니까요. 앞으로의 이야기도 <와우 세계여행 프로젝트>를 통해 나눠보고 싶습니다. 여기서 끝내고 여기서 다시 시작해보겠습니다. 처음 시작했던 설레임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항상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이 글을 통해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p.s. 독신 전향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코스모스 꽃잎은 왜 8장일까.
아직 세상엔 모르는 게 정말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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