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이야기> 누가 나를 못생겼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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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 내려와 셋방을 구한 나.
벼룩시장을 보고 찾아다니던 끝에 지금의 집까지 오게 됐는데.
살고 싶으면 2년 계약을 하던가 말던가. 주인 할머니의 007 제임스본드 심리전에 말려
월세임에도 2년 계약을 덜컥 해버렸다...
그런데 이런 시부럴. 계약 당시는 몰랐는데,
이 집엔 숨겨진 창문이 있는 건가 싶은 강력 우풍,
열대 곰팡이가 자라겠는 걸 사우나 습기,
동굴에 살면 이런 기분일까
아침이 되어도 한밤중인듯한 착각, 작은 창문...
시골집이라면 으례갖고 있는 모든 문제를
셋집은 풀코스로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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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셋방살이는 9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독거 청년인줄 알지만 우리집에는 나말고
여러 종이 다양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우리집 생태계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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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집주인일지 몰라 돈벌레
뭘 먹고 사는거야 화장실 하숙생 곱등이
화장실 어둠의 제왕 거미
그리고 집짓는 개미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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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군단은 가장 최근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친구들.
최근 입주한 그들은 살림에 가장 열심이다.
집에 홀로 앉아 조용히 책을 읽을 때면
그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사브작사브작’
‘사브작사브작’
개미군단이 열심히 집 터널을 뚫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면,
그 옛날 마치 의좋은 형제들이 서로 날라주던 쌀가마처럼
문옆에는 나뭇가루가 수북.
.
내가 농촌에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
내 친구들이 모르듯 우리집 다른 친구들이
무얼 먹고 사는지 모두 불명확.
개미군단은 먹을 것을 찾아 며칠 방바닥을
샅샅이 뒤지는가 싶었는데(집엔 먹을게 없다)
요샌 밖으로 잘 나오지 않고 땅굴만 판다.
먹을 것도 없는 우리집에 이들은 어인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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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지난 겨울,
홀로 날아다니다 아사해버린 파리가 생각난다.
나보다 집을 샅샅이 뒤졌을 파리.
먹을건 없었다.
배고픈 파리는 정신사납기보단 애처로워 보였다.
‘웽웽' 강한 포르테에서
'우에에에엥....’ 피아니시모로 변해갔다.
손으로 잡아도 가만히 잡혔고 그 상태로 손에서 단맛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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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차를 만들던 날, 생강 찌꺼기를 더듬던 파리.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찡
나도 모르게 파리에게 정이 들어버렸다.
허나 집에는 정말로 먹이로 줄만한게 없었다.
슈퍼는 10분은 걸어나가야 있었다.
꽤 오랫동안 살던 파리는 곧 사체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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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바닥을 샅샅이 뒤지는 개미군단을 보니
그날의 파리 사체 생각이 난다.
그래서 나는 개미친구들에게 독먹이를 선물로 주었다.
‘개미들이 미친듯이 먹을거임’
상자에는 적혀 있었지만 거들떠 보지 않았다.
.
.
화장실에는
화장실 이용을 줄도록 만드는
곱등이 화장실 하숙생들이 있다.
기어다니는 곱등이
뛰어다니는 곱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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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나타나고 어디로 도망갈지
예측이 가능한 돈벌레와 달리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곱등이는 어느 녀석보다 쇼크지수가 가장 높다.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는
샤워기 물대포를 쏴주었다.
그러면 마구 마구 뛰어오르는 곱등이...
내 패닉지수도 마구마구 높아졌다...
.
이 녀석이 이해되기 시작한건 요즘.
어두운 곳에 사는 동물들이 그러듯
곱등이는 눈이 나쁘다고 한다.
대신 더듬이의 촉감과 진동으로 세상을 본다.
그런 곱등이가 샤워기 물대포를 맞으면
놀라 막뛰어오르는 건 당연.
입장을 바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
무언가 나를 덮친다고 했을 때,
‘끼야아아악~’ 날뛰는건
인간이나 곱등이나 당연하겠지.
.
누군가 Ctrl+C, Ctrl+V를 하는 것처럼
곱등이가 늘어나고 있었지만
다행히 거미가 있어
개체수는 2마리정도로만 유지되고 있다.
아,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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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아닌 잡거 청년의 요즘.
故권정생 선생님의 시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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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에 대한 반성문(2)
ㅡ 권 정 생
도모꼬는 아홉 살
나는 여덟 살
이학년인 도모꼬가
일학년인 나한테
숙제를 해달라고 자주 찾아왔다.
어느날 , 윗집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도모꼬는 나중에 정생이 한테
시집가면 되겠네.
했다.
앞집 옆집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두 쳐다보는 데서
도모꼬가 말했다.
정생이는 얼굴이 못생겨 싫어요!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모꼬 생각만 나면
이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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