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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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논학교 진행을 돕기 위해 서울에 왔다. 동네 아저씨들과 함께 새벽부터 올라왔다. 새벽 6시 담배 한 대씩 피며 집합장소에 모이던 아저씨들의 모습,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튀김우동들을 자시던 아저씨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헐렁헐렁 난닝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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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체증을 거치며 도착한 행사장. 오늘은 벼를 수확하는 날이다. 가져온 탈곡기를 내리고 바닥을 깔았다. 시작에 앞서 아저씨들이 풍물을 쳤다. 수업 시작. 벼를 베고, 탈곡을 하고, 볏단을 묶고. 난닝구 아저씨들이 어느새 자리를 잡고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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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 꼬맹이들의 눈이 척척 움직이는 아저씨들의 손에 몰렸다. 동아줄 만드는건 29살에게도 신기한 요술이었다. 손을 조금 비비니 뚝딱 하고 튼튼한 줄이 나왔다. 가만있을 수 없지. 나도 꼬맹이들 옆에 앉아 어깨너머 새끼줄을 만들었다. 요령을 배우고나니 뚝딱! 이렇게 쉬웠다니... 사실 요령이랄것도 없는 요령. 자연물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나니 세상이 또 달리보였다. 소비하는 존재에서 만드는 존재로. 무튼 나는 난닝구(로 보이지만 평생 흙을 일궈오신) 아저씨들이 진정 선생님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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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길거리에 앉아있는 노숙자 아저씨들, 또 어르신들을 보았다. 비워져가는 소주병. 뒹구는 빵포장지. 누가 이들을 쓸모 없는 존재로 만드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게을렀기 때문이라는 세상 모르는 말은 제발하지 말자. 이들은 한때, 아니 지금도 우리의 이웃이니까. 남의 일이 곧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우리의 일이 곧 나의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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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쓸모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나 여성 불평등 문제는 본질적으로 같은 맥락의 문제이다. 산업체제에서는 이들이 전통적으로 맡아오던 역할(이를테면 살림, 지혜 같은 역할)이 쓸모없는 일이다. 이들에게 똑같은 직업 기회를 주는 것이 문제의 해결방법이 아니다. 누가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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