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2,875m의 트리운드. 이 산의 정상에서는 히말라야의 봉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산을 오르는 길에는 거짓말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꼬부랑꼬부랑 산길을 여행하는 이를 돕는 요정이 있다는…….


그 길을 오르던 때의 일입니다. 저와 영제, 종학, 카롤린 이렇게 네 사람이 함께였죠. 아침 7시, 한산한 산길. 네 사람. 그리고 세 마리 개. 이 개들은 아침부터 어딜 가는 거냐. 그런데 한참을 가도 이녀석들 여전히 옆에 있습니다. 그네들도 산을 오르고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 일곱 마리가 되었습니다. 7이라… 이거 뭔가 의미심장한 숫자인걸... 싶은 순간 희번뜩 트리운드의 요정 전설이 생각났습니다. 이 개들이 요정들이로구나! 과연 요정들의 활약은 눈부셨습니다. 인간 넷이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요정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길을 선택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따라가도 되는 걸까. 저는 자존심 빼면 시체인 인간, 호모 쁘라이드쿠스. 인간들은 주저했습니다. 개요정님들은 뒤를 돌아보며 (눈으로) 말했습니다. ‘컹컹, 빨리 안 오고 뭐하낫.’ 


 잠시 있다가 떠날 줄 알았는데, 개요정님들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여전히 그들은 함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숨겨왔던 비스킷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다시 걸었습니다. 우두두두. 개떼 소리를 들으며 저는 늑대 소년 모글리를 생각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요정님들이 (다행히) 늑대는 아니었지만, 모글리가 느꼈을 위풍당당, 이런 것이로구나. 가진거라곤 팬티 한 장뿐인 모글리가 뿜어내던 자신감의 근원을 알 것 같았습니다.


 "쟤가 대장 같은데?” 영제가 가리켰습니다. 일곱 요정님들 사이에서 덩치가 가장 크고 늠름했던 친구를요. 듣고보니 그랬습니다. 대장은 요정님들 간에 싸움이 나면 개소리로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무리 중 제일 앞서 걸었습니다. 털도 검은색. 개늠름했죠. 가히 대장이로구나. 이런 미세한 권력 구조를 발견하다니, 영제가 7년의 군 생활을 허투루 한 게 아니었습니다.


 놀멍 놀멍 가던 길. 개대장요정이 점점 뒤로 쳐지는 듯하더니 급속도로 지쳐갔습니다. 계속 쉬었지만 대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대장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고 있었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대장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제 응원과 독려는 오히려 대장을 죽음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그만 걷게 해야겠다. 위협해서 쫓아 냈습니다. 하지만 대장은 몇 번이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포기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결국 제가 대장의 속도에 맞춰 함께 오르기로 했습니다. 느린 속도였습니다. 조금 걸었으니까, 쉬고, 이런, 우리 아까 물을 안마셨어! 쉬고, 여기 그늘이 있어! 쉬었습니다. 느리게 걷는 것도 기술이었습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있었던 군부대들은 벚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군대에서의 10년, 봄이 오면 벚꽃은 덧없이 피었고 또 졌습니다. 꽃을 보며 인생은 참 짧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은 제게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막을 수 있다면 댐이라도 세우고 싶었습니다. 시간을 나누는 법이 없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시간 없다’는 말이 입에 붙어 있었습니다. 언제나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는가', 저는 불안했습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흐르지 못한 제 시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정작 저는 인간과 소통하지 못하는 모글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집 덩어리의 이무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개대장과 저는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8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린 왕자가 물었습니다. “‘길들인다'는 게 뭐야?” 여우가 말했죠. "그건 너무 잘 잊히고 있는 거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지.”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는 말했습니다. "넌 내게 아직 다른 수많은 소년과 다름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널 필요로 하지 않지. 하지만 네가 만약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여우는 계속 말했습니다. “네가 만약 날 길들인다면 내 삶은 환하게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걸음 소리와 구별되는 발걸음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걸음 소리는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걸음 소리는 땅 밑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길 봐! 저기 밀밭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아. 그러니 밀은 내겐 아무 소용 없는 거야. 밀밭은 내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건 서글픈 일이지! 그런데 넌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내게 너를 생각나게 할 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여우는 입을 다물고 어린 왕자를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헐떡이는 개대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벚꽃이 말해주려 했던 건 인생은 짧다는 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벚꽃은 지금 사랑하라고 말한 것 입니다. ‘지금’이라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람과 마음속에 있는 가치를 위해서라는 걸. 시간은 우리가 사랑한 존재들로 채워져 간다는 걸. 누군가에게 길들여짐으로 여우의 삶에 금빛 바람이 생겨났 듯, 삶에 풍요를 더해가는 것. 누군가와 시간을 나눔으로 무한의 ‘것'에서 유한의 ‘존재'가 되어간다는 걸.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여지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걸. 그렇기에 시간은 소중하다는 걸.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요리를 시작한 건, 그리스를 여행 할 때부터였다. 매일 먹은 삶은 계란과 콘푸로스트, 빵과 잼의 식단을 웨스턴 식이라고 위안하기도 질렸을 때였다. 가장 처음 했던 요리는 카르보나라 파스타였다. 이건 사실 요리라기보다는 라면 정도의 수준이었다. 수프를 넣고 되는 대로 끓였더니 완성이 돼버렸다. 맛있게 먹는 영제를 보며 어쩌면 나라는 인간의 쓸모는 요리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1kg 당 1,000원에 파는 감자와 양파를 보았다. 좋아, 오늘은 감자 볶음이다. 엄마가 대충 이렇게 요리했었더랬지……? 서걱서걱 자르고 슥삭슥삭 볶아보았다. 방금 막 외계에서 불시착한 듯한 으깬 감자 ‘덩어리’가 완성됐다. 그래도 영제는 맛있게 먹어주었다. 영제는 참으로 대단한 남자였다. 맛있게 먹는 영제를 보며 나는 그만 요리에 재미를 붙여버렸다. 하지만 내 요리는 만드는 족족 처음 목표와는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오징어 볶음 만드는 법에 따라 요리를 했는데 라볶이쯤 되는 것이, 숙주나물 볶음을 만들려 했는데 태국의 볶음국수 팟타이 비슷한 것이 만들어졌다. 굳이 맛을 표현하자면 ‘이게 뭡니까’ 맛. 이름으로 담을 수 없는 요리들. 요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물었다고 한다.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다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자공은 반문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공자는 말했다. “자공아, 나는 단지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을 뿐이다.”


 공자 선생이 자공에게 약을 판 건 아닐 테지만 나는 때때로 궁금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정말 하나의 이치로 꿰뚫어질까. 공자의 이 대화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인도에서 만난 누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몽골에서 만난 아저씨다.


 북인도의 맥그로드 간즈, 이곳은 티베트 사람들이 중국의 강제 합병을 피해 망명 온 마을이다. 우리가 상해에 임시정부를 세웠던 것처럼 이곳에도 티베트 임시 정부가 있고,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 달라이 라마가 있다. 그곳은 작은 산촌이라, 길이 많지않아 오가며 한국 사람도 이따금 마주칠 수 있었다. 그 누님과도 이곳에서 만났다. 위인전을 읽다 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누님은 ‘그놈 참 장군감’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드센 사람이었다. 그 장군감 기운을 누님은 말을 하는데 쓰는 듯 했다. 도무지 쉬지를 않고 말을 쏟아냈다. 누님 일행은 우리 옆 방에 묵었고 그 방에는 매 끼니 한국 음식이 출몰했다. 김치찌개, 햇반, 참치 통조림, 3분 카레, 소주. 한식의 유혹과 맞서야 했다. 누님은 '인도여행'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어 보였다. 어디 이름을 꺼내면, 어떻게 가는지, 어디를 봐야 하는지, 언제 가야 좋다든지 등등이 방언 터지듯 다다다닷 쏟아졌다. 인도여행 2주, 인도를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게 나의 제 1 소원이었다. 그런 내 눈에 인도를 수없이 왔다고 말하고 있는 그 누님은 해탈의 빛이 나는 존재였다. 만약 인도 여행학 학위라는 게 있고, 그걸 받아야 한다면 그 누님과는 면접관으로 다시 만나지 않을까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오가며 누님의 여행에는 정해진 범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도 여행은 잘 알지 모르겠지만, 정작 인도는 없었다. 함께 다니던 일행도 자기 통제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 먹는 음식도 이미 익숙한 것들, 여행경로도 이미 경험한 장소. 범위 안에서 오가는 여행. 확인을 위한 여행. 


 또 다른 사람인 아저씨와는 몽골 게스트하우스에 머물 때 만났다. 밤 9시를 넘어가고 있을 때 두 아저씨가 체크인했다. 한국인 아저씨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 사람. 안녕하세요. 몽골에서 코이카 활동 중인 아저씨와, 이 아저씨를 만날 겸 몽골 여행을 온 아저씨였다. 코이카 아저씨는 대화의 대부분을 본인의 이야기로 채웠다. 그리고 아저씨는 굳이 ‘나 게스트하우스에 왔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평상시에는 호텔에 다니는 데 호텔이 다 차서 게스트하우스에 어쩔 수 없이 왔다. 게스트하우스에 오니 여행자 느낌도 느껴보고 좋다. 아, 이거 참 같은 방에 주무셔 주셔서 감사하네요. 같은 송구스런 마음마저 들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아저씨는 우리가 여행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디 어디 가는데?” 우리는 말했다. “중국이랑요,”(음, 가봤지), ”베트남에 가구요.”(음, 거기도 가봤어), “태국이요.”(아, 거긴 별로야) 평가를 바라고 말을 한건 아닌데, 친절한 아저씨였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또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이 두 만남을 통해 만난 건 내 모습일 것이다. 나라는 사람도 결국 내 경험만으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부류니까.


 우리는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경험하는 것, 그 자체가 인간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경험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세계를 넓혀가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 하지만 그 도구는 때로 자신을 가두는 상자와 틀이 돼버리기도 한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을 듣는 즉시 그 사람의 대부분을 알게 됐다고 판단하는 것처럼 말이다.


 안다는 건 모른다는 걸 알아가는 거다. 아는 것이 없음. 무지의 상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의 상태. 알아간다는 것은 우리 안에 진공을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하 듯, 진공을 만들어지는 순간 우리는 그 공간을 향해 빨려간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듯, 바람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을 향해 불어가듯, 자연에 속한 우리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그 공간을 향해 나아가는 게 아닐까. 그 힘을 활력이라 말하는 게 아닐까. 살아 움직이는 힘. 


 나는 공자가 말한 이치를 알지 못한다. 얻고 싶지 않다. 한 가지로 만 가지를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게 과연 행복일까. 나를 뒤흔들고 공간을 만들어 가는 과정, 이전까지 알아왔던 세계, 그 울타리 너머의 어둠을 밝히고 넓혀가는 과정. 진공을 채워가는 과정, 삶에 대한 탐구. 창조. 이건 뭡니까 맛 파스타를 만들어가는 것, 살아있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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