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참고 : 교보 전자책은 페이지가 아니라 퍼센테이지로 나옵니다). 하지만 무엇에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그건 슬픈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내 존재에서 당신이 빠져 있다. 그래서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2%. 내가 사랑한 시절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내 안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 것들, 지금 내게서 빠져 있는 것들......이 책에 나는 그 일들을 적어 놓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일들을 다 말하지는 못하겠다. 내가 차마 말하지 못한 일들은 당신이 짐작하기를. 나 역시 짐작했으니까.


3%. 당신도, 나도,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는, 사람이니까.


7%. 아무래도 나는 지진아처럼  새로 바뀐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모로 낯선 일이 많았다.


7%. 내가 자라 청년이 되는 만큼 아버지는 노인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10%. 봄이라는 것에 입술이라도 있다면 전화를 걸어 왜 안 오느냐고 따져 묻기라도 할 텐데 그럴 리 만무. 결국 우수를 지나 경칩에 이르는 동안 내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들해진다. 


15%. 그즈음 창 밖을 내다보면 뭔가 지나가는 게 언뜻언뜻 눈에 보였다. 바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었다.


15%. 야래향(고향 중식집)은 구멍이 뚫린 대형 선박처럼 아주 천천히 몰락해갔다.


15%. 과연 새천년은 그런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때 손바닥처럼 그 내력을 낱낱이 알던 가게들의 거리가 낯선 곤충의 껍질처럼 무감각해졌다.


20%. 결론적으로 보자면 20대 초반의 나는 시간의 흐름을 견딜 만큼 강한 몸을 지니지 못했다.


23%. 당나라 시인 사공서는 친구인 노진경과 헤어지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앞으로도 만날 기회 있음을 알지만,

이 밤에 헤어지기는 참으로 힘들다

옛 친구가 권하는 이 술잔이

뱃길을 막는 돌개바람만 못하랴


26%.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우리가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26%.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31%. 나는 이제 말로만 듣던 사회인이 된 것이다. 사회인. 이 말은 이제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뜻했다. 1995년 여름의 일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31%. ...옛집 담 너머로 봄꽃들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봄꽃은 제 몸을 밝혀 내게 저처럼 환한 빛을 던져주는데, 나는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다.


37%. 문득 바람이 그대 창으로 부는가, 그런 걱정이 든다. 하지만 그건 멀리 있기 때문에 흔들리는 빛이다. 한때 우리는 너무나 가까웠으나, 그리하여 조금의 흔들림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38%. 사람이 없는 바닷가는 혼자 서서 바라보는 거울과 비슷합니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39%. 그에게 오마르 하이얌의 시 한편을 읽어주었다.

인생의 대상(大商)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라,

매순간 환희를 맛보라!

오, 사키여, 내일의 양식을 걱정하지 마라,

잔을 돌려 포도주를 붓고, 내 말을 들으라, 밤이 가고 있다. 


42%. “도대체 어떻게 하면 대중음악평론가가 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때의 일을 떠올린다.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거나 처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갓 태어난 아이의 눈과 귀처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다. … 그런 처음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흘러나오는 모든 노래가 경이롭게 들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48%. 어둠 속에 잊혀졌던 마을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오래된 외투 주머니처럼 익숙한 골목길들,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무들, 푸르디푸른 밤하늘에 검은 그림자로 선 지붕들. 잊혀진다는 것은 물론 꽤나 슬픈 일이지만, 잊혀졌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 마을은 괴기할 정도로 아름다울 수 있었을 것이다.


49%.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우리가 변한 게 아니라 우리가 변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56%. 본디 나는 내가 경험하는 세계의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는 종류의 인간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건 내가 경험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뭔가에 빠진다면 그건 내 안에 들어온 그 뭔가에 빠져든다는 뜻이었다. 뭔가에 빠진다면 그건 내 안에 들어온 그 뭔가에 빠져든다는 뜻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소통의 인간이 될 수 없었다. 전적으로 내 경험의 공간 안에서 모든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도, 증오도, 행복도, 슬픔도, 모두 내 세계 안쪽 창에 맺히는 물방울 같은 것이었다.


62%.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67%. 그 헬기장을 지날 때면 나는 늘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리온, 카시오페아, 큼곰자리 같은 별자리들. 그 별자리들은 무슨 힘으로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힘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80%.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뜻은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 세상을 더 밝고 멀리 보라는 까닭이다.


83%. 김시습이 맞닥뜨린,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어두운 밤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2학년 시절 나도 어둡고 어두운 어둠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어둠을 보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주 하찮은 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제 몸으로 어둠을 지나오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가장 깊은 어둠을 겪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건 중학교 2학년생에게는 너무 가혹한 수업이었지만, 또 내 평생 잊히지 않는 수업이기고 하다.


90%. 서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건 어떻건 지방 소도시의 열일곱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게 즉석떡볶이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었다. 어울리지 않기로는 ‘이런 걸 과연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만 내게 잔뜩 남겼을 뿐인 첫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보지 않으면 보고 싶었고 만나면 즐거웠다.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거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뭔가가 결여 돼 있는 듯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만나면 만날수록 괴로워지는 어떤 것,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감미로워지는 어떤 것, 대일밴드의 얇은 천에 피가 배어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스케이트를 지칠 수밖에 없는 어떤 마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게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


94%. 입에서 나오는 게 말이라는 것은 알겠으나, 그 뜻은 무엇인지 아직 모르던 시절의 일들이었다.


99%. 봄빛이 짙어지면 이슬이 무거워지는구나. 그렇구나.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는구나. 누구도 그걸 막을 사람은 없구나.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게 삶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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