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과제는 기후 변화를 훨씬 넘어서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시야를 넓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더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문제는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 방식 일체를 바꾸어 놓는 것이다.
ㅡ 리베카 타버튼, 열대 우림 행동 네트워크 사무국장
대부분의 기후 변화 이론들은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기온 상승, 해수면 상승 등의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날 것이라 추정한다. 일정 정도의 온실가스는 일정 정도의 기온 상승으로 이어지고, 다시 일정 정도의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후와 관련한 지질학적 기록들을 살펴보면, 기후를 구성하는 한 가지 요소의 지극히 미미한 변화가 기후 시스템 전체의 급격한 변화로 이어진 순간들이 나타난다. 말하자면, 기온이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예측할 방법도 역전시킬 방법도 없는 엄청난 파괴력과 대규모 충격과 함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단 그 단계에 들어서면 인류가 더 이상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해도 결코 멈출 수 없는 과정들이 전개될 것이다. 기후 급제동에 따른 통제 불능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기후 문제와 그로 인한 파급 효과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놓일 것이다.
ㅡ 미국 과학 진흥회의 보고서, 2014
34. 많은 주요 분석가들은 현재의 배출량 궤도를 그대로 따라갈 경우, 섭씨 4도를 훨씬 넘어서는 온난화에 직면하게 된다고 판단한다. 평소 극단성을 보이지 않는 국제 에너지 기구 또한 2011년에, 이대로 가다가는 섭씨 6도의 온난화에 도달할 거라고 예측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제 에너지 기구 수석 경제학자의 말을 인용해보자. ‘이런 상황이 우리 모두에게 파멸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건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섭씨 6도의 온난화는 몇 가지 중요한 임계점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한 서남극 대륙 빙하의 해빙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현상뿐 아니라, 북극 영구 동토층의 메탄 대량 배출처럼 급속히 진행되는 현상까지 촉발할 것이다. 대형 회계 법인 프라이스워터 하우스쿠퍼스 역시 우리가 섭씨 4도, 혹은 섭씨 6도의 온난화로 향하는 경로에 있음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35.기후 과학자들은 우리가 평상시처럼 생활을 유지하며 지금껏 해왔던 일을 그대로 해나가다가는 결국 문명의 파멸을 맞게 될 거라고 말해 왔다.
설상가상이라더니, 하필이면 이런 때
36.앞선 질문에 대해선 여러 가지 답이 나와 있다. 전 세계 모든 정부들이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기란 극히 어렵다는 주장, 현실성 있는 기술적 해법이 없다는 주장, 요원해 보이는 위협에 대해서는 집단적인 대처를 꺼리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장, 게다가 이미 판세가 기울어진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헛일이니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주위 경관이나 한껏 감상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일견 타당한 면이 있기도 하지만, 이 주장들은 하나같이 큰 결함을 안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단일한 행동 경로에 합의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얘기를 살펴보자.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합의는 과거에도 여러 번 이루어졌다. 유엔은 정부들이 마주 ㅇ낮아 오존 파괴 문제와 핵 확산 문제 등 까다로운 국가 간 분쟁 사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도와 왔다. 도출된 합의안은 완벽하진 않았어도 실질적인 진전을 보였다. 협력을 이루기엔 너무나 강고한 난관이 있다는 구실을 내세워 온실가스 감축에 필수적인 강력하고 구속력 있는 법률적 조치 채택을 무산시키던 바로 그 기간 동안에도, 우리 정부들은 기어코 세계무역기구를 꾸리는 데 성공했다. 상품과 서비스의 세계적인 교역ㅇ르 통제하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명료한 규칙들을 부과하며, 규칙 위반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시행하는 바로 그 기구 말이다.
기술적인 해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집단적인 대응에 나설 수 없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풍력과 수력처럼 재생 가능한 원천에서 에너지를 얻는 방식은 화석 연료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갈수록 생산 비용이 떨어지는 반면 효율성은 높아지고 저장도 점점 쉬워지고 있다. 최근 20년 동안 우리는 녹색 도시 계획은 물론, 기발한 자원 순환형 디자인의 폭발적인 성장을 목격해 왔다. 우리는 화석 연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술적인 도구를 이미 확보하고 있으며, 이런 저탄소 생활 방식으로 막대한 성과를 거둔 소규모 지역의 사례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 집단적 대응의 기회 앞에서 대대적인 전환에는 손을 대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망설임의 이유는 결국 인간의 본성 때문일까? 그러나 우리는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인류가 감수해 왔던 집단적인 희생을 여러 사례를 통해 알고 있다.
… 사실 우리는 늘 추상적인 대의를 위해 집단적인 희생을 감수한다. 우리는 연금 손실을 감수하고, 힘들게 따낸 노동자의 권리가 약화되는 것을 감수하고, 예술 활동과 방과 후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것을 감수한다. 우리는 갈수록 학생 수가 늘어나는 학급에, 갈수록 교사 업무가 늘어나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를 감수한다. 우리는 자동차를 타거나 일상생활에서 유해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에너지 요금의 대폭 상승도 감수한다. 우리는 요금만 치솟을 뿐 서비스는 개선되자 않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희생도 감수한다. 한 세대 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지만, 우리는 공립대학 교육을 받은 뒤 학자금 대출 상환에 반평생을 바쳐야 하는 희생을 감수한다 .캐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우편물이 집까지 배달되지 않는 상황을 감수하고 있다.
공공 부문의 축소는 최근 30년 동안 꾸준히 진해오디어 왔다. 이제는 긴축 논리가 이처럼 집단적인 희생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들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쓰이고 있고, 공공 부문의 축소 역시 긴축의 명목하에 전면 옹호되고 있다. 과거에도 긴축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 단어들과 문구가 이와 똑같은 목적을 위해 동원되곤 했다. 이를테면 ‘균형 예산’이나 ‘효율성 향상’, ‘경제 성장 촉진’등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정한 삶을 강요하고 훨씬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는 경제 시스템을 위해 이처럼 큰 집단적 혜택을 양보할 여지가 있다면, 모든 생명체가 의존하고 있는 물리적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생활방식의 일부를 바꿀 여지 또한 분명히 있ㅇ르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온실가스의 급격한 감축에 요구되는 여러 가지 변화들은 지구인 절대다수의 삶의 질ㅇ르 실질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사실 또한 유념해야 한다. 기후에 유익한 활동을 할 때 우리에게 돌아오는 중/단기적인 혜택은 무수히 많다.
물론 시간이 촉박하다. 하지만 화석 연료 소비를 대폭 줄이고 재생 에너지 기술을 이용하여 탄소 배출이 전무한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려는 일에 지금 당장 총력을 기울인다면, 전환과정은 10년 안에 본격적인 단계에 접어들 것이다. 이런 활동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는 이미 우리의 손에 쥐여져 있다. 지금 당장 행동을 개시한다면, 해수면 상승과 폭풍의 기습을 완전히 막지는 못할지언정 재앙과 같은 온난화를 막을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모든 나라가 온난화의 파도에 휩쓸리는 결과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우리는 번져 가는 불을 끄는 일에 나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불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2009년 금융 위기 때문에 잠깐 줄어들었던 전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0년에 자그만치 5.9퍼센트나 급증했다. 산업 혁명 이후로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내 머릿속에서는 늘 그 질문이 맴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집이 홀라당 타버릴지도 모르는데, 왜 우리는 불을 끄려하지 않는 걸까?
-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설명을 내놓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요구되는 행동들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탈규제 자본주의와 충돌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위기에서 벗어날 길ㅇ르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내내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우리 목을 조이고 있었다. 파멸적인 재앙을 피할 최선의 기회를 열어 줄(또한 지구인 절대 다수에게 혜택을 안겨줄) 행동이 우리 경제와 정치 과정, 대다수 주요 매체 위에 군림하고 있는 소수 엘리트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모두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런 문제가 역사의 다른 시점에 불거졌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거뜬히 극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계가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결정적인 진단을 내린 것은, 엘리트들이 정치와 문화와 학문 분야에서 1920년대 이후로 가장 강력하고 무제한적인 권력을 누리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가혹하기 짝이 없는 집단적 불운이다.
최근 25년간 이루어진 국제 협상의 역사를 돌아보면 두 가지 중요한 과정이 눈에 띈다. 난항에 난항을 거듭하다가 목적했던 바를 전혀 이루지 못한 기후 협상 과정과, 빠른 속도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는 경제의 세계화 과정. 최초의 자유 무역 협정부터 시작해서 세계 무역 기구의 창립,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경제의 대규모 민영화, 아시아 지역에서의 자유 무역 지대 확대와 아프리카의 ‘구조 조정’까지, 이 모두가 경제의 세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물론 이 과정에 무역 협상과 자유 무역 협정에 반대하는 대중 운동이라는 난관이 있었지만 세계화 협상 과정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토대는 변함없이 강력한 힘을 유지했다. 사실 세계화 협상은 국가 간 상품 교역 문제(예컨대 프랑스산 와인ㅇ르 브라질에 팔거나 미국산 소프트웨어를 중국에 파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이 협상은 포괄적인 협정과 그 밖의 다양한 도구를 동원해서 다국적 기업들이 최대한 싼 값에 상품을 생산하고 거의 아무 규제도 없는 조건에서 상품을 팔 수 있도록(그러면서도 세금은 최대한 적게 낼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세계적인 범위의 정책 기조를 마련했다.
- 누구나 알듯이, 새로운 시대의 3대 정책 기조는 공공 부문의 민영화, 민영 부문의 규제 완화, 그리고 법인세 인하 및 공공 지출 삭감이다. 이 정책들을 유지할 때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 예컨대 금융 시장의 불안정과 갑부들의 방종, 갈수록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저소득층의 절망적인 상황, 공공 기간 시설과 서비스의 노후화 문제 등은 많은 연구서들을 통해 다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한 기후 변화 문제에 집단적으로 대응하려고 시도했던 바로 그 시점에 전성기에 도달한 시장 근본주의가 처음부터 기후 대응을 계획적으로 방해해 왔다는 사실으 다루는 연구서는 매우 드물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시장 논리가 전권을 장악하고 대중의 생활을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무엇보다 직접적이고 명료한 기후 대응 방안이 정치적인 이단처럼 여겨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 기후 운동은 다른 분야와 합세하여 이처럼 합리적인 대응을 봉쇄하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에 반격을 전개하고, 일체의 구속을 벗어던지 기업권력이 지구 생태계에 막중한 위협을 안기고 있음을 폭로하고자 노력했어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기후 운동에 몸담은 대부분의 단체들은 기후위기라는 네모난 못을 탈규제 자본주의라는 동그란 구멍에 쏙 들어가도록 깎아 내느라, 또 시장 그 자체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적극 옹호하느라 귀중한 세월을 허비했다(이 일이 여러 해 동안 진행된 뒤에야 나는 대형 오염 기업들과 대규모 환경 단체들 간의 긴밀한 공모 관계를 확인했다)
한편 시장 근본주의는 강력한 기후 행동을 봉쇄하는 것 말고도 또 다른 경로를 통해 기후 위기를 심화시켜 왔다. 훨씬 더 직접적인 방법이 있었다. 다국적 기업ㅇ르 거의 모든 규제로부터 해방시켜 준 적극적인 정책 역시 지구 온난화 심화에 결정타로 작용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부추겼다. 온실가스의 급격한 상승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시장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되던 1990년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평균 1퍼센트씩 상승했다. 중국 등의 ‘신흥 시장’이 세계 경제에 완전히 통합된 2000년대에는 배출량 상승률이 재난 수준으로 치솟아 연간 3.4퍼센트에 이르렀다.
돌이켜 생각해 봐도, 당시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을 가능성은 떠올리기 힘들다. 이 시대의 두 가지 특징은 원거리 수송(엄청난 양의 탄소를 태우는)을 통한 상품의 대량 수출과, 더 이상 소모적일 수 없는 생산, 소비, 그리고 화석 연료를 대량으로 연소하는 농업 모델의 세계적인 확산이다. 말하자면 세계 시장의 자유화는 지하에서 해방된 유례없는 양의 화석 연료를 동력 삼아 온난화를 대대적으로 심화시키며, 이를 통해 북극을 지키던 빙하에게까지 모습을 바꿀 자유를 선사하는 셈이다.
이제 기후 행동은 우리 경제 모델의 핵심을 이루는 근원적인 명제, 즉 성장 지상주의와 싸워야 한다.
지금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지구 시스템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경제는 인간을 비롯한 지구 상의 수많은 생명체들과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지구 기후의 파멸을 피하기 위한 대원칙은 인류의 자원 이용 억제이며, 경제 모델의 파멸을 피하기 위한 대원칙은 규제 없는 성장이다. 이 두 가지 원칙 가운데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경제의 무한한 팽창이다. 게다가 그것은 자연법칙에도 위배되는 원칙이다.
다행스럽게도 자원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또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가장 책임이 큰 사람들에게 부담을 많이 지우는 공정한 방법으로 우리 경제를 변화시키는 건 확실히 가능하다. 우리 경제의 고탄소 분야를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되, 저탄소 분야는 더욱 팽창시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거대한 규모의 경제 계획 및 관리가 지배 이데올로기와 전면적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시스템이 용납할 수 있는 유일한 제약은 극심한 경기 침체 뿐인데, 이로 인한 고통은 대부분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몫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엄중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기후 혼란이 세계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도록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 우리 경제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인가? 그전에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집단적인 외면으로 수십 년을 허송해 온 탓에, 이제 우리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법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각은 더 이상 급진주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주장이 자본주의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맹목적인 중도주의(적당함, 진지함, 절충, 무엇에든 과도하게 흥분하지 않는 태도)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이며, 위기 자체를 부정하는 보수주의자들보다 기후 정책에 관심이 많은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 훨씬 두드러진다. 기후 변화는 이처럼 신중한 중도주의에 대해 강력한 도전을 제기한다. 어중간한 절충으로는 아무런 상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채취냐 내핍이냐, 오염이냐 가난이냐 하는 암울한 대안만 남아 있다고 자포자기할 때마다, 자본주의는 이긴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은 단순히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수많은 정책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미약하나마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놓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시장 논리는 지배의 정신과 맹렬한 경쟁을 부추기며 개가를 올리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거의 모든 진지한 시도들을 마비시키고 있다. 국가들 사이의 극심한 경쟁 때문에 유엔 기후 협상은 수십 년째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부유한 나라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이행하길 완강하게 거부하며 세계 위계 서열의 최고 지위를 상실할 위험을 무릅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한편 가난한 나라들은 결국 자신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안길 재앙을 부채질하는 행위임을 알면서도, 부자 나라들이 풍요로운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그랬듯이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연과 이웃 나라들을 적으로 여기는 대신, 공동의 재도약이라는 원대한 프로젝트 안에서 긴밀히 협조하는 동반자로 보는 세계관이 힘을 얻어야 한다.
47.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자유 시장이 흔히 내놓는 호언장담ㅡ기술적 해법이 곧 출현할 것이다!ㅡ은 그저 허풍일 뿐이다. 중국과 인도에게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더러운 발전 단계를 밟으라고 1백 년의 시간 여유를 줄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을 허송했고, 따라서 지금 당장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탈규제 자본주의의 근본 논리에 도전하지 않고서도 그게 가능할까? 어림도 없다.
48.기술적 해법들을 이용해서 수익성만 중시하는 현재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기후 변화에 근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급진적인 해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에 비하면 차세대 태양 전지가 상대적으로 효율적이라는 건 지극히 사소한 내용일 뿐이다.” 개리 스틱스
이 책은 사회적인 측면은 물론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측면에 필요한 급진적인 변화를 다룬다. 전환의 물리적인 측면, 즉 더러운 에너지에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승용차에서 대중교통으로의 전환, 무질서하게 뻗어 나가는 교외의 전원주택에서 도보 생활이 가능한 밀집형 도시로의 전환 과정은 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오래전에 제시된 이런 해법들이 대대적으로 시행되지 못하도록 봉쇄해 온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핵심 문제는 태양의 힘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인간의 힘을 둘러싼 정치적 역학 관계, 즉 권력을 쥔 주체를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말하자면 권력 주체가 기업에서 공동체로 전환되어야 하고, 이런 방향으로 권력 전환이 이루어지려면, 현행 시스템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힘의 저울추를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확고하고 다양한 사회 운동을 구축해야만 한다. 취재 과정에서, 나는 인간이 지닌 힘의 속성에 관한 기존의 사고(이간은 그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채취할 권리와, 복접한 자연의 시스템을 원하는 대로 변조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현대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해 온 문질 만능주의의 기본 태도, 이른바 ‘채취주의’ 사고방식에 대한 도전이다.
채취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면 우리가 줄곧 외면해 온 진실이 드러난다. 기후 변화는 우리가 걱정해야 할 문제 리스트에서 의료와 세금 다음 항목에 추가하면 되는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기후 변화는 문명의 경종이며 산불과 홍수와 가뭄, 그리고 생물 종의 멸종을 통해서 선포되는 강력한 메시지다.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제 모델을 구축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지구를 공유할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 우리 인류가 진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메시지다.
아들을 생각한다면, 나는 마땅히 공포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까지 생각한다면, 마땅히 공포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이 하루하루 활력을 잃어 가면서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공포감. 이 감정을 가지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이러한 공포감이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공포감이야말로 세계가 파멸로 치닫고 있다는 참혹한 현실에 직면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대다수 지구인이 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이 지구의 파멸을 부추기고 있다는 참혹한 현실에 대해서 우리는 마땅히 공포감을 품어야 한다.
그 다음엔, 이 감정을 이용해야 한다. 공포감은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공포감에 휩싸이면 달아날 힘이 생기고 높은 곳으로 뛰어오를 힘이 생기며, 때로는 초인적인 힘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디로 달려갈지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목표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공포감에 휩싸여도 우리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다. 우리의 묘책,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전망을 단단히 다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에 대한 공포감을 상쇄하고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물론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누군가는 호화로운 생활을 포기해야 할 것이고 몇몇 산업은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이다. 게다가 이미 때를 놓친 탓에 기후 변화를 완전히 막아 낼 방법이 없다. 기후 변화는 이미 진행중이고, 아무리 기를 써도 우리 앞에는 갈수록 심해지는 참혹한 재난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막아 낼 시간적 여유가 아직은 남아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켜야만 재난의 순간에 벌어질, 인간을 상대로 한 인간의 잔혹한 행동을 최대한 막아 낼 수 있다.
1장 우파가 옳다
58. 기후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현재 진행형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후 과학자 가운데 97퍼센트가 확고한 증거에 입각하여,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합의는 하나의 논문만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20년간의 조사를 통해 수집한 증거, 그리고 이 분야의 거의 모든 전문가 협회가 동료들의 심사를 거쳐 내놓은 논문의 내용 분석과 공식 성명에 밝혀져 있다.
ㅡ 미국 과학 진흥회의 보고서, 2014년
65. 예일 대학의 문화 인지 프로젝트에 따르면, 한 사람이 지닌 특성 가운데 지구 온난화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과 가장 큰 연관성을 보이는 것은 ‘문화적 세계관’, 즉 세계를 보는 정치적 성향이나 이데올로기적 견해다. 나이나 인종, 교육, 지지하는 정당보다 개인의 세계관이 더 강한 연관성을 지니는 것이다.
예일 대학 연구원들의 설명에 따르면, ‘평등 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들은 집단 행동과 사회 정의를 지향하며 불평등에 대한 우려와 기업 권력에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은 대부분 기후 변화와 관련한 과학자들의 통설을 지지한다. 반면에 ‘위계 서열 의식’과 ‘개인주의’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들은 저소득층과 소수자에 대한 정부 지원에 반대하고 산업을 강력히 옹호하며, 부자의 소득이 많은 것은 사회에 기여한 몫이 크기 때문이라고 믿는다)은 대부분 과학계의 통설을 부정한다.
66. 이 연구를 주도한 예일 대학 교수 댄 케이헌은 ‘세계관’과 기후 과학에 관한 견해가 긴밀한 상관관계를 이루는 것은 ‘문화적 인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본다. 문화적 인식이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정치적 지향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유익한 사회에 대한 전망’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그 정보를 여과하는 과정이다. 만일 새로운 정보가 자신의 전망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하면 선뜻 그것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든다. 반대로 새로운 정보가 자신의 신념 체계를 흔들어 놓을 우려가 있으면 두뇌는 불청객을 격퇴하기 위해 지적인 항체를 생산한다.
케이헌이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자신이 고결하다고 여기는 행동기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자신이 비열하다고 여기는 행동이 사회에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는 순간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어떠한 견해를 받아들임으로써 동료들과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는 경우, 감정은 그 견해를 부인하려는 쪽으로 크게 기운다.’ 한마디로, 세계관의 갈등을 견디기보다는 현실을 부정하는 편이 훨씬 쉽다는 얘기다.
본질적으로 체계를 정당화하는 입장에 선 보수파가 기존 경제 체계의 정당성을 흔드는 증거를 대할 때마다 격분하듯이, 본질적으로 체제를 부정하는 입장에 서 있는 좌파는 기업과 정부가 내놓는 증거들을 불신하기 쉽다.
신념 체계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그 증거들을 보이지 않게 감춰 버리기 때문이다.
68. 시장근본주의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승리를 선언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고는 자신감에 차서 기업 활동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다음 과업에 착수했다. 오래전부터 활약해 온 시장 근본주의는 정치적 격동과 심각한 경제 위기를 기회 삼아 최상의 성과를 거두었고, 자유 무역 협정과 세계 무역 기구 회원국 가입 유도를 통해 확고한 기반을 다졌다.
모든 게 잘 풀려 가고 있었다. 시장 근본주의는 성가신 규제와 정부감독에서 벗어난 금융권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가 빚어낸 2008년 경제 위기까지 견디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허틀랜드 콘퍼런스를 조직한 사람들은 기후 변화를 또 다른 위협으로 인지했다. 이것은 단순히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의 대립 구도가 아니었다. 이것은 대기와 해양의 물리적 경계선에 관한 문제였다.
이 맹신자들은 시장 논리와 양립 가능한 온건한 기후 행동을 촉진하려는 다양한 시도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세계화 경제는 화석 연료의 사용을 통해 구축되었으며 앞으로도 화석 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이들은 알고 있다. 또한 화석 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연한 시장 메커니즘의 도입으로는 아무런 성과를 낼 수 없으며 강력한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사실 역시 분명히 알고 있다. 오염 활동에 대한 강력한 규제 법률, 친환경적 대안에 대한 적극적인 보조금 지원, 위반 행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 오염을 규제할 세금 신설, 새로운 공공 토목 공사, 민영화의 역전 등, 이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개입의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70.또한 기후 협상 과정에는 ‘지구적 차원의 형평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다. 기후 정의론은 지구 온난화가 2백 년 넘는 세월 동안 대기 중에 쌓인 온실가스로 인한 것이라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다. 산업화에 연륜이 깊은 일부 국가들이 배출해 온 온실가스양은 다른 국가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기후 변화의 충격을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겪고 있는 곳은 그동안 온실가슬르 거의 배출하지 않은 많은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은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빈곤 때문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특히 높다.
이런 구조적인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동요시키지 않도록 중국과 인도 등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국가들을 설득하는 한편, 북미 대륙과 유럽 등 오랜 연륜을 지닌 온실가스 배출 국가들이 솔선해서 온실가스 규제의 부담을 더 많이 짊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빈곤 국가들에는 저탄소 경로를 이용하여 빈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자원과 기술의 대대적인 이전 작업이 필요하다.
강경한 보수파 사이에서 기후 변화 부정 운동이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는 현실은 바로 이런 두려움을 반영한다. 이들은 기후 변화를 현실로 인정하는 순간 이 시대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 투쟁, 즉 공공의 목적과 가치관에 맞게 사회를 계획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과 시장의 마법만으로도 이러한 과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 대결하는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다.
기후 변화 이론은 보수파가 의지하는 이데올로기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폭약이다. 집단 행동을 비방하고 일체의 기업 규제 조치와 일체의 공적 조치를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는 신념 체계를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대대적인 규모의 집단 행동과 위기의 씨앗을 심고 그것을 심화시켜 모든 시장의 힘에 대한 철두철미한 규제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기후 변화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
72.많은 보수자에게 있어서 기후 과학은 ‘그들이 지닌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근본 신념, 즉 <인류>가 지구와 지구의 모든 결실을 정복하고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구축할 능력과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신념에 오물을 끼얹는 행위’다.
많은 부정론자들은 자신이 기후 과학을 불신하게 된 이유와 관련하여, 기후 변화가 사실이라면 정치적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리라는 극단적인 불안감이 한몫을 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현대의 환경주의는 좌파들이 선호하는 여러 가지 대의(부의 재분배, 세금 인상, 정부 개입의 확대, 규제)를 진전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좌파에게 기후 변화는 완벽한 도구다. ... 기후 변화를 인정할 경우 우리는 좌파가 원하는 모든 것을 무조건 시행해야 한다.'
자신과 동료들이 기후 문제를 기후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건 과학적 사실에 오류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점도 솔직히 인정한다. 사실 그들은 기후 변화라는 과학적 사실이 경제적/정치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함의를 품고 있다는 것에 겁을 먹어 이에 대한 반박에 착수한 것이다.
그들은 정부 개입과 관련한 찬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간단하다. 정부 개입ㅇ르 허용할 경우 기후 변화 이론을 방치한 지난 수십 년 보다 훨씬 큰 경제적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허틀랜드 콘퍼런스에 모인 이데올로기 전사들은 이처럼 심각한 위협을 물리칠 방법은 딱 하나 뿐이라고 판단한다. 바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거짓말쟁이이며, 기후 변화는 정교하게 고안된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폭풍이 갈수록 강력해진다는 건 그들의 망상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만약 사실이더라도 그건 인간의 행동 때문에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고, 더 한발 물러나 정말로 그렇다 해도 인간의 행동을 멈출 방법은 없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오로지 그 현실이 암시하는 미래가 있을 법하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
바로 여기에 내가 생각하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나는 이 강경한 이데올로그들이 정치 분야에서 활동하는 ‘온난화주의자들’보다 기후 변화의 중요성을 훨씬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고 생각한다. 온난화주의자들은 여전히 기후 변화 대응이 점진적이며 고통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따라서 화석 연료 기업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와도 전쟁을 치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고수한다.
다음 논의로 넘어가기 전에 내 입장을 분명히 밝혀 두겠다. 세계의 기후 과학자들 중 97퍼센트의 의견에 따르면, 기후 과학과 관련한 허틀랜드의 판단은 완전히 엉터리다. 하지만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들이 정치와 경제에 엄청난 파급력을 미친다는 대목, 그리고 인간의 에너지 소비 행태는 물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유주의 경제의 근본 논리에도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는 대목에서는 이들의 판단이 정확하다. .. 재앙을 피하기 위해 요구되는 변화의 범위와 강도를 돈 문제와 관련시켜 따지는 한, 이들의 판단은 정확하다.
79.기후 변화의 과학적 근거를 부정하는 태도와 사회/경제적 특권 사이에 분명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 중에는 보수주의자, 백인, 남성 그리고 평균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수적인 백인 남성 그룹의 경우, 자신이 속한 경제 시스템 내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를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그룹에 비해 아주 높다. 기후 변화가 산업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강력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스템의 정당성을 확신하는 보수적인 백인 남성들이 기후 변화를 부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급격한 사회적/경제적 변화가 일어날 경우, 사회적/경제적 특권을 지닌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잃게 된다.
81.이들이 기후 과학을 부인하는 이유는 우월주의에 기반한 자신들의 세계관을 무너뜨릴 위험 때문만이 아니다. 이들의 세계관은 거대한 인류애를 외면하고 빙하 융해 덕분에 수익을 올리는 것을 합리화할 수 있는 지적인 도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처럼 공감이 결여된 사고방식(문화 이론가들은 이를 ‘위계적’, ‘개인주의적’이라고 표현한다)의 위험성을 인식해야 한다. 기후 변화는 오래지 않아 우리의 도덕성을 실험할 것이다. ... 기후 난민이 물이 새는 보트를 타고 우리의 해안에 도착한다면 우리는 과연 이들을 어떻게 대할까? 신선한 물과 음식이 갈수록 희귀해져 갈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이런 일은 이미 진행 중이고, 따라서 그 답도 뻔히 나와 있다. 기업들은 자연 자원을 손에 넣기 위해 갈수록 탐욕ㅇ르 부리고 난폭한 행동을 일삼을 것이다. 부유한 국가는 식품과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경작이 가능한 아프리카의 땅을 차지할 것이고, 이미 극심한 수탈에 시달려 온 세계 전역의 땅들은 신식민주의적 수탈에 또다시 유린당할 것이다.
…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비슷한 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지구의 기온을 낮추기 위한 공학적 방법이 도입되면 열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북미와 서유럽, 공업화된 동아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정부는 우리의 대응(혹은 무대응) 때문에 땅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기후 난민들에게 도덕적 채무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은 채,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더욱 견고한 요새를 구축하고 더욱 가혹한 이민자 규제 법률을 채택할 것이다. 또한 ‘국가 안보’를 내세워 수자원, 석유, 경작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타국의 분쟁에 개입하거나 직접 분쟁을 일으킬 것이다. 요컨대 우리 문화는 이미 해오고 있는 일을 전보다 훨씬 잔인하고 난폭하게 진행할 것이다. (지금) 우리 시스템은 바로 이런 일을 하기 위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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