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땃배 소동은 내게 행운이었다. 땃배를 잡으러 다니는 동안에 오전발이만 했기 때문이다. 오전발이만 했다는 건 하루에 6틀 이상 땡기지 않았다는 뜻인데 내게는 그 정도가 뿌듯하게 몸이 뻐근해지는 정도, 한껏 땀을 쏟아내고도 오히려 몸이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언가 걸레를 짜듯 내 몸을 비틀어 마지막 남은 땀 한 방울까지 쥐어 짜내는 것 같았다. 6틀의 상쾌함을 깨닫고 나니 하루 8시간 노동 규정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됐다. 6틀을 마무리했을 때가 일을 시작한 지 8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내게는 8이라는 숫자가 단순히 24를 3등분한 결과 이상으로,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르를 경험적으로 검토하고 나서 얻어낸 최적의 균형점 같았다.
하지만 서망의 ‘정상’적인 작업량은 그것의 두 배였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통발배의 하루는 열두 번은 찍어야 넘어갔다. 12틀이면 12시간에 거기다 항구와 어장을 오가는 시간까지 합하면 하루 14시간 일하는 것이었다. 선원들에게 오전발이만 했다는 건 일하다 중간에 그만둔 것, 바닷바람이나 쐬며 놀다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땃배가 물러난 후는 ‘평범한’ 항구 생활이 계속 됐다. 그 이전까지의 작업은 영화 시작 전의 예고편, 경기 시작 전의 스트레칭, 만찬 전의 식전주였을 뿐이었다.
63. 하루 12틀 작업을 경험하고 나자, 이전까지 ‘쉴 틈 없이 일했다’라는 표현을 너무 느슨하게 사용했다는 걸 깨달았다. 영어강사도 쉴 틈 없이 일하고 주식 중개인도 쉴 틈 없이 일한다. 하지만 선원과 비교한다면 이들의 쉴 틈 없는 노동은 하나의 비유이자 관용어구일 뿐이다.
66.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런 식의 의사소통을 강요하는 이유는 하나같이 다들 ‘싸나이’인 탓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배의 소음 때문이었다. 엔진은 실력과 요란함이 반비례한다는 것을 증명하듯 굉음을 냈다. 배의 어디에 있건 엔진실로부터 5미터 안이었다. 여기에 파도 소리가 더해졌다. 그리고 모두들 추위 때문에 후드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 옆에 사람이 떠드는 것도 잘 들리지 않았다. 몸이 지치면 한두 번의 손동작이 자연스럽게 말을 대체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가 알아듣건 말건.
73. “집으로 돌아가는 게 참 어렵다. 여기 온 지도 2년이 다 돼가는데, 성공하면 돌아가야지, 성공하면 돌아가야지 하지만 그 성공이란 게 돼야 말이지.
74. 선원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밑반찬, 날씨, 그리고 텔레비전.
항구에서 식사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건 밑밭찬이었다.
75. 먹을 수 있을 만큰 최대한 먹겠다가 아니라 차린 음식을 모두 먹어치우겠다는 것이 내 하루하루 목표였다. (…) 한주 형님은 수시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 배에 돈을 내놓고 가야 돼.”
76. 내 경우에 일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밥이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겐 담배였다. 선원들은 모모를 뒤쫓던 회생당처럼 담배를 피워댔다. 잠에서 깨자마자 한 대 피고 배까지 걸어가면서 한 대 피고 작업복 입고 한 대 피고 잇감 넣으면서 한 대 피고, 어장 도착하기 전에 여섯 대 피고, 항구로 돌아가는 동안 여섯 대 피고, 잠들기 전까지 계속 폈다.
77. TV 말고는 여가를 보낼 방법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TV는 커녕 숙소도 없는 선원들이 태반이었다. 쉬는 날이면 TV를 보러 온 남자들로 숙소가 빼곡히 찼다. 우리는 TV가 제공하는 소소한 즐거움에도 격렬하게 반응했다. 때는 영화제 시상식 기간이었다. 그해는 무슨 이유에선지 김혜수 씨가 대단히 보수적인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싸늘한 정적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잔뜩 실망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에이, 뭐야! 야, 불 꺼! 잠이나 자자.”
이튿날, 만나는 사람마다 그 얘기뿐이었다. 선원 대표를 뽑아 서울에 항의 방문이라도 갈 기세였다.
“야, 너 어제 봤냐? 나 혜수 씨한테 정말 실망했다.”
“그러게요. 아, 정말 진짜 왜 그러는 거래요?”
78. 선원회관 앞에선 배별로 족구 시합이 벌어졌다. 평소에는 고개만 끄덕이곤 지나쳐 가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앗다. 누군가가 능글맞은 웃음을 머금고서 족구 경기 상품인 2리터짜리 소주를 훔쳐왔고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뜯어지고 비워졌다. 사람들은 공을 따라 고개를 흔들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주제는 선주가 얼마나 ‘좆 같은’ 놈인가와 일이 얼마나 ‘좆같이’ 힘든가로 엄격하게 한정되었다.
78. 막내를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가장 주눅 들어 보이는 사람을 찾으면 됐다. 나이는 스물셋부터 서른 셋까지 차이가 있었지만 우리는 막내의 고충으로 대화 주제가 엄격히 제한된 과자 파티를 벌이며 어울렸다.
79. 큰형님에게는 모두들 깍듯이 대했다. 거기에는 연장자를 대할 때 보이는 조심성 이외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 보이는 애정이었다. 그의 행동을 봤을 때 이상할 것도 없었다. 선주들이 선원들로부터 깍듯한 대우를 받는 건 그가 평소에 얼마나 다양한 욕설을 구사하느냐에 달렸지만, 일반 선원이 융숭한 대접을 받는 건 그가 정말로 선량한 사람이라는 증거였다.
82. 사람들이 식사를 욕하고 선주를 욕하고 숙소를 욕하고 날씨를 욕하고 작업을 욕하면서도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를 나는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항구에서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 분명하게 들었다.
(…) 이곳에선 가볍게 입고 벗는 외투 같은 인간관계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83. 항구에서는 모든 사람의 삶이 하향 평준화된 사회가 주는 만족감이 있었다. 모두가 헌 추리닝을 입고 형편없는 식사를 하고 매일같이 위험하고 힘들게 일했다. 볼품없는 외모를 주눅 들게 만드는 예쁜 여자도 없었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거기엔 실패를 받아들인 데서 오는 편안함도 있었던 것 같다. 항구에선 더 이상 내 인생이 아무 문제없는 척할 필요가 없었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약속할 필요도 없었고 왜 나는 친구들 같지 못한가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 자기계발서가 권하는 어설픈 거짓말로 자신을 속일 필요도 없었다. 밑바닥까지 떨어진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었고 나는 그 밑바닥에 있었다. 내가 신경 쓸 일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놀랍게도 항구에선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84. 상위 계급은 하위 계급을 마음껏 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나는 이 권리를 행사하는 데 소홀한 선주를 본 적이 없다. 항구에선 욕설이 일상적이었다. 선원들이 명확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때가 있다면 그건 욕할 때였다. 배에선 좆과 씨발을 빼면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일주일만 일해보면 ‘좆’이라는 말이 180가지 정도의 용도로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된다.
85. 선장 다음이 갑판장, 그리고 나머지가 일반 선원들이다. 일반 선원들 중에서도 막내는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항구에서 막내보다 아래 있는 건 내가 그것들보다 더 아래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막내가 해야 할 일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정해지지 않은 모든 것’이다. 다른 이들은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만 하면 된다. 선주는 배만 몰면 되고 큰형님은 잇감만 넣으면 된다. 막내는 각자가 맡은 역할 사이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 막내는 갑판을 청소하고, 유리를 닦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자질구레한 심부름ㅇ르 도맡았다.
89. 진성이 형은 호스트바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호스트’로서 말이다.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되는 법이지만 그 말은 조금 믿기 어려웠다. 그는 나나 한주 형님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얼굴이었다. 부스스한 곱슬머리에 눈이 작고 가늘었다. 앞니 하나는 절반쯤 깨져 있고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진성이 형이 “예전에 나 때문에 이혼한 유부녀가 하나 있었는데……” 하며 이야기할 땐 뭐랄까,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93. “여기서 돈 번다는 건 그런 거야. 여기선 돈을 쓸 데가 없으니까 돈을 안 쓰게 되지. 그게 여기서 돈 버는 거야. 나야 다 늙었고 평생 해온 게 이거니까 이러고 있지만, 너 젊잖아. 여기는 젊은 애들이 일할 데가 못 돼. 이 근방이 그런 게 심하지만 특히 여기는 최악이야. 그러니까 다음에라도 배 탈 생각하지 말고 다른 일 찾아. 서울로 가, 가면 알바 자리 하나 없겠어? 뭘 해도 이것보다 나아.”
95. 어장을 옮겨도 어획량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떤 배는 철망을 한다. 어떤 배는 문어잡이로 업종을 전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우리 배는…… 작업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12틀이 지나서도 선주는 “한 틀만 더 땡겨보자”는 말을 반복했다. 20틀을 땡겼다는 선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10틀이 넘어서면 통발 끌어 올리는 모터 소리만 들어도 구역질이 낭로 것 같았다. 가끔은 통발을 바라보다 울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소진당하는 느낌인데, 도끼질당하는 나무의 기분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바다에는 묘하게 사람을 억누르는 기운이 있어 더 이상은 못해, 더 이상은 못해, 하는 말이 혀끝에 걸렸어도 결코 입 밖에 내진 못했다.
(…) 14번째 어장 앞에 배가 멈추면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 단계에서는 상황 설정이 급격히 비현실적으로 변했다. 이때는 <반지의 제왕>에나 나올 법한 괴물들이 배를 공격하는 환각을 봤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빨간 용이었다. 이 용은 바닷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브리지를 꼼꼼히 씹은 뒤에 내뱉었다. 내가 삿갓대로 선주의 롤렉스 시계를 건지려고 바둥대는 동안, 용이 꼬리로 배를 쳐서 순식간에 항구로 돌아오는 해피엔딩으로 환각이 마무리됐다.
107. 이런 식의 만남과 이 정도 깊이의 대화가 고시원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인간관계였다.
115. 버스 정류장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첫차는 다섯 시 반에 있었다. 나는 평일 새벽이니만큼 버스가 텅텅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첫차 풍경은 많은 작가가 감성정으로 묘사해온 소재인데, 직접 경험하고 나면 적어도 잠시 동안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버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기에 이 시간에 버스를 채운 걸까 구윽ㅁ해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는 얼굴은 없었지만 어떤 사람들인지 즉시 알 수 있었다. 누가 봤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들은 주방 아주머니, 경비원, 환경미화원, 또는 그와 비슷하게 허름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동안 거리에서 식당에서 경비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왔던 사람들과 똑같이 피로한 얼굴, 볼품없는 행색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 정도였다. 여자들은 촌스러웠고 남자들은 초라했다. 여자들은 브로콜리를 떠올리게 하는 머리 모양을 했다. 전체적으로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드물게 화려한 원색의 장신구를 걸친 아줌마들이 섞여 있었다. 남자들의 차림은 비슷했다. 옷은 갈색 아니면 짙은 남색이었고 낡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모자는 신병 전투모처럼 챙이 일자로 반듯하게 펼쳐져 있었다. 챙 앞부분에는 때가 까맣게 꼈다. 여자들은 학생이 주로 신는 검은 단화를 신고 있었다. 남자들은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고 있었는데 먼지로 뒤덮였다. 자리를 차지한 운 좋은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을 자거나 호일에 싼 김밥을 먹었다.
143. 서 과장도 우리들과 똑같이 일했다. 그럴 때면 그가 이런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손님들에겐 물론 친절하게 대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난폭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들은 강약을 조절하며 상대해야 하는데 서 과장은 일관되게 ‘약’만 유지했다. 서 과장은 함께 일하기에, 상사로 모시기에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우리 알바들에게도 언제나 존댓말을 썼다. 우리는 그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 결코 크게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얘기하곤 했다.
172. “앗, 뜨거. 에이 썅!”
이런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스스로가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주유소와 편의점에서 굽실거릴 때마다 나는 종업원의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잇는 손님이 한반도에도 존재함을 증명하리라 다짐했다. 누가 내 머리에 부글부글 끓는 청국장을 쏟아붓더라도 가볍게 옷을 털고는 산들바람처럼 웃어 보일 자신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정수리가 보일 만큼 고개를 숙여가면서. 하지만 내가 내뱉은 말은 식당 안에 있던 모두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 무엇보다도 나를 자극했던 것은 그녀가 무방비 상태라는, 내가 뭐라고 지껄이건 잠자코 있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나는 쌍시옷을 사용해서 여자의 가슴을 후벼 팠고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 한참을 투덜대고 나서야 기분이 조금씩 나아졌다. 묘한 느낌이었다.
나 역시 내가 착각에 빠진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종업원이 옷에 음식을 흘리는 것이 유쾌한 경험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한 행동에 대한 반응이라면 잠깐 노려보는 정도로 충분했다. 내가 보인 반응은 적당한 수준을 분명히 넘어선 것이었다. 5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그녀는 내 체내에 축적되어 있던 화를 배출시키는 통로나 다름없었다. 이 일은 우울한 경험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 세계는 단순했다. 나는 이름 없는 순교자였고 손님은 합법적인 악마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란 존재는 순교자인 동시에 박해자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존재와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73. 자존심이 세고 게으르면 좋은 웨이터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는 모든 면에서 부적격자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 업계의 실상을 보고 있으면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모두가 부적격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80. 그 순간엔 편의점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누구나 이곳에다 감정의 똥덩어리를 잔뜩 싸질러놓고 가는데 편의점이라고 달라야 할 이유가 뭔가?
187. 돈사는 정면에서 보면 눈곱만큼의 상상력도 사용하지 않고 그린 집, 즉 네모 위에 세모가 얹힌 모습이었다.
205. 어디서나 충고가 곧 상대방을 돕는 행동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건전한 상식의 소유자로서 이런 견해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우리는 충고라는 사치를 만끽하려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부터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충고란 자신과 이웃에게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충고를 건네고 싶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생각하는지부터 알아볼 일이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면 충고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도 상대가 당신을 좋은 충고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두 사람은 충고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닌 것이다. 어느 쪽에 해당하건 당신은 침묵해야 한다. 앞으로는 충고의 대가들이 제멋대로 남의 인생을 재단하기 전에 먼저 거울을 주의 깊게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229. 돼지는 눈이 가장 매력적이다. 매력을 결정짓는 것은 속눈썹이다. 돼지는 속눈썹이 무척 긴데 빛깔은 하얀색과 은색의 중간 정도다. 돼지의 눈매에는 뭔가 신비로운 구석이 있다. 이지적이면서도 그윽하다. 돼지가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은 해탈한 고승 같다. 꼭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리요’ 하고 말하려는 것처럼.
다 자란 돼지의 몸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부분은 꼬리다. 가마솥만한 엉덩이 가운데 꼬리가 솥뚜껑 손잡이만 하게 붙어 있다. 꼬리는 말려들어가는 지점에서 잘려 있다. 짧고 뭉툭한 꼬리가 앙증맞게 흔들거리는 모습은 꼭 돼지 엉덩이에 나비가 앉아 팔랑대는 것 같다. 꼬리의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은 일이 잘 안 풀려서 돼지 엉덩이에 달려 있지만 난 원래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존재가 아니야!’ 나중에 알게 됐지만 직원 대다수가 가슴 한편에 돼지 꼬리와 동일한 태도를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돼지 꼬리를 ‘몰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232. 돼지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나는 “빌어먹을!”을 외치며 돼지를 내리쳤고 다시 내리쳤고 그리고 나서 한 번 더 내리쳤다. 돼지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기괴한 상황이었다. 손바닥만 한 돼지 한 마리 죽일 힘도 없는 인간이 약해 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그 돼지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돼지는 코와 입에 피가 흥건했지만 여전히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겁에 질려 아저씨가 그랬듯 돼지를 배수로에 던져넣고 밖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233. “승태야! 똥 치우는 걸 몇 시간을 하냐? 이리 줘봐봐!”
그리고는 연신 “이렇게! 이렇게”하고 외치며 직접 괭이질을 해 보였다. 순식간에 돈사 절반을 끝마쳤다. 그는 가장 적은 움직임과 짧은 동선으로 똥을 퍼 담았다. 그다지 움직인 것 같지도 않은데 한 시간 정도 만에 똥까지 다 실어냈다. 그가 똥 치우는 모습은 스티븐 시걸이 건성건성 팔만 휘두르고서도 악당 수십 명을 27초 만에 제압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팀장님은 말이면 말, 행동이면 행동 어느 것 하나 거침이 없었다. 때로는 그런 거침없음이 지나쳐 터무니 없어 보이기도 했다.
“뭐여? 추워? 감기여? 그런 거 뭐, 소주 댓 병 마시고 싸우나 가서 자버리면 되지. 아니 아예, 냉탕에 들어가서 이 씨바 것, 감기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함 해보자 그래!”
237. 고기 반찬이 나왔다고 잔치 분위기로 변하다니, 그게 무슨 쌍팔년도 이야기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지금이 21세기라고 해서 모두가 화상 통화를 하고 제트팩을 메고 출근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IMF 시절을 살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서울 올림픽 시대의 삶을 산다. 삶의 스펙트럼 전체를 살펴본다면 얼마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동시대적인’ 생활 수준을 누리는지 확인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244. 우리는 3동에 배정받았다. 밥때가 됐는지 돼지들이 우렁차게 울어대고 있었다. 소리만 듣고 있으면 안에서 기르는 게 돼진지 티라노사우르스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비육사는 돈사도 분만사보다 두 배 정도 컸다. 냄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쯤에선 냄새를 비유로 설명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분만사의 냄새가 마트 한가운데 주저앉아 변신 로봇을 사달라며 떼를 쓰는 유치원생이라면, 비육사의 악취는 온몸에 피어싱을 하고 나타나서는 자신은 물론이요 뒷자리에 앉을 머저리까지 식물인간으로 만들게 될 오토바이를 사달라며 밥상을 뒤엎는 고등학생이라 하겠다.
302. 한여름의 하우스 안에선 햇빛마저 무게를 지니고 있어, 뜨거운 열기도 일하는 사람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303. 진실은, 진실은 그들이 모른다는 것이다. 고용주는 자신이 직원들에게 어떤 삶을 강요하는지 모른다. 그들이 아는 것은 통에 물 담아서 세수하고 쌀 씻고 설거지하고 빨래까지 하는 것이 ‘가능은 하다’는 거다. 거기까지다. 그렇다, 가능은 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식으로 손빨래를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직원들이 몇날 며칠이고 더러운 옷을 그대로 입거나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빨래 노동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단지 직원 개개인의 게으름이라고 탓 할 수는 없다. 직원들도 설비만 제대로 갖춰져 있다면 얼마든지 깨끗하게 생활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똥꾼에게 한 달에 두 켤레의 장갑을(세 켤레라고 해도 크게 다를 건 없다) 지급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그들이 맨손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주들은 작업장에는 고용주의 현실과 피고용인의 현실이 별개로 존재한다. 고용주는 자신이 느끼는 현실보다 피고용인의 그것이 진짜 현실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304. 작업 환경, 임금의 문제는 고용주의 선량함과는 무관한 것 같았다. 양돈장의 바지 사장은 천년만년 똥구덩이에서 썩어 마땅한 놈이지만 그가 재혁 아저씨처럼 점잖은 사람이라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직원들을 위한 결정이 이윤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무니까. 단기 이익을 최대화해야 하는 방식 안에선 개인적인 선량함과는 상관없이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18. “근데 밭일이, 밭일이 참 더러워. 논일은 기계 갖다가 남자 혼자서도 할 수 있거든. 밭일은 온 가족이 다 매달려야 돼. 이거 다 일일이 손으로 따고 심고 해야 되는데 이걸 혼자서 어떻게 해? 우리 애들 학원 같은 데도 안 가고 진짜 다 지들이 알아서 했어. 바쁠 때는 지 엄마나 나나 새벽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밭에 매달려 있어야 되는데 그럼 어떡해? 우리 애 수술받는 날도 내가 밭에서 토마토 땄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토마토는 아직 설익었을 때 따서 보내야 된다고. 발갛게 익었을 때면 팔기는 늦은 거야. 그럼 애 병원비는 어떻게 내? 내가 그때 진짜 울면서 토마토 땄어. 밥벌이라는 게 이렇게 잔인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322. “왜 사람들이 농협을 싫어하냐면, 농민은 망해도 농협은 이익을 보니까 그래요. 농협이란 게 말하자면 중간 상인이잖아요. 농가에서 물건 사서 자기들이 시장에 파는 거죠. 대출은 일반 은행보다 싸게 해주긴 하지만. 우리가 오이 농사 지으려고 봄에 대출 받아가잖아요? 그런데 그해 농사는 잘됐는데 가격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해 농사가 쫄딱 망했어요. 특히 벼는 뭐 항상 그런 식이죠. 근데 농사 망해도 대출금 갚는 건 그대로잖아요. 또 이런 것도 있어요. 농협에서 올해는 양파 수요량이 늘 것 같다고 양파 농사를 해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사람들이 수요량을 잘못 예측한 거지. 그래서 사람들이 대출 받아 양파 농사 지었는데 그게 망하잖아요? 그래도 농민들은 대출금 다 갚아야되지만 농협은 책임이 없다는 거예요. 자기들은 어디까지나 뭐, 말하자면 투자 자문을 해줬을 뿐이라는 거죠. 농민은 계속 빚만 느는데도 농협은 이익을 보니까 사람들이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거예요.”
331. 마을 사람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돈만 밝히고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젊은 사람들이 피하는 일이란 어떤 사람이라도 꺼릴 만한 일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누군가는 최악의 생활환경에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일하는 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사고방식 말이다. 그런 생각은 엄하게 훈육받은 아이들이 장래에 성공한다는 믿음만큼이나 헛소리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왜 누군가는 항상 고통 받으며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인가? 어째서 가장 영향력 없는 사람들만이 이 엉망진창인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339. 나는 진심으로 주인 부부가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들이 내 고용주 중 가장 좋은 사람들이었는데도 생활환경은 가장 열악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치에 맞는 말이다. 고용인에게 넉넉한 급여를 주고 쾌적한 숙소와 편의 시설을 제공하려면 매달 생활비, 병원비, 교육비, 농협 대출금, 자동차 할부금을 희생해야 한다. 그것은 곧 잔뜩 쌓인 빚더미에 더 무겁고 고약한 빚을 더하게 된다는, 더 나아가 자신의 가족이 고통 받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정도 빚더미가 폭발하면 웬만한 가정 정도는 쉽게 날려버릴 수 있다는 걸, 아저씨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351. 작업 숙달에 필요한 시간을 기준으로 일의 전문성을 따진다면 이 일은 엘리베이터 보이만큼 전문적이다. 버튼만 제때 누르고 문틈에 사람이 끼이지 않게만 하면 된다.
352. 열두 시간짜리 단순 생산직을 택한 이유 중 하나가 머릿속에서 생각이란 걸 지워버리고 싶어서였지만, 일이 너무 지루해서 오히려 생각을 자극했다. 그것도 아주 지루한 생각들을. 언제 끝나나, 언제 밥 먹나, 너무 지루해,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등등.
359. “니 쟈들한테 쫄면 안 된다. 니가 나이 적어도 처음부터 반말해라. 만만해 보이면 이것저것 니한테 다 시키고 지들은 쉴라고만 해. 한국 사람한테는 평소대로 하면 되지만 중국 애들한테는 좀 막 해도 돼. 쟈들 저래 보여도 지들끼리 단합 안 된다. 그니까 니도 쫄지 마. 쟤네 앞에선 강하게 나가야 된다꼬. 알았제?”
이런 태도는 한국 남자들 사이에선 일반적이었다. 산업단지에는 중국인들뿐 아니라 동남아인이나 중앙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대개 철근이나 철강판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런 공장들은 다루는 자재가 워낙 무것고 날카롭기 때문에 부품 가공 작업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이곳에서는 피부색이 짙을수록 힘든 일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362. 그는 정말 시원하게 웃어젖혔다.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나는 그 순간 확신했다. ‘이 놈은 미친놈이다.’ 내게 미친 사람을 끌어 당기는 매력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대화를 정상으로 만들어보려고 이것저것 물어봐도 결국엔 터무니없는 자기 자랑으로 돌아갔다. 그는 교과서적인 사이코패스였다.
365. 이곳에서도 중국인과 갈등이 생겼을 때 그 진짜 원인은 인격이나 근무 태도가 아니라 의사소통이 원활히 되지 않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판이 좋은 중국인은 모두 한국어가 능숙했다. 반대로 게으름뱅이, 이기주의자 같은 평을 듣는 외국인은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었다.
(…) 모두가 인자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도 중국인에 대해선 공격적이었다. 이유는 중국인이 게으르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어디서부터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겪은 중국인 대다수가 나보다 성실했다. 물론 중국인 중에도 눈치만 보면 뭐든 대충 하려는 사람이 있었지만 한국인 중에도 눈치만 보며 뭐든 대충 하려는 사람이 있었지만 한국인 중에는 나처럼 오일펜 하루 최소 생산량 60개도 못 채우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에게 개인차라는 사치를 누리게 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의 특징이라며 비난하는 결점은 공장 직원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한국인이 그런 행동을 했을 때는 그것이 그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만 중국인이 그런 행동을 하면 곧바로 중국인 전체의 결점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365. 한국 사람이라는 단어에는 최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저씨들은 입버릇처럼 “그래도 힘들 땐 한국 사람밖에 없어” 하며 서로를 위로했지만 바로 그 힘든 시기, 즉 낮은 보수, 긴 작업 시간, 위험한 작업 환경을 제공하는 그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편리하게 잊어버렸다. 내가 도착하기 전 6개월간 B.3를 거쳐 간 40여 명 전부가 한국인이었지만, 그걸 두고 ‘아, 한국 놈들으 안 돼. 도대체 끈기란 게 없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식사 시간이면 중국인들을 향해 “니 씨팔러마!”하며 킬킬대는 남자들이 숙소에 돌아오면 중국인들이 시끄럽게 떠든다느니 도무지 에티켓이란 걸 모른다느니 하며 화를 냈다. 이런 상황에는 심술궂음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366. 한국인들이 언제나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반면 중국인들은 다치지 않는 걸 가장 중요시했다. 웃기는 일이지만 재길 아저씨를 비롯한 나치 잔당들은 바로 이런 태도를 게으름과 동일시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이런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부분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일하다 다쳐서 돌아온 친척이나 친구를 많이 보았을 테고 또 그들이 얼마나 적은 보상을 받았는지 들었을 테니까.
중국인들은 한국 남성들의 입대 심정과 비슷한 마음으로 인천행 여객선에 오르지 않았을까? 나는 무수히 많은 예비역들을 만났지만, (나 자신을 포함해서) 그중 누구도 ‘동료 장병들과 지휘관들의 마음에 쏙 들만큼 최선을 다해 복무하리라’ 다짐하며 군 새오할을 한 사람은 없었다. 우리가 원했던 건 그저 몸 건강히 집에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군대가 장병을 다루는 방식을 따져보면 이런 태도는 충부히 이해할 만하다.
367.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을 파업 파괴자 정도로 생각해, 그들만 아니라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거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이 똑같은 불만을 중얼거리다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확신하는 것 하나는 중국인들이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못한다는 거다. 당장 내일 중국인들이 ‘이렇게 무시당하면서 돈도 얼마 못 받는데 뭐 하러 있냐?’ 하며 떠난다면 누가 기계를 조작할 것인가? 사람들은 중국인 때문에 형편없는 대우를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인들이 없다면 회사 자체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369. 직원들 사이의 갈등이 국경을 경계로 해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었다. 강도는 약했지만 성별을 경계로 해서도 불화는 존재했다. 주된 문제는 역시 임금이었지만 그 외에도 자질구레한 감정싸움이 있었다.
(…) 몇몇 남자들은 여직원 중에 공장장 끄나풀이 있다고 믿었다. 누가 이런저런 불만ㅇ르 품고 있고 누가 간부 욕을 했다더라 하며 간부들에게 미주알고주알일러바치는 사람이 여자 중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여직원들 사이에 언제나 대리, 과장, 부자, 이사 등이 끼여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에는 남자들의 성향이 한몫했다. 남자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 경력이 있건 없건 ‘에이 씨발, 아니면 관두면 그만이지’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여자들은 최대한 오랫동안 일하려고 했다. 이는 근속기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남자 중에서 6개월 이상 일한 사람은 탁현 아저씨 하나뿐이었지만 여직원들은 거의가 그 이상 일한 사람들이었다.
370. 1년이 되면 1호봉이 되는데, 1호봉은 시급이 50원이 오른다! 50원 인상이 워낙 ‘큰 규모’라 당장은 처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직원들이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무려 50원 이상이 아닌가! 50원이면 10원의 5배고 1원의 무려 50배나 된다. 이런식으로 임금을 인상하다가는 전후 독일 수준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다. 나는 왜 쓸일도 없는 50원짜리 동전을 계속 만드나 궁금했는데, 이런 공장들에서 임금 인상이 있을 때마다 월급봉투에 하나씩 넣어 주려고 비축해두는 모양이었다.
371. 여자들의 억척스러움은 실로 존경스러웠다. 여자들은 쉬는 시간이면 각자 집안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걸 듣다 보면 어떻게 그렇게 사나 싶었다.
(…) 마치 남자들이 소싯적에 혼자서 몇명이나 되는 놈들을 때려눕혔다는 (대단히 의심스러운) 무용담을 늘어놓듯, 여자들은 혼자서 몇 개나 되는 집안일을 때려눕혔는지 경쟁적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당연히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믿음이 가고 감동적이었다. 여자들의 강함은 믿는 힘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뭐가 됐든 한 가지씩 고집스럽게 또 절실하게 믿었다. 예수든 부처든 아들이든 딸이든 남편이든. 아들딸을 믿는 쪽이 절대 다수였고 남편을 믿는 사람은 희귀했다.
374. “그럼 도대체 정직원이 용역보다 나은 게 뭐예요?”
“그런 거 거의 엄따. 그냥 우리는 회사에서 이제 필요 엄따, 카믄 용역 팀장한테 전화해가 더 이상 나오지 말라 카믄 그만이고, 정직원은 회사랑 운명을 같이하는 거뿌이제.”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몇몇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결혼을 강요하면서 저지르는 잘못과 같다. 어렸을 적부터 지켜본 결혼생활이란 게 부부끼리 소리 지르고 욕하고 때리고 물건 집어던지는 것뿐이라면, 어떤 자녀가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하겠는가? 자녀들이 정말 결혼하길 바란다면 먼저 결혼이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이란 걸 증명해 보이는 것부터가 순서 아닐까?
나는 동료들에게 이곳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는지 물었다. 대답은 모두 “아니다”였다.
375. 이사가 몇몇 병적인 아부꾼들에게 밀려 앞으로 나왔다. 이사는 어버이 수령님이나 가능할 법한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아부꾼들의 등을 토닥였다. 그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뒤틀며 꽃다발을 받았다. 어리다는 이유 때문에 맨 앞줄 정중앙으로 밀려나 있던 나는 그 꼬락서니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야 했다. 나는 뛰어난 중세 시대 연구자, 라일리 박사가 남긴 기도문 한 구절을 되뇌며 이 시련을 버텨내기로 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너희 모두가 불임이기를 기도하겠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377. 우연인지 필연인지 임 대리는 재길 아저씨와 친했다. 쉬는 시간이면 두 사람이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 나누는 걸 자주 볼 수 있었다.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나란히 앉아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1938년도 사진이 떠올랐다. 어째서 또라이들은 다 친한 사이인 걸까?
378. 하루는 기계에 장갑이 집혔다. ‘집혔다’는 단어는 그 순간 내가 느낀 공포를 조금도 표현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악어에게 잡아먹힐 뻔한 사람에게 악어 이빨에 살짝 ‘긁혔다’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 다행히 오른손이 하나뿐인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는지 즉시 Hold 버튼을 눌렀다. 덕분에 공황 상태에 빠진 것 이상으로 상황이 악화되진 않았다.
380. 한번 험한 꼴을 당하고 나면 기계 앞에서 겸손해진다. 그날 이후로는 앞치마도 비닐장갑도 사용하지 않았다. 기계가 나보다 강하다는 걸 진심으로 승복한 결과였다. 나는 기계도 사람 대하듯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기계를 함부로 다루면 언젠간 기계도 똑같이 인간을 대한다. 동료를 열 받게 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만 기계를 함부로 다루는 건 위험한 짓이다. 이곳은 의심의 여지없이 개떡 같은 작업 환경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생산량보다 나라는 사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손을 풀어준 후 웅이 형이 내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쪼금쪼금 해. 많이 안 해도 괜찮아. 하루 열 개만 해도 돼. 다치지 마, 아랐지? 다치지 마, 다치지 마.”
383.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라는 경구를 지극히 속물적으로 이해한 결과 같았다. 식당 아주머니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려는 기특한 생각에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인건비를 줄이는 것. 나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의 근원이 이런 모습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람에게 들어가는 돈을 줄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 말이다.
384. 먹을 수 없게 된 음식들이 총천연색으로 썩어갔다. 냉장고 내부는 핵 재앙 이후 돌연변이로 가득한 도시를 떠올리게 했다. 전생에 저지를 죄 때문에 음식 재료로 환생한 악당들이 갇혀 지낼 형무소가 필요하다면 이 냉장고가 가장 적절할 것 같았다.
388. 많은 사람들이 젊은 친구들이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면서 돈만 밝힌다고 투덜댔다. 이런 평가는 공정하지 못한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은 힘들고 돈도 안 되고 그렇다고 작업장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닌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어느 누가 그런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왜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하고 보수도 적은 일을 참고 버티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걸까? 누군가 그런 일을 그만둔다면 그건 그들이 참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하고 이성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402. 아저씨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시 공장으로 향했다. 나는 아저씨의 굽은 등을 바라보다가 언젠가 해외 토픽에서 본 사진이 떠올랐다. 등에 사람 귀가 자란 생쥐였다. 외국의 연구진이 실험용 쥐의 등에 인간의 신체 조직을 자라게 한 다음 그걸 다시 사람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는 뉴스였다. 말하자면 하금은 아저씨나 탁현 아저씨는 그 실험용 쥐도 아니고 그 쥐의 등게 키운 인공 장기였다. 한국 경제라는 환자를 위해(하지만 그는 육체보다 정신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마음껏 쓰고 버려지는 인공 장기. 생명이지만 생명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403. 웃기는 얘기지만 회사는 언제나 배려를 강조했다. 조회 시간이면 빠지지 않는 단어가 그 빌어먹을 배려였다.
(…) 배려심은 분명 미덕이고 그걸 강조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회사가 배려를 앞세우는 건 그것이 책임보다 싸게 먹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작업 중 다친 직원에게, 그의 망가진 신체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회사는 책임이 아니라 얌전한 수준의 배려심만을 가질 뿐이라는 건가?
404. 나는 우리의 처지가 리모컨 뒤에 끼워넣는 건전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지않은 미래에 누군가 피를 흘리고 비명을 지르는 건전지를 발명한다면 사람들은 그걸 두고 파견직이라고 부르게 될 거다. 그 건전지는 용도도 다양할 거다. 자동차 조립용 건전지, 영화 촬영용 건전지, 계단 청소용 건전지, 서빙용 건전지, 피자 배달용 건전지, 대형 마트 판촉 행사용 건전지, 기타 등등, 기타 등등.
410. 탁현 아저씨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했기 때문에 해고의 문턱까지 갔지만 재길 아저씨는 자신의 광기를 굽히지 않은 덕분에 한자리 꿰찰 수 있었다. 공장장은 임 대리나 재길 아저씨 같은 나치 잔당들에게 완장을 채워주는 것이, 불만세력으로부터 이 배려심 넘치는 작업장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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