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유로운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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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아닌 새소리에 일어난 아침. 
이불을 빨고 아침을 먹고 글을 썼다. 

숙원 살림이던 널빤지 책장을 놓았다.
적당한 받침대를 구해와 녹을 벗기고 색을 칠했다. 
널빤지를 얻어와 박혀있던 못을 뺐다.
먼지를 씻어내고 햇볕에 말렸다. 
널빤지 하나 놓는 것뿐인데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게으른 살림꾼의 게으른 반년이 가는 동안
책은 과분하게 쌓였고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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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살이를 시작했고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이웃들과 함께하는 즐거움과
자연 속에 있는 즐거움.
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움과
배움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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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믿고 기다려온 새싹들이 뿌리를 내리듯
이제야 삶의 뿌리가 내려가는 기분이다.
묵은 녹을 벗고 먼지를 씻어내고
새로운 다짐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한장 널빤지만큼은 가치 있는 삶.
나름의 속도로 삶은 완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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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충남 홍성 홍동 녹색평론 녹색당



제가 당신에게 숙제를 하나 내드리겠습니다.
산을 오른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하고 빠짐없이 적어보십시오.
당신의 경험에서 중요했던 모든 것을 적어보고
만족할 때까지 고쳐쓰고 또 써보십시오.
당신이 산에 올랐던 이유를 당신 자신에게 설득력있게 설명해보십시오.
산을 오르는데는 별로 시간이 들지 않았겠지만
진정으로 산의 정상에 오른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정상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모든 것은 그런식으로 입증됩니다.
산 정상에 올라 상쾌한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정상에 오르면 우리는 더이상 오르지 않을테니까요.
어쩌면 집에 돌아온 후에야 우리는 진정으로 산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산이 뭐라고 말하던가요.
산이 무엇을 하던가요.

- 헨리 데이비드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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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내 여행에 많은 영향을 준 책이 있었다. 미국의 자연주의 사상가 H.D. 소로우의 <월든>이란 책이었다. 소로우는 어느 날 숲에 들어가 ‘월든'이라는 호수 옆에 통나무 집을 지었다. 그리곤 숲에서 2년을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농사를 지었고, 사람을 만났고, 산책을 했다. <월든>은 그 2년의 시간을 적은 수필이다. 1865년, 산업화가 세상을 지배해가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소로우는 <월든>을 통해 말했다. 소박한 삶을 통해서만 우리는 삶의 진실을 만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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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동안 나름 소박한 여행을 하고자 했다. 상업주의의 껍데기 속에 가려진 진실을 보고 싶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었다. 산다는 건 무엇일지 알고 싶었다. 눈으로 보는 것,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느끼고 싶었다.
그 나라의 음식문화를 이해하고 싶었다. 먹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것이 문화니까. 길거리 음식이 주메뉴였다. 식중독에 걸렸다. 사흘을 설사만 했다. 
외국 사람들의 삶을 보고 싶었다. 가는 동네마다 시장바닥을 기웃거리며 무얼 파는지 봤다. 날강도를 만났다.
무엇이 문화를 다르게 만드는 걸까. 문화가 바뀌는 경계를 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이동했다. 
낮은 위치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거지처럼 다녔다. 그냥 거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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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년 전의 소로우는 내게 숙제를 남겼다. 나는 그 숙제를 완성할 수 있을까. 스스로 납득 할만한 
여행이라는 산을 오르며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여행은 내게 무엇을 말해주었을까. 나는 진정으로 여행을 다녀온걸까. 여행은 내게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지금 또다른 걸음을 떼고 있는 또 하나의 산. 여행은 왜 나를 귀촌하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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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행을 떠나야 했을까. 여행을 다녀온 후 왜 귀촌을 해야 했을까. 그건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시점이 있고, 그 시점마다 고민에 고민을 했던 질문이 있다. 답을 찾기 위해 신앙을 찾았던 것처럼, 책을 읽었던 것처럼, 제대를 한 것처럼. 여행을 떠났던 건 다음 단계의 답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던 것 뿐이다. 그리고 역시 같은 이유로 농촌으로 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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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리 궁상맞았던 여행. 다음의 답은 농촌에 있다고 한 여행.
그 경험을 모두 적어보고 고쳐쓰고 또 고쳐써봐야겠다.
오늘의 일기 끗~





충남 홍성 홍동 뜰

충청도 홍성 홍동 희망제작소

꽃보다 홍성 #25 홍성에 온 손님
ㅡ 돌아서면 배고픈 국수처럼


어제
희망제작소 인턴 시절의 인연들이 한자리에.
새롭게 진행되는 공동연구 때문에
홍성 홍동에 들린 희망제작소 연구원 선생님들.
그리고 홍성에 같이 계신 민주누나.
함께 우리 동네 마실방 뜰에서 우리밀 국수 한 사발.


홍성 귀농 귀촌마늘싹이에요^^



요 며칠 벌이 웽웽거리나 싶더니 꽃이 피었다. 

쪽파가 돋는가 싶더니 비가왔다. 
봄이 오는 전주곡이랄까.

겨우내 기다려온 새싹
흙을 밀어올리며 
봄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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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의 시를 적는다.

저거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손 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하 연두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홍성 귀촌

충남 홍성 홍동 마을 은행 화폐 지역

이제는 '이자를 낳는 돈'에 대해서도 문제 의식을 가져야하지 않을까요. 자연의 모든 것이 늙습니다. 돈도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게 옳지 않을까요. 돈이 늙는다면 축적되지 않고 순환할 것입니다. 혈행이 좋은 몸이 건강한 몸이듯, 순환하는 돈이 우리 경제를 건강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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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예금은 중앙은행으로 흡수됩니다. 우리 돈임에도 우리는 우리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릅니다. 지역민의 예금이 지역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돈이 지역내에서 이웃을 위해, 마을을 위해 활발히 순환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을 건강히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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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무이자 계(契)
경제협력체 도토리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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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돈'이라는 패러다임은 우리로 하여금 투기의 비윤리성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땅은 땅일 뿐이다. 땅이 부가가치를 만드는 게 아니다. 부동산 투기는 카드깡처럼 미래 세대의 돈을 끌어오는 것이다. 어른 세대가 만든 거품은 우리들이 짊어져야 할 빚이 되었다. 집이 없어 한곳에 정착하지 세대를 만들었다. 비싼 가게 임대료는 우리 이웃을 외지로 내몰았다.



# 내가 믿는 세상(프롤로그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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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말, 희망제작소와 한겨레에서
<2045년 대한민국 소셜픽션 컨퍼런스>를 연다.
사이언스픽션처럼, 미래 사회를 상상해보는 장이라고 한다.
지난 1달 정도, 30년 후를 상상해보았다.
내가 참가하고자 하는 분야는 복지다.
복지를 통해 불안 없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사전은 복지를 '행복한 삶'이라 한다.
행복한 삶이 결국 삶의 목적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복지는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복지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주체가 되는 마을 복지다.
내일 일도 모르는데 무슨 30년이람,
귀촌한지 이제 겨우 5달인 내가 무슨 말을!
물론 생각은 불완전하고 맹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오늘의 나임을
숨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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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년의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에게 매월 40만원(2015년 기준)의 기본수당을 지급한다
지산지소(地産地消), 즉, 생산과 소비가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급할 만큼의 농사를 짓는다.
에너지, 교육, 문화, 교통, 식량 등이 마을 안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된다.
가난의 문화, 사람들은 소비나 소유가 아닌 존재가 풍성해지는 삶의 방식을 지향한다.
사람이 태어나 자라는 곳도, 살아가고 일하는 곳도, 죽는 곳도 마을이다.
삶이 뿌리내리는 마을이다.
불안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순환하는 마을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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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모든 이야기의 시작, 기본소득
2. 농촌으로 돌아온 사람들
3. 마차가 부활했다. 순환하는 마을
4. 마을발전소. 적정기술을 통한 공업화
5. 사람이 뿌리를 내리는 마을.
6. 우리 문제는 우리 힘으로, 주민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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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오래 전부터 홍동에서 마을을 이루며 살고 계신 분들로부터.
마을에서 농부를 길러내고 계신 선생님,
마을 은행장, 환경운동가, 마을 의사, 귀농 청년.
써놓고 보니 내 생각이라기 보단
선생님들의 꿈을 정리해 놓았을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뭐 이런게, 세대를 이으며 이어지는 꿈일 수 있겠다.
<2045년 컨퍼런스>에 참여한다는 핑계로
막연히 상상해왔던 생각을 글로 정리할 기회가 되었다.
생겨먹길 이상을 쫓기 좋아하도록 만들어진 내게
30년 후를 상상하는 일은 설레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 즐거웠다.
무슨 생각으로 귀촌을 한 것인지.
무슨 활동을 할 것인지.
이 글이 나의 다짐이다.
내가 믿는 세상이다.
글의 제목은 E.F.슈마허의 책 제목을 빌린다.
(그가 나를 변화시켰으니, 책 제목쯤 인용해도 불만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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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패인의 작은 도시 마리날레다, 이 도시의 시장인 산체스 고르디요.
30년 전인 1985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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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토피아를 정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반동 세력에 맞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에 유토피아를 세워야 합니다. 벽돌을 쌓듯이 차곡차곡, 끈기 있게, 꾸준히, 우리가 오랜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사람에게 빵이 있고, 시민들 사이에 자유가 있고 문화가 있을 때까지, ‘평화’라는 말을 존경심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현재에 세워지지 않는 미래는 없다고 믿습니다.
진심으로."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중

충남 홍성




홍성 대보름 달집

3월 5일 목요일 저녁, 
마을에 대보름 행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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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 70여분이 모였다. 
아이들은 연을 날렸고, 삼삼오오 준비해온 음식을 함께 나눠먹었다. 
소원지에 올해의 소원을 쓰고 달집에 매달았다. 
사람들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아이들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0.1초 깊은 고민에 끝에 나는 '연애'를 적었다.

해가 지고 보름달이 떴다. 달집에 불이 붙었다. 용이 승천하듯 불이 타올랐다. 달집을 태우는 것은 마을의 태평과 풍년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언제나 그래왔듯 불에겐 남녀노소를 매혹하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한동안 말을 잃고 불을 바라봤다. 
어른들은 추억을 기억하며 아이들은 기억을 만들며 쥐불놀이를 했다. 대보름은 새해 첫 보름날이자 농사의 시작일을 의미하는 날이다. 봄을 기다려온 씨앗들이 깨어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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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여러 단체가 힘을 모으고 재능을 나누어 보름달만큼 풍성한 대보름이었다. 
지금 이순간 모두의 행운을 빈다.

홍성 대보름 얼뚝 달집얼뚝 형님들이 뚝딱뚝딱 만든 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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