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저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지음
출판사
시대의창 | 2008-03-1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은 개인별, 가구별 소득에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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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발간사, 더는 희망을 찾지 않는 까닭) 
새로운 사회. 아직 오지 않은 그 사회는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결코 오지 않는다. 아니, 올 수 없다. 누군가 그림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세 번째 연구신서로 새로운 사회를 열어갈 사람들, 주체를 분석한 까닭이다. 우리는 앞서 생산해낸 연구물에서 새로운 사회의 상상력과 그것의 현실 가능성을 짚어보았다. 이어서 무엇을 연구과제로 설정할까를 놓고 논의했을 때, 우리의 답은 명쾌했다.

 주체. 새로운 사회를 열 주체의 문제를 짚어보자는 데 연구원 상근자 누구도 이의가 없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에서 ‘상상력’을 누가 떼어버릴 것인가, 누가 새로운 사회를 현실로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 연구의 고갱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주체야말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이 아닌가.

(…)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90퍼센트 국민이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면서도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미래의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주체로서 자각하고 공감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극복은 나와 내 주위의 동료들, 이웃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학자들의 기상천외한 정책 모델 개발이나 대단한 지도자의 출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자들 자신과 독자들의 가족,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이 살고 있는 오늘과 내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대한민국 90퍼센트의 생활보고서이자 희망보고서이기도 하다.

598. 일부에서는 사회운동을 보다 ‘급진적’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급진화는 이념적 과격성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절대 다수 국민이 대안실현에 참여하도록 동력을 형성할 때 문자 그대로의 급진성이 역사적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613. 우리 국민은 어느새 자신의 평생을 금융 시스템의 그늘 아래서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부동산자산 비중이 60퍼센트를 웃돌지만 주식, 펀드 등 금융자산 투자가 예금자산에 비해 빠르게 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각종 보험상품, 금융상품, 대출상품에 의존하면서 살아야 하는 구조가 되고 있고 세계적 금융 변동성에 전 국민이 불안해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금융 문제에 대해 대안적 실마리를 풀고 신자유주의 금융사슬에서 해방할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대안실현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금융 문제가 단지 금융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의 핵심적인 이해관계로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617. 또 신자유주의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시장과 자본에 대한 국가 개입을 배제하고 법치주의와 개혁정부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소수 구성원이 ‘승자 독식’하면서도 ‘형식적 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절대 다수 구성원 내부에서 갈등관계를 조장하는 일밖에는 없다. 이것이 신주유주의가 민주주의 탈을 쓰고도 작동이 가능한 핵심 이유다.

618. 경제구조적으로 볼 때에도 5퍼센트의 재벌 대기업, 급부상한 금융기업, 그리고 민영화된 공기업만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익을 향유하고 있고, 95퍼센트 이상의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농업, 서비스업이 피해를 보는 구조다. 여기에서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 대주주와 서민 사이의 금융이익의 양극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고용 부담의 양극화 등 다양한 양극화가 집중적으로 표출된다.
 즉 고용 기준 5퍼센트의 경제 부문이 금융주주 자본주의의 이익을 향유하면서 수출과 성장률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나머지 95퍼센트 경제 부문과의 순환 고리가 끊어지고 이들은 고용과 자본, 금융과 기술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단절된 경제 영역을 만들어냈다. 이른바 국민경제의 분단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 구조에 비추어 볼 때,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반신자유주의 다수운동화 전략’은 적어도 물질적 토대에서 보면 절박하고도 가능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후 10여 년간 대중운동은 내부 분열과 갈등의 소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수의 개별적, 고립적 운동’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양극화의 최대 수혜자를 고립시키는 다수화 전략을 펴기보다는 양극화의 최대 피해자를 지원하는 소수화 전략”을 짜온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실업자, 근로빈곤층, 비정규직, 여성과 이주 노동자 등 양극화의 최대 피해자에게 주의를 돌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본 전략은 최대 수혜자에 대항하는 다수화 전략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아래에서의 계급 분석은 반신자유주의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다수의 다양한 계급계층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로 피해를 보고 있는 지를 정확히 잡아내고 진정한 ‘다수운동 전략’을 펴기 위한 물질적 기초를 밝히는 것이다.

621. 도시를 중심으로 운동 역량이 형성된다는 것은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주체를 형성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각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노동자나 농민, 학생, 자영업인, 중소기업인과 같은 계급계층의 주체화는 더이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는다. 이들은 그러한 인식 아래 다수자 운동을 포기하고 환경이나 생태, 소비자, 시청자, 여성, 소수자 등 몇 가지 유형의 시민적 범주를 중심으로 하여 다양한 소수운동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분명 환경이나 생태, 소수자운동 등 시민운동으로 국민의 사회적 참여 폭이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것은 진보적 삶을 바라는 국민들의 바람직한 지향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통적인 계급계층적 요구와 지향을 해결하기 위한 운동의 약화나 축소를 정당화시켜주지 못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는 시민적 권리의 침해 이전에 각 계급계층의 생존을 훨씬 더 높은 강도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부흥하던 시민운동이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된  2000년대 들어오면서 그 기세가 꺾이고 있는 상황은 신자유주의가 국민의 생존 자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반증한다. 결국 노동자 사회와 도시 사회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더욱 강력하고 현대적인 계급운동의 지평이 넓어졌다고 해석해야 옳다. 

623. 대도시를 벗어나 지역으로 초점을 이동시키면 여전히 지역 차원에서의 도시와 농촌 사이의 연대성이 다양하게 존재하며 지역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도시민과 농민의 연대성이 복원될 수 있다.

과거에는 노동자가 질적으로 높은 선진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양적으로는 소수였다. 그런데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현재 농민은 양적으로는 소수가 되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양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농업의 담당자라는 측면과 함께, 지역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극복에 가장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따라서 지역 차원에서는 도시와 농촌을 결합시키고 도시 노동자와 학생, 자영업인과 함께 농민이 연대하여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지역 거점을 형성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부상한다.

624. 도시에서의 새로운 연대구조 형성과 지역에서의 도시민과 농민의 연대구조 형성이라는 두 개의 큰 축을 중심으로 하여 대안실현의 주체 형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637. 노동자는 우선 내부 고용 형태의 차이를 넘어 ‘총노동’의 공통 요구로 단합하는 것이 급선무다. 노동자 내부가 분열된다는 것은 대안실현 주체의 절반 이상이 분열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선도적 역할은 필수다.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주자본주의의 장벽을 돌파해야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이 어려운 조건을 이기고 전체 노동자들과 단합할 여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노동자들은 다른 계급계층과 연대하여 주주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해 정치적 운동의 선두에 서야 한다. 과거처럼 대학생들이 국민적 이해를 대변하여 정치적 운동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거꾸로 노동자가 학생들의 어려운 경제적 처지와 생활상의 문제를 지원함으로써 대학생들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길에 함게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금은 ‘학생들의 민중지원 활동’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학생지원 활동’이 절실한 때다.

또 노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 권익을 넘어선 진정한 정치적 대안실천 운동을 절실히 요구받고 있다. 노동자가 새로이 전개해야 할 정치운동은 6월 항쟁을 계승한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에서 시작된 생존권 투쟁을 경제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수준의 민주화 투쟁으로 승화 발전시키는 것이며 주주자본주의로 무너져가고 있는 경제 주권을 직장에서, 국민경제에서 지켜내는 운동이다. 질적으로 새로운 민주화 운동의 미래가 노동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639. 미래에 한국 역시 도시인과 도시 청년의 농촌 이주를 장려하는 시기가 필연적으로 올 것이다. 문제는 그 이전에 농업의 회생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파괴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농민이 농촌과 농업 기반 붕괴에 대응하여 진정으로 국민농업을 부활시켜내려면 농업 문제를 전 국민적 문제로 만들어내는 국민농업 운동을 실천해야 하며 이를 위해 농민이 주도적으로 도시와 농촌의 적극적 연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 농민은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농업 보호의 당위를 역설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농업과 농촌, 농산물에 대한 도시민의 요구와 적극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친황경 농산물 요구, 안전한 학교급식 요구 등이 그 사례가 될 것이다.

640. 국민농업은 국민의 절대 다수 구성원인 도시민에게 유일하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해줄 공급원이며 농촌이라는 국토의 절대 지역을 지켜낼 대안이다. 따라서 도시민에게 있어 농민은 더 이상 지원해주어야 할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도시민의 장기적 생존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함께 가야 할 동반자다.

(…) 향후에는 도시농업 실천과 같은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농업과 농민에 대한 친화성을 형성해야 한다. 도시민이 요구하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농촌의 오랜 문제인 토지 문제, 농협 문제, 그리고 신자유주의 개방농정 문제라고 하는 농업기반 문제에 공동대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지역 차원에서 농민은 농촌 지역과 인근의 도시, 인근의 산업과 대학을 함께 엮고 지방자치제를 민주화하여 새로운 지역 공동체를 모색하는 가운데 농촌과 농업을 살리고 농민의 활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642. 대안실현 주체로서 대학생들의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과제는 학교 안에서 신자유주의 피해를 입고 있는 300만 대학생의 처지를 개선하는 운동에 나서는 것이다. 등록금과 취업의 족쇄를 벗어나 제대로 교육받고 떳떳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야 한다. 이는 특정 시기에 특정 학교 울타리 안에서 싸워야 할 운동이 아니라 노동 운동에 견주자면 치열한 경제투쟁으로 수년간 끈질기게 싸워야 하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과제다.
 그러자면 대학생들의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추상적 구호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안의 구체적인 문제들과 결부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대학생들에게 신자유주의 극복은 신자유주의로 파괴되고 있는 ‘공교육 시스템 쟁취 운동’과 예비 노동자로서의 ‘청년실업 극복 운동’이 기본 축이 될 것이다.

또 대학생들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결코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한국 경제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이슈들을 일관된 구조로 인식하고 이해하며 공유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이 지금 필요한 반신자유주의 교육이다. ‘미군 철수’만 반복하여 강조한다고 대학생들에게 반미의 공감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통일운동 역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통일국가 모델이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토론이 대학 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젊은이들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분출시켜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6.15 선언 행사를 이벤트 방식으로 하는 것에 그칠 수는 없다.

643.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투입하는 취업 공부나 경제 공부도 개인적 생존과 활로를 모색하는 방식이어서는 대다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를 공동으로 벗어나기 위한 경제 연구와 대안경제 모색이 취업 공부만큼 절박한 이유다.





팔꿈치 사회

저자
강수돌 지음
출판사
갈라파고스 | 2013-04-09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경쟁이 어떻게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최고의 가치가 되었나? 끊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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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런 복합적 문제를 과연 어디서부터 따져나가야 돌파구가 보일까? 세상의 모든 일은 결코 우리의 일상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일과 삶, 학교와 직장, 사회와 역사에 대하여 그 근원을 캐묻고 본질을 파악하기 시작하면 서서히 삶의 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삶의 진실을 깨닫고 나면 지배층이나 기득권층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나 세뇌교육의 본질이 드러나고 만다. 사람답게 살고 싶은 우리의 열렬한 소망은 바로 이 과정을 거친 뒤에 비로소 가능하다. 허상을 벗겨내고 진실 위에 새로운 대화와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도 바꾸고 제도도 바꾸고, 그리하여 전체 삶의 구조도 바꾸어야 한다. 결코 쉽진 않지만, 이것이 바른 길이다.

이 책은 우리가 굳게 내면화하는 경쟁의 논리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보고, 일과 삶, 학교와 직장, 사회와 역사를 완전히 새로운 논리 위에 재구성해야 함을 강조한다. 80년 정도 지속되는 인생 여행, 그것을 마감할 무렵 그간 헛된 삶을 살았노라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삶의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권력이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사회다. 이 책이 모든 개인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삶을 새롭게 접근해 가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길 바랄 뿐이다.

21. 탈락과 배제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짓누른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려고 또는 비정규직이라도 유지하려고 눈치를 보고 스트레스를 참으며 일한다. 정규직은 잘리지 않으려고 또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지 않으려고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한다. 노동시간은 자연히 길어지고 노동강도는 절로 높아간다. 그 사이에 부모와 자녀, 부부 사이, 동료 사이, 이웃 사이의 친밀한 소통과 유대 관계는 모래알처럼 낱낱이 부서진다.
 서양에서는 기존의 공동체적 관계망이 해체되면서 그나마 국가 복지 체제나 강력한 노동조합 체제가 개별 노동자들의 삶에 보호막이 되었다. (…) 한국의 경우 해방 이후 폭력적인 후발 산업화 과정에서 복지국가나 강한 노조가 등장하기도 전에 기존의 공동체적 관계망이 체계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런데다가 이제 신자유주의 세계화 파도가 거침없이 들이닥친다.

22. 한국사회에서는 일단 직장에서 쫓겨나면 곧 ‘죽음’이란 의식이 더욱 팽배하다. 직장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딴 생각’말고 죽은 듯 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이 직면한 치열한 경쟁 압박이 개별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전가된다. 노동자들은 생존의 두려움 앞에서 경쟁을 내면화하고 만다. 심지어 일중독에 걸려도 일중독인 줄도 모르기 일쑤다. 바로 이것이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장시간 노동이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한 열쇠다.

31. 요컨대 오늘날 우리가 일에 대해 일정한 지향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이 우리에 대해 일정한 지향성을 강제하는 셈이다. 겉으로는 우리가 일에 대한 가치관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가 일에 대한 가치관을 강요받는다. 필요에 따라 일하기보다는 거꾸로 일의 필요에 따라 우리가 끌려 다니며 일한다. 그 와중에 굳이 우리가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일이 우리 내면의 고통이나 두려움을 회피할 수 있는 ‘도피처’ 내지 ‘망각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일중독 문제나 중독사회의 문제에 애해 A.W.셰프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늘 끊임없이 반복되는 집안일에 묻혀 바삐 지내는 것은 실제 그 일들이 꼭 해야 할 일들이기 때문이라기보다 내 스스로 바쁠 필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자기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해 왔다. 속을 들여다보았다가, 거기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35. 이제 돈의 논리가 삶의 논리를 대신하고, 마침내 삶 그 자체를 지배하게 된다. 그리하여 경제가 사회를 압도하고 병합해버린다. 이것을 범지구적으로 추진하는 움직임이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요, WTO요, FTA다. 안타깝게도 소수의 지배 엘리트들과 그를 추종하는 대다수 대중들은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고 하며 현실에 적응하기만을 강조한다.
 이렇게 전도된 현실을 우리가 바로잡고자 한다면, 사유와 노동의 이분법,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 경제와 사회의 이분법을 과감히 넘어서야 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프랑스의 소설가 V. 포레스테를 상기해보자.

우리는 지금 위대한 속임수 속에서 살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사라진 세계 속에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상은 온갖 정책을 동원하여 오히려 그 세계가 영원할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의 운명이 바로 이 같은 시대착오적 사고 때문에 파괴당하고 소멸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착오적 사고는, 우리가 가장 신성시하는 한 가지 터부를 영원불멸한 것으로 제시하려는 끈질긴 책략에서 비롯되었다. 그 한 가지 터부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노동에 대한 터부다.

한마디로 노동을 더 이상 신성시하지 않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이를 ‘신성시’하며, 나아가 고통스런 현실적 삶의 ‘도피처(쉼터)’로 삼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피비린내까지 풍기는 ‘신성한 쉼터’로서의 노동, 이것이 일중독 시대에 우리 대다수가 내면화해버린 노동관이다.

38. 일이 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일이 일종의 마약, 즉 현실적 고통에 대한 진정제가 되거나 아니면 가슴을 들뜨게 하는 흥분제로 작용했음을 암시한다. 이것이 일중독 사회 속에 사는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다.

43. 그 결과 사람들은 일의 결과가 얼마나 좋은가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일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자기강제’를 하게 되고 자연히 실 노동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현실은 경제와 사회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사회가 경제 속에 합병된 결과, (돈이나 일에 의해, 즉 자본에 의해) ‘삶의 식민화’가 고도로 진척되었음을 말해준다.

44. 사유와 노동의 이분법을 넘는다는 것은 너도 나도 삶의 문제 해결에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적극 나서야 함을 뜻한다. 더 이상 가정과 학교에서 “땅 파고 살지 않으려거든 공부해라”라고 강요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모든 이가 땅을 파면서도 땅의 철학자가 되는 감동적인 사회, 이것이 돌파구다. 그것은 지금의 수직적 사다리 질서를 수평적 원탁의 질서로 바꾸어야 가능하다. 그 출발점은 우리 마음속의 사다리 질서부터 걷어내는 일이다.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을 넘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인간이 자연속으로 겸손하게 회귀함을 뜻하며, 다른 한편으로 ‘자연의 노동’을 적극 인정함을 뜻한다. 인간이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것은 자연의 순환고리 중 일부로 동참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순환에 들어가지 못하는 ‘쓰레기’를 더 이상 만들지 않음을 말한다. 자연의 노동을 적극 인정한다는 것은, 햇볕의 노동, 바람의 노동, 물의 노동, 흙의 노동, 미생물의 노동, 풀의 노동, 밀알의 노동, 나무의 노동을 인간의 노동과 동등하게 보는 것이다.

별들이 온 힘으로 굴러서 해는 떠오르고
화분에 작은 싹 하나도
매순간 심호흡으로 자기 생을 밀어 올린다.
(조향미,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경제와 사회의 이분법을 넘는다는 것은 돈벌이 그 자체를 목적이 아니라 살림살이의 수단으로 되돌린다는 말이다. 아이들은 점수나 등수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직업이나 소득, 지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인정하며 살갑게 더불어 살 때, 비로소 경제 사회 이분법이 극복된다.

사유와 노동의 이분법,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 경제와 사회의 이분법을 과감히 넘어가는 길의 입구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 자신 안에서 분리된 내면과 외면을 다시금 통일하는 데 있다. 참된 자아와 다시 접촉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나의 참된 행복인가, 무엇이 삶의 기쁨이요, 존재의 기쁨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결국 외피에 가려진 내면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참된 자아는 과연 이 세상과 독립적으로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나 홀로 가면서도 더불어 가는 존재다. 또 더불어 가면서도 나 홀로 가기도 한다.
 ‘같이 또 따로,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실존이 아닐까? 소유양식이 아닌 존재양식의 삶을 강조한 에리히 프롬, 라다크 마을이나 남태평양 아누타 섬, 그리고 북미 원주민들이 가졌던 ‘확장된 자아’의 삶, 사람을 관계적 존재로 보자는 신영복 선생의 시각도 바로 이런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우리가 좁은 의미의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지음
출판사
메디치미디어 | 2014-02-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어떻게 써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대한민국 최고의 연설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글쓰기 책을 읽으며 항상 느끼는 건,
글쓰기와 삶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내게 그런 의미를 갖는 글쓰기를
존경하는 분들께(곁에 있던 사람을 통해서지만)
들은 건 더없이 감사한 경험이었다.
이 책은 어쩌다보니 한 달을 띄엄띄엄 읽었다.
그런 이유로 이 한 달 동안 두 분께 인생 과외를 받은 느낌이었달까.

자신 만의 인생을 살아라.
자신 만의 글을 써라.

사실 진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두 분의 이야기에 우리가 감동하는 건
신념을 지키며 진정성있는 삶,
그 진부한 삶을 지키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8월이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13. 야구 선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공을 칠 수 없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도 딱 하나다. 욕심 때문이다. 잘 쓰려는 욕심이 글쓰기를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의 문필가였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욕심을 안 부렸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글에 관한 한 욕심이 대단했다. 두 분 모두 ‘이 정도면 됐다’가 없었다.

16. 앞서 욕심이 문제라고 했다. 그렇다면 글에 관한 대통령들의 욕심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떻게 쓰느냐’와, ‘무엇을 쓰느냐’의 차이다. 어떻게 쓰느냐,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멋있게, 있어 보이게 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이다. 그러나 무엇을 쓰느냐에 대한 고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글의 중심은 내용이다. 대통령의 욕심은 바로 무엇을 쓸 것인가의 고민이다. 그것이 곧 국민에게 밝히는 자신의 생각이고,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자신 없다고 하는 사람 대부분은 전자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명문을 쓸까 하는 고민인 것이다. 이런 고민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담감만 키울 뿐이다.
 노래방 가서 빼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가수인 줄 착각하는 경우이다. 노래를 못 부르면 어떤가? 열심히 부르는 모습만으로 멋있지 않은가? 글의 감동은 기교에서 나오지 않는다. 애초부터 글쟁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쓰고 싶은 내용에 진심을 담아 쓰면 된다. 맞춤법만 맞게 쓸 수 있거든 거침없이 써 내려가자. 우리는 시인도, 소설가도 아니지 않은가.

19. 연설문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노무현)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같다’는 표현은 삼가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한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을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치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치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자랄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의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사람들은 뒤를 잘 안 보네. 단락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곳으로 응집력 있게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29.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멋있는 글을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것도 안 되네.
30. 이전에 한 만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1.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2.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22. “연설문은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도록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문장은 명료하고, 예는 쉽게 들었다. 미문은 경계했고, 오해 소지가 있는 문구는 배격했다. 그리고 중요한 내용은 되풀이해서 전달했다. 청중들이 싫증을 낼 만큼 반복했다. 그래야 비로소 청중들이 ‘김대중 연설’로 인식했다.(중략)
무슨 일이든 내가 잘 알아야 남을 설득할 수 있었다. 연설문을 작성하는 것은 일종의 공부였고, 현안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연설문은 진실해야 했다. 말의 유희나 문장의 기교에 빠지면 나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의지가 없어지고 만다. 나는 내 연설문을 역사에 남긴다는 생각으로 썼다. 그래서 늘 진지했다. <김대중, 김대중 자서전>

노무현 대통령은 언젠가 글쓰기를 음식에 비유해서 얘기한 적도 있다.
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부려서도 안 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3.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4. 글의 시작은 애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에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 놓으면 정작 메인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거든. 
6. 메인 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삼계탕이면 삼계탕. 한정식같이 이것저것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다네. 글도 오락가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돼. 다 순서가 있지.
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 줄 알고 았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 글마다 다른 전개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면 곤란하네. 글도 진심이 담긴 내용으로 승부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모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24.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25. (생각의 숙성 시간을 가져라) 두 대통령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그중 하나가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며 늘 생각, 생각, 생각을 했다. 멀리 보고 깊이 생각했다. 그게 맞는지, 맞는다면 왜 그런지 따져보고, 통념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쪽만이 아니라 다른 관점, 여러 입장을 함께 보고자 했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컸다. 그런 결과일까. 어떤 주제, 어느 대상에 대해서도 늘 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와 주장이 있었다.

26. 김대중 대통령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의견(생각)이 있는 사람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의견이 없는 사람이다.”고 할 정도로 생각을 중시했다. 생각과 관련한 세 가지의 ‘세 번 원칙’도 있었다.
 먼저,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세 번 생각한다는 것이다. 첫째, 이 일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생각한다. 둘째, 나쁜 점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셋째,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한다.
 다음으로, 상대가 있는 경우다. 그때에도 세 번 정도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이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가? 두 번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무슨 생각, 어떤 입장일까? 세 번째, 이 두 가지 생각을 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심지어 장관이나 참모들에게 의견을 물어, 세 번 이상 본인 생각을 얘기하지 못하면 인사를 고려할 정도였다고 한다.

27. 김 대통령은 잠자리에 들기 전 늘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 동안 읽고 듣고 겪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 독서법은 화초를 가꾸거나 동물을 관찰하면서 체화된 것이라고 한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잘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두 대통령의 글쓰기 힘 역시 생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정보는 널려 있다. 따라서 글감은 많다. 구슬을 꿰는 실이 필요하다. 그 실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바로 생각이다. 생각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두 대통령은 서로 다른 점도 많다. 그중 하나가 생각이 변화하는 주기다. 김 대통령은 여간해서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아하지만, 한 번 정립한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생각에 관해 얘기를 하는 순간에도 생각을 진화시킨다. 

27.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연설문을 쓰는 건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상황에서 과녁에 화살을 맞히는 것과 같다. 그 시기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맞혀야 하기 때문이다.

28.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글을 잘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특히 자신이 써야 할 글이 정해지면 그 글의 주제에 관해 당분간은 흠뻑 빠져 있어야 한다. 이처럼 빠져 있는 기간이 길수록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이 높다.

29. (독자와 교감하라)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는 상대의 언어를 사용한다.” 미디어 전문가 마샬 맥루한의 말이다.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내용만 얘기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렇다고 듣고 싶은 얘기만 하는 것 역시 실속이 없다. 자칫하면 아부나 영합이 될 수도 있다. 교감이 필요한 것이다. 

독자를 의식하느 글쓰기란 무엇인가. 바버라 베이그는 <하버드 글쓰기 강의>란 책에서 첫째, 독자의 관심을 어떻게 끌어모을지. 둘째, 글의 시작부터 끝까지 독자의 관심을 어떻게 붙잡아둘지. 셋째, 자신이 말해야 할 것을 어떻게 독자에게 분명히 밝힐지. 넷째, 독자에게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해서 그들을 웃고 울거나 생각하게 할지를 헤아려야 한다고 권고한다.

30. 김대중 대통령은 독자와의 교감을 강조했다.
“첫째, 반걸음만 앞서가라.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너무 앞서 가지 마라. 따라오지 않으면 잠시 멈춰 서서 들어라. 이해해줄 때까지 설득하라. 그래서 의견을 맞춰라. 읽는 사람을 배려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읽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둘째, 손을 놓지 마라. 두세 걸음 앞으로 나서면 마주 잡은 손이 떨어질 것이고, 따라올 수가 없다. 늘 그들 안으로 들어가 읽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란히 가서도 안 된다. 그러면 발전이 없다.”

김 대통령은 현장도 강조했다.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직접 교감하고자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금 달랐다. ‘국민의 눈높이’를 넘어 ‘역사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35. 누구나 글을 쓸 때에는 그 글을 읽을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얘기를 기대하는지를 의식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말했다. ‘말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사람과 말의 내용, 그리고 말을 하는 대상이다. 말의 목적은 마지막 것과 관련이 있다.’

42. (상량) 헤아리고 또 헤아려? 전심을 다해서 몰입하란 뜻일 것이다.
 노 대통령 역시 글쓰기를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했다. 독서, 사색, 토론이다. 대통령은 바쁜 청와대 생활에서도 반드시 짬을 내서 책을 읽었다. 청와대 참모는 물론 학자, 관료, 시민단체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토론했다. 이 모두가 글쓰기와 무관하지 않다. 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글을 쓰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영감이나 직관과는 다르다. 죽을 힘을 다해 몰입해야 나오는 것이 창조력이다. 열정과 고민의 산물이며, 뭔가를 개선하고 바꿔보려는 문제의식의 결과물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집중하고 몰입해야 한다. 절박해야 한다. 

46. 독서는 세 가지를 준다. 지식과 영감과 정서다. 책일 읽고 얻은 생각이다. 그중에 글 쓰는 데는 영감이 가장 중요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특히 감옥에서의 독서는 유명하다. 옥중에서 보낸 편지 말미는 매번 ‘다음 책을 넣어주시오’로 끝났고, 10~20권의 도서 목록이 적혀 있었다. 정치/경제는 물론, 철학/신학/역사/문학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여러 권을 펴놓고 돌려가면서 하루 열 시간 정도 독서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고서도 “마음껏 책을 봤으면 원이 없겠다. 이럴 때는 가끔 감옥에 있을 때가 그립기도 하다.”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정도였다. 1999년 5월 러시아 방문 때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이런 연설도 했다.

“나는 오랜 옥중생활을 통해서 러시아 문학을 섭렵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등 많은 러시아 고전을 탐독했습니다. 그리고 솔제니친과 사하로프의 작품들도 애독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 문학을 읽은 것만으로도 감옥에 간 보람이 있었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47. 책을 읽은 후에는 사색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스스로 지킬 것을 다짐한 ‘대통령 수칙’ 12번이 ‘양서를 매일 읽고 명상으로 사상과 정책 심화해야’이다.

48. “책을 읽고 새로운 지식이나 지혜를 발견했을 때, 깊이 생각하여 새로운 이치를 깨달았다 싶을 때, 혼자 생각한 이치를 훌륭한 사람이 쓴 책에서 다시 확인했을 때, 저는 행복을 느낍니다. 어떤 때에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일어서서 방 안을 서성거리기도 합니다.” 노무현

49. 김 대통령은 독서의 완결이란 읽은 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데까지라고 했다. 노 대통령 역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영감을 정책에 반영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책으로 집대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51.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것입니다.” 노무현

54. 한때는 정치가 곧 연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원고를 작성했다. 중요한 연설문은 산통이 대단했다. 호텔 방을 전전하며 구성하고 수없이 다듬었다. (중략)
내 연설문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작성하지 않았다. 정성을 들이고, 최선을 다했다. 내 자서전에는 연설문이 비교적 많이 실렸다. 그것은 어느 설명보다 어느 비유보다 내 연설문이 더 정확한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의 내 철학과 비전, 열정과 가치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김대중 자서전>

54. 대통령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모두 읽었다. 괘찮다 싶은 내용은 따로 놔뒀다가 다시 읽었다.
 이를 통해 머릿속에 얼개가 서면 비로소 집필에 들어간다. 그리고 각고의 시간 끝에 연설문이 완성되면 직접 서서 읽어본다. 그저 한번 읽어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입에 완전히 붙을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 글을 쓰는 시간보다 이렇게 퇴고하는 시간이 더 걸릴 만큼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57. 정약용, 아인슈타인, 링컨, 에디슨, 김대중, 노무현.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메모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독서 메모는 ‘대차대조 메모법’이라고 불렸다. 책을 읽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나오면 책의 여백이나 노트에 대차대조표를 그리듯이 도표를 그렸다. 도표 한쪽에는 책의 내용을, 다른 한 쪽에는 자신의 의견을 적고 그 해법을 얘기했다. 생각이 묻혀 사장되지 않도록 철저히 메모했다. 

메모하는 시간이 생각을 정리하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시간이었다.

67. 글쓰기 최고의 적은 횡설수설이다. (…)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다음 얘기로 넘어가나 싶더니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오락가락하는 글. 좀 심하게 얘기하면 술 취해 걷는 갈지자걸음의 술주정이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은 쓸데없는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글을 멋있게 예쁘게, 감동적으로 쓰려고 하면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이 있다.
첫째, 길어진다. 이 얘기도 하고 싶고 저 얘기도 하고 싶고, 이 내용도 넣고 싶고 저 내용도 넣고 싶고, 중언부언하게 된다. 글쓰기야말로 자제력이 필요하다.
둘째, 느끼해진다. 미사여구가 동원되고 수식이 많아진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형용사는 명사의 적이다.’ 꾸밀수록 알쏭달쏭해진다는 것이다.
셋째, 공허해진다. 현학적인 말로 뜬구름을 잡고 선문답이 등장한다. 꽃이 번성하면 열매가 부실한 법. 결과적으로 자기는 만족하는데, 실속 없는 글이 된다.

몇 가지만 명심하면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가급적 한 가지 주제만 다루자. 
감동을 주려고 하지말자.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힘을 빼고 담백해지자. 거창한 것, 창의적인 것을 써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리자.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방과 벤치마킹을 부끄러워 말자. 다르게 읽으면 그것이 새로운 것이다. 반드시 논리적일 필요도 없다. 진정성만 있으면 된다. 논리적인 얘기보다 흉금을 터놓고 하는 한마디가 때로는 더 심금을 울리기도 하니까.

횡설수설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할 얘기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쓰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막상 글로 쓰려면 잘 안 써진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쓰고 싶은 의욕만 있을 뿐, 쓸 내용은 아직준비가 안 된 것이다. 할 얘기가 분명하면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요점만으로 간략히 정리가 된다.

오락가락하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명료해야 한다. 첫째는 주제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 이 글을 읽은 사람의 머릿속에 어떤 말 한마디를 나믹고 싶은가. 둘째, 뼈대다. 글의 구조가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 셋째, 문장이다. 서술된 하나하나의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명료해야 한다. 

느낀 그대로, 아는 만큼 쓰자. 최대한 담백하고 담담하게 서술해나가자. 그러면 결코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75. 한 줄 쓰고 나면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자료 부족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 자료 확보가 필수적이다. 소설가 김훈은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란 책에서 좋은 글의 조건을 이렇게 말했다. “정보와 사실이 많고, 그것이 정확해야 되며, 그 배열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글은 자신이 제기하고자 하는 주제의 근거를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해보이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좋은 자료를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에 성패가 좌우된다. 자료가 충분하면 그 안에 반드시 길이 있다. 자료를 찾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때로는 애초에 의도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쪽으로 글이 써지기도 한다. 자료와 생각의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다.
 자료는 글 주제와 얼개의 종속변수가 아니다. 주제가 정해지고 얼개가 짜진 후, 거기에 따른 부속물로서 자료 찾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료를 찾는 과정이, 혹은 자료 찾기의 결과가 주제를 바꾸고 얼개를 수정하게도 한다. 자료를 찾아서 정리해보면 자신이 정해놓은 주제나 짜놓은 얼개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주제와 얼개 짜기 단계에서 막혀 있을 때도 관련 자료를 읽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자료찾기는 글의 주제와 얼개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77. 글쓰기의 시작은 자료 찾기다. 자료 찾기는 또한 글 쓰는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세상에 흔한 게 자료다. 요즘은 특히나 그러하다. 그 자료 중에 필요한 것을 찾아 내가 쓰려는 내용에 끼워 맞추면 된다.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어찌 보면 글쓰기는 자료 찾기 기술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료는 많다. 제재 혹은 글감은 책/포털사이트/메모/생각/경험/기억/광고/속담/신문/잡지/TV, 이 모든 것에 있다. 자료는 이미 있는 것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답사/면담/설문조사 등을 통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도 있다. 기억, 관찰과 상상도 넓은 뜻에서 자료일 수 있다. 이 자료들은 상호작용을 한다. TV를 보면서 생각이 떠오르고, 그것을 포털사이트에서 찾는다. 이렇게 이종교배를 하면 할수록 자료는 신선해지고 내 것이 된다.

78.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은 말한다. “글쓰기는 집을 짓는 것과 같으며,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연장통을 잘 갖춰놓아야 한다.” 내게 포털사이트는 훌륭한 연장통이다. 연장통 쓰는 요령은 이렇다.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클릭한다. 우측 상단의 ‘검색’을 클릭한다. ‘뉴스 상세검색’을 클릭한다. 검색어를 입력하고, 하단의 ‘칼럼’을 클릭한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도서관’을 검색하면 이에 관한 통계나 사례 등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 해당 칼럼이 너무 많은 경우에는 ‘제목에서만’을 클릭하면 된다. 지금도 글을 쓸 때 이 방법을 쓴다. 거의 모든 주제에 관해 쓸 말이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자주 이 방법을 추천하기도 한다. 자료를 완벽하게 찾아놓고 글을 쓰기보다는 쓰면서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선, 자료 찾기는 자기 글이 실리는 매체나 말해야 하는 행사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된다. (…) 자신의 글이 언제 어느 지면에 실리는지, 내 글을 읽는 독자는 누구인지를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이른바 ‘판을 읽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소홀히 하면 봉창 두드리는 글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다음으로 찾아봐야 할 것이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핵심메시지에 관련된 내용이다. 핵심메시지 관련 자료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아보는 게 좋다. 글을 쓸 때 먼 곳에서 자료를 찾으려고 구천을 헤매는 경우가 많다. 시간만 낭비하고, 설사 찾았다 한들 공허한 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파랑새는 우리 집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84. 노무현 대통령이 쓰던 가장 일반적인 얼개 짜기는 이런 것이다. 먼저, 하고 싶은 얘기를 서너 개 정한다. 이것이 큰제목이 된다. 이러한 큰제목 안에 들어갈 내용을 중간제목으로 열거한다. 또 중간제목 안에 들어갈 내용을 그 아래 적는다. 소제목들이다. 이렇게 하여 큰제목, 중간제목, 소제목이 나오면 얼개가 짜진다. 이 과정은 책으로 얘기하면 목차 만들기와 같다. 전테 글을 압축해놓은 뼈대인 것이다.

소제목은 하나의 완성된 문장으로 표현된다. 대통령은 이것을 명제 혹은 카피라고 했다. 이러한 명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거기에 쓰일 수치, 사례를 찾는다.

(…) 백지에 명제들을 툭툭 던져놓고 명제와 명제 사이의 공간을 채워가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채워가다보면 한 편의 글,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이 작업을 할 때는 우선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경제/정치/사회 등으로 잘 분류해야 한다. 같은 분야의 내용끼리 묶는 범주화 과정이다. 그런 이후에 하나의 범주 안에서 큰 주제와 작은 주제로 줄을 세우는 서열화 작업을 하여 큰제목, 중간제목 소제목을 만들어낸다.

노 대통령은 얼개 안에서 총론과 각론, 각론과 각론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입체적 구조의 글을 쓰고자 했다. 그래서 자기주장을 열거하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았다. 열거된 사안과 사안 간의 유기적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평면적 서술은 논리적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글을 밋밋하게 한다고 보았다. 

92. “제가 탄핵 결의를 받고 보니까 열린 우리당의 창당을 지지한 것이 엄청난 정치적 모험이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대와 국민의 요구를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되었다고, 위험이 예상된다고 포기할 수 있는 목표가 결코 아닙니다.”

95. 말과 글의 성패는 첫마디, 첫 문장에서 판가름 난다. 거꾸로 얘기하면, 출발에서 실패하면 독자와 청중은 떠난다. 그런 점에서 글의 시작은 유혹이어야 한다. 치명적인 유혹이면 더욱 좋다. 그러나 쉽지 않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 왜 그럴까? 긴장하기 때문이다.

 긴장하는 이유는 둘 중의 하나다. 첫째는 눈이 높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글쓰기가 아닌 글짓기를 하려고 한다. 글짓기는 농사짓기와 같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욕심을 버리자. 나중에 고친다는 생각으로 일단 쓰고 보자. 시작하는 용기가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다른 하나는 남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검열한다. 이렇게 쓰면 남들이 저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럴 사람 없다. 설사 있더라도 나중 일이다. 머릿속의 ‘빨간펜 선생님’을 지우자. 

106. 한 문장 하나 메시지. 한 문장 혹은 한 단락 안에서는 한 가지 개념,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하는 게 좋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자. 
군더더기 삭제. 모든 문장에서 없어도 되는 말은 없는지 찾아보자. 단락 안에서도 필요 없는 문장은 없는지 살펴보자. 그 말이 없어도 이해가 되면 불필요한 말이다. 
크게 그려라. 대상이나 주제에 한정하지 말고, 보다 큰 시야에서 보고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로 확장한다. 예를 들어 준공식 축사라고 할 때 해당 산업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 관한 것까지 언급의 범위를 넓힌다.

139. 시작보다 중요한 퇴고. 
무엇을 고쳤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서 이 얘기를 하는 게 맞는가 하는 것이었다. 바로 주제의 적절성 여부다.
두 번째 주안점은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주제가 잘 부각됐나? 즉 청중이나 독자가 어느 게 주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 주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가.
- 주제를 뒷받침하는 소재는 충분하고 적절한가
- 주제의 명료함ㅇ르 가리는 장황한 수사는 없는가
-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 많지는 않은가

세 번째는 글의 전개에 무리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는가
- 단락과 단락 사이에 연결은 매끄러운가.
- 전반적인 흐름에서 통일성을 깨트리는 단락은 없는가.
- 단락 순서를 바꾸면 더 나아지는 것은 없는가

네 번째는 내용상의 보완이다.
- 빼도 상관없는 군더더기는 없는가.
- 빠트린 내용은 없는가.
- 앞과 뒤가 서로 어긋나는 내용은 없는가.

다섯 번째는 표현상의 문제다.
- 다르게 바꿨을 때 더 적절한 단어는 없는가.
- 불필요한 중복은 없는가.
- 불확실한 표현은 없는가.
- 진부한 표현은 없는가.
- 비문은 없는가.
- 짧게 끊을 데는 없는가.

일곱 번째는 독자나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들이다.
- 지겹다고 하지 않을까.
- 왜 글을 썼는지 알 수 있을까
- 재미, 감동, 지식 등 무슨 유익을 얻을까
- 시작에서 흥미를 보일까
- 결론에서 여운이 남을까
- 글이 리듬을 타고 있나.

철저히 독자가 되어야 한다. 글을 쓴 사람에 머물러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지 않으면 쓴 이유와 배경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합리화한다. 인정사정없는 독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가차 없이 고쳐야 한다.

잠시 묵혀둬야 한다. 글을 쓴 다음에 곧바로 고치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다. 자기 글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인 입장으로 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히 뜸을 들인 후 독자의 눈으로 다시 보자. 쉬운지, 명료한지, 설득력이 있는지, 혹시 오해할 것은 없는지 이리저리 뜯어보자.

146. 글쓰기의 화룡정점. 제목을 붙여라.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길어도 상관없지만, 최대한 압축하는 게 좋다.
글 내용과 동떨어지면 곤란하다.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일탈도 나쁘지 않다
호소형, 청유형도 자주 쓰인다.
유행을 따라가는 식상함을 피한다.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면 좋다.

150. 글은 메시지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하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글을 쓰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그것이 떠오르지 않으면 아직 글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핵심메시지는 가급적 셋 중의 하나로 정하는 게 좋다.
첫째, 자신이 잘 알고 열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지식이나 경험 모든 면에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분야, 자신 있는 지점에서 붙어야 승산이 높다. 홈그라운드에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적진’에 뛰어들어 주제를 잡을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깨똥철학’이어서는 곤란하다. 객관적인 긍거를 가지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공자님 말씀’도 좋지 않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 빤한 얘기는 재미없지 않은가. 자신만의 시각을 보여주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얘기일수록 좋다.
 둘째, 듣는 사람이 바라고 기대하는 것. 어차피 글이나 말은 읽고 듣는 상대가 중요하다. 그들이 관심 없고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용은 얘기해봤자 전달이 어렵다.
“어젠다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세력으로 결집하는 게 정치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새로운 어젠다를 만들고 끊임없이 던져서 국민에게 생각이라도 해봐달라고 해야 한다.” 노무현

170. “여러분께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정권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그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얌심이 되어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경제, 남북 간 화해 협력을 이룩하는 모든 조건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서 표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선거 때는 나쁜 정당말고 좋은 정당에 투표해야 하고, 여론조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4,700만 국민이 모두 양심을 갖고 서로 충고하고 비판하고 격려한다면 어떻게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일어나고, 소수 사람들만 영화를 누리고, 다수 사람들이 힘든 이런 사회가 되겠습니까?”
<2009년 6.15 남북정상회담 9주년 기념사>

172. 쉽게 쓰자. “상대방이 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니 무조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김대중

173. 역사의 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정의, 즉 소수가 누리던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까지 확산하는 것. 그런 시각에서 보면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역사 발전에 일조하는 길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당연히 쉬운 말로 써야 한다. 전문용어에 돼먹지 않은 알은체는 자제해야 한다. 영국의 학자 F. L. 루카스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이기보다는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명확하게 짚어줘야 한다. ‘내가 하려는 얘기의 요점은 이것, 이것, 이것이다’라고. 그래서 읽는 사람이 척 보면 알 수 있어야 한다.
쉬운 이해를 위한 세 번째 방법은 사례를 들고 비유를 하는 것이다. 
넷째, 반복해줘야 한다. 

179. 명료하게 써라. 해설이 붙어야 하는 메시지는 문제가 있다. 듣고 알아야 한다. 단순성이 있다. 꾸미고 에두르지 않는다. 깐죽깐죽 긁는 방식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하는 식. 모호함이 없다. 글을 쓰는 목적 중의 하나는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애매한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데 있다. 구체적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표현보다는 살면서 겪는 구체적인 말로 얘기해야 읽는 사람, 듣는 사람이 더 공감한다. 복지를 확충하겠다는 말보다는 “최소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고 끼니를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말이 더 와닿는다.

그러나 단순명쾌함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글이 명확하고 단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글을 쓰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진다. 둘째, 본질을 꿰뚫어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메시지를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다. 셋째, 과욕은 금물이다. 집토끼도 잡고 산토끼도 잡으려고 하면 복잡해진다. 복잡해지면 꼬이고 어려워진다. 넷째, 독자를 믿어야 한다. 믿지 못하면 구구절절해진다. 

192. "그러한 현실을 보고 결심했습니다. 사회정의를 세우겠다는 거창한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내 자식들이 나중에 이런 상황에서 고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일념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노무현

진정성을 말할 때 놓쳐서는 안 될 게 하나 있다. 자신이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돈 남 말하듯 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자기 희생을 전제해야 한다.

215. 손목시계에, 또 화장실에 ‘침묵’이라고 써 붙여놓기까지 하면서 말을 자제하려고 했다. 남의 말을 듣고, 사람을 격려하는 것, 내 자랑을 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사람이 낙심했을 때 용기를 주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하면 안 되고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김대중

겸손한 성품 그대로 낮은 자세로 새겨듣는 타입이었다. 특히 친밀한 관계가 아닌 경우에는 철저히 듣는 쪽을 택했다.

글 잘 쓰기는 잘 듣기로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스스로 중심만 잡을 수 있으면 많이 들을수록 좋다. 잘 들어야 말을 잘할 수 있고, 말을 잘해야 잘 쓸 수 있다. 

217. 콘텐츠 만들기. 글쓰기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험한 것과 생각한 것, 이것이 콘텐츠다.

242. 용기가 필요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용기는 모든 도덕 중 최고의 미덕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과 나태를 물리칠 수 있다.”
 글을 쓰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첫 줄을 쓰는 용기,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 쓴 글을 남에게 내보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술 마시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사랑을 고백하고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일도 용기가 없으면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용기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양심과 소신을 지키는 용기를 말하려고 한다.

243. 1980년대 초 총칼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이 달콤한 제안으로 회유하려 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들에게 협력하면 일시적으로는 살지만 영원히 죽는다. 그러나 당신들에게 협력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는 죽지만 역사와 국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산다. 따라서 나는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

김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참된 용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아무리 강해도 약합니다. 두렵다고, 겁이 난다고 주저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무리 약해도 강합니다.”

246. 글을 혼자 쓸 필요는 없다. ‘디캔팅decanting’이라는 것이 있다. 와인에 가라앉은 찌꺼기를 제거하고, 고유의 향을 살려내는 과정이다. 글 쓰는 과정에도 이런 디캔팅이 필요하다. 자기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해 주변 사람에게 얘기하고, 또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디캔팅 과정이다.

247. 김 대통령은 대화가 틀어지는 세 가지 경우를 얘기했다. 첫째는 상대방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혼자 결론을 다 내버리는 것이며, 셋째는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것이다.

271. 자기만의 글을 쓰자.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인생의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원칙을 가지고 가치 있게 살면 성공한 인생이고,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이것을 ‘글’에 대비하여 얘기해보자.
“글으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자기만의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만의 스타일과 콘텐츠로 쓰면 되고,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첫째, 자기만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모든 지식은 내 자신의 비판의 그물에서 여과시켜 받아들여야 한다. 설사 그것이 미숙하고 과오를 범할 위험이 있을지라도. 그것이야말로 내가 나로서 사는 유일한 지적 생활의 길이다.”(최성, <김대중 잠언집>)

자기 세계가 관점을 만들고, 관점이 있어야 훌륭한 글이 된다.

“글은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대로 쓰는 것이다. 타당성만 있다면 튀는 것을 주저하거나 개의할 일이 아니다.” 노무현

“야당은 야당답게, 여당은 여당답게 일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할 경우 자연히 상대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비난과 모욕을 당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반대를 두려워해서 자기 할 말을 못하는 리더, 모두로부터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리더는 설사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결코 성공하는 리더가 되기는 어렵다.” 노무현

자기 글의 두 번째 조건은 자기 스타일대로 쓰는 것이다. 스타일은 문체일 수도 있고, 글 쓰는 방식일 수도 있다.

자기만의 인상을 찾아내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의문을 갖는 것이다.
궁금하지 않으면 느낌도 없다.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자기만의 느낌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내’가 중요하다.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 나의 시선, 내 시각이 중요하다. 남의 눈치 볼 것 없다. 내 나름의 것이면 된다. 좀 건방져 보이더라도 확실하게 자신을 드러내자. 그리고 뻔뻔하게 우기자. 이게 내 생각인데 어쩔 거냐고.

277. “국민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심은 마지막에 가장 현명하다. 국민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이다.” 김대중

288.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기는 길은 얼마든지 있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망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김대중

김 대통령은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을 믿었고 그것에 의지해서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노 대통령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역사 청산’을 일생의 과업으로 여겼다.
 이런 것이 지도자의 조건일까? 두 대통령 모두 사상가적인 면모를 지녔다. 문화예술적인 감수성이 풍부했다. 독서와 사색, 토론하기를 좋아했고, 이를 통해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키웠다. 그리고 그것을 말과 글로 표현할 줄 알았다. 두 분 다 연설문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공리공론보다는 실사구시를 추구했고, 사례나 수치를 들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신뢰도를 높이려고 했다. 무엇보다 좀 더 나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의욕이 넘쳤다. 나아가 글쓰기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겼다.

289. 2003년 5월 제11차 반부패 국제회의IACC 연설문 초안에서 부패의 해악에 대해 언급한 후, 국제 공조를 통해 부패를 일소해야 한다고 썼다. 대통령은 전면 수정을 지시했다. 부패가 안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국제 공조 역시 공자님 말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대한민국이 부패 척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해나갈 것인지, 우리의 이야기를 넣으라는 주문이었다. “Man(인류)에 대해 쓰지 말고 man(한 인간)에 대해 쓰라.”고 한 미국의 소설가 E. B. 화이트 Elwyn Brooks White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저자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제임스 올워스, 캐런 딜론 지음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 | 2012-12-21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출간 즉시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하버드 마지막 강의, 마지막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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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미래예측 능력을 갖추는 것은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대개 우리는 과거 경험에 의존해 미래를 예측하게 되며, 이런 방법은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미리 경험을 하지 않아도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것이 바로 이론의 가치라고 크리스텐슨 교수는 설명한다. 즉, 많은 세월의 공격test of time을 잘 견뎌낸 이론은 인과관계를 제시해줌으로써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주고 각자 처한 환경에 맞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는 말한다. “좋은 이론은 변덕을 부리지 않으며,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예외의 경우도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해주는 보편적인 진술이 바로 좋은 이론이다”라고. 그래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사람보다 이론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된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각자 다르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잘 관리해서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14.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한 우리 자녀들의 인생도 이제 막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본래 걸으려던 길에서 탈선한 사람이나 아직까지 정도를 걷고 있는 사람이나 이제 막 인생의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엇나가게 만드는 힘과 결정에 취약하니까.

1장.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으로 만족감을 얻는 유일한 길은 위대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그런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찾아라. 안주하지 말라. 마음속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으면 알 것이다.” 스티브 잡스

55. 동기부여와 위생 요인의 균형.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를 깊이 만족시키는 것들, 즉 우리가 우리 일을 좋아하도록 만들어주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 요인은 허즈버그가 말한 동기부여 요인이다. 도전적인 일, 인정, 책임, 그리고 개인적 성장이 동기부여 요인에 해당된다. 일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일 자체의 본질적intrinsic 조건에서 나온다. 동기는 외부의 독촉이나 자극보다는 우리 내면과 우리가 하는 일 안에 있는 것과 더 많이 관련 있다.
(…) 정말로 의미 있고, 흥미롭고 도전적이면서, 전문가로 성장하게 하거나, 더 많은 책임을 맡을 기회를 주는 일을 하라고 강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경험은 내면에 동기를 부여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게 만들어준다.

58. 중요한 건 돈이 직업적 불행의 근본 원인이라는 게 아니다. 실제 그렇지도 않다. 문제는 돈이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면서 생기기 시작한다.

61.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면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두 번째 통찰은, 돈의 추구는 기껏해야 일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완화시켜줄 뿐이지만, 부자들이 부르는 유혹의 노래는 사회 최고의 엘리트들까지도 혼란에 빠뜨린다는 사실이다. 진정으로 행복을 찾고 싶다면 의미 있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공하고 더 많은 책임을 질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 놀랍게도 우리는 돈을 벌어주는 것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쉽게 알지 못한다. 우리는 여러 다른 일을 하면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을 평가할 때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돈, 지위, 보상, 고용 안정 같은 위생 요인의 개선은 행복의 원인이라기보다는 행복의 부산물에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는 부담 없이 정말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

63. 동기 이론은 지금과는 다른 성격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것을 권한다. 이 일이 내게 의미가 있을까? 발전할 기회를 줄까? 이 일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될까? 인정받고 성취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더 큰 책임을 맡게 될까? 이런 것들은 정말로 우리의 내면에 동기를 부여한다. 일단 올바른 동기를 얻으면, 하는 일에서 더 측정 가능한 가시적인 면들이 갖는 중요성은 줄어들 것이다.

2장. 계획과 기회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가

70.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은 두 가지 매우 다른 출처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 출처는 예상되는 기회이다. 눈으로 직접 보고 추진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다. 혼다의 경우, 미국 내 대형 오토바이 시장이 그 기회였다. 이런 예상되는 기회에 집중한 계획을 준비할 때는 의도적 전략deliberate strategy을 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 출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의도적 계획이나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에 문제가 발생하며 새로운 기회도 생긴다.
(…) 따라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와 기회들은 결과적으로 관심과 자본과 경영진과 종업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의도적 전략과 경쟁한다. 혼다는 원래 계획을 고수할지, 수정할지, 아니면 이후 생길 다른 계획들 중에 하나로 완전히 대체할지를 경정해야 했다. 이때 분명한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기회를 추구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내리는 무수히 많은 결정으로부터 수정된 전략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형성되는 전략을 창발적 전략emergent strategy이라고 한다. 
(…) 전략 수립 과정은 계속해서 진화하면서 이런 단계들을 거치면서 반복된다.
 다시 말해 전략은 최고의 숫자와 분석을 토대로 열리는 고위 경연진 회의에서 결정되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전략은 지속적이며, 다양하고, 다루기 힘든 과정이다. 전략을 관리하기란 매우 힘들다. 의도적 전략과 창발적 기회가 제한된 자원을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말로 효과적인 전략을 갖고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협력해서 일하도록 의도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집중은 사실상 차후에 크게 드러날 수 있는 위험이나 기회를 임의로 무시하게 할 수 있다.
 비록 도전적이고 다루기 힘든 과정이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승리 전략을 개발해왔다.

73. 창발적 전략과 의도적 전략. 우리 인생과 사회생활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의도적 전략과 갑자기 생기는 예상하지 못한 대체 전략들 사이에서 결정과 포기를 반복하면서 순항하고 있다. 각 전략들은 우리의 실제 전략이 되려고 각기 최고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우리 마음과 생각을 얻으려고 경쟁한다. 본래 두 전략 중 어느 하나가 나머지 하나보다 더 낫거나 나쁘지 않다. 전략 선택은 여행 중에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전략은 이처럼 두 가지 별개 요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전략이 가장 좋은지는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이제 사회생활을 하면서 계속해서 생기는 선택들을 더 잘 따져보고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수적 위생 요인과 동기부여 요인 모두를 제공하는 배출구를 찾았다면 의도적 전략이 합리적이다. 각자 열망하는 게 분명하며, 현재까지의 경험으로부터 그 열망은 충분히 애써서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예상치 못한 기회에 적응해가는 문제를 걱정하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세운 성취를 위한 최선의 방법에 사고의 틀을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을 찾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면 진로를 모색하는 신생기업처럼 창발적으로 변신해야 한다. 이것은 인생에서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실험을 주저하지 말라는 걸 달리 말해주는 것과 같다. 매 경험으로부터 배우면서 적응하라. 그리고 재빨리 반복하라. 자신이 세운 전략이 효과를 내기 시작할 때까지 이런 과정을 밟아나가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차츰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직무 분야를 찾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 동기부여 요인을 최대한 늘리고, 위생 요인을 만족시킬 수 있는 분야를 찾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상아탑에 앉아서 불현듯 정답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만 하고 있으면 그런 경험을 하기 힘들다. 전략은 거의 항상 의도적 기회와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가 혼재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중요한 건, 자신의 재능, 관심, 우선순위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 때까지 계속해서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정말로 잘 맞는 것을 찾았다면 이제는 창발적 전략에서 의도적 전략으로 힘차게 움직일 시간이다. 

80. 내게 적합한 최고의 기회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전략이 효과를 보게 만들려면 무엇이 사실로 판명되어야 하는가’
 듣기에는 별것 아닌 듯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새로운 기회를 추구할지 여부를 고민하는 기업은 드물다. 그보다 종종 속임수에 빠져 처음부터 실패하고 만다. 그들은 초기 예측만을 믿고 투자를 밀어붙이는 결정을 내린다. 초기 예측이 맞는지 여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기에, 충분히 생각하고 선택하고 검증하기보다는 실제로 벌어지는 일에 맞춰서 예측과 전제를 수정하면서 이미 어딘가에 와있는 경우가 많다.

이 예측이 맞으려면 사실로 입증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정들은 무엇이고, 우리가 그 가정들이 맞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무엇이 통하고 통하지 않을지를 알아보는 훨씬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새로운 프로젝트 계획을 수립할 때 포함된 일반적 단계들의 순서를 다시 정하는 것이다.

혹시 경영자의 입장이라면 프로젝트팀에게 그런 초기 예측을 할 때 가정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정리해서 보여달라고 요구하라. 그런 다음에 그들에게 “이 숫자들이 실현될 것이란 현실적 기대를 하기 위해서 이 가정들 중에 어떤 것이 사실로 입증되어야 합니까?”라고 물어라.

86. 일자리를 얻기 전에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하거나 전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신중하게 목록을 만들라. 그리고 ‘내가 이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사실로 판명돼야 할 가정들이 무엇인가?’ 자문하라. 가정들을 목록으로 정리하라. 가정들이 자신의 통제 범위 내에 있는가?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행복을 기대하는 선택을 하기 위해 어떤 가정들이 사실로 판명돼야 하는지를 자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기부여 요인들 중에서 어떤 것을 중시하는 입장인가? 그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이 갖고 있는 증거는 무엇인가? 이직을 검토할 때마다 사실로 판명돼야 할 가장 중요한 가정들과 그 가정들의 진위 여부를 신속하고 저렴하게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생각하라. 자신의 앞에 놓인 길에 대해서는 반드시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대학원 졸업 후에 일자리를 선택할 때에도 이 질문은 컨설팅, 기업계, 혹은 학계 등과 상관없이 내 앞에 나타난 기회가 성공하면서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되려면 무엇이 사실로 판명되어야 했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하는 위대한 도구였을 것이다.

89. 무엇보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고 사회에 진출하기를 바란다. 
 기업의 전략 개발 방식을 통해서 보면, 처음부터 올바른 전략을 짜기는 어렵지만 전략이 좋아야만 성공하는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보다 효과적인 접근법을 찾아낼 때까지 실험을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 운이 좋은 몇몇 기업만이 궁극적으로 성공에 이르는 전략을 갖고 출발할 뿐이다.

이런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변화가 본래 힘들 수도 있고, 알고 있는 걸 그냥 고수하는 게 더 쉬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고방식은 위험할 수 있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해결을 뒤로 미룬다면 몇 년 뒤 어느 날 갑자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된 거지?’라고 자문하게 될 것이다.

3장. 나의 자원을 어디에 할당하는가

92. 인생에 필요한 전략을 수립하고, 동기를 이해하고, 열망하는 것과 예상하지 못한 기회 사이의 균형을 잡는 문제와 관련해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말로 떠들고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들과 자신이 갖고 있는 시간과 돈과 에너지의 실제 사용처가 조화를 이루지 않을 경우, 내뱉은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매일매일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는가?
자신의 자원 흐름처를 살펴보라. 자원이 당신이 결정한 전략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그 전략을 전혀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99. 장단기적 전략의 딜레마. 실제로 기업이 재난에 빠지는 근본 원인들을 연구해보면, 장기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노력보다는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노력을 더 선호했기 때문임을 거듭 알아챌 것이다. 많은 기업들의 의사 결정 시스템들은 가장 가시적이면서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들에 투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107. 정말로 실행하기를 원하는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당신의 자원 흐름, 즉 자원 할당 과정을 지켜보라. 자원들이 결정한 전략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에 처할 위험이 있다. 스스로 자신이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제로 관심을 둔 명분이나 조직에 정말로 돈이나 시간을 투자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면 임의적(혹은 비임의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고 할 때 가족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가? 피와 땀과 눈물을 투자할 장소에 대해 내리는 결정이 스스로 되고자 갈망하는 사람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결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2부. 관계 속에서 행복 찾기

113. 자신의 우선순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확실히 할당해야 한다. 성공 기준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관심 사항과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올바른 시간의 틀 속에서 생각해야만 하며, 그럼으로써 장기적인 것을 포기하는 대가로 단기적인 것에 집중하려는 자연스러운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 
 이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았을 때조차 매일 마음속으로 그 우선순위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테니까. 대부분 그렇듯이 나 역시 흥미로운 문제와 도전에 자연스럽게 끌린다. 몇 시간씩 빠져있을 수 있고, 그 문제와 도전을 해결하면 곧바로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다. 이런 도전들 중에 하나를 해결하느라 직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동료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복도에서 가던 길을 멈추거나, 전화를 받다가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연구하기로 동의하고 기대감에 흥분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 내가 정말로 가치를 두는 것에 충실하기 위해 인생에서 한도와 장벽과 경계를 정하고 계속 신경을 쓰도록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 
 내 인생의 이런 영역에 자원을 투자함으로써 받을 장기적 보상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일은 당신에게 성취감을 안겨줄 수 있지만,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키우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얻는 지속적인 행복감에 비할 수는 없다.

(…) 좋은 배우자와 좋은 부모와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면 이제부터 나오는 이론들에 주목하라.

4장 필요하기 전에 관계에 투자하는가

5장 상대를 이해하고 헌신하는가

6장 아이가 도전을 겪을 때 함께하는가

7장 경험의 학교에서 배우도록 응원하는가

196. 맥콜의 이론은 적절한 자질 모델과 달리 위대한 지도자들이 성공할 준비가 되어서 태어났다는 생각을 따르지 않는다. 그보다 경영진의 능력은 인생에서 겪는 경험을 통해 개발되고 만들어진다. 도전적인 일, 프로젝트 운용 실패, 회사 내 새로운 분야에서 맡은 임무 등이 모두 경험의 학교 내 ‘학습 과정’이 된다. 리더가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지 않은 기술들은 말하자면 그들이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밟았고 밟지 않았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202. 경험의 학교에서 들을 수업 계획하기.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적절하고 명망 있으면서 그러한 목표를 세우는 데 디딤돌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부터 해보았다. ‘성공한 CEO가 될 준비와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배우고 정복해야 할 모든 경험과 문제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먼저 던졌다는 건 사회생활 초기에 이례적인 행동을 취할 준비를 끝마쳤다는 의미였다. 그는 경영진이 되는 지름길처럼 보이는 일자리를 얻거나 임무를 맡기보단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경험이 뭔지 확인하며 아주 신중하게 선택했다. 이는 그의 경영대학원 동기들은 언뜻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는 내 학생들에게 “나는 절대 임금이나 체면 때문에 결정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항상 내가 이겨내기 위해 씨름할만한 경험을 주는지의 여부를 따졌습니다”라고 말했다.

8장 보이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가

234.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들이 곁에서 감시하지 않아도 올바른 선택을 할 걸로 믿을 수 있는 아이를 키우고 싶어한다. 그런 양육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적절한 가족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족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려주는 비격식적이지만 강력한 지침이다. 
(…) 나쁜 행동을 통제하는 것보다는 좋은 행동을 칭찬하는 게 중요하다. 당신 가족은 무엇에 가치를 두는가? 창조성인가? 근면인가? 기업가 정신인가? 관용인가? 겸손인가?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잘했어”라는 말을 듣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가? 
 문화가 그토록 강력한 역할을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문화는 자동조정장치와 같다.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사실은, 그런 자동조정장치가 효과적 역할을 하게 하려면 적절한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내에서 원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처음 가족이 생길 때부터 의식적으로 만든 문화를 강력하게 적용하지 못하더라도 노력해야 한다. 문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만들어진다. 의식하지 않는다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형성될 것이다.
(…) 부모로서 항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아이들이 올바른 일을 했을 때 긍정적인 피드백을 줘야겠다고 기억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아이들과 이런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가족의 문화가 결정된다. 일단 결정된 다음에는 가족 문화를 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3부 행복을 위한 중간평가

240. 마지막 질문은 ‘우리가 성실한 삶을 산다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이다. 그리고 여기서 제시하는 ‘총체적 사고 대 한계적 사고’는 우리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9장 '이번 한 번만’ 이라는 유혹을 이겨내는가

243. 이번 장에서는 무엇보다 유혹적인 덫에 빠지지 않도록,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려주겠다.

248. 블록버스터가 새로운 시장을 올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기존 사업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지?’를 고민해서는 안 됐다. 그보다는 ‘기존 사업이 없다면 어떻게 새로운 사업을 최고로 키울 수 있을까? 무엇이 최고의 대고객 서비스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262. “기업이 좌절과 실패를 맛보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사업 목적과 임무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보는 경우가 정말로 드문 데 있다” 피터드러커.

262. 기업이 명확하고 확실한 목적을 갖고 있다면 그 영향력과 유산은 특별할 수 있다. 기업의 목적은 직원들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집중하는 횃불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 목적은 기업을 어떤 한 사람의 경영자나 직원보다 더 오래 살아남게 해줄 것이다.

(…)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나온 조언에서 최대한의 가치를 얻으려면 인생에 목적을 갖고 있어야 한다.

265. 목적의 세 가지 부문.
기업에게 유용한 목적 선언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첫째, ‘원하는 모습likeness’이다. 화가는 머릿속에 떠오른 걸 물감을 써서 직접 그려보기 전에 유추해서 연필로 스케치한다. 기업에게 ‘원하는 모습’은 핵심 리더와 경영진이 그들이 걷는 길의 끝에 도달했을 때 되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모습이다. 여기서 ‘원하는 모습’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이유는, 기업이 미래 어느 시점에 왔을 때 직원들이 흥분해서 ‘발견하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경영진과 직원들이 그들의 여행 중에 중요한 단계에 도달할 때마다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유용한 목적이 되기 위해 직원과 임원들은 창조하려고 애쓰길 원하는 모습에 ‘전략commitment’을 기울여야 한다. 목적은 서류상에서 시작해 끝날 수가 없다. 우선순위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는 이슈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계속 등장하므로 관련한 중요한 논의에 참여하지 않는 직원들은 어쩔 수 없는 환경이 닥칠 때마다 원하는 모습을 타협하고 말 것이다.
 셋째, 경영진과 직원들이 그동안 이룬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한 가지 이상의 ‘평가 기준metrics’이다. 이런 기준들은 기업과 관련한 모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일관된 방식으로 함께 움직이면서 일의 성취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이 세 부분이 기업의 목적을 이룬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자 하는 기업은 우연히 목적이 생길 걸로 여겨서는 안 된다. 가치 있는 목적이 불현듯 생기는 법은 드물다. 이 세상은 목적을 운명에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많은 신기루와 역설과 불확실성으로 둘러싸여있다. 목적은 의도적으로 고안되고 선택된 다음 추구돼야 한다. 그렇게 목적이 준비됐다면 기업이 목적을 이루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창발적인 성격을 띤다. 기회와 도전들이 창발적으로 생겨서 추구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가장 위대한 기업의 리더들은 그들이 이끄는 기업이 세상에 족적을 남길 수 있도록 도울 때 목적이 가진 힘을 의식한다.
 비즈니스 외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리더들도 마찬가지이다.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달라이 라마처럼 변화 운동을 이끌었던 리더들은 놀라울 정도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다. (…)
 그러나 이 세상이 그들에게 설득력과 값어치가 있는 목적을 전달해준 건 아니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세상이 나와 당신에게도 그런 목적을 전달해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되고 잎은 유형의 사람(당신의 인생 목적)을 운에 맡기기에는 그 목적이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고려 선택, 관리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해주는 인생의 기회와 도전은 본래 창발적이다.





월경독서

저자
목수정 지음
출판사
생각정원 | 2013-08-19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의 월경 연대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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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투쟁이 승리로 끝나지 않는 경험이 반복된다 해도, 굴종에 길들여지지 않은 영혼들은 언제나 정의를 짓밟는 세상을 향해 창을 던질 터. 기울어진 달이 다시 꾸역꾸역 차오르기를 멈추지 않는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 해도, 언제나 다시 떠나는 여행자처럼. 여행하고, 분노하고, 때론 싸우면서, 그러면서 난 여전히 다시 책을 펼쳐 끝나지 않는 오랜 질문들의 답을 찾고 있을 것.

8. 내게 독서는 달콤하거나 쓰라린 연애와 같다. 아이들이 그 무엇이든 놀이적 요소가 없으면 하다가 팽개치는 것처럼. 난, 그 무엇이든 연애적 요소가 없으면 다가서지 않는다. 연애의 핵심은 유혹, 달콤함, 쓰라림, 한숨, 그리고 오르가슴. 무엇엔가에 홀려 직관적으로 책을 집어들고, 허겁지겁 그 매력과 유혹에 빠져든다. 그리고 뒤통수를 맞거나 경이로운 황홀경 속에서 나른한 한숨을 내뿜으며 몇 날 밤을 보내고, 약간 거친 느낌의 공책을 찾아, 뽀드득거리는 느낌의 필기구로, 마음에 꽃힌 문구들을 적어본다. 사랑에 빠지고, 새로운 환희에 볼을 붉혀 보면서 한 권의 책이 주는 도취 속에 발부터 머리끝까지 푹 담근다. 목욕물이 미지근해져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거기서 나온다.

 나의 책읽기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하면서, 커다란 부대자루 속에 손을 쑥 집어넣어, 아직도 발갛게 달아오른 온기가 꺼지지 않아 내 손을 후끈하게 하는 돌멩이들을 몇 개 골라냈다. 이 발그레한 돌멩이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눈부시다. 뜨겁다. 모든 걸 태워버릴 만큼. 겨울밤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처럼. 그들이 한데 모여 전해주는 그 빛과 온기가 새로운 탄생을 위한 위대한 소멸의 축제를 벌이는 듯하다.

 사흘 뒤, 이사를 간다. 서가에 꽂혀 있다가 박스 속으로 들어간 책들이 벌써 80박스를 넘어가고 있다. 경험컨대 새로운 공간은 늘 새로운 독서를 요구한다. 시대와 공간, 성을 초월하여 깊숙이 누군가의 영혼에 내 영혼을 접속시키는 이 은밀한 정신의 간음. 월경의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지난 시절 나와 희롱을 벌이던 책들과의 연애에 대한 기록을 시작한다.

46. <이사도라 던컨> 말이나 글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 생애를 혁명적으로 살아낸 한 놀라운 인간을 만난다. 마르크스나 마오, 레닌 같은 수컷의 혁명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누구를 밟고 올라서거나 누군가가 몰락할 필요 없이, 모두가 해방되고 환희에 젖는 그런 혁명의 여전사를. 

48. 피아노 레슨을 하고 어머니가 늦게 귀가하는 동안, 이사도라는 오빠들과 함께 바닷가를 맘껏 뛰어다니며, 거대한 파도의 리듬과 로키 산맥을 타고 넘는 바람을 춤으로 노래했다.
 이런 환경과 무한한 자유 속에서 누렸던 자연에 대한 탐험, 그 속에서 발견하는 자연의 우아하고 조화로운 아름다움은 그녀가 가졌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당당함과 자신이 새롭게 창조할 미의 세계에 대한 확신을 구축해준 바탕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자식들의 평안을 위해 큰 재산을 남기려 하는 아버지들을 한심하게 여겼고, 부잣집 아이들이 가정교사와 보모의 울타리에 갇혀 세상에 대한 그 어떤 탐험도 하지 못한 채 양육되는 모습을 가엽게 여겼다.

(…) 니체를 자신의 춤의 스승으로 삼았다. 열한 살의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마을의 소녀들을 모아 춤을 가르친 그녀. (…) 선생이 발끝으로 서보라고 말하자 이사도라는 왜 그렇게 하느냐고(감히!) 물었다. 그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사도라는 “그건 오히려 추하고 자연에 위배되는 일”이라 반박하고 다신 발레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직 모르지만, 열쇠만 발견한다면 내가 거기 들어가도록 운명적으로 정해진 세계가 있다는 느낌만은 갖고 있었다. 나의 예술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미 내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49. 이상이 이끄는 삶. 세상은 강렬한 신념을 가진 자의 것이다. 단단한 신념을 가슴에 품고 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서 운명처럼 강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향해 의심 없이 다가서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자신 앞으로 모은다. 사람들은 그 알 수 없는 신념에 매료되고 그 사람의 신념은 모두의 신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이 건조한 세상에서 종종 마술이 벌어지곤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사도라의 신념은 세상 사람들에게 마술을 걸었고, 그녀의 춤은 인간의 몸을 해방시키는 현대무용의 신기원을 열었으며, 그녀의 이야기는 신화가 되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듯이, 이사도라는 그녀 자신만의 온전한 권위로, 그리고 새로운 자각에 따라 인류에게 춤을 가져다주었다.’

당시(19세기 말~20세기 초) 서구사회에서, 무대에서 볼 수 있는 춤은 토슈즈에 발을 넣고 발끝으로 서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발레가 전부였다. 그것은 형식화된 틀 안에 신체를 종속시키는 일이며, 예술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고 이사도라는 생각했다. (…) 주눅 들지 않고 눈치 보지 않는 야성의 힘을 간직한 자아의 힘이었다. 
 누군가가 춤이 무엇인지 말해주기도 전에, 자유로운 신체와 영혼을 지닌 인간으로서 바다의 파도의 리듬에 따라 춤추었던 그녀가 발레라는 정형적 틀을 만났을 때, 오싹하는 두려움까지 느꼈을 정도로, 그것이 자신이 꿈꿔왔던 것과 완전히 적대적인 것임을 알았다.

‘나는 최초의 순간에서부터 나의 인생만을 춤춰왔다. 어렸을 때는 성장하는 일에 대한 무의식적인 즐거움을 춤췄다. 젊은 시절에는 내면의 슬픔에 대한 최초의 인식에서 오는 불안, 사정없는 잔인함, 인생의 허물어져가는 과정에서 오는 불안을 표현하는 즐거움으로 춤을 췄다.’

이사도라는 춤을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이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여기며 이를 모두가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51. 왜였을까? 거기엔 문명의 잉여물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장식들이 제거된, 자연과 소통하는 영혼이 뿜어내는 박력 넘치는 원초적 순수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52. ‘어리고, 특별한 재능이 없는 아이들이라도 내가 정신을 집중해서 영혼의 귀로 음악을 들어요. 자, 듣는 동안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저 속에 있는 내가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죠? 하면 바로 이해한다. 그 힘에 의해 머리를 들고 그 힘으로 팔을 들어봐요. 그 힘으로 빛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이 깨어남이 바로 춤의 최초 스텝이 되는 것이다. 일단 그것을 경험하고 난 후부터는 일상의 걸음, 일상의 모든 몸짓 속에 영적인 힘과 우아함이 깃들게 된다.’ 

53. 단지 뛰어난 무용수로서의 삶에만 만족했다면 그녀의 삶은 훨씬 쉬웠을 것이다. 모든 걸 내던지고 동토의 땅으로 이주하는 모험을 감행할 필요도, 학생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치료하느라 번번이 파산할 필요도 없었을 터다. 그러나 그녀는 죽는 날까지 철저하게 이상이 이끄는 삶을 살았고, 바로 이 점에서 그 어떤 예술가와도 이사도라 던컨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이 가진 혁명적 이상을 거대하게 사회에서 구현해내길 희구했고, 그 과감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진지한 혁명가였다.

54. 혁신적인 아동교육의 선구자이나 정작 본인은 혼외로 낳은 아이를 버렸던 몬테소리 여사, 하녀와 낳은 아이를 정적의 비난을 피해 감추고 모른 척했던 칼 마르크스, 기념비적인 교육론 <에밀>을 집필했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 다섯은 모두 고아원에 맡겼던 장 자크 루소. 거룩한 인간들에겐 자신의 거룩함을 위해 숨겨야 하는 진실의 질척이는 웅덩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모순을 가졌기에 그들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기도 한 것이다.

57. ‘육체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고통을 겪게 마련이다. 이를 갈아내고 뽑아내고 다시 해 박는 식의 고통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육체가 최고의 즐거움을 맛 봐서는 안 된단 말인가? 하루 종일 머리를 썩혀가며 일한 사람, 어떤 때는 무겁고 괴로운 문제로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이 아름다운 팔 안에서 그의 고통을 식히고 아름다운 시간, 생각의 시간을 갖는 것이 왜 나쁘단 말인가?

64. <몽실언니> “소설가는 자신의 생이라는 집을 허물어 그 벽돌로 다른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밀란 쿤데라는 말했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다시 그 작가들이 지은 책들을 벽돌 삼아 자신의 집을 짓는다. 그리고 우리가 읽은 하나하나의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루는 벽돌이라면, 그 벽돌들이 잘 붙어서 하나의 집이 되도록 해주는 시멘트는 우리가 삶에서 직접 마주하는 경험들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가 책을 읽기 전이나 후에 겪은 실제적 경험들을 통해 공명할 때, 비로소 견고한 내 정신세계의 한 벽돌로 굳건히 자리하는 것이다. 오래도록 내 현실의 삶 속에서 공명을 하지 못하는 책들은 곧 잊히고, 벽돌은 허물어진다.

78. <꽃들에게 희망을> 새 생명이 움트는 것보다 감동적인 사건이 이 우주에 또 있을까. 땅을 뚫고 올라오는 작은 새싹, 이제 막 피어오르기 직전인 꽃봉오리, 손을 꼼지락거리며 젖 냄새를 풍기는 아기의 존재는 순식간에 우리의 감탄을 자아낸다. 

80. “해야만 한다는 건 할 수 있다.” 엠마누엘 칸트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할 리 없다. 우리 속에 어떤 욕망이 싹튼다는 건, 바로 우리에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도 함께 자라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 오래도록 익숙한 둥지를 떠나 세상과 그 속에 처한 자신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의 수많은 진리에 눈 뜬다. 나를 안아주고 키워준 둥지의 안온함을 박차고 일어서서 세찬 비바람과 우연한 사건들이 기다리는 세상에 몸을 던지는 것. 거기서 다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면 분명 우리에게 그럴 수 있는 힘이 충분히 있는 것이니.

85. 동지.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가끔 만난다. 내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이 동지를 만나 공명하게 되면, 내 생각은 마치 신의 목소리처럼 강력한 힘을 얻는다. 생각이 행동으로 전환되는데, 동지를 얻는 것만큼 강력한 촉매제는 없다.

87.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 고로 사살이 언젠가는 사그라지거나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다는 사실은 그것의 생명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92. 고치는 바로 내가 쌓아 이룩하는 나의 성이다. 내가 고요히 들어앉아 나를 완성시킬 수 있는 그 성을 짓는 것. 삶의 진정한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에게 저자 트리나 폴러스가 건네는 과업이다. 성을 지어야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것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96. 무릇 사랑이 시작되기 위해 우린 수많은 우연의 새들을 맞이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적어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는 눈을 뜨고 새가 날아 앉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살랑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적어도 이 우연의 새들이 지나가는 순간을 알아차릴 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페르세폴리스>
121. 낯선 땅에 홀로 떨어진 이들에겐 한동안 한 다스의 미친 사람들이 스쳐간다. 그 시기를 잘 넘기고 나면 내 주변에 한두 명 나를 받아주는 사람들이 생겨나는데, 그때 내 존재를 잠시 내려놓고, 나를 받아주는 그룹으로 들어가, 그들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춰가며 지낸다. 혼자 완전히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122. 우리가 굴종하지 않는 법을 순종의 미덕만큼이나 열심히 배웠다면, 굴종에 직면해야 할 일들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인류가 저지른 가장 참혹한 사건들은 불족종이 아니라 복종에 의해 이루어졌다.

130. 마르잔의 당찬 성장기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모래 속에 묻혀 있던 거대한 하나의 세계가 내 앞에서 의미를 갖고 드러났다. 내가 이해하는 세상이 늘어나는 것, 결국은 나를 확장하는 것. 나를 확장하는 것은 곧 내 행복의 지평을 넓히는 것.

144. 어디가 최종 종착지인지 알 수 없지만,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만은 알 때가 있다. 그럴 땐, 떠나는 수밖에. 어디서든지 눈을 부릅뜨고 킁킁대며 생을 향해 나아가면, 삶은 살아진다는 거. 열정을 놓치지 않고, 그것이 숨쉬도록 펼쳐두면, 언젠가는 만개하고 만다는 거.

<섬>
156. 여행은 몇 가지 낯선 감각들을 체험해보는 것으로 내 안의 충동들을 일깨우고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도피하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일지라도, 결국 그것은 우리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낯선 도시에서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할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그 낯선 세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섬에서 저 섬으로 홀연히 발을 옮기며, 채움이 아니라 공백을 만들고, 한없이 낮아지는 일탈을 간절히 꿈꾸며 종종 시도하는 이 브르타뉴 남자는 여행 자체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만은 우리를 의혹의 구덩이로 밀어넣지 않는다. 바로 손을 잡아준다. 노련하고 친절한 가이드처럼.

<서울에서 보낸 3주일>
167. 난 내가 왜 그들만큼 많이 서럽게 울지 않는지를 신경 써야 할 만큼, 아버지의 죽음이 사무치게 비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이라는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미성년의 삼남매와 별다른 직업이 없는 엄마가 서게 된 그 황량한 벌판, 거기에 서서 바라보는 낯선 풍경에 더 깊게 살이 베인다.

<우주로부터의 귀환>
184. ‘우주 공간으로 나가면 허무는 완전한 암흑으로, 존재는 빛으로, 즉물적으로 인식할 수가 있다. 존재와 무, 생명과 죽음, 무한과 유한, 우주의 질서와 조화라는 추상 개념이 즉물적으로, 감각적으로 이해된다.

186. 재미있는 건, 내가 머릿속으로 아무리 멀리 자유롭게 우주를 날아도 시선은 항상 지구를 향한다는 거다. (…) 아직 우린 지구의 인력으로부터 도저히 독립할 수 없는 진화 단계에 있는 것일까. 

<심미적 이성의 탐구>
197. 눈을 뜨고 있고 머리를 열어두고 있어도, 어떤 사실은 때가 되어야만 비로소 자각된다.
 책을 읽고 또 현실의 삶을 한걸음씩 이어가면서 깨닫는 한 가지는, 결국 하나의 거대한 모자이크를 맞추고 있는 내 모습이다. 우연인 듯 집어들은 것 같지만, 기실 이 모든 조각들은 애초에 하나였던 그림을 누군가 조각내어 흩어놓았던 것. 나는 그것을 하나하나 주워 맞추면서, 내가 찾도록 운명 지어진 하나의 그림을 찾아간다. 질긴 운명과도 같은 모자이크 놀이의 판을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지만, 충동이 잦아들고 나면 난 여전히 모자이크를 맞추고 있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216. 사랑은 단순한 희롱이나 이기적인 향락 추구가 아니라, 끈기라는 심리적 힘줄로 이뤄진 확실한 연대, 또는 행운과 불행을 통해 면면히 이어지는 결합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가장 완전한 사랑은 일련의 죽음과 재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동시에 수많은 종말과 시작을 포용하고 이겨냄을 뜻한다. 사랑을 하려면 죽음과 춤을 출 필요가 있다. 살다보면 끊임없이 뭔가가 찼다 기울고, 태어났다 죽고, 다시 돌아오는 걸 느끼고 말 터이니. 사랑은 바로 이 주기를 배우는 과정인 것이다.

223. 언제나 명성을 듣고, 누군가를 찾아 나서면, 명성이 그를 스쳐 지나간지 오래된 때에 이르러서야 그 사람과 만나게 되는 운명이 다시 반복되는 듯했다.

236. 우리는 왜 위로만, 그리고 슬금슬금 오른쪽으로만 향하는가. 우리에게는 왼쪽으로 그리고 아래로도 세상을 탐험할 권리가 있으며, 바로 그러한 자기 확장을 통해서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더 높은 곳으로만 향하는 지루하고 어리석은 경주를 거부하고, 상하좌우로 온전히 세상을 경험하며 자아를 확장할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렸으며, 그들만이 애벌레에서 나비로 환골탈태하는 도약을 경험했으리라.

262. 예기치 않은 솔직함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무기가 아니던가.

<미국민중사>
285. 1920~30년대 인디언들과 함께 살았던 학자 존 콜리어는 “만약 우리가 그들의 정신을 가질 수 있다면,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대지에서 끝없이 지속되는 평화를 이루며 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293. “우리는 이미 충분히 황금의 지배라는 저주를 받아왔다. 돈은 결코 문명의 적절한 토대가 될 수 없다. 인류애를 근거로 하는 사회를 다시 만들어야 할 때가 됐다.” 

297. ‘계급적 이해는 언제나 국익이라는 모든 것을 감싸는 베일 뒤에 가려져 왔다. 나는 나 자신의 전쟁 경험과 미국이 벌인 모든 군사 개입의 역사를 통해, 고위 공직자들이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익이나 국가 한보에 호소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언제나 그 진실성을 의심했다.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전쟁을 결정하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결정의 결과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된다고 할 때, 국익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299. ‘미국 역사에서 어떠한 중요한 변화도 순전히 선거와 투표 행위의 결과로 달성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 노동 조건 개선, 남부의 인종차별, 베트남전 종전 등이 그랬죠. 제도정치권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조직적인 사회운동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제도정치는 늘 사회운동이 일종의 국가적 분위기를 조성한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도정치는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지 않습니다. 시민의 요구가 충분히 강할 경우에만 반응합니다.

303. 진흙탕같이 추하게 질척이는 이 세상을 구해줄 그 어떤 메시아도, 그럴싸해 보이는 시대의 영웅도 기대하지 말자. 그 누가 국가의 수장이 되든 역사의 바퀴는 그것을 함께 굴려가는 시민들의 열망대로 흐를 것이니. 독재자의 딸이 펼치는 저 역겨운 시대착오적 여왕 놀음을 시민정신이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 공허한 권력의 허세는 세상을 한치도 움직일 수 없을 터이니.


63.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부당한 것인지 명백히 구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그 부당함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결과적으로 그 부당함을 옹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66. 일반적으로 전문가라고 하면 의사나 변호사처럼 그 전문지식을 사회적으로 인증하는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갖고 있거나, 또는 전문이으로서 높은 도덕률(히포크라테스 선서, 정의의 여신상을 연상해보십시오)을 요구 받는 위치에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또 전문가 집단은 대개 협회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운영됩니다. 자격증으로 대표되는 전문지식, 높은 도덕률과 자율성 등은 그래서 전문가 집단의 중요한 특성들로 받아들여집니다.

69. 청와대도, 삼성도, 시민도, 단지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자료의 신뢰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언론은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그게 언론의 본 역할입니다. 한국의 방송기자들은 이 언론의 본 역할을 거의 방기해왔습니다.

73. 언론인이 ‘우리 사회’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 매몰되면 그는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닙니다. 가치의 우선순위를 독자나 시청자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 두는 사람의 정체는 ‘회사원’이기 때문입니다.

75. 길거리에서 풀빵을 찍어내는 노점상을 두고 ‘제빵사’라고 부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 뉴스를 풀빵 찍듯이 찍어내는 사람을 언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중견 언론인들은 전문가도 아니고, 따라서 전문가적 양식도 없습니다. 전문가로서의 도덕률이나 자율성도 극히 빈약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뉴스의 값어치는 뻔한 것입니다. 좁고, 얕고, 얇고, 시끄럽고 게다가 편파적입니다. 따라서 뉴스를 보고 주식투자를 하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에게 이렇게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97. ‘급등, 급락, 폭등, 폭락’ 등의 단어에는 부사나 형용사가 들어 있습니다. ‘급히 오르고’ ‘폭발적으로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부사나 형용사에는 인간의 추정과 감정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대란, 공포, 후폭풍, 도미노’등의 단어 역시 사실을 정확히 묘사한 것이 아니라 언론사의 기자가 제멋대로 추정하거나 과장한 것일 뿐입니다. 때문에 기사 속 단어들의 감정, 추정, 편견 등은 떼어놓고 구별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냉처랗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33. 값싼 뉴스는 과잉으로 넘쳐나고, 진짜 정보는 없는 상황, 특히 논쟁적인 주제에서 뭔가 뉴스는 많은데 정보가 없는 현대 미디어의 상황을 스탠퍼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로버트 프록토는 아그노톨로지Agnotology라는 용어로 정의했습니다.
 아그노톨로지는 ‘사회-문화적으로 공고화된 무지에 대한 탐구’라는 뜻입니다. 좀 어렵습니다. 저도 어렵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한다고 하고 야당과 시민단체는 반대한다고 하는데, 시민들은 그 핵심 쟁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핵심 쟁점에 관해 명확히 판단할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는 이유는 언론에서 대중에게 주로 논쟁의 ‘가십거리’만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중은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지만 사실은 들은 게 없고, 아는 것 같지만 아는 게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프록토 교수에 따르면, 대중이 이렇게 ‘사회-문화적으로 공고화된 무지’의 함정에 지속적으로 빠지는 이유는 바로 특정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러 핵심 쟁점과 내용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중은 강호순이나 김길태와 같은 특정 정치 경제 집단의 이익이 얽혀 있지 않은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핵심적인 내용을 듣게 되지만,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처럼 세금, 환경 등 정작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는 온갖 소음만 듣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특정 이익집단인 ‘소음’을 통해 교란하고 물타기한다는 것이지요. 이 소음의 대부분이 우리가 보고, 듣는 뉴스입니다.
 정부나 기업의 홍보 전문가들은 논쟁적인 사안의 진정한 사회적 문맥을 잘라버리고, 가공의 사회적 문맥을 만들어 이를 진정한 사회적 문맥이라고 선전합니다. 언론은 이들의 말을 받아쓰기만 할 뿐 제대로 질문하거나, 비판하거나 분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나 기업의 홍보 전문가들의 말은 모두 ‘등가의 가치’가 되어 전달되고 독자와 시청자는 무엇이 진실한 정보인지 구별하고 판단하기 힘들어지게 됩니다. ‘가상의 현실’이 ‘현실’을 몰아내고 ‘가공의 사회적 문맥’이 진정한 사회적 문맥을 대체해버리는 것입니다.

137. 버블의 이면을 보다.
버블은 열광과 유행의 역사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가격이 오르자 원예업자들이 대거 튤립 재배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희귀 튤립의 구근 가격이 폭등하면서 튤립 구근 하나가 대저택 한 채의 가격을 웃돌 정도로 엄청난 버블이 형성됐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확 시기가 다가오자 튤립의 공급이 수요를 훨씬 초과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결국 튤립 가격은 최고치의 수천 분의 1로 폭락했습니다. 
180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철도가 운송 혁명을 주도하면서 철도 산업은 수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였습니다. 투자가 증가하면서 주가가 상승하자 사람들은 철도 산업에 대해 더 낙관적인 전망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단기간에 철도 노선이 급증하자 수요를 초과했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니 우후죽순 생겨난 철도 회사들이 수익성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1890년대 자전거의 발명과 함께 생겨난 버블도 마찬가지 전철을 밟았습니다. 1920년대 미국의 라디오 산업도 똑같은 패턴의 버블을 불러왔습니다. 1960년대에는 TV가 그러했습니다. 자동차, 비행기, 개인용 컴퓨터 그리고 우리도 비슷한 시기에 겪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의 인터넷 열풍까지…… 새로운 기술과 혁명은 사람들에게 ‘꿈’과 ‘거품’을 심어줬습니다.
 버블의 역사에서 우리는 중요한 세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 버블은 패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열광하지만 열광과 환희의 감정은 실체 없이 마냥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둘째, 버블은 항상 급격한 공급 초과 현상을 불러왔습니다. 공급이 초과되면 공급은 수요에 맞춰 떨어집니다. 시차는 달랐지만 버블은 항상 꺼졌습니다.
 셋째, 19세기 중반 이후 버블은 대부분 과학문명을 둘러싸고 일어났습니다. 과학과 산업문명의 시대에 접어든 대중은 과학으로 일군 기술 혁명에 굳건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과학이 새로운 산업의 혁신을 이끌어낼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열광한 대중은 눈이 멀게 되고 눈이 먼 대중은 사물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을 상실합니다. 버블 속 대중은 과학의 힘을 절대 신뢰한 비과학적 광신도들이었습니다. 과학의 시대에 주기적으로 발생한 대중의 비과학적 열광이 곧 ‘버블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이상호 기자 X파일

저자
이상호 지음
출판사
동아시아 | 2012-07-19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삼성X파일 보도의 숨겨진 진실과 묻어두었던 기록, 시대를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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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신입기자 시절, 한 선배는 내게 물었다. ‘역사의 발전을 믿느냐’고. 18년을 두고 만지작거리는 화두를 던져준 선배. 그는 떠났지만, 책을 통해 되묻는다. ‘역사의 발전을 믿지 않고 어떻게 기자를 할 수 있느냐’고. 그리고 혼잣말로 남긴다. ‘역사의 발전을 믿는 기자가 얼마나 큰 용기를 감당해야 하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고.

30. 고발기자에게 철칙이 있다. 제보자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100% 순수한 마음으로 제보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누구나 말로는 공익이나 정의감을 강조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원한관계나 공명심, 심지어 개인적 이익 등 불순한 요소들이 상존한다. 보석에도 불순물이 섞여있는데 사람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원석에서 보석을 가공해내듯 기자는 제보자로부터 사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공익적 가치를 지닌 팩트만을 추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보 경위’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팩트 추출을 위한 필요성 때문이다.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면 필연적으로 팩트에 굴절현상이 발생한다. 이를테면, 누군가에 대한 원한 때문에 제보를 한 경우, 주관적 감정 때문에 악의적 사실관계가 보태지는 반면 선의의 사실은 누락되는 등 정보의 왜곡이 심해진다. 결국 제보에 의존한 취재의 모든 과정은 제보자의 원천 제보 내용 중 왜곡된 사안을 걸러내고 굴절된 시선을 바로 펴는 등 팩트 보정작업에 다름 아니다. 결국 취재는 제보자와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42. 알고도 보도하지 않는 것은 기자에게 범죄 그 이상이다. 법을 어기면 감옥에 갇히고 말지만, 양심을 속이면 세상이 온통 감옥이 된다.

46. 공명심. 그가 던진 말 한마디가 담배 연기와 섞여 어지럽게 흩어진다. 단 한마디로 사람을 이렇게 움츠러들게 만드는 말이 또 있을까?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만다. 공명심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치고 있는 건가? 질문이 꼬리를 물면서 단단히 무장했던 내 자의식의 밑동으로부터 허물기 시작한다. 담배 하나를 더 피워문다. 나는 왜 SBS를 고발했던 거지? 나보다 센 놈을 죽여 자신의 수컷을 과시하려는 공명심 때문이었던가? 솔직히 있었나, 없었나? 말해봐! 끝없는 질문과 대답의 알고리즘에 갇힐 것만 같다. 이럴 땐 입을 움직여 나지막이 혼잣말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 안의 이야기가 심장에 갇혀 터지지 않도록 말이다.

63. “선생님, 제가 꼭 필요할 때 쓰려고 지금껏 잘 간직해온 게 있습니다.”
“그게 뭔데?”
“제 목숨입니다.”

79. 나는 더욱 소외되고 더욱 격리될 것이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내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지 않고서 어찌 남의 짐을 질 수 있겠는가. 두렵지만 그만큼 홀가분해진 몸과 마음으로 회사에 들어왔다. 

84. 다이너마이트를 향해 돌진하는 심지의 불꽃, 그 불똥이 내 눈에 튀는 듯한 환영이 느껴졌다.

85. 그런 날이면 저녁식사가 풍성해진다. 상품권이 몇 시간 만에 후다닥 식탁 위의 찬거리로 잘게 부서져 올려진 것이었다.

87. 이번 출장은 자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수반하는 일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향후 기자의 숙명은 자본을 경계하는 일이다. 기자의 본분은 시장을 감시하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은 기자가 자본으로부터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자본과 시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기자라면 젖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본의 공세에 한번 젖게 되면 해일에 몰디브가 잠기듯 한순간에 끝난다. 자본에 젖은 기자는 앞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기자상을 자임할 수 없는 것이다. 시장 안에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시장을 넘어선 통찰과 감시를 수행하기 곤란하다는 얘기다.
(…) 그리고 각오한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자본의 심장에 도덕성의 창을 꽂는 일. 이를 위해 기자는 어쩌면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불명예와 누명…. 자본은 자기보호를 위해 그보다 더한 오명을 기자에게 씌우려 할 것이다. 두려운 가운데 형용할 수 없는 비장미가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나의 삶은 이번 출장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분기점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대의 좌판 위로 주사위는 던져졌고, 활은 시위를 떠났다. 그저 담대하게 운명의 길을 걸어가리라.

91. 바로 그 순간 나는 들었다. 미친 바람의 절규를 그건 제트터빈의 날카로운 블레이드에 갈기갈기 찢긴 바람의 살점들이 분노에 치를 떨며 내는 비명이었다. 분노가 밀어내는 반발력. 사람과 화물을 가득 실은 거대한 쇳덩이를 허공으로 띄운 것은 바로 너희들 바람의 눈물이었구나. 돌아보니 바람의 눈물 자국이 비행기의 궤적을 그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마치 혼자만의 비밀을 갖게 된 사람처럼, 그저 나는 조용히 창밖을 응시한다.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100. “아닙니다. 기자생활을 시작하고 살기 위해 기사를 써본 적 없습니다. 매번 유고기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살기 위한 쪽보다는 죽는 길로 왔습니다. 제 소망입니다. 우리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기사와 제 목숨을 바꾸고 싶습니다. 정말 꼭 필요할 때 몸을 던지기 위해 기자로서 깨끗하게 간직해왔습니다. 부자 친구 안 사귀고 정치인과 손잡지 않았습니다. 저 정말 죽고 싶어 환장한 놈입니다.

153. 역사는 과반수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거든. 20%가 지지하더라도 옳은 건 해야지.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이나 종교개혁을 주창한 사람이나 모두가 1% 미만의 지지 기반을 가지고 움직였던 사람들이야. 옳은 건 옳은 것일 뿐이니까. 그게 기자지.

159. 만일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삼성 X파일 보도는 완전히 물 건너갈 것이다. 미친놈이 쓴 기사를 누가 믿겠는가? ‘이상호는 미친놈이다.’ 삼성에게 너무도 좋은 공격의 빌미가 될 것이다. 보도를 위해 나는 미치면 안 된다. 밤새 악몽을 꿨다. 미친 나와 미치지 않으려는 내가 뒤엉켜 싸운다. 새벽녘에 결국 세상이 미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66. 그에게 사과했지만 그렇다고 아직 기도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아직 버틸 수 있고, 나를 위한 기도는 사치라는 내 오랜 자만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 같은 놈까지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면 정말이지 신이 필요한 사람은 얻지 못하게 될 거라는 못된 확신이 있었다. 실제 사회에서건 종교적 교리에서건, 부유한 사람이 없는 사람이나 정말 필요한 사람의 기회를 뺏는 건 정말이지 싫다. 나는 정당한 인간적 노력을 통해 이룰 것이다.

182. 그와의 선후배 관계는 이것으로 끝이다. 삼성 X파일의 보도를 막는 사령탑으로서 그는 나와 보도국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이인용이라는 거목을 뿌리째 뽑아간 삼성은 승리를 자축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스카우트 비용으로 백억 대 가까운 돈을 들였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돈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말 것이다!

219. 내가 철들어 간다는 것이
제 한 몸의 평안을 위해
세상에 적당히 길드는 거라면
내 결코 철들지 않겠다.

오직 사랑과 믿음만으로
굳게 닫힌 가슴 열어내고
벗들을 위하여 서로를 빛내며
끝까지 함께하리라.

모진 시련의 세월들이
깊은 상처로 흘러가도 변치 않으리,
우리들의 빛나는 청춘의 기상

우리 가는 이 길의 탄생을 
누구 하나 안 알아주어도
언제나 묵묵히 신념을 다 바쳐
세상을 지켜내면서

진짜 의리라는 게 무언지
참된 청춘의 삶이 무언지
몇 마디 말 아닌 우리의 삶으로
기꺼이 보여주리라.
몇 마디 말 아닌 우리의 삶으로 기꺼이 보여주리라.

(새 세대 청춘 송가 / 윤민석 글,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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