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강원국 지음
- 출판사
- 메디치미디어 | 2014-02-25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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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
- 책소개
- “어떻게 써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대한민국 최고의 연설가,...
글쓰기 책을 읽으며 항상 느끼는 건,
글쓰기와 삶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내게 그런 의미를 갖는 글쓰기를
존경하는 분들께(곁에 있던 사람을 통해서지만)
들은 건 더없이 감사한 경험이었다.
이 책은 어쩌다보니 한 달을 띄엄띄엄 읽었다.
그런 이유로 이 한 달 동안 두 분께 인생 과외를 받은 느낌이었달까.
자신 만의 인생을 살아라.
자신 만의 글을 써라.
사실 진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두 분의 이야기에 우리가 감동하는 건
신념을 지키며 진정성있는 삶,
그 진부한 삶을 지키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8월이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다.
13. 야구 선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공을 칠 수 없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도 딱 하나다. 욕심 때문이다. 잘 쓰려는 욕심이 글쓰기를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의 문필가였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욕심을 안 부렸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글에 관한 한 욕심이 대단했다. 두 분 모두 ‘이 정도면 됐다’가 없었다.
16. 앞서 욕심이 문제라고 했다. 그렇다면 글에 관한 대통령들의 욕심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떻게 쓰느냐’와, ‘무엇을 쓰느냐’의 차이다. 어떻게 쓰느냐,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멋있게, 있어 보이게 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이다. 그러나 무엇을 쓰느냐에 대한 고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글의 중심은 내용이다. 대통령의 욕심은 바로 무엇을 쓸 것인가의 고민이다. 그것이 곧 국민에게 밝히는 자신의 생각이고,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자신 없다고 하는 사람 대부분은 전자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명문을 쓸까 하는 고민인 것이다. 이런 고민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담감만 키울 뿐이다.
노래방 가서 빼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가수인 줄 착각하는 경우이다. 노래를 못 부르면 어떤가? 열심히 부르는 모습만으로 멋있지 않은가? 글의 감동은 기교에서 나오지 않는다. 애초부터 글쟁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쓰고 싶은 내용에 진심을 담아 쓰면 된다. 맞춤법만 맞게 쓸 수 있거든 거침없이 써 내려가자. 우리는 시인도, 소설가도 아니지 않은가.
19. 연설문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노무현)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같다’는 표현은 삼가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한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을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치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치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자랄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의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사람들은 뒤를 잘 안 보네. 단락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곳으로 응집력 있게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29.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멋있는 글을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것도 안 되네.
30. 이전에 한 만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1.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2.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22. “연설문은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도록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문장은 명료하고, 예는 쉽게 들었다. 미문은 경계했고, 오해 소지가 있는 문구는 배격했다. 그리고 중요한 내용은 되풀이해서 전달했다. 청중들이 싫증을 낼 만큼 반복했다. 그래야 비로소 청중들이 ‘김대중 연설’로 인식했다.(중략)
무슨 일이든 내가 잘 알아야 남을 설득할 수 있었다. 연설문을 작성하는 것은 일종의 공부였고, 현안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연설문은 진실해야 했다. 말의 유희나 문장의 기교에 빠지면 나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의지가 없어지고 만다. 나는 내 연설문을 역사에 남긴다는 생각으로 썼다. 그래서 늘 진지했다. <김대중, 김대중 자서전>
노무현 대통령은 언젠가 글쓰기를 음식에 비유해서 얘기한 적도 있다.
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부려서도 안 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3. 먹지도 않는 음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4. 글의 시작은 애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에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 놓으면 정작 메인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거든.
6. 메인 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삼계탕이면 삼계탕. 한정식같이 이것저것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다네. 글도 오락가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돼. 다 순서가 있지.
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 줄 알고 았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 글마다 다른 전개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면 곤란하네. 글도 진심이 담긴 내용으로 승부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모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24. 나는 마음을 비우고 다짐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25. (생각의 숙성 시간을 가져라) 두 대통령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그중 하나가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며 늘 생각, 생각, 생각을 했다. 멀리 보고 깊이 생각했다. 그게 맞는지, 맞는다면 왜 그런지 따져보고, 통념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쪽만이 아니라 다른 관점, 여러 입장을 함께 보고자 했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컸다. 그런 결과일까. 어떤 주제, 어느 대상에 대해서도 늘 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와 주장이 있었다.
26. 김대중 대통령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의견(생각)이 있는 사람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의견이 없는 사람이다.”고 할 정도로 생각을 중시했다. 생각과 관련한 세 가지의 ‘세 번 원칙’도 있었다.
먼저,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세 번 생각한다는 것이다. 첫째, 이 일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생각한다. 둘째, 나쁜 점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셋째,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한다.
다음으로, 상대가 있는 경우다. 그때에도 세 번 정도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이 사안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가? 두 번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무슨 생각, 어떤 입장일까? 세 번째, 이 두 가지 생각을 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심지어 장관이나 참모들에게 의견을 물어, 세 번 이상 본인 생각을 얘기하지 못하면 인사를 고려할 정도였다고 한다.
27. 김 대통령은 잠자리에 들기 전 늘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 동안 읽고 듣고 겪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 독서법은 화초를 가꾸거나 동물을 관찰하면서 체화된 것이라고 한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잘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두 대통령의 글쓰기 힘 역시 생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정보는 널려 있다. 따라서 글감은 많다. 구슬을 꿰는 실이 필요하다. 그 실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바로 생각이다. 생각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두 대통령은 서로 다른 점도 많다. 그중 하나가 생각이 변화하는 주기다. 김 대통령은 여간해서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아하지만, 한 번 정립한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생각에 관해 얘기를 하는 순간에도 생각을 진화시킨다.
27.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연설문을 쓰는 건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상황에서 과녁에 화살을 맞히는 것과 같다. 그 시기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맞혀야 하기 때문이다.
28.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글을 잘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특히 자신이 써야 할 글이 정해지면 그 글의 주제에 관해 당분간은 흠뻑 빠져 있어야 한다. 이처럼 빠져 있는 기간이 길수록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이 높다.
29. (독자와 교감하라)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는 상대의 언어를 사용한다.” 미디어 전문가 마샬 맥루한의 말이다.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내용만 얘기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렇다고 듣고 싶은 얘기만 하는 것 역시 실속이 없다. 자칫하면 아부나 영합이 될 수도 있다. 교감이 필요한 것이다.
독자를 의식하느 글쓰기란 무엇인가. 바버라 베이그는 <하버드 글쓰기 강의>란 책에서 첫째, 독자의 관심을 어떻게 끌어모을지. 둘째, 글의 시작부터 끝까지 독자의 관심을 어떻게 붙잡아둘지. 셋째, 자신이 말해야 할 것을 어떻게 독자에게 분명히 밝힐지. 넷째, 독자에게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해서 그들을 웃고 울거나 생각하게 할지를 헤아려야 한다고 권고한다.
30. 김대중 대통령은 독자와의 교감을 강조했다.
“첫째, 반걸음만 앞서가라.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너무 앞서 가지 마라. 따라오지 않으면 잠시 멈춰 서서 들어라. 이해해줄 때까지 설득하라. 그래서 의견을 맞춰라. 읽는 사람을 배려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읽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둘째, 손을 놓지 마라. 두세 걸음 앞으로 나서면 마주 잡은 손이 떨어질 것이고, 따라올 수가 없다. 늘 그들 안으로 들어가 읽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란히 가서도 안 된다. 그러면 발전이 없다.”
김 대통령은 현장도 강조했다.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직접 교감하고자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금 달랐다. ‘국민의 눈높이’를 넘어 ‘역사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35. 누구나 글을 쓸 때에는 그 글을 읽을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얘기를 기대하는지를 의식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말했다. ‘말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사람과 말의 내용, 그리고 말을 하는 대상이다. 말의 목적은 마지막 것과 관련이 있다.’
42. (상량) 헤아리고 또 헤아려? 전심을 다해서 몰입하란 뜻일 것이다.
노 대통령 역시 글쓰기를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했다. 독서, 사색, 토론이다. 대통령은 바쁜 청와대 생활에서도 반드시 짬을 내서 책을 읽었다. 청와대 참모는 물론 학자, 관료, 시민단체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토론했다. 이 모두가 글쓰기와 무관하지 않다. 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글을 쓰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영감이나 직관과는 다르다. 죽을 힘을 다해 몰입해야 나오는 것이 창조력이다. 열정과 고민의 산물이며, 뭔가를 개선하고 바꿔보려는 문제의식의 결과물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집중하고 몰입해야 한다. 절박해야 한다.
46. 독서는 세 가지를 준다. 지식과 영감과 정서다. 책일 읽고 얻은 생각이다. 그중에 글 쓰는 데는 영감이 가장 중요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특히 감옥에서의 독서는 유명하다. 옥중에서 보낸 편지 말미는 매번 ‘다음 책을 넣어주시오’로 끝났고, 10~20권의 도서 목록이 적혀 있었다. 정치/경제는 물론, 철학/신학/역사/문학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여러 권을 펴놓고 돌려가면서 하루 열 시간 정도 독서를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고서도 “마음껏 책을 봤으면 원이 없겠다. 이럴 때는 가끔 감옥에 있을 때가 그립기도 하다.”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정도였다. 1999년 5월 러시아 방문 때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이런 연설도 했다.
“나는 오랜 옥중생활을 통해서 러시아 문학을 섭렵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등 많은 러시아 고전을 탐독했습니다. 그리고 솔제니친과 사하로프의 작품들도 애독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 문학을 읽은 것만으로도 감옥에 간 보람이 있었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47. 책을 읽은 후에는 사색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다. 스스로 지킬 것을 다짐한 ‘대통령 수칙’ 12번이 ‘양서를 매일 읽고 명상으로 사상과 정책 심화해야’이다.
48. “책을 읽고 새로운 지식이나 지혜를 발견했을 때, 깊이 생각하여 새로운 이치를 깨달았다 싶을 때, 혼자 생각한 이치를 훌륭한 사람이 쓴 책에서 다시 확인했을 때, 저는 행복을 느낍니다. 어떤 때에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일어서서 방 안을 서성거리기도 합니다.” 노무현
49. 김 대통령은 독서의 완결이란 읽은 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데까지라고 했다. 노 대통령 역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과 영감을 정책에 반영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책으로 집대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51.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것입니다.” 노무현
54. 한때는 정치가 곧 연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원고를 작성했다. 중요한 연설문은 산통이 대단했다. 호텔 방을 전전하며 구성하고 수없이 다듬었다. (중략)
내 연설문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작성하지 않았다. 정성을 들이고, 최선을 다했다. 내 자서전에는 연설문이 비교적 많이 실렸다. 그것은 어느 설명보다 어느 비유보다 내 연설문이 더 정확한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의 내 철학과 비전, 열정과 가치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김대중 자서전>
54. 대통령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모두 읽었다. 괘찮다 싶은 내용은 따로 놔뒀다가 다시 읽었다.
이를 통해 머릿속에 얼개가 서면 비로소 집필에 들어간다. 그리고 각고의 시간 끝에 연설문이 완성되면 직접 서서 읽어본다. 그저 한번 읽어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입에 완전히 붙을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 글을 쓰는 시간보다 이렇게 퇴고하는 시간이 더 걸릴 만큼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57. 정약용, 아인슈타인, 링컨, 에디슨, 김대중, 노무현.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메모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독서 메모는 ‘대차대조 메모법’이라고 불렸다. 책을 읽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나오면 책의 여백이나 노트에 대차대조표를 그리듯이 도표를 그렸다. 도표 한쪽에는 책의 내용을, 다른 한 쪽에는 자신의 의견을 적고 그 해법을 얘기했다. 생각이 묻혀 사장되지 않도록 철저히 메모했다.
메모하는 시간이 생각을 정리하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시간이었다.
67. 글쓰기 최고의 적은 횡설수설이다. (…)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다음 얘기로 넘어가나 싶더니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오락가락하는 글. 좀 심하게 얘기하면 술 취해 걷는 갈지자걸음의 술주정이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은 쓸데없는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글을 멋있게 예쁘게, 감동적으로 쓰려고 하면 나타나는 몇 가지 현상이 있다.
첫째, 길어진다. 이 얘기도 하고 싶고 저 얘기도 하고 싶고, 이 내용도 넣고 싶고 저 내용도 넣고 싶고, 중언부언하게 된다. 글쓰기야말로 자제력이 필요하다.
둘째, 느끼해진다. 미사여구가 동원되고 수식이 많아진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형용사는 명사의 적이다.’ 꾸밀수록 알쏭달쏭해진다는 것이다.
셋째, 공허해진다. 현학적인 말로 뜬구름을 잡고 선문답이 등장한다. 꽃이 번성하면 열매가 부실한 법. 결과적으로 자기는 만족하는데, 실속 없는 글이 된다.
몇 가지만 명심하면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가급적 한 가지 주제만 다루자.
감동을 주려고 하지말자.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힘을 빼고 담백해지자. 거창한 것, 창의적인 것을 써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리자.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방과 벤치마킹을 부끄러워 말자. 다르게 읽으면 그것이 새로운 것이다. 반드시 논리적일 필요도 없다. 진정성만 있으면 된다. 논리적인 얘기보다 흉금을 터놓고 하는 한마디가 때로는 더 심금을 울리기도 하니까.
횡설수설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할 얘기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쓰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막상 글로 쓰려면 잘 안 써진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쓰고 싶은 의욕만 있을 뿐, 쓸 내용은 아직준비가 안 된 것이다. 할 얘기가 분명하면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요점만으로 간략히 정리가 된다.
오락가락하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명료해야 한다. 첫째는 주제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 이 글을 읽은 사람의 머릿속에 어떤 말 한마디를 나믹고 싶은가. 둘째, 뼈대다. 글의 구조가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 셋째, 문장이다. 서술된 하나하나의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명료해야 한다.
느낀 그대로, 아는 만큼 쓰자. 최대한 담백하고 담담하게 서술해나가자. 그러면 결코 횡설수설하지 않는다.
75. 한 줄 쓰고 나면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자료 부족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 자료 확보가 필수적이다. 소설가 김훈은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란 책에서 좋은 글의 조건을 이렇게 말했다. “정보와 사실이 많고, 그것이 정확해야 되며, 그 배열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글은 자신이 제기하고자 하는 주제의 근거를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해보이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좋은 자료를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에 성패가 좌우된다. 자료가 충분하면 그 안에 반드시 길이 있다. 자료를 찾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때로는 애초에 의도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쪽으로 글이 써지기도 한다. 자료와 생각의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다.
자료는 글 주제와 얼개의 종속변수가 아니다. 주제가 정해지고 얼개가 짜진 후, 거기에 따른 부속물로서 자료 찾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료를 찾는 과정이, 혹은 자료 찾기의 결과가 주제를 바꾸고 얼개를 수정하게도 한다. 자료를 찾아서 정리해보면 자신이 정해놓은 주제나 짜놓은 얼개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주제와 얼개 짜기 단계에서 막혀 있을 때도 관련 자료를 읽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자료찾기는 글의 주제와 얼개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77. 글쓰기의 시작은 자료 찾기다. 자료 찾기는 또한 글 쓰는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세상에 흔한 게 자료다. 요즘은 특히나 그러하다. 그 자료 중에 필요한 것을 찾아 내가 쓰려는 내용에 끼워 맞추면 된다.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어찌 보면 글쓰기는 자료 찾기 기술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료는 많다. 제재 혹은 글감은 책/포털사이트/메모/생각/경험/기억/광고/속담/신문/잡지/TV, 이 모든 것에 있다. 자료는 이미 있는 것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답사/면담/설문조사 등을 통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도 있다. 기억, 관찰과 상상도 넓은 뜻에서 자료일 수 있다. 이 자료들은 상호작용을 한다. TV를 보면서 생각이 떠오르고, 그것을 포털사이트에서 찾는다. 이렇게 이종교배를 하면 할수록 자료는 신선해지고 내 것이 된다.
78.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은 말한다. “글쓰기는 집을 짓는 것과 같으며,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연장통을 잘 갖춰놓아야 한다.” 내게 포털사이트는 훌륭한 연장통이다. 연장통 쓰는 요령은 이렇다.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클릭한다. 우측 상단의 ‘검색’을 클릭한다. ‘뉴스 상세검색’을 클릭한다. 검색어를 입력하고, 하단의 ‘칼럼’을 클릭한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도서관’을 검색하면 이에 관한 통계나 사례 등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 해당 칼럼이 너무 많은 경우에는 ‘제목에서만’을 클릭하면 된다. 지금도 글을 쓸 때 이 방법을 쓴다. 거의 모든 주제에 관해 쓸 말이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자주 이 방법을 추천하기도 한다. 자료를 완벽하게 찾아놓고 글을 쓰기보다는 쓰면서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선, 자료 찾기는 자기 글이 실리는 매체나 말해야 하는 행사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된다. (…) 자신의 글이 언제 어느 지면에 실리는지, 내 글을 읽는 독자는 누구인지를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이른바 ‘판을 읽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소홀히 하면 봉창 두드리는 글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다음으로 찾아봐야 할 것이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핵심메시지에 관련된 내용이다. 핵심메시지 관련 자료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아보는 게 좋다. 글을 쓸 때 먼 곳에서 자료를 찾으려고 구천을 헤매는 경우가 많다. 시간만 낭비하고, 설사 찾았다 한들 공허한 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파랑새는 우리 집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84. 노무현 대통령이 쓰던 가장 일반적인 얼개 짜기는 이런 것이다. 먼저, 하고 싶은 얘기를 서너 개 정한다. 이것이 큰제목이 된다. 이러한 큰제목 안에 들어갈 내용을 중간제목으로 열거한다. 또 중간제목 안에 들어갈 내용을 그 아래 적는다. 소제목들이다. 이렇게 하여 큰제목, 중간제목, 소제목이 나오면 얼개가 짜진다. 이 과정은 책으로 얘기하면 목차 만들기와 같다. 전테 글을 압축해놓은 뼈대인 것이다.
소제목은 하나의 완성된 문장으로 표현된다. 대통령은 이것을 명제 혹은 카피라고 했다. 이러한 명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거기에 쓰일 수치, 사례를 찾는다.
(…) 백지에 명제들을 툭툭 던져놓고 명제와 명제 사이의 공간을 채워가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채워가다보면 한 편의 글,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이 작업을 할 때는 우선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경제/정치/사회 등으로 잘 분류해야 한다. 같은 분야의 내용끼리 묶는 범주화 과정이다. 그런 이후에 하나의 범주 안에서 큰 주제와 작은 주제로 줄을 세우는 서열화 작업을 하여 큰제목, 중간제목 소제목을 만들어낸다.
노 대통령은 얼개 안에서 총론과 각론, 각론과 각론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입체적 구조의 글을 쓰고자 했다. 그래서 자기주장을 열거하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았다. 열거된 사안과 사안 간의 유기적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평면적 서술은 논리적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글을 밋밋하게 한다고 보았다.
92. “제가 탄핵 결의를 받고 보니까 열린 우리당의 창당을 지지한 것이 엄청난 정치적 모험이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대와 국민의 요구를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되었다고, 위험이 예상된다고 포기할 수 있는 목표가 결코 아닙니다.”
95. 말과 글의 성패는 첫마디, 첫 문장에서 판가름 난다. 거꾸로 얘기하면, 출발에서 실패하면 독자와 청중은 떠난다. 그런 점에서 글의 시작은 유혹이어야 한다. 치명적인 유혹이면 더욱 좋다. 그러나 쉽지 않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 왜 그럴까? 긴장하기 때문이다.
긴장하는 이유는 둘 중의 하나다. 첫째는 눈이 높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글쓰기가 아닌 글짓기를 하려고 한다. 글짓기는 농사짓기와 같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욕심을 버리자. 나중에 고친다는 생각으로 일단 쓰고 보자. 시작하는 용기가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다른 하나는 남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검열한다. 이렇게 쓰면 남들이 저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럴 사람 없다. 설사 있더라도 나중 일이다. 머릿속의 ‘빨간펜 선생님’을 지우자.
106. 한 문장 하나 메시지. 한 문장 혹은 한 단락 안에서는 한 가지 개념,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하는 게 좋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자.
군더더기 삭제. 모든 문장에서 없어도 되는 말은 없는지 찾아보자. 단락 안에서도 필요 없는 문장은 없는지 살펴보자. 그 말이 없어도 이해가 되면 불필요한 말이다.
크게 그려라. 대상이나 주제에 한정하지 말고, 보다 큰 시야에서 보고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로 확장한다. 예를 들어 준공식 축사라고 할 때 해당 산업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 관한 것까지 언급의 범위를 넓힌다.
139. 시작보다 중요한 퇴고.
무엇을 고쳤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서 이 얘기를 하는 게 맞는가 하는 것이었다. 바로 주제의 적절성 여부다.
두 번째 주안점은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주제가 잘 부각됐나? 즉 청중이나 독자가 어느 게 주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 주제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가.
- 주제를 뒷받침하는 소재는 충분하고 적절한가
- 주제의 명료함ㅇ르 가리는 장황한 수사는 없는가
-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 많지는 않은가
세 번째는 글의 전개에 무리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는가
- 단락과 단락 사이에 연결은 매끄러운가.
- 전반적인 흐름에서 통일성을 깨트리는 단락은 없는가.
- 단락 순서를 바꾸면 더 나아지는 것은 없는가
네 번째는 내용상의 보완이다.
- 빼도 상관없는 군더더기는 없는가.
- 빠트린 내용은 없는가.
- 앞과 뒤가 서로 어긋나는 내용은 없는가.
다섯 번째는 표현상의 문제다.
- 다르게 바꿨을 때 더 적절한 단어는 없는가.
- 불필요한 중복은 없는가.
- 불확실한 표현은 없는가.
- 진부한 표현은 없는가.
- 비문은 없는가.
- 짧게 끊을 데는 없는가.
일곱 번째는 독자나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들이다.
- 지겹다고 하지 않을까.
- 왜 글을 썼는지 알 수 있을까
- 재미, 감동, 지식 등 무슨 유익을 얻을까
- 시작에서 흥미를 보일까
- 결론에서 여운이 남을까
- 글이 리듬을 타고 있나.
철저히 독자가 되어야 한다. 글을 쓴 사람에 머물러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지 않으면 쓴 이유와 배경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합리화한다. 인정사정없는 독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가차 없이 고쳐야 한다.
잠시 묵혀둬야 한다. 글을 쓴 다음에 곧바로 고치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다. 자기 글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인 입장으로 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히 뜸을 들인 후 독자의 눈으로 다시 보자. 쉬운지, 명료한지, 설득력이 있는지, 혹시 오해할 것은 없는지 이리저리 뜯어보자.
146. 글쓰기의 화룡정점. 제목을 붙여라.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길어도 상관없지만, 최대한 압축하는 게 좋다.
글 내용과 동떨어지면 곤란하다.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일탈도 나쁘지 않다
호소형, 청유형도 자주 쓰인다.
유행을 따라가는 식상함을 피한다.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면 좋다.
150. 글은 메시지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하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글을 쓰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그것이 떠오르지 않으면 아직 글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핵심메시지는 가급적 셋 중의 하나로 정하는 게 좋다.
첫째, 자신이 잘 알고 열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지식이나 경험 모든 면에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분야, 자신 있는 지점에서 붙어야 승산이 높다. 홈그라운드에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적진’에 뛰어들어 주제를 잡을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깨똥철학’이어서는 곤란하다. 객관적인 긍거를 가지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공자님 말씀’도 좋지 않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 빤한 얘기는 재미없지 않은가. 자신만의 시각을 보여주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얘기일수록 좋다.
둘째, 듣는 사람이 바라고 기대하는 것. 어차피 글이나 말은 읽고 듣는 상대가 중요하다. 그들이 관심 없고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용은 얘기해봤자 전달이 어렵다.
“어젠다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세력으로 결집하는 게 정치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새로운 어젠다를 만들고 끊임없이 던져서 국민에게 생각이라도 해봐달라고 해야 한다.” 노무현
170. “여러분께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정권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그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얌심이 되어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경제, 남북 간 화해 협력을 이룩하는 모든 조건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서 표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선거 때는 나쁜 정당말고 좋은 정당에 투표해야 하고, 여론조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4,700만 국민이 모두 양심을 갖고 서로 충고하고 비판하고 격려한다면 어떻게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일어나고, 소수 사람들만 영화를 누리고, 다수 사람들이 힘든 이런 사회가 되겠습니까?”
<2009년 6.15 남북정상회담 9주년 기념사>
172. 쉽게 쓰자. “상대방이 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니 무조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김대중
173. 역사의 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정의, 즉 소수가 누리던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까지 확산하는 것. 그런 시각에서 보면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역사 발전에 일조하는 길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당연히 쉬운 말로 써야 한다. 전문용어에 돼먹지 않은 알은체는 자제해야 한다. 영국의 학자 F. L. 루카스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이기보다는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명확하게 짚어줘야 한다. ‘내가 하려는 얘기의 요점은 이것, 이것, 이것이다’라고. 그래서 읽는 사람이 척 보면 알 수 있어야 한다.
쉬운 이해를 위한 세 번째 방법은 사례를 들고 비유를 하는 것이다.
넷째, 반복해줘야 한다.
179. 명료하게 써라. 해설이 붙어야 하는 메시지는 문제가 있다. 듣고 알아야 한다. 단순성이 있다. 꾸미고 에두르지 않는다. 깐죽깐죽 긁는 방식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하는 식. 모호함이 없다. 글을 쓰는 목적 중의 하나는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애매한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데 있다. 구체적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표현보다는 살면서 겪는 구체적인 말로 얘기해야 읽는 사람, 듣는 사람이 더 공감한다. 복지를 확충하겠다는 말보다는 “최소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고 끼니를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말이 더 와닿는다.
그러나 단순명쾌함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글이 명확하고 단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글을 쓰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진다. 둘째, 본질을 꿰뚫어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메시지를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다. 셋째, 과욕은 금물이다. 집토끼도 잡고 산토끼도 잡으려고 하면 복잡해진다. 복잡해지면 꼬이고 어려워진다. 넷째, 독자를 믿어야 한다. 믿지 못하면 구구절절해진다.
192. "그러한 현실을 보고 결심했습니다. 사회정의를 세우겠다는 거창한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내 자식들이 나중에 이런 상황에서 고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일념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노무현
진정성을 말할 때 놓쳐서는 안 될 게 하나 있다. 자신이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돈 남 말하듯 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자기 희생을 전제해야 한다.
215. 손목시계에, 또 화장실에 ‘침묵’이라고 써 붙여놓기까지 하면서 말을 자제하려고 했다. 남의 말을 듣고, 사람을 격려하는 것, 내 자랑을 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사람이 낙심했을 때 용기를 주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하면 안 되고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김대중
겸손한 성품 그대로 낮은 자세로 새겨듣는 타입이었다. 특히 친밀한 관계가 아닌 경우에는 철저히 듣는 쪽을 택했다.
글 잘 쓰기는 잘 듣기로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스스로 중심만 잡을 수 있으면 많이 들을수록 좋다. 잘 들어야 말을 잘할 수 있고, 말을 잘해야 잘 쓸 수 있다.
217. 콘텐츠 만들기. 글쓰기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험한 것과 생각한 것, 이것이 콘텐츠다.
242. 용기가 필요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용기는 모든 도덕 중 최고의 미덕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과 나태를 물리칠 수 있다.”
글을 쓰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첫 줄을 쓰는 용기,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 쓴 글을 남에게 내보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술 마시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사랑을 고백하고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일도 용기가 없으면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용기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양심과 소신을 지키는 용기를 말하려고 한다.
243. 1980년대 초 총칼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이 달콤한 제안으로 회유하려 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들에게 협력하면 일시적으로는 살지만 영원히 죽는다. 그러나 당신들에게 협력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는 죽지만 역사와 국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산다. 따라서 나는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
김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참된 용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아무리 강해도 약합니다. 두렵다고, 겁이 난다고 주저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무리 약해도 강합니다.”
246. 글을 혼자 쓸 필요는 없다. ‘디캔팅decanting’이라는 것이 있다. 와인에 가라앉은 찌꺼기를 제거하고, 고유의 향을 살려내는 과정이다. 글 쓰는 과정에도 이런 디캔팅이 필요하다. 자기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해 주변 사람에게 얘기하고, 또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디캔팅 과정이다.
247. 김 대통령은 대화가 틀어지는 세 가지 경우를 얘기했다. 첫째는 상대방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혼자 결론을 다 내버리는 것이며, 셋째는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것이다.
271. 자기만의 글을 쓰자.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인생의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원칙을 가지고 가치 있게 살면 성공한 인생이고,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이것을 ‘글’에 대비하여 얘기해보자.
“글으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자기만의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만의 스타일과 콘텐츠로 쓰면 되고,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첫째, 자기만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모든 지식은 내 자신의 비판의 그물에서 여과시켜 받아들여야 한다. 설사 그것이 미숙하고 과오를 범할 위험이 있을지라도. 그것이야말로 내가 나로서 사는 유일한 지적 생활의 길이다.”(최성, <김대중 잠언집>)
자기 세계가 관점을 만들고, 관점이 있어야 훌륭한 글이 된다.
“글은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대로 쓰는 것이다. 타당성만 있다면 튀는 것을 주저하거나 개의할 일이 아니다.” 노무현
“야당은 야당답게, 여당은 여당답게 일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할 경우 자연히 상대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비난과 모욕을 당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반대를 두려워해서 자기 할 말을 못하는 리더, 모두로부터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리더는 설사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결코 성공하는 리더가 되기는 어렵다.” 노무현
자기 글의 두 번째 조건은 자기 스타일대로 쓰는 것이다. 스타일은 문체일 수도 있고, 글 쓰는 방식일 수도 있다.
자기만의 인상을 찾아내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의문을 갖는 것이다.
궁금하지 않으면 느낌도 없다.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자기만의 느낌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내’가 중요하다.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 나의 시선, 내 시각이 중요하다. 남의 눈치 볼 것 없다. 내 나름의 것이면 된다. 좀 건방져 보이더라도 확실하게 자신을 드러내자. 그리고 뻔뻔하게 우기자. 이게 내 생각인데 어쩔 거냐고.
277. “국민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심은 마지막에 가장 현명하다. 국민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이다.” 김대중
288.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기는 길은 얼마든지 있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망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김대중
김 대통령은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을 믿었고 그것에 의지해서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노 대통령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역사 청산’을 일생의 과업으로 여겼다.
이런 것이 지도자의 조건일까? 두 대통령 모두 사상가적인 면모를 지녔다. 문화예술적인 감수성이 풍부했다. 독서와 사색, 토론하기를 좋아했고, 이를 통해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키웠다. 그리고 그것을 말과 글로 표현할 줄 알았다. 두 분 다 연설문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공리공론보다는 실사구시를 추구했고, 사례나 수치를 들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신뢰도를 높이려고 했다. 무엇보다 좀 더 나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의욕이 넘쳤다. 나아가 글쓰기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겼다.
289. 2003년 5월 제11차 반부패 국제회의IACC 연설문 초안에서 부패의 해악에 대해 언급한 후, 국제 공조를 통해 부패를 일소해야 한다고 썼다. 대통령은 전면 수정을 지시했다. 부패가 안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국제 공조 역시 공자님 말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대한민국이 부패 척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해나갈 것인지, 우리의 이야기를 넣으라는 주문이었다. “Man(인류)에 대해 쓰지 말고 man(한 인간)에 대해 쓰라.”고 한 미국의 소설가 E. B. 화이트 Elwyn Brooks White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